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18회/18산우회 산행기

[스크랩] 소요산(消遙山, 597m)/경기도 동두천시(07년01월07일 산행)

왕마구리 2007. 11. 21. 00:23

소 요 산(逍 遙 山)

높     이

587m

소 재 지

경기도 동주천시, 포천시 신북면

【 개     관 】

경기도 도립공원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명산으로 서울근교에 위치하여 접근하기가 쉽고 최근에는 전철이 개통되어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자그마한 산이지만 능선에는 노송과 기암으로 이루어진 상, 중, 하백운대를 비롯하여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 금송굴 등 명소가 있으며, 경기도 소금강이라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산이다.

계곡에는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폭포와 선녀탕 등 선경지대가 있고, 계곡 왼쪽에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自在庵)이 있는데, 6.25때 소실된 것을 그 후에 복원하였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어려있는 이 산은 소요산만 일주할 수도 있고 상백운대와 중백운대 사이에 위치한 530봉 능선분기봉에서 감투봉을 경유하여 신북온천으로 내려 갈 수도 있다. 또한 나한대와 상백운대 사이에 위치한 칼날바위 직전의 능선분기점에서는 동쪽 방향에 솟아 있는 군 부대 통신구조물이 보이는 국사봉을 경유하여 왕방산까지도 산행이 가능하다.

등산로 중 위험한 곳은 없으나 구 절터에서 의상대로 바로 오르는 암릉구간을 이용할 경우 겨울철 적설기에는 가급적 삼가하는 것이 좋고, 등산시기는 진달래가 필 무렵부터 단풍이 드는 가을까지가 특히 좋은 산이다.

【 산행일자 】2007년 1월 7일(일))

【 산행코스 】소요산역→주차장→관리사무소→매표소→일주문→의상대갈림길→구 절터→공주봉갈림길→샘터/이정표→T자형 능선갈림길→ 소요산 의상대(587m) →나한대(571m)→칼날바위→상백운대(559m)→530봉/감투봉갈림길→중백운대(510m)→하백운대(440m)→자재암→의상대갈림길→매표소/주차장→소요산역(원점회귀산행)

  【 실제 산행 거리 】  관리사무소 기준 상기 코스대로 원점회귀시 : 7.04km

【 산행시간 】총 4시간 44분 소요/하백운대까지 후미 기준(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원점회귀까지 후미기준 약 5시간 20분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 자재암 직전 선녀탕갈림길 근처에서 김 상수 동기가 발목부상을 당하여 동두천소방서 119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후송되어 이후시간은 기재치 않았음.

【 날     씨 】맑 음

【 참 석 자 】김상수, 김정두, 김형수, 박출석, 백승흠+이연숙, 서성수+김영자, 서정환+이은순, 이승용+박현자, 이성규+김종구, 이종익+송미란, 윤창희+이미옥, 이현동+이경희+이준규, 정지언, 천영면 (이상 23명)

【 교 통 편 】대중교통(전철 1호선) 이용

☞ 소요산역 출발 전철 1호선 시간표 :~13:10, 13:58, 14:37, 15:01, 15:44, 16:25, 16:44, 17:22, 18:03, 18:46, 19:28, 19:53, 20:18, 21:00, 21:55~

【 산 행 기 】

2007년 첫 산행지를 전철 1호선 개통으로 접근이 용이해진 서울 근교의 소요산을 택하여 실시되었다.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 않고 한차례씩 이메일과 문자메세지를 발송하였는데도 총 23명이란 많은 동기와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참석을 하여 이제는 18산우회도 어느 정도 정상의 궤도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경기지역에 내린 눈으로 안전사고등을 이유로 등산코스를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암벽구간을 포기하고 쉬운 등산로를 택하여 실시되었으나 하산 완료를 10여분도 남기지 않은 지점, 미끄러운 눈길도 아닌 내리막 바윗길에서 다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늦춘 탓 인지 김 상수 동기가 오른쪽 발목을 삐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여 동두천소방서 119구조대의 도움을 요청하여 들것에 실려 하산을 하고 응급차로 인근의 병원으로 후송되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X-Ray 검진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고, 반기브스로 몇 일간은 불편을 겪을 것이란 진단이 나와 동기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하였다.

병원까지 따라가서 이번 안전사고 끝 마무리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산우회 이 현동 재무총무, 이 종익 섭외총무 및 김 정두 주치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는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회원 모두가 조심, 또 조심하여 이러한 안전사고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의 사고가 18회 동기회 동기 모두와 18산우회 가족 모두의 2007년도 액땜을 김 상수 동기가 대신하여 했다고 생각하며, 김 상수 동기의 빠른 쾌유를 빌고 건강한 모습으로 2월 정기산행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년도 신년 첫 산행을 마치고 소요산 입구의 식당가에서 막걸리에 파전, 도토리묵, 감자전 등을 안주 삼아 푸짐한 뒷풀이 시간을 가졌으며, 뒷풀이 비용 전부를 박 출석 동기가 찬조해 주셨으며, 2월 산행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산행에 반드시 참석하여 동기들에게 본의 아니게 사고로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며 김 상수 동기가 뒷풀이 비용을 찬조하기로 선약을 하였다. 1월 뒷풀이 찬조를 하신 박 출석 동기와 미리 2월 뒷풀이 찬조까지 약속을 해 주신 김 상수 동기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소요산 입구에서 산행전 단체 기념촬영

09:50~10:25=>소요산역

     소요산역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여 주차장을 지나면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에 대형 등산안내도가 있고 도로 건너 좌측으로 관리사무소(10:30~10:43)가 보인다. 등산안내도를 기준으로 오늘 산행코스 설명과 단체 기념촬영을 마치고 매표소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계속 이어가면 계류 건너 우측으로 식당가들이 있고 식당가가 끝나는 곳에 새로 단장한 매표소가 나타난다.

도립공원이란 명목으로 국립공원 입장료보다 비싼 1인당 \2,000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일주문을 지나게 된다. '속리교' 다리를 건너면 이정표(←자재암, 선녀탕, 상백운대/→옛절터, 공주봉, 의상대)와 소요산 안내도가 있는 의상대갈림길(11:02~11:04)에 이르게 된다. 우측의 옛 절터 방향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자연보호헌장비'가 보이고 완만한 오르막의 편안한길을 따르면 위치표시판이 있는 넓은 공터에 이르게 되는데 구 절터이다.



▲ 의상대갈림길의 이정표와 구 절터의 위치표시판

11:08~11:14=>구 절터

     위치표시 '현위치:1-4(구절터)가 설치된 공터에서 오르막길을 따르면 1분 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도착을 하게 된다. 이정표(←의상대 1km/↑공주봉 0.9km/↓일주문 0.4km)에서 좌측의 눈 덮힌 희미한 등로를 따라 계류를 건넌 후 계류를 따라 완만한 바위투성이의 오르막을 진행하면 또 다른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옛날에 설치하였던 스테인레스로 만든 이정표다.

전날 경기지역에 눈만 내리지 않았다면 옛 스테인레스 이정표가 설치된 지점에서 좌측의 지능선을 따라 소요산이 왜 '경기의 소금강'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암벽구간으로 의상대에 바로 오를 계획이었으나 가파른 직벽이 도사리고 있는 암벽구간은 어제 내린 눈 때문에 밧줄이나 계단 등 안전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다음을 기약하고 공주봉을 경유하는 등로보다는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을 하지 않아 한적하고 여유를 부리며 오를 수 있는 공주봉과 의상봉 중간의 능선갈림길로 이어지는 등로를 택하여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눈 덮힌 가파른 오르막이 능선갈림길까지 이어지는 등로지만 거리가 짧아 별 어려움없이 능선길에 접근을 하게 된다.



▲ 눈 덮힌 한적한 등로를 따라 오르는 회원들

11:30=>샘터



▲ 샘터 이정표와 능선갈림길의 이정표

11:58~12:01=>T자형 능선갈림길

     갈림길에는 이정표(←의상대 0.9km/↓샘터 0.5km, 일주문 1km/→공주봉 0.3km)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의 약간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는 능선길을 따르면 의상대 암봉 직전 의상대를 우회하여 바로 나한대로 향하는 등산로가 우측으로 보이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고 이를 지나 나무계단길을 오르면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에 이르게 된다.


▲ 의상대 직전의 이정표와 의상대를 오르는 나무계단길



▲ 의상대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촬영(정상이 비좁은 관계로 2개조로 나누어 촬영)

12:26~12:37=>의상대(587m)

     위치표시 '현위치:2-4(의상대)'와 정상표지석이 암봉 정상에 있고 암봉 바로 밑 공주봉 방향의 등로 초입에는 이정표(해발587m, ←나한대 0.3km/→공주봉 1.1km)가 설치되어 있다. 내리막을 내려서면 위치표시 '소요산(4-5) 나한대쪽'을 대하게 되고 이를 지나 오르막을 극복하여 나한대에 오른다.

12:52=>나한대(571m)

     별도의 정상표지석은 없고 이정표(나한대 해발571m, ↑상백운대 1.2km, 금송굴 0.9km/↓의상대 0.3km)가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밧줄과 철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과 계단길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하산로가 있는 갈림길의 위치표시 '소요산(4-6) 나한대'를 대하게 된다.

13:07~13:57=>위치표시 '소요산(4-6)'/중식

좌측의 하산로는 선녀탕을 지나 자재암으로 향하는 등로이다. 등로 좌측의 넓은 공터에서 식사시간을 가진다. 오늘도 송 미란 여사의 푸짐한 뷔페 음식이 차려지고 오랫만에 떡국을 곁들인 삼계탕(라면+계란)을 끓여 뜨거운 국을 대신하며 추위를 잊은채 약 50여분간 푸짐한 만찬을 즐긴다. 식사를 마치고 상백운대를 향하여 눈 덮힌 등로를 따라 자그만한 봉우리를 하나 오르내리고 굴곡이 거의 없는 능선길을 진행하면 위치표시 '소요산(4-4) 칼날바위쪽'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선녀탕 갈림길이다.

 이정표(↑상백운대 0.7km, 칼바위 0.5km/←선녀탕 0.9km/↓나한대 0.5km)가 설치된 갈림길 좌측의 하산로는 금송굴과 선녀탕을 경유하여 자재암으로 향하는 등로이다. 갈림길을 뒤로하고 밧줄과 계단길이 있는 오르막 등로을 오르면 뾰족한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는 암릉지대를 지나 칼날바위에 들어서게 된다.



▲ 암릉지대 능선길과 칼날바위(사진은 2006년 12월 25일 촬영한 것임)

 

위치표시 '소요산(4-7) 칼날바위'가 설치된 지점부터 칼날바위 지대가 시작된다. 국사봉과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분기점을 지나 날카롭게 날을 새우고 길게 능선을 따라 서 있는 칼날바위 지대와 암릉지대 오르막을 극복하여 위치표시 '소요산(4-8) 상백운대쪽'와 '위험'이란 문구가 새겨진 이정표(↑상백운대 0.1km/←위험/↓칼바위 0.2km)를 차례로 지나 상백운대에 오른다.




▲ 상백운대에서...

14;32~14;38=>상백운대(559m)

     나한봉에서 보았던 이정표와 동일한 형태의 이정표(상백운대 해발 559m, ↑중백운대 0.5km/←선녀탕 1.0km/↓나한대 1.2km)와 위치표시 '소요산(3-10) 상백운대'가 있는 정상에는 바위들이 몰려있는 암봉이다. 정상을 뒤로하고 좌측 사면길의 등로를 버리고 잠시 직진하면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하면서 쉬어가기 적합한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묘 1기가 있다. 공터를 지나 내려서면 사면길의 등로와 만나게 되고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이정표(↑중백운대 0.3km/←선녀탕 0.8km/↓상백운대 0.2km)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면 선녀탕 방향의 좌측 하산로에는 등로를 폐쇄하는 줄이 처져있고 '위험 하산금지'란 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등산객이 이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는지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이정표있는 갈림길을 지나자 말자 능선분기봉인 530봉에 이르게 된다.

2개의 위치표시 '소요산7-3(갈림길)' '소요산(3-12) 중백운대쪽'가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로 약간의 공터가 있고 우측으로 감투봉(535.6m)으로 향하는 지능선 등로가 보인다. 능선을 따라 북동방향으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감투봉이 잡목사이로 조망이 되고, 이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면 감투봉을 경유하여 신북온천으로 하산을 할 수가 있는데 옛날에 한차례 산행을 한 경험이 있고 이곳에서 신북온천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분기봉을 지나 잠시 내려섰다 밧줄이 설치된 짧은 암릉지대 오르막을 오르면 주위에 멋진 장송들이 기암과 조화를 이루며 자태를 뽐내고 있고, 공주봉에서 의상대, 나한대, 상백운대로 이어지는 U자 형태의 능선길이 한 눈에 조망되는 중백운대에 이르게 된다.





▲ 중백운대의 노송을 배경으로...

14:49~15:00=>중백운대(510m)

     잠시 주위의 경치를 감상하고 노송을 배경으로 후미그룹은 사진촬영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이정표(중백운대 해발510m, ↑하백운대 0.4km/↓상백운대 0.5km)와 위치표시 '소요산(3-9) 중백운대'를 지나 내려섰다 잠시 오르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하백운대에 오르게 된다.


▲ 하백운대의 돌탑

15:09=>하백운대(440m)

     넓은 공터 중앙에 돌무더기탑이 있는 하백운대 우측에는 이정표(↑등산로폐쇄/←자재암 0.7km/↓중백운대 0.4km)가 보인다. 직진의 등로는 확연하지만 현재 등로를 폐쇄해 둔 상태이다. 아마 직진을 하면 직접 매표소로 내려서거나 소요동/동막동으로 하산이 가능할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 자리를 잡자 말자 김정두 동기의 전화기가 울리고 선두로 하산을 하던 김상수 동기가 오른쪽 발목을 접질러 꿈쩍도 못하고 있으니 18산우회 주치의인 김정두 동기가 빨리 내려오라고 호출하는 다급한 소식이 들려온다. 급히 좌측의 가파른 비탈길 내리막을 따라 자재암으로 향하여 안전장치인 밧줄과 나무계단이 설치된 하산로를 따라 내려서니 선녀탕갈림길 약 50여m 전에 김상수 동기와 몇몇 동기가 눈에 들어 온다. 도저히 걸을 수 없어 119에 연락을 취한 상태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18산우회 주치의인 김 정두 동기의 1차 진단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이 되고 발목 부분이 접질려 충격이 있어 당분간은 걷기가 불편하고 반기브스를 해야 한 것 같다는 말에 주위의 동기들은 한 편으론 걱정은 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안도를 하였다. 잠시 후 119구조대원 10여명이 들것을 가지고 도착을 하여 응급조치를 하고 후송작전에 돌입을 하였다.


▲ 나무계단길

 

사고 지점으로 부터 약 50여m 아래에 이정표(↑일주문 0.5km/←선녀탕 0.3km/↓하백운대 0.6km)와 위치표시 '소요산(3-6) 자재암'가 설치된 선녀탕 갈림길에 이르면 자재암이 내려다 보이고 약 2분 후면 자재암 경내에 내려서게 된다. 실제로 자재암에 내려서기만 하면 오늘의 산행은 마무리 되게 되는데 약 3~4분만 조심하였더러면 김 상수 동기의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자재암을 빠져 나와 의상대갈림길에 이르면서 산행을 시작한 원점에 회귀를 하게 되고 여기까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여 김 상수 동기는 119구조대 응급차에 오르고 이 현동 총무가 함께 동행을 하여 동두천 시내 병원으로 향하였으며, 이 종익 섭외총무와 김 정두 주치의가 승용차로 응급차를 뒤따라 출발을 하며 후송작전은 끝이 났다. 나머지 회원들은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여 대기를 하다가 약 1시간 후 합류한 김 상수 동기 및 후송 조 동기들과 막걸리 한 잔씩을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 저녁 6시 3분 발 소요산역 출발 전철시간을 맞추기 위해 2007년 1월 신년 첫 산행을 뒤로 하고 2월 4일(일) 강원도 평창의 계방산 눈 산행을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발목 부상을 당한 김 상수 동기를 위해 출동해 주신 동두천소방서 119구조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 18산우회 동기 및 가족 모두가 기원 드립니다.


▲ 자재암 전경

 

♧ ♧ 자재암(自在庵)

* 향토유적 제8호

* 소재지 : 경기도 동주천시 상봉암동 산1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고려 광종 25년(974) 왕명으로 각규대사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중건하였다. 그 뒤 고종 9년(1872) 원공선사와 제암화상이 퇴락한 이 사찰을 44칸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로 개창하였다. 순종 원년(1907) 정미의병 때는 이곳이 의병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그 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스님이 복원,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다시 고쳤다. 그러나 6.25때 다시 폐허가 되어 1961년에 대웅전을, 1971년에 요사를, 1974년에는 포교당과 원효대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각각 건립하였다.

경내와 주변에는 1980년에 조성한 석굴, 추담대사 사리탑, 속리교, 세심교가 있다. 최초의 창건자 원효대사가 수행하는 동안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 머물렀다는 요석공주 궁지와 사자암지, 소요사지, 현암지, 원효사지, 조선 태조 행궁지가 있다고 하나 그 위치를 알 수 없고, 의상대, 나한대, 금송굴, 선녀탕, 선녀폭포, 청량폭포 등이 있어 경관을 더해주고 있다.

 

♧ ♧ 자재암의 유래

원효 성사께서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 후 오로지 수행 일념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유곡을 찾아 산자수명한 아름다운 이 곳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용맹증진하여 높은 수행을 쌓았다. 비가 내리는 어느날 심야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께서 원효 스님에게 하룻밤 쉬어 가기를 원했고 중생구제의 구실을 붙혀 수도 일념의 심지를 시험하였으니 원효대사가 이르기를 "心生則種種法生이요 心滅則種種法滅이라" 마음이 생한 즉 옳고 그르고, 트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한 즉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는 법문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원효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후 지극한 정진으로 더욱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제할 생각으로 정사를 지었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를 이름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 김 상수 동기 후송작전 ))





【 18산우회 경비 정산 내역 】

일 자

항  목

수 입

지 출

2006.12.31.

전기이월금액

\128,540

 

2007.01.07.

당일회비

22명 x \10,000

\220,000

 

 

입장료 :19명 x \2,000

 

\38,000

 

김상수 동기 병원비

 

\51,000

(당일지출 계 : \89,000)

 

차기이월금액

 

\259,540

 

합     계

\348,540

\348,540

▶ 뒷풀이 특별 찬조 : 박 출석 동기(\105,000)
출처 : 재경 대구고 18회 동기회
글쓴이 : 천영면3-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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