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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팬틱봉(7,027m) 산행기(1)/파키스탄 카라코람 다카포쉬

왕마구리 2007. 11. 23. 14:55

2006년 경희대학교산악부 브로드 피크봉 10주기 추모원정대로 스팬틱봉 원정(2006년 6월 30일~8월 4일) 중 촬영한 사진들이다. 원정대의 일원으로 함께 한 아들(천우용)이 7월 4일부터 7월 25일까지 산행 중 메모형식으로 적은 일기를 간략하게 사진과 함께 적어보기로 한다.

 

▲ 가샤브룸4봉을 배경으로 '경희대산악부'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

 

♧ 원정개요

1.원정대 명칭 : 2006년 경희대학교 브로드 피크봉 10주기 추모원정대

2.원정 대상지 및 대상산

   1)추모트레킹 : 파키스탄 카라코람산맥 발토르빙하 일대

   2)추모등반 : 카라코람산맥 라카포쉬 스판틱봉(7,027m)

3.원정일자 : 2006년 6월 30일 ~ 8월 4일(총 35일간)

4.주 최 : 경희대학교 산악부, 경희산악회

5.원정대원(3명) : 최성호(경희대학교산악부 재학생 부원, 대장/장비 및 행정)

                      천우용(경희대학교산악부 재학생 대장, 대원/식량 및 기록)

                      이치상(경희대산악부OB, 경희산악회 회원, 대원/촬영 및 회계)

 

- 제 1편 추모트레킹(2006년 7월 4일 ~ 7월 15일) -

 

▲ 스팬틱봉(7,027m) 정상에서 '한국대학산악연맹'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

 

7월 4일(화)

스카르두(Skardu)를 출발하여 Jeep을 타고 아스콜리(Ascole)에 도착했다. 고도 3000m에 달하는 아스콜리에 도착하고 나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동네 앞산정도의 산들이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만년설로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우리가 도착하자 잔뜩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린다.

높은 고도를 처음 접해보는 나로서는 한 가지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보이지 않지만 산소의 양이 적다보니 조금만 뛰어도 금방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저녁식사인 닭을 잡으려고 조금 뛰었다가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것같다. 백숙과 채소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가이드인 Zahid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 포터(하루 일당은 250~260Rs/약 4,000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치상이 형의 열심히 하는 포터에게는 보너스가 주어진다는 말에 포터 모두 기뻐하면서 흩어져 갔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카랴반이 시작된다. 지금 바라는 것은 무사히 원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7월 5일(수)

상행 카랴반의 시작... 약간은 긴장되고도 들뜬 마음에 처음부터 약간 빠르게 걸으니 머리가 띵하고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국내 산행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러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물을 많이 마시고 호흡조절을 한 후 천천히 걷자 괜잖아 지는 듯 했다. 게다가 고로퐁(Ghoropong) 브랑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더니 머리 아픈것이 모두 사라졌다.

아픈것이 사라지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크고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좌우로 쫙 펼쳐져 있었다. 재미있게도 만년설이 쌓여있는 봉우리들에는 어김없이 조각구름들이 하나씩 씌어 있었는데, 마치 햇볕에 만년설을 보호하려고 구름모자들을 쓰고 있는 듯 했다.

첫 원정에 힘이 들고 피부가 까맣게 탈지라도, 파란하늘과 새하얀 눈들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내일은 또 어떤 자연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기대해 본다.

 

 

 ▲ 카랴반 중에...

 

7월 6일(목)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침 후 10년전에 이름 붙여졌다는 치상피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소에 대비해서 물을 많이 마셨다. 머리 아픈 것은 없어졌지만, 하늘의 뜨겁게 내려쬐는 태양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점심식사를 했던 몸드롱피 데이라(Momdrongpi Daira)에서 팔기위해 차가운 물에 담아둔 콜라에 눈이 가고 침이 절로 고인다.

점심식사 후에 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능선사이로 잠시이긴 하지만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가 고개를 내민 채 우리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로드피크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계속해서 이동을 해서 오늘의 캠프인 빠유(Paiyu)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파키스탄 정부에서 설치한 곳인데, 울창한 숲에 화장실과 샤워장까지 갖추고 있다. 오랫만에 빨래도 하고 샤워를 했더니 졸음이 몰려온다.

저녁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물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다행히도 우리 팀의 Cook이 한국원정대와 함께 했던 경험도 있고,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아서 커다란 도움이 된다.

오늘도 이렇게 파키스탄의 하루가 자나가고 있다...

 

 ▲ 카랴반 중 잠시 휴식을 취하며...

 

 ▲ 카랴반 중 희말라야의 고봉들을 배경으로...

 

7월 7일(금)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제로 포인트(Zero point/빙하의 말단)를 넘어 빙하로 진입하게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곳이 그 유명한 인더스강의 발원지 중의 하나아며, 인더스 문명의 발생지라고 한다. 빙하 위를 걸어 3스테이지를 이동한다는 계획 때문에 급한 마음에 바닥만 쳐다본 채 걸었었다. 그러다가 주위도 좀 둘러보면서 가라는 치상이 형의 말에 주위를 살펴보니 다양한 모양의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빠유피크, 트랑고타워, 레이디스핑거 등의 많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저 멀리 브로드피크와 카샤브롬(Gasherbrum)4봉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아쓰콜리에서 3,000m 정도였던 고도가 어느새 4,000m를 넘어섰다. 그래서인지 오르막에서는 머리가 멍하고 숨이 많이 가파르다. 거기다 훼방꾼인 날파리들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빙하로 진입을 해서인지 이제 더 이상 강과 같이 커다란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생긴 작은 호수와 계곡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한 가지 위험한 점은 햇빛에 녹은 빙하위의 돌들이 굴러 떨어지며 위험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다행히 우리들에게는 위험없이 목적지인 우르드까스(Urdokas)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원정이 하루하루 이어지면서 몸이 지치기 시작을 하고, 그에 따라 정신력도 조금씩 약해지는 듯 하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새기며 침낭에 몸을 누이며 하루를 마감한다.

 

 ▲ 히말라야의 빙하지대

 

 ▲ 빙하지대를 걸어서...

 

7월 8일(토)

캠프를 정리하고 이동을 시작하였는데. 몇 개의 돌무덤이 보인다. 이곳에서 죽은 포터들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Cook인 Raja도 무덤을 향해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 채 몇 마디 말을 중얼거린다. 수려한 풍경의 산들 뒤에는 이처럼 많은 클라이머, 포터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원정의 목적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오늘도 빙하위를 걷고 또 걸었다. 4,000m를 넘은 이후로는 조금만 걸어도 머리가 약간 아프고 멍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것이 나 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포터들도 이전보다 잦은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이동을 했다.

고로2(Ghoro 2)에 캠프를 설치한 후에 남아있는 식량을 체크했다. 확실히 인원이 적어서 인지 식량의 소비가 많지 않았다. 체크를 끝내고 텐트로 돌아와 누웠다. 피곤해서인지 두 눈이 금방 스르륵 감긴다. 누워있자니 불현듯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원정뿐만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집, 그리고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7월 9일(일)

아침에 눈을 뜨고 침낭을 들자 한기가 확~ 밀려온다. 마치 동계훈련 때 잠에서 깰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빙하위에서 텐트를 치고 자서인지 전날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작이었다. 그래서 상의도 조금 두꺼운 것으로 갈아입고 장갑을 낀 채 운행을 시작하였다. 이제는 브로드피크도 제 모습을 보이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콩고르디아(Concordia)에 도착하니 K2(일명 쵸고리 Chogori 8,611m)까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가셔브롬B.C.에서 만나 뵙기로 했던 오희준 선배님이 어제 가셔브롬2 등정에 성공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빨리 찾아뵙고 축하해 드리고 싶었지만 일정상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 故 오희준씨는 2007년 6월 16일 새벽 01시 40분 경 에베레스트<8850m> 남서벽 '코리아 신 루터'를 개척하다 7700m 4캠프에서 눈처마의 붕괴라는 갑작스런 사고로 이현조씨와 함께 숨졌다. 고인은 제주출신으로 1999년 첫 8000m급인 초오유(8201m) 등정 이후 2000년 브로드피크(8047m), 사샤팡마(8027m), 2001년 로체(8516m), K2(8611m), 2001년 안나푸르나(8091m), 2004년 남극점 도달, 2005년 북극점 도달, 2006년 에베레스트(8840m), 가셔브롬1(8035m), 가셔브룸11(8060m), 마나슬루(8163m) 등 8000m급 10좌 등정과 국내 4번째로 세계 3극점 탐험에 성공한 산악인 이었다.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이동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바위가 보이자 Zahid가 베낭을 벗어두고 볼더링을 하기 시작했다. Zahid는 암벽등반에 관심이 많은 듯 큰 바위나 벽 같은것이 있으면 올라가보려고 했다. 나도 같이 도전해 봤는데, 굉장히 숨이 가쁘고 힘이 들었다. 볼더링을 하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데, 거벽 등반을 하시는 분들은 어떨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드디어 브로드피크B.C.에 도착하였다.

내일 있을 중요한 추모행사 준비를 한 다음 브로드피크의 품 아래에서 잠을 청해 본다...

 

 ▲ 희말라야의 빙하지대

▲ K2 메모리얼 제단

 

7월 10일(월)

이번 원정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故 한동근, 양재모, 임순택 선배님들의 추모행사를 위해 K2 Memorial로 향했다. 게다가 지난 지진으로 인해 동판에 손상이 있었을까 하는 우려에 시멘트도 가져갔다. 다행이도 동판은 아무 이상없이 많은 동판들 속에 함께 하고 있었다. 먼저 준비해간 청주, 북어포, 건과일 등이 동판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협소한 장소 탓에 절을 올리지 못하고 묵념으로 대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으로 선배님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는 추모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이제는 고도가 5,000m가 넘어섰다. 그래서인지 식욕도 떨어지고 힘이 많이 빠진게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다음 목적지인 가셔브룸B.C.로 향했다. 그런데 날이 맑아서인지 빙하도 많이 녹고, 길이 험해지면서 시간이 오래 지체되었다. 그래서 결국 샤그린에서 캠핑을 하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9시간 가량 험한 발토르 빙하 위를 걸어서인지 굉장히 피곤하다. 게다가 고소의 영향으로 머리도 약간 아파 컨디션이 많이 나쁜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추모행사를 아무 무리없이 끝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앞으로 남은 하행 카랴반과 스판틱 등반에서도 이처럼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7월 11일(화)

우리들 3명에 Zahid와 Raja만이 동행을 해서 가셔브롬B.C.로 출발했다. 그곳에는 이미 등반을 하기위해서 온 여러 나라들 등반대 캠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캠프 초입부분을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안쪽에서 푸르만이 양손에 보리차와 오렌지 쥬스를 들고는 뛰어오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푸르만이 가져온 음료로 목을 축이고 한국 캠프로 향했다. 그런데 초입부분부터 약 30분은 더 들어가서야 한국팀 캠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캠프에는 오희준 선배님 팀과 동아대학교 팀이 함께 있었다. 성호 형은 오지탐사대 일로 동아대 팀과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다란 텐트로 초대받은 우리는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등반 이야기 등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가셔브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가셔브롬B.C.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샤그린으로 돌아 와 캠프를 정리하고 콩고르디아로 이동을 했다. 콩고르디아에 도착할 때 쯤에 저 아래쪽에서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캠프를 설치하고 텐트 안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가 되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누워서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보니, 이틀간 정말 많은 곳을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드피크, K2, 가셔브룸까지... 정말 피곤한 시간이다...

 

 ▲ 가셔브롬 베이스 캠프 전경

 

 ▲ 가셔브룸4봉을 배경으로 '부천마구리산악회'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

 

7월 12일(수)

밤 사이 내린 비로 걷기에는 그만한 날씨였다. 거기에 이제부터는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몸 상태도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이동 속도도 빨랐다. 그런데 한가지 나를 맥 빠지게 하는 것이 있었다. 산행 중 지나치게 되는 포터들의 반응이다. 포터들은 항상 우리를 보면 항상 'Japaness?' 혹은 'Chiness?' 하고 묻는다.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본 일본 팀이나 중국 팀보다 한국 팀이 많았음에도 'Korean?'이라 묻는 포터들은 매우 극소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트레킹 문화가 발전해서 포터들이 항상 'Korean?' 이라고 물어보는 시기가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우르드까스에 도착하자마자 오희준 선배님이 말씀하셨던 '허승관, 박영도 선배님의 동판'을 찾아 보았다. 그 동판은 찾기 쉽게도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동판 앞에 꽃 몇 송이를 꺾어 와서 꽂아 두었다. 캠프를 치고 밤이 되자 또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을 한다. 빗소리와 포터들의 노래소리가 자장가 되어 나의 몸을 침낭 속으로 이끈다.

 

7월 13일(목)

계속되는 비로 오늘은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어찌보면 그로 인해 지금까지의 여정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일이 된 것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김치부침개도 만들어 먹었다. 거기다 감자도 쩌서 먹고, 휴식도 푹 ~~ 취할 수 있었다.

우리 팀 뿐이어서 조용하던 이곳 우르드까스가 갑자기 분주하고 어수선해졌다.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한 팀이 우르드까스로 들어 오고 있었다. 약간은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치상이 형이 가져오신 '빙하의 꿈'이란 책이 보였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관한 소설책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왜 산에 오를까에 대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스판틱 등반에 대한 나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되었다.

 

7월 14일(금)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텐트 밖으로 나오니 어제 내리던 비는 눈으로 바뀌어서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날이 쌀쌀한 덕분에 파리들로부터 공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선선한 것이 걷기에도 좋아서 올라갈 때보다는 절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서 호불세와 릴리고를 지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제로 포인트를 지나 빙하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올라갈 때 10시간 걸리던 곳을 6시간 만에 통과해서 한 스테이지를 더 내려가 몸드롱피 데이라에 캠프를 설치했다.올라갈 때와 같은 장소인데도 날씨에 따라 그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다. 올라갈 때는 너무 더워 물속의 콜라에 군침을 삼켰지만, 지금은 너무 추워 우모복을 입을 정도이다. 지금의 이런 날씨가 몬순때문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장마철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의 몬순이 스판틱 등정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하는 것이다.

 

7월 15일(토)

오늘 하루 이동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앞길을 막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Garyum Bridge의 통과료 문제였다. 분명 상행 때 포터가 11명이었음에도 170Rs를 지불하였는데, 오늘은 8명 뿐인데 180Rs를 내라는 것이다. 아쉬운 쪽이 우리들이다 보니 하는 수 없이 지불을 하고 다리를 건넜는데, 기분이 영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트래킹의 처음 시작이었던 아스꼴리로 다시 돌아오자 모든 것을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서 음료수와 비스켓을 조금 사서 Surongo에 있는 푸르만의 집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이스람교의 종교상 관례로 손님이 오면 남자들이 손님접대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12살인 푸르만의 첫째 아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사람 모두가 몰려와서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푸르만의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Jeep이 기다리고 있는 통갈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함께 한 포터들의 임금을 계산해 주고 Jeep을 타고 히드라바드로 왔다. 여기에 도착해 짐정리를 간단히 마치니 어느듯 시간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일이면 스판틱 등정을 위해 또 다시 출발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무사히 온 것처럼 앞으로의 여정도 아무 사고 없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희말라야의 만년설로 덮인 고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