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강원&충청권

(강원 강릉)되살아난 천년의 향기!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임영관 삼문

왕마구리 2016. 7. 10. 00:07

◀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와 임영관 삼문(臨瀛館 三門) 

고려·조선시대 중앙의 관리들이 머물던 건물!!! 강릉대도호부 관아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객사의 정문!!! 강릉 임영관 삼문

 

 

강원도 강릉시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을 한 지역이었지만 국가지정문화재를 위주로 2016년 4월 26일~27일 1박2일 일정으로 양양군과 함께 탐방을 하였으나, 양양군 지역 탐방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관계로 강릉시에서는 강릉대도호부 관아(임영관 삼문 포함), 강릉 신복사지의 석조보살좌상과 삼층석탑, 강릉 굴산사지의 승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강릉 보현사의 낭원대사탑과 탑비 등만 탐방을 하였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강릉시의 많은 문화재 탐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으로 5월 19일~20일 1박 2일 일정으로 강릉시를 재방문하게 되었다.

재방문 1박 2일 일정에서는 경포대 일원(강릉 해운정, 선교장, 경포대), 강릉향교, 대창리와 수문리 당간지주, 깅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인 명주군왕릉 등을 탐방하고, 대관령 옛길을 이용하여 대관령을 둘러 보고 귀경하였다.

 

『 탐방한 강릉시의 문화재들 』

▦ 2016년04월27일 탐방한 문화재들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

사적 제388호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

국보 제51호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 臨瀛館 三門)

●강릉 신복사지(江陵 神福寺址)

보물 제84호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江陵 神福寺址 石造菩薩坐像)

보물 제87호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

강릉 굴산사지(江陵 崛山寺址)

사적 제448호 강릉 굴산사지(江陵 崛山寺址)

보물 제85호 강릉 굴산사지 승탑(江陵 崛山寺址 僧塔)

보물 제86호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江陵 崛山寺址 幢竿支柱)

●강릉 보현사(江陵 普賢寺)

보물 제191호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

보물 제192호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碑)

▦ 2016년05월19일~20일 탐방한 문화재들

명승 제108호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江陵 鏡浦臺와 鏡浦湖)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호 강릉 경포대(江陵 鏡浦臺)

보물 제183호 강릉 해운정(江陵 海雲亭)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9호 강릉 심상진가옥(江陵 沈相振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 강릉 선교장(江陵 船橋莊)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江陵鄕校)

보물 제214호 강릉향교 대성전(江陵鄕校 大成殿)

보물 제82호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江陵 大昌里 幢竿支柱)

보물 제83호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江陵 水門里 幢竿支柱)

강원도 기념물 제12호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 아문을 들어서서 바라본 강릉대도호부 동헌 일대 전경

 

【 일 정 표 】2016년 04월 26일(화)-2016년 04월 27일(수) 1박2일

                             ◈ 첫째날(04/26) : (양양)오색리<주전골·성국사 오색리 삼층석탑·오색약수>-낙산사 일원

                             ◈ 둘째날(04/27) : (양양)진전사지-선림원지-(강릉)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신복사지-굴산사지-보현사

 

                        2016년 05월 19일(목)-2016년 05월 20일(금) 1박2일

                             ◈ 첫째날(05/19) : (강릉)강릉 해운정-강릉 심상진가옥-매월당 김시습기념관-선교장-경포대와 경포호

                             ◈ 둘째날(05/20) : (강릉)강릉향교-대창리 당간지주-수문리 당간지주-명주왕릉

 

강릉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강릉대도호부·임영관삼문, 경포대와 경포호, 강릉 해운정과 심상진가옥, 강릉 선교장, 강릉향교, 대창리 및 수문리 당간지주 및 명주군왕릉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강원&충청권'에,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강릉의 신복사지, 굴산사지, 보현사의 문화재들을 총 10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되살아난 천년의 향기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와 임영관 삼문(臨瀛館 三門)

- 통일신라 범일국사가 창건한 신복사지의 문화재들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江陵 神福寺址 石造菩薩坐像)과 삼층석탑(三層石塔)

-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강릉 굴산사지(江陵 崛山寺址)

- 삼국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보현사의 문화재들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 및 낭원대사탑비(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碑)

- 조선 상류주택의 별당 건물! 강릉 해운정(江陵 海雲亭)

- 강릉팔경의 하나!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江陵 鏡浦臺와 鏡浦湖)

-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 강릉 선교장(江陵 船橋莊)

- 고려 충선왕 때 세워진 향교! 강릉향교(江陵鄕校)

- 강릉 시내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들! 대창리 당간지주(江陵 大昌里 幢竿支柱)와 수문리 당간지주(水門里 幢竿支柱)

-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신라하대 진골 귀족 김주원의 묘!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 소개 』

*사적 제388호(1994년07월11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용강동)

*면적:18,951㎡

 

                     ▲ 강릉대도호부 관아 임영관 전경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국보 제51호)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 아문

 

♧ ♧ 강릉 칠사당(江陵 七事堂)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1971년12월16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용강동)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로 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의 7가지 정사에 관한 일을 배풀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된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인조10년(1632)과 영조2년(1726)에 크게 중수하였다. 고종3년(1866)에 진위병의 영으로 사용되다가 이듬 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으 강릉부사 조명하가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있었고, 뒤에 강릉군수의 관사로 쓰이다가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었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 칠사당 측면 전경(사진 上)

                        칠사당 후면 전경(사진 下)

 

정면 측면에 누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구조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 칠사당 대청 천장(사진 上)

                        측면 1칸의 툇간(사진 下)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기둥으로 둥근형 초석위에 새겨져 있다.

이익공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 담장 밖에서 바라본 강릉대도호부 관아 칠사당 전경(사진 上)

                        칠사당 옆에서 바라본 출입문 후면과 문간채 전경(사진 下)

 

♧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건물들

◈ 의운루(倚雲樓)

강릉대도호부 관아 내에 위치했던 정자이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의운루

 

「임영지」와 「관동읍지」, 「증수임영지」 등 기록에 의하면 건물 규모는 6칸 정도이며, 임영관 남쪽에 있었다 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박시형의 운금루기문에 의하면 한송정과 경포대를 포함한 의운루, 운금루를 강릉의 절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의운루 정면(사진 左)과 후면(사진 右) 전경

 

호수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경포대와 한송정뿐 아니라 관아내에 인공으로 조성된 연당을 사이에 두고 건립된 의운루와 운금루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으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동헌(東軒)

지방 수령이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로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을 행하던 곳으로 관아의 행정 업누 중심 건물인 정청을 이르는 것이다.

 

                     ▲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동헌

 

생활공간인 내아와 구분되어 보통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웠으며, 나중에는 동헌이 관아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외동헌, 내동헌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동헌을 동쪽에 배치한 이유는 음양사상으로 동쪽이 양의 기운이 왕성한 것에서 연유한다.

또한 지방관을 사또라 부르는 것은 사도(使道)에서 유래되었는데, 사도란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왕명을 받아 지방을 통치하는 심부름꾼으로 뜻이 바뀌면서 명칭도 사또로 변했다.

건물의 규모는 장대석 3벌대의 기단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이익공 팔작지붕 양식이다. 동헌은 객사, 향교와 함께 지방 관아의 핵심 ㅓㄴ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 ♧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 臨瀛館 三門)

*국보 제51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용강동)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 후면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바라본 강릉 임영관 삼문(사진 上)

                        전면 우측 대각선 방향에서 바러본 강릉 임영관 삼문(사진 下)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 맞배지붕의 임영관 삼문 측면 모습(사진 上)

                        임영관 삼문 바깥쪽 가구(사진 下左)와 안쪽 중앙문(사진 下右)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강릉 임영관

 

강릉 임영관(江陵 臨瀛館)

강릉부의 객사건물이다.

객사는 객관 또는 관사라도도 하는데, 고려시대에 들어와 행정조직이 개편되면서 관아시설도 체계화되었다. 유교가 통치이념인 조선시대에는 사신의 접대공간뿐 아니라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가장 중요한 건물로 존속되었다.

객사 건물관리는 고을 아전들이 담당했는데, 고려시대에는 객사사라는 향직을 두어 관리하도록 했으며, 건물구조는 가운데 정청을 두고 그 좌,우에 익사를 두고 있다.

강릉부 읍지인 임영지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19년(936)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였고, 그후 여러 번 중수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에 강릉공립보통학교 설치로 헐리게 되고 객사의 삼문만 남아 있다가 2006년 중대청, 전대청, 서헌이 복원되었다.

 

- 중대청 : 정청인 전대청 옆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이며, 고려 건축양식 건물이다.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된다.

 

                     ▲ 강릉대도호부 임영관 중대청

 

- 전대청 : 객사의 정청이자 임영관의 중심공간으로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좌,우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 높게 지어졌으며 왕의 전퍠를 모셔두고 특별한 날 의례를 행하던 장소이다.

 

                     ▲ 강릉대도호부 임영관 전대청

 

- 서헌 :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정3품 관료가 숙식하던 장소이다.

 

                     ▲ 강릉대도호부 임영관 전대청 좌측의 서헌 

                     ▲ 강릉대도호부 임영관 전대청 우측의 동대청

 

- 동대청 :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 강릉대도호부 임영관 후면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