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18회/추억의 앨범들

1박2일!!! 2010년 남도여행 -제1편-목포 유달산과 갓바위

왕마구리 2010. 5. 26. 11:55

◀ -제1편- 맛과 멋 그리고 빛의 도시 목포의 유달산과 갓바위 ▶ 

 

▲ 유달산 표지석을 배경으로...

 

【 여행일자 】2009년 5월 21일(금)~22일(토) 1박2일

【 여행코스 】전라남도 목포시, 해남군 그리고 전라북도 남원 

((첫째날)) 서울 잠실역출발-목포 유달산-갓바위-해남 땅끝마을-완도 숙소

((둘째날)) 숙소-해남 달마산 미황사-해남 두륜산 대흥사-남원 광한루-서울 잠실역도착 

【 참 석 자 】총 25명(11가족)

기세명+장종녀, 김경암+김경선+김가연, 백운석+이명숙, 서영호+박미연, 신명호+김경숙, 윤창희+이미옥, 이성규+김종구, 이수형+김당주, 이종익+송미란, 이현동+이경희+이준규+이소연, 천영면+천세령

【 교 통 편 】40인승 관광버스

 

이번 여행은 5월 2일(일) 실시된 18산우회 문경새재 트레킹 때 1박2일로 봄나들이를 가자는 제안이 있어, 2009년 6월 20일~21일 실시되었던 통영 나들이에 이어 11개월여만에 석가탄신일 여휴를 맞아 실시가 되었다.

처음 참석 예상인원이 32명 정도였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종 확정된 인원이 11가족에 25명.

연휴를 맞아 중국여행을 예약하였다가 18산우회 봄나들이 더욱 더 큰 매력을 느낀다며 위약금까지 물고 부인은 서울에서, 본인은 근무지인 전남 광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와 목포 유달산 입구에서 합류를 하고, 고속도로 정체로 늦게 도착하는 일행을 위해 점심식사를 위한 식당까지 예약을 한 18산우회의 열렬 회원 기세명, 장종녀 동기부부,

여행 전날 대구에서 가족모임을 마치고 아침 일찍 대구를 출발하여 승용차로 공주요금소에서 연휴 나들이 차량으로 고속도로 정체가 심하여 동생에게 신장이식 수술을 해 준지 2개월여 밖에 지나지 않아 무리를 하거나 피로하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도 승용차 안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합류를 해 준 이수형, 김당주 부부,

고속도로 정체로 신갈버스정류장 고속도로 갓길에서 매연을 마시며 1시간 30여분을 기다려준 산우회 행사 100% 출석의 이현동, 이경희, 이준규, 이소연 가족,

나들이 여행뿐만 아니라 산행에도 항상 참석하여 18산우회가 타의 부러움을 사고 존재하게 하는데 1등 공신들인 서영호, 박미현 부부, 윤창희, 이미옥 부부, 이성규, 김종구 부부, 그리고 18산우회의 나들이 여행에는 처음인 신명호, 김경숙 동기회장 부부,

집이 인천이라 새벽에 출발하여 차량 첫 출발지인 부평구청에 합류(오전 5시 30분경)하여 18산우회 나들이 여행에 처음 동참을 한 백운석, 이명숙 부부의 열정,

그리고 출발 당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하는 무더위가 예상된다면 참석하는 동기 가족들을 위해 대형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맥주, 음료, 생수, 과일 등을 채우고 커피까지 준비하는 철저함을 보여준 김경암, 김경선, 김가연 18산우회 등반부대장의 산우회의 발전을 위한 헌신.

18산우회의 산행이나 모임 등이 있을 때마다 모든 회원들에게 참석을 독려하여 18산우회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뿐만 아니라 항상 모든 행사에 자발적으로 회원들을 위해 음식, 안주 등을 준비해주시고, 이번 남도여행에서는 3일연휴로 예약이 불가능한 숙소를 찾기 위해 완도군으로부터 숙박업소 명단을 FAXI로 받아 전 숙박업소에 전화를 걸어 편하고 쾌적한 숙소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락농수산물시장까지 가서 직접 마른 안주까지 준비한 이종익, 송미란 18산우회 홍보이사 부부의 완벽한 준비정신과 열정,

이러한 모든 동기들의 18산우회에 대한 열정과 희생이 이번 남도여행 나들이를 가능케한 원동력이 되었다.

 

3일간의연휴(5/21~23) 첫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교통정체가 시작된다.(동해안 방향으로 관광을 떠난 분들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로 용평까지 11시간이 걸릴 정도로 영동고속도로에서도 격심한 교통체증이 있었다고 한다)

버스내에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신갈정류장에서 이현동 총무 가족을 태우고 천안휴게소까지 잠실 출발 2시간30여분만에 도착을 하였으니 아까운 1시간30분 정도를 길거리에서 허비를 한 셈이다.

여행 둘째날 비가 아침부터 내린다는 일기예보로 일정을 바꾸어 완도로 직행하여 청산도부터 관광을 할 계획으로 출발시간을 30분 앞 당겼는데 첫날의 청산도행도 물건너 갔고, 계획대로 진행하더라도 새만금방조재 관광까지 포기를 해야만 되어 다시 일정을 변경하여 목포로 바로 내려가기로 한다.

고속도로가 정체되지 않고 제대로 소통되었더라면 청산도를 가기 위해 완도로 바로 내려갔을텐데,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청산도도 가지 못하고 모든 일정이 어긋나게 되었을텐데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잘 된 결과가 되었다.(청산도행 선박은 당일 아침 일찍 모든 선편이 마감되었으며 3,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청산도에 입도하였다고 함.)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공주요금소에서 약속시간보다 약 3시간 가까이 늦게 이수형 동기 부부와 합류, 목포를 향해 쉼없이 내려가 목포 유달산 입구에 도착을 한 시간이 오후 1시36분 경이었다.

 

▲ 유달산 유선각에서 내려다본 삼학도와 목포 시가지 전경

 

원 계획대로라면 새만금관광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유달산 관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지만, 노적봉 인근의 기세명 동기가 예약한 식당에서 비빔밥과 조기매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25분부터 첫째날 첫 일정인 유달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에 오르고 이등바위직전 달성공원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탐방하는 약 1시간45분간의 유달산관광과 천연기념물 제500호인 목포 갓바위 해안을 탐방하는 목포 관광일정을 마치고 오후 5시경 목포시를 뒤로 하고 첫째날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해남 달마산 미황사 관광 일정을 포기하고 땅끝마을로 향하였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땅끝마을에 도착하니 이곳에도 많은 관광객들로 진입의 어려움이 따르며 주차공간을 찾기가 어렵고, 선유도로 들어가는 선착장에는 마지막 배를 기다리는 차량과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땅끝마을 해돋이 촬영지

 

선착장 옆 땅끝마을의 해돋이 촬영명소에서 기념촬영 후 땅끝탑을 왕복하는 코스로 땅끝마을 관광을 약 1시간여에 마치고 서둘러 숙소인 완도로 향하였다. 완도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숙소 사장님을 통해 근처의 횟집을 예약하려 했지만 완도 역시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저녁 8시이후의 예약인데도 자리 확보가 어려워 어쩔수 없이 여객선터미널 인근의 회센터로 무작정 가 보기로 한다.

저녁 8시30분경 회센터에 도착, 어시장 가게의 소개로 식당을 확보하고 활어회와 산낙지, 전복, 해삼 그리고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겸한 뒤풀이 시간을 2시간여에 걸쳐 실시를 하고 숙소를 이동하여 첫째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 완도 숙소앞 바닷가 전경

 

둘째날 아침 5시에 기상, 택시를 타고 아침 6시부터 판매를 하는 청산도행 여객선을 예약하기 위해 여객선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벌써 매표소 앞에는 100여m가 넘게 줄이 터미널 밖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6시부터 승선권 판매가 시작되었는데 2명이 예약(여행사의 단체관광)을 했는데 첫 출발배인 7시 선편이 매진되어 대기중이던 관광객들의 항의로 여객선터미널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승선권 발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승선권 발매를 위해 전날 오후에 기다리다 당일 승선권이 매진되어 터미널 근처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잠까지 설치며 새벽 3시부터 매표소 앞에서 기다렸는데 2명이 발권하자 300~400명이 승선하는 첫 배가 매진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리며 농성을 하자는 등 흥분을 하는 관광객들이 직원들과 언쟁을 벌리는 등 어수선하기만 하다.

직원들이 일부 나와 질서를 잡고 다시 승선권 발매가 시작되어 20여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려보지만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뒷사람에게 자리를 부탁하고 터미널내 매표소 앞으로 가보니 우리가 예약할 계획이었던 8시 배편도 마감되고 9시20분 출발 청산도행 승선권 발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답답하여 직원에게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편을 문의하니 오늘 청산도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은 청산도에 도착하자마자 선착장에서 미리 예매를 해야하는데 어제 청산도로 입도한 관광객이 3,000명이 넘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현재 청산도에 머무러고 있어 오늘 들어가는 관광객들과 합치면 청산도에서 나오는 하루 승선인원의 두 배가량이 되어 제 때 나올 수 없으며, 정상적인 배편이외는 추가로 배편을 증설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둘째날 일정도 있고, 이대로 기다린다고 한들 오전 시간대의 선편을 예약하기에는 물 건너 갔을 뿐만 아니라 오늘 출발하는 마지막 배편도 예약을 할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어 청산도 관광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 1층의 예약된 식당에서 해초해장국과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청산도 관광 취소로 일정에 여유가 생겨 전날 취소하였던 달마산 미황사 관광을 위해 숙소 앞 부두가에서 땅끝마을 지형과 비슷하게 생긴 완도타워와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미황사로 향한다.

 

▲ 달마산 미황사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속에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의 기암을 배경으로 하고 자리를 잡은 미황사 경내를 둘러보고, 두륜산도립공원에 도착, 다도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고 영암의 월출산, 강진의 주작산, 광주의 무등산 뿐만 아니라 맑은 날 제주도 한라산까지 조망된다는 두륜산 고계봉(해발 638m) 정상으로 연결되는 국내 최장의 케이믈카인 두륜산케이블카를 승선하기 위해 케이믈카 승강장으로 먼저 향한다.

그러나 KBS 1박2일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더욱 더 늘어난 관광객 때문인지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10시경인데도 오후 12시30분 승선권을 발매하고 있다. 케이블카 관광을 대흥사 관광과 점심식사를 마친 후로 계획하여 오후 1시편을 예매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두륜산 대흥사로 향하였다.

 

▲ 두륜산과 대흥사

 

관객동원 2백만명의 기록을 세운 영화 '서편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촬영을 하였다는 대흥사와 유선관, 두륜산 중턱 해발 500m의 소리재 중 대흥사와 유선관(KBS 1박2일 촬영지이며 숙소)만 관광을 하고, 위락단지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버섯전골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당의 인테리어 등 분위기는 최상이었지만 관광지의 식당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실한 반찬과 '맛'의 고장이란 전라도의 이미지를 한껏 깎아 내리는 빈약한 양과 형편없는 맛 그리고 소금국이라 표현해야 옳을 버섯전골, 그러나 가격만은 최상급의 음식(\10,000/1인)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매표소 창문에는 '케이블카 운행중단'이란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상악화(강풍)로 케이믈카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이번 남도여행에서 주 관광 목적이였던 청산도의 슬로시티 걷기와 두륜산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 고계봉 정상에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는 두 곳의 코스가 모두 취소가 되게 된 셈이다.

오늘은 더 이상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승선권을 환불받고 발길을 돌려 예비 관광지로 생각해 두었던 전라북도 남원으로 향하였다. 남원시 운봉읍을 들머리로 하는 지리산둘레길' 제2코스(운봉~주천구간/9.40km) 탐방을 위해서...

그러나 해남에서 남원까지는 예상보다 많은 2시간30여분이 소요되어 88고속도로 남원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경. 아무리 빨리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시작하더라도 4시30분경 출발, 도착지인 주천에는 저녁 7시30분에서 8시경에나 도착이 가능하여 귀경시간을 고려하면 지리산둘레길 탐방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판단되어 남원휴게소에서 긴급 회의를 소집, 남원 광한루 관광과 남원의 유명 먹거리인 '남원추어탕'과 '미꾸라지튀김'으로 간단한 뒤풀이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변경하였다.

 

▲ 남원 광한루원

 

광한루 관광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6시30분경 남원을 출발, 귀경길에 오르며 아쉬움이 남는 1박2일간의 남도여행을 마무리하였다.

귀경길 버스 안에서 두륜산도립공원에서 구입한 '고구마막걸리'를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23일(일) 새벽 1시경 잠실역에 도착. 1박2일이 아닌 2박3일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남도여행길은 교통체증과 둘째날 종일 내린 비와 강풍, 그리고 많은 관광객이 일시에 몰리는 바람에 계획하였던 일정 중에서 3곳의 관광지(새만금방조제, 청산도 트레킹, 두륜산 케이블카 관광)를 본의 아니라 취소하여 아쉬움만 남은 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원 광한루 관광을 추가하여 비록 늦은 귀경길이 되었지만 부족한 관광의 일부 나마 보충을 할 수 있어 위안을 받았고, 맛의 고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빈약하고 맛 없는 음식이 판치는 관광지 주변의 상혼에 울분을 삼켜야 했었는데 마지막 '남원추어탕'만은 그나마 가격을 떠나 맛에서는 체면치레를 하고 있어 다행이었던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기도 작년의 통영나들이 때와 마찬가지로 관광지별 소개와 사진을 위주로 작성을 하고, 각 관광지별로 나누어 작성을 하기로 한다.

 

- 제1편 - 목포 유달산과 갓바위

- 제2편 - 해남 땅끝마을

- 제3편 - 해남 달마산 미황사와 두륜산 대흥사

- 제4편 - 남원 광한루

 

♧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유달산 트레킹과 천연기념물인 갓바위 관광

◎ 유달산 관광

▷ 유달산(儒達山)

 

 

목포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목포 뒷산으로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해발 228m의 나지막한 산이다.

기암절벽이 첩첩히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이라고도 하며 노적봉을 비롯하여 영혼이 심판받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율동바위)와 심판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이등바위(이동바위)'로 나뉘어진 유달산은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첩첩하며, 산의 남쪽과 동쪽의 완경사 산록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과거 외적을 경계하던 봉수대가 2곳,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적을 속인 곳으로 알려진 노적봉, 65점의 조각작품이 전시된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조각공원, 전국 각지의 난(蘭)을 수집해 둔 난공원, 대학루, 관운각, 소요정, 달선각, 그리고 1932년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해 목조건물로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콘크리트로 개축된 유선각 등 5개의 정자, 유달사, 수도사, 관음사 등의 사찰이 있다.

산 주변에는 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가 개통되어 있으며, 산 아레에는 4.19기념탑, 충혼탑,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에서... 

 

*유달산 등산코스 :

  1코스 : 노적봉-달선각-유선각-일등바위(2km/40분 소요)

  2코스 : 달성공원-소요정-이등바위(1km/20분 소요)

 

▷ 노적봉  

 

유달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60m의 바위산으로 유달산 전체보다 더 명성이 높은 곳이다.

유달산 입구 도로 건너 일부러 가져다 놓은 듯 서 있는 큰 바윗덩어리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노적봉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은 군사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 봉우리를 이엉으로 덮어 멀리서 보면 군량미를 쌓아놓은 큰 노적처럼 보이게 했는데, 이를 본 왜적들은 저렇게 많은 군량을 쌓아두었으니 군사가 얼마나 많겠느냐며 지레놀라 도망쳤다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노적봉 아래에는 다산목이라 불리는 속옷을 입지 않은 여인의 모습의 나무가 툭 터진 길 옆에 민망스런 자태로 앉아있다.

 

*노적봉 다산목

이 나무는 다산을 이루게 한다는 믿음의 대상으로 은밀하게 보존되어 오다가 2000년 10월 새천년 시민의 종 종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드러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이 나무를 쳐다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인근지역은 유난히 출산율이 높았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관광객들 사이에는 여자나무(여인목)로 불려지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다산목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수종은 팽나무로 150년이 넘는 어미나무의 뿌리에서 싹이 새로 나와 성장하여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 유달산 산책로 탐방코스

유달산 노적봉주차장-노적봉-다산목-오포대-'목포의 눈물'노래비-달선각-유선각-관운각-마당바위-일등바위/유달산 정상(288m)-소요정/달성공원갈림길-달성공원/주차장(약 1.6km)

 

 

▲ 유달산 표석에서 가연이

 

 

▲ 목포의 눈물 노래비

▲ 달선각에서 삼학도와 목포시가지를 배경으로 세령이

 

▲ 달선각 입구의 이정표와 달선각 현판

▲ 달선각에서 내려다본 삼학도와 목포 시가지의 전경

 

▲ 오포대

 

▷ 오포대(午砲臺)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138호

*소재지: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

오포대는 1909년 4월 목포시민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이곳으로부터 약 200여m 떨어진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 '시민종각'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 1988년 12월 26일 현재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처음의 포는 조선식 선입포로 조선 현종10년(1671) 때 제작되었으며, 높이 5자, 구경 3치5푼, 중량 733근으로 1회 발사하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에서 옮겨와 천기산에서 시험발포 했는데 발포 때마다 뒤로 밀려나가는 구식이었다.

1913년 8월 일본 오사카 포병공장에서 당시 가격 160원 하는 야포로 대치되었고, 이전의 조선식 대포는 일제의 송도신사(목포시 동명동 소재)에 보관하던 중 일제 말기에 태평양전쟁을 위해 일본 정부가 공출해 가져가 버렸다.

예전에 이 오포는 포탄없이 화약만 넣어 포를 쏘아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는 기능을 하였는데 후에 사이렌이 그 역할을 대신할 때 까지 사용되어 전쟁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하여 지금도 목포 토박이들은 이 오포 소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1908년(융희2년) 4월1일 당시 일본 통감부가 한국과 일본의 1시간 시차를 무시하소 오전11시에 일본 시간 정오 12시에 맞쳐 정오로 정하고 포를 쏘아 알린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86년 지방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이 오포는 같은 해에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천자총통을 복제한 모형이다.

 

 

 

 

 

 

 

 

 

 

 

▲ 오포대에서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 한국의 오포

   1.서울 : 보신각종

      세조14년(1468)에 주조되어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없어진 후 남대문에 옮겨지고 다시 선조30년(1597)에 현 명동성당 부근의 명례동현에 옮겨졌다. 그후 광해군11년(1619)에 서울 한복판인 관철동의 보신각에 옮겨져 파루(오전4시)에 33번, 인정(오후10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는 일과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데 쓰였다.

   2.평양 : 평양종

      옛부터 평양성에서는 파루(오전4시)에 38번, 인정(오후10시)에 28번을 타종하는 평양종의 소리에 맞춰 모든 성문들을 동시에 여닫았고, 성내의 주요 사건들을 타종으로 알렸다.

   3.전주 : 4대문에 모두 커다란 종을 사용

   4,수원 : 화성 사거리에 종루를 지어 종을 사용

   5.개성 : 신호 종으로 사용

-세계의 오포

   1.영국 : Edinburgh 1861년 최초 발사(18파운드 포)/1953년 25파운드 포로 대체

   2.홍콩 : East Point 19세기 중반 자딘메세슨상회의 무역선을 맞이하기 위해 포 발사/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140여년간 오포 발사/현재 홍콩의 관광수입원

   3.캐나다 : Halifax 1749년 발사(미 육군 사용)/1856년 2차 포 제작/1906년 3차 포 제작이후 현재까지 사용

   4.몰타 : 1807년 Blomefield 제작 18파운드 포로 현제까지 사용

   5.남아프리카공화국 : Capetown 1806년 항구 접안용으로 최초 발사/18864년 Noon Gun(오포)으로 발사

   6.Guemsey Ⅰ(영국령) : 19세기말 9파운드 포로 사용하다가 18파운드 포로 대체 사용/1923년 경제적 이유로 중단/1974년 관광객 유도를 위해 재발사

 

 

 

 

▲ 유선각 입구의 이정표와 유선각 현판

【 유선각에서 】

▲ 유선각

 

 

 

 

 

 

 

 

▲ 유선각에서 일등바위 가는 길

  

▲ 고래바위와 종바위

▲ 전망대에서 바라본 관운각과 일등바위

▲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요정과 이등바위

▲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등바위와 목포시가지 전경

【 전망대에서 】

 

 

 

 

 

 

 

 

 

 

 

 

 

 

 

 

 

▲ 마당바위 직전의 이정표와 기암

▲ 마당바위의 조망 안내도

 

▲ 거북바위와 나막신바위

 

▲ 입석바위

 

 

 

▲ 일등바위/마당바위

【 마당바위에서 】

 

 

 

 

 

 

 

 

 

 

▲ 일등바위 가는 길과 이정표들

▲ 일등바위로 오르며 뒤돌아본 이등바위

▲ 일등마위 정상에서 바라본 이등바위와 북항 일대

【 일등바위 정상에서 】

 

 

 

 

 

 

 

 

▲ 일등바위에서 소요정으로 내려서며 조망된 고하도 용머리 일대

 

▲ 얼굴바위

 

▲ 달성공원갈림길인 소요정에서 바라본 정면의 이등바위

 

▲ 소요정에서 달성공원 가는 길

 

▲ 달성공원의 표석들

 

◎ 갓바위 관광

     갓바위권에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의 기, 예능의 기법을 전승, 보존시키기 위해 건립한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목포의 대표적인 중요무형문화재 옥장 장주원의 옥공예품 전시실 및 체험공방), 한국 남종화의 대가 남농 허건 화백을 기념하고자 설립한 사설기념관인 남농기념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자연사박물관,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한 '신안보물선'(1323년경 중국과 일본을 항해하던 중국 무역선의 일부와 전남 완도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인 완도선) 그 외 한국의 6곳에서 발견된 수중유물과 해양유물이 전시된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등이 있지만 모든 전시, 박물관은 이번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갓바위만 관광하였다.

 

 

 

▲ 갓바위 이정표와 해상보행교 이용안내도

 

▲ 해상보행교

 

보행교를 따라 해상에서 갓바위를 먼저 구경하고, 갓바위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곳의 갓바위 표지석을 배경으로 전체 기념촬영을 하였다. 표지석에서 약 5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무계단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갓바위 상단부 숲길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 바다와 갓바위 보행교를 내려다보며 걸어가 다시 보행교 입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택해 관광이 이루어졌다.

 

 

▲ 갓바위 정상의 산책로

▲ 갓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삼학도 방향의 바다 전경

▲ 갓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해상보행교

▷ 갓바위

*천연기념물 제500호

 

 

 

 

 

 

갓바위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바위 이름이다.

파도, 해류 등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는 현상과 암석이 공기, 물 등의 영향으로 어떻데 변화되어 가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크며, 인위적인 요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자연적인 과정에서 빚어진 풍화형(風化穴 tafoni) 상태의 자연 조각품으로 다른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가지고 있어 자연학습장이나 관광적 가치가 높은 바위이다.

갓바위는 예로부터 입암반조(笠岩返照 저녁노을 물든 갓바위의 풍경)라 하여 목포8경의 하나이며, 자연,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4월 27일 국가지정문화제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갓바위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으로 파도가 치거나 안개가 끼면 표면이 연분이 젖은 물에 젖었다가 마르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다. 수분에 녹아 있는 실리카성분이 암석 표면으로 이동한 후 거기에 침전되면서 딱딱한 바위의 표면을 형성하고 용해된 부분은 조직이 이완되고 강도가 낮아져 쉽게 풍화되어 멍이 생긴 것이다.

모자모양의 경질부와 아래쪽 움푹 패인 벌집 모양의 풍화혈이 형성되었다. 삿갓이 동남쪽으로 향한 것은 햇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곳은 해식작용과 기계적 풍화작용의 영향으로 암석이 어떻게 해식, 풍화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목포시에서 갓바위를 해상에서 직접 조망할 수 있는 보행교를 바다위에 2008년 4월 10일 설치하였다. 총연장 298m, 폭 3.6~4.6m의 물 위에 떠있는 보행교는 밀물 때 약 1m 정도 왔다가 썰물 때 바닷물을 따라 내려간다.

목교 118m, 도교 40m, 부잔교 140m, 난가 등 부대공사와 보행교의 야간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야간엔 로멘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갓바위 앞 해상보행교가 개통됨에 따라 갓바위를 해산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서 하당 평화광장으로 연결되어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단 갓바위보행교는 태풍, 호우, 폭설, 안개 등 기상악화시에 출입이 통제된다.

보행교 통행가능시간 : 동절기 05:00~23:00/하절기 05:00~24:00

 

*갓바위의 전설

아주 먼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소금을 팔아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산림살이는 궁핍하였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착한 청년이었다.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부잣집에 머슴살이를 들어가 열심히 일했으나 주인이 품삯을 주지 않아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손과 발은 이미 식어있었다. 젊은이는 한 달 동안이나 병간호를 못한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그만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불효를 통회하며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가 죽었는데, 훗날 이곳에 두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바위라 하고,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 불렀다.

 

또 다른 전설은 부처님과 아라한(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이 영산강을 건너 이 곳을 지날 때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어 이를 중바위(스님바위)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 제2편- 해남 땅끝마을'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