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평화누리길(경기DMZ트레킹)

경기DMZ트레킹 고양 제1코스

왕마구리 2010. 6. 24. 23:09

◀ 고양 제1코스(행주산성~호수공원) ▶

호국의 성지 '행주산성'과 도심속의 전원풍경을 찾아서...  

 

  

▲ 일산호수공원의 메타세쿼이아길

▲ 일산호수공원 

  

【  걷기일자 】 2010년 6월 1일(토)

【  걷기코스 】행주산성-(행주산성탐방:행주산성입구 대첩문-권율장군동상-충장사-대첩기념관-진강정-덕양정-행주대첩비-충의정-토성-대첩문/정문)→행주서원 입구→행주나루터→행주대교 밑→철책선/군사도로→자유로 굴다리→도시외곽고속도로 자유로분기점 직전/하수천-(하수천둑방길)→사거리→┬자갈림길-(우측)→┤자삼거리-(좌측)→┬자갈림길-(우측)→삼성당마을-(호수로)→섬말다리/도촌천-(왕벚나무길)→굴다리→2차선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장항5로→호수공원-(청평지-샘터광장-게이트볼전용구장-호수교 밑 삼거리-메타세쿼이아길-선인장전시관 뒤)→선인장전시관 앞/제1 & 재2코스 분기점-(탈출:달맞이섬-장미원-한울광장-보행육교)→장발산역/버스정류장 

 

 

 

 

 

 

 

【 코스거리 】 약 10.20km(행주산성 돌기와 호수공원 탈출거리는 미포함)

【 소요시간 】 총  5시간 37분 소요(휴식 및 중식:1시간 42분 포함)/실제 걷기 시간 : 3시간 55분 소요

                             (행주산성 탐방:56분 + 탈출:25분 포함/트레킹코스 소요시간:2시간 34분 소요)

【 날    씨 】 흐리고 가끔 가랑비

【 교 통 편 】 대중교통 이용

<< 갈 때 >> 부천시청 앞 버스정류장(08:12)-(#70번 시내버스)→화곡역/5호선(08:47~08:51)→송정역/5호선(08:58~09:24)-(#85-1번 시내버스)→행주산성(09:36)

<< 올 때 >> 장발산역 버스정류장(15:27~15:32)-(#9707 광역버스)→당산역 앞 버스정류장(16:10~16:25)-(#700번 광역버스)→부천시청 앞(17:12)

 

▷ 대중교통편 안내   

*'행주산성'가는 교통편

     ①송정역/지하철5호선 : #85-1번

 

 

     ②일산 화정역/지하철3호선 : #11번 마을버스

     ③능곡역/경의선 : #11번 마을버스

     ④영등포, 신촌 : #9707번, #1082번, #921번, #870번, 873번 버스 이용하여 행주산성입구 하차하여 도보로 행주산성으로 이동

 

 

 

【 코스탐방 】 

경기DMZ트레킹코스 중 김포지역의 3개 코스를 마치고, 한강 이북 지역인 고양시 구간의 탐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포시 3개 구간을 진행하면서 제2코스 국제조각공원 이후와 제3코스 전체가 포장도로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에 볼거리가 거의 없는 황망한 코스로 이루어져 있어 실망을 안겨 주었는데, 고양시 구간은 어떨런지 관심이 갔었다.

제1코스의 출발점이 행주산성이고, 마지막 도착지가 일산호수공원이라 처음과 마지막에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커다란 실망감은 느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출발을 하였다.

행주산성 성내 관람은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산성을 한바퀴 돌아본다는 취지에서 약 1시간여의 시간을 투자하였으며, 일산호수공원은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산책길은 제2코스 때 장발산역에서 선인장전시관까지 진행하기로 하여 호수를 가로지르는 산책길인 달맞이섬과 장미원, 한울광장을 잇는 코스를 택하여 진행을 하였었다.

고양 제1코스도 김포시 구간과 마찬가지로 포장도로의 연속이었고, 자유로 옆을 따르는 농로는 자유로를 지나는 차량소음으로 짜증이 날 정도였으며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제2자유로 도로가 개통되면 고속화 도로를 양쪽에 두고 진행하게 되어 그 소음은 더할 것으로 예상되어 이 코스도 조정이 되어져야 좋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행주산성과 일산호수공원이 제1코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섬말다리사거리에서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왕벚나무길은 벚꽃이 만개한 봄철에 이 코스를 걷게된다면 또 하나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09:36~09:50=>행주산성 입구/제1코스 출발점 

      '행주산성' 입구 버스정류장에 하차를 하면 좌측으로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가 있어, 잠시 올라가 내용을 확인해 보고, 행주산성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주차장 매표소 옆 우측으로 계단길이 있는데 계단길 좌측에 경기DMZ트레킹코스 '고양 첫째길 10.20km'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계단길 바닥에는 트레킹코스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시가 붙어 있다.

이 계단길을 내려서서 행주산성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도로를 따라 행주대교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전에 두서너 차례 탐방을 하였던 곳이지만 행주산성 내부 탐방을 다시 실시를 하기로 하고, 주차장을 가로 질러 정면으로 보이는 행주산성 출입문인 대첩문으로 향한다.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1958년 9월 28일(최초 건립)

*1984년 9월 28일(재건립)

*규모:탑높이 8m, 바닥길이 8m, 경역면적 24평

 

- 모 형 : 삼각형 모양의 두개 비로 구성된 이 비는 한미해병대의 연합작전을 의미하며 삼각형 모양은 안정된 모습과 확고한 신념, 그리고 필승의 투지를 상징하고 있으며, 하늘을 찌를듯이 끝 부분은 뾰족히 처리한 것은 한마연합군의 승전을 다짐하는 투혼의 정신을 기리고 찬양한 것임.

- 건립개요 : 6.25동란 당시 한미연합해병대가 한강도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수도 서울을 탄환하는데 빛나는 공훈을 세움으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당시 도강지점인 행주대교 북단 서원마을 산봉에 최초로 비를 건립하였던 것을 규모와 모습을 정성껏 가다듬어 해병대사령부에서 현 위치에 다시 세움.

- 전 과 :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감행한 한미연합해병대가 다시 적을 추젹하여 1950년 9월 20일 행주나루에서 치열한 혈전 끝에 도강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서울 진격으로 교두보를 확보하였음.

 

▦ 행주산성 탐방

【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역사 】

*사적 제56호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

 

▲ 행주산성의 복원된 토성

 

 

해발 128.9m의 덕양산 7~8부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토성으로, 해발 70~100m의 능선을 따라 부분적인 토축을 했는데 그 길이는 약 1km에 이른다. 성의 남서쪽은 한강이 흐르고 동쪽은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고 있어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하고,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급경사를 이루어 천연의 요새로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산성의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인근 지역 또한 조망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1990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생토암반을 정리하여 성 내부 쪽에 2단의 석렬을 쌓고 성 바깥쪽에는 기둥을 세워 그 사이에 5~10m 두께의 점토와 산흙을 겹겹이 다져 쌓은 판축법(版築法)에 의하여 성이 축조되었다. 시굴,조사의 대상인 대첩비휴게소에서 충장사에 이르는 구간의 밑바닥 부분의 너비는 6.26m, 높이 2.8m, 성벽 정상부의 너비는 2.3m가량 된다.

건물지의 존재를 시사하는 초석과 문터도 확인되었으며, 성벽 판촉도 안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성곽의 축조시기는 7~8세기경으로 추정이 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35년(1602)에 그 날의 승전을 기념하여 덕양산 정상에 대첩비가 세워졌고 헌종8년(1842)에는 행주나루터에 기공사를 창건하여 권율 도원수를 재향하였으나 6.25 전란때 소실되었다. 1963년 산성 정상에 새로이 행주대첩비가 건립되었으며, 1970년에 행주산성 제1차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덕양정, 대첩비각과 대첩문이 건립되었다.

1980년 제2차 정화사업을 완료하면서 기념관 건립, 기존 건물의 보수단청, 진입로 등을 정비하였다. 그 후 1986년에 충훈정, 권율 도원수의 동상 건립 및 주차장 확,포장, 경내 조경 등 정화사업이 이루어졌으며, 1992년 토성을 일부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행주대첩))

조선시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순찰사였던 권율은 선조26년(1593) 2월 조방장 조경, 승장 처영이 이끄는 승군을 포함한 정병 2,300여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주하였다. 이 때 한성에는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후퇴한 왜군 3만이 집결해 있었고, 그들은 벽제관에서 이여송의 명나라 군을 격파한 직후여서 사기가 왕성하였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우끼다 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 왜군은 행주산성을 겹겹히 포위하고 7진으로 나누어 9차례에 걸친 맹공을 가해 왔으나 모두 패하여 적은 1만며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진하였으며, 아군은 창검 727점을 노획하였다.

당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 한다.

 

【 행주산성 탐방코스 】 행주산성입구/대첩문→권율장군동상→충장사&대첩비(1845)→대첩기념관→진강정→덕양정→대첩비각&대첩비(1970)→충의정→토성→행주산성입구/대첩문

 

 

     매표소(입장료:어른 \1,000/청소년 \500/어린이 \300, 관람시간:하절기<3~10월> 09:00~18:00/동절기<11~2월> 09:00~17:00/연중무휴)에서 입장권을 끊고, 대첩문을 들어서면 권율장군 동상이 있다.

 

▲ 행주산성으로 들어서는 대첩문

 

▲ 권율장군 동상과 충장사 입구의 이정표

 

동상 옆 진입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정표(←토성 150m/↑행주대첩비 600m/↓주차장 400m/→충장사 100m)가 있는 사거리.

우측으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있는 충장사 입구이다. 홍살문 좌측에 '삼도(三道)와 삼문(三門)'에 관한 설명문이 있어 사당이나 향교, 서원 등 문화재를 탐방할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한 번 숙지를 해 본다.

 

▲ 충장사 입구

 

*삼도(三道)와 삼문(三門)

궁궐, 사당, 서원, 향교 등에 볼 수 있는 삼도는 가운데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를 두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는 곳으로 일반인은 오갈 수 없으며, 부득이 넘어가게 될 경우 간단히 목례로 예를 갖추고 넘어 간다고 한다.

삼도와 삼문이 있을 때 들어가는 방법으로는 우입좌출(右入左出)로서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온다는 뜻으로 이곳 충장사 또한 우입좌출의 구조로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가 삼문을 만나면 오른쪽 문을 통해 들어 가게 된다. 다시 세개의 계단이 나오면 우측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충장사 건물 자체에도 세개의 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잇다.

 

     홍살문을 지나 들어가면 충장사 삼문이 보이는데 삼문 입구에는 헌종11년(1845)에 새로 세운 행주대첩비가 자리를 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삼문을 통과하면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봉안한 충장사가 나타난다.

 

♧ 충장사(忠莊祠)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원래는 행주나루터 안 마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충장사를 다시 지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 건평 84.2㎡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故 박정희 대통령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 행주대첩비(1845년도 건립)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 충장사 앞의 행주대첩비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권율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로서, 선조35년(1602)에 덕양산 정상에 세워졌던 대리석으로 만든 비가 오래되고 풍우에 마멸되어 글씨가 닳아 없어져 알아보기 어려워 헌종11년(1845)에 행주나루터 기공사에 추가로 옛 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적은 화강암 비석이다.

6.25 때 기공사가 소실되자 1970년 충장사 앞으로 이전하였다. 높이는 2.33m.

 

     충장사를 참배하고 사거리로 되돌아나와 행주대첩비(1970년도 건립)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완만하게 도로를 따라 오르면 ┬자 삼거리 우측에 대첩기념관이 있다.

 

 

▲ 충장사와 대첩기념관

 

10:08~10:1=>대첩기념관

     전시실 내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행주대첩 당시 사용하였던 무기와 대첩기록화가 전시되어 있어 잠시 둘러보고 나온다. 현 전시관 자리는 임진왜란 당시에는 무기고와 군량창고가 있었던 자리이며, 1980년 제2차 정화사업 때 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우측으로 영종공항고속도로 방화대교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있는데 입구에 이정표(←충의정, 덕양정/→진강정 100m)가 있고, 우측 진강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길이 있다.

 

 

▲ 진강정에서 내려다본 방화대교와 자유로 북로분기점 일대 전경

 

계단길을 내려서면 '진강정' 정자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정자 뒷편으로는 방화대교와 자유로가 만나는 '자유로 북로분기점'과 한강이 조망이 된다. 계단길을 되돌아 올라가 잠시 도로를 따르면 '덕양정' 정자가 자리를 하고 있는데, 정자에 오르면 이곳 역시 한강과 자유로 주변의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덕양산 정상에는 대형 행주대첩비(1970년 건립)가 우뚝 솟아 있고 바로 아래에는 최초의 행주대첩비(1602년 건립)가 보관된 비각이 자리를 하고 있다.

행주대첩비가 있는 정상을 넘어가면 행주산성 영상교육관으로 국민의 호국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충의정이 있다.

 

 

▲ 진강정과 충의정

 

♧ 행주대첩비(1602년도 건립)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선조35년(1602)에 권율 도원수의 막하에 있었던 여러 장수들이 장군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행주대첩의 과정과 의의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비의 높이는 1.88m로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현재 풍우 등으로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고, 비각 내에 보관되어 있다.

 

 

 

 

((대첩비 요약문))

조선제도도원수 정헌대부지중추부사로서 의정부 좌찬성겸 의금부부사 지경년춘추관사 홍문관제학동지성균관사의 관직을 추증받은 권율공이 사망한지 1주년이되어 막료였던 인사들이 과거 행주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그 공적이 대단히 컸던 것을 기려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비를 세워서 그의 공적을 영원히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을 결정하고 비문을 지었다.

임진년 4월 일본은 대병력으로 침략하여 여러 진과 읍을 함락시켜, 우리나라는 중앙과 지방이 혼란했다.

임금께서 "권모가 훌륭한 인재로 알고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 후 의주목사로 있던 공을 광주목사로 전입시켰다. 모든 관료들은 남방을 사지로 보고 있었으나 공은 명령을 받고 즉시 현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공이 광주에 도착하자 이에 서울이 함락되고 임금은 의주로 파천한 뒤였다.

공은 방어군중위장의 직책을 맡고, 충청도 군대와 합류하여 이들을 거느리고 수원에 진주하였으나 전열이 정비되지 않아 광주로 돌아갔다. 다시 나주목사, 전라도 순찰사로 임명을 받은 공은 방어사로 하여 이치(대둔산)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전주로 가서 1만여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수원의 독산성에 주둔하고 이 사실을 나라에 보고하였다. 서울에 주둔한 적은 공의 군대가 요충지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꺼려하여 수만명을 3개의 부대로 나누어 오산 등지에 배치하고 싸움을 도발하였으나 공의 유격전술에 부분적으로 격파되어 철퇴하였다.

계사년(1593) 2월에 공은 정예군 약 2,3000여명을 직접 인솔하여 양천강을 건너서 고양의 행주산성에 주둔하였다. 적은 평양에서 죽음을 면한 자, 황해도에서 탈출한 자, 개성에서 후퇴한 자, 함경도에서 소문을 듣고 도망쳐 온 자들이 모두 서울에 집결되어 서울의 적세는 다시 강성하였다.

이달 12일 새벽에 척후병이 적군의 공격기섹이 있다고 보고하자 공은 동요하지 말도록 경계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성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적군은 벌써 벌판 가득히 몰려와 성을 포위하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우리 군사들은 결사적으로 응전하여 화살과 돌을 빗발처럼 쏘았다. 왜적은 군대를 세패로 나누어 교대로 쉬어가면서 싸우는데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세차례에 걸쳐 싸웠으나 불리하자 갈대를 묶어 성에 불을 질렀다. 불은 목책에 까지 연소되었으나, 성안에서는 물을 가지고 불을 껐다.

서북쪽 낮은 성에 승려군이 지키고 있었는데 약간 동요된 틈을 타서 다시 적군은 아우성을 치며 들이 밀려왔다. 이 통에 온 군대가 흔들렸으나 공은 칼을 뽑아 들고 여러 장군을 호령하여 앞을 다투어 칼을 휘두르며 육박전을 감행하였다. 적은 크게 패하여 네군데서 전사자의 시체를 모아서 태우고 달아났다.

우리 군사들이 그 나머지의 적군을 밴 것도 130명에 달했고, 적군이 버린 깃발, 투구, 갑옷, 무기 등을 노획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후 공은 군대를 파주에 있는 산성으로 옮겼다. 적은 행주에서의 참패를 보복하려고 군대를 끌고 서쪽으로 나왔다가 공의 성벽이 행주에서 보다도 더 삼엄한 것을 바라보고 "우리가 침범해서는 안되겠다"고 경계하며 되돌아 간 것이 세번이나 되었다.

공의 자는 언신, 본관은 안동, 고려의 태사 행의 후손이며, 조선 왕조에서는 찬성 근의 6대손이고 영의정 철의 아들이니 그의 가문에서 이어진 인격과 높은 학문은 사람을 통솔함에 있어서는 더욱 온화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성의를 보였고, 엄격함만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환심을 얻어 위급할 때를 당해서도 그들은 공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공은 46세에 임오년 문과에 합격하여 낭간에서 바로 당상관으로 올라 갔었으나, 문과 출신의 장군으로 활약하였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있을 때가 적었으며 어려운 시국을 당하여 정치적으로는 별로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런데 공의 과거 부하였던 막료와 사병들이 공의 덕의를 사모하면서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므로 다투어 물자를 내놓아 이 비를 세우기로 하였으니 갸륵한 일이다.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최립이 글을 짓고, 통훈대부행가평군수 한호가 썼으며 절충장군행대호군지제교 김상용이 두전을 썼다.

선조35년(1602) 6월에 세웠다.

 

▲ 행주대첩비가 있는 정상에서 뒤돌아본 대첩비각과 덕양정, 그리고 방화대교

 

10:30~10:35=>충의정

     충의정 건물 뒷편으로 나무계단길을 내려서면 1992년 일부 복원된 토성이 나타난다. 전체 길이가 약 1km에 달하는데 415m를 복원해 두었다.

토성 위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포장된 길이 가로지르는데 이곳이 옛 성문터이다. 우측 길을 따라 처음 대첩문에서 올라올 때 거쳤던 충장사 입구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문터를 지나면 우측 토성 밑에 '행주기씨유허비'와 안내문이 보인다.

 

♧ 토성(土城)의 문터

 

성의 출입문이 있었던 문터로 학술발굴조사로 서벽 아래에 문을 세우기 위해 두께 50cm가량의 통일신라시대의 성토층이 확인되었다.

문의 폭은 7m 가량이며, 지면 아래서 확인된 성토 암반을 파고 들어간 배수로는 산성의 자연 배수로 역할도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충장사 입구 사거리에서 권율 장군 동상을 지나 대첩문을 빠져 나오며 약 1시간 5분여의 행주산성의 탐방을 마무리하며 본격적인 경기DMZ트레킹코스 고양시 첫째길 탐방을 시작한다.

 

【 트레킹코스 탐방 】

 

▲ 고양 제1코스 출발점

 

10:55~11:00=>행주산성 입구 주차장/고양 제2코스 출발점

     주차장 입구 좌측의 경기DMZ트레킹코스 이정표가 있는 시멘트 계단길을 내려가 '행주산성로'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며 고양시 제1코스의 탐방이 시작되었다.

도로 양쪽으로 대형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있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행주서원 입구에 이르게 된다.

 

▲ 트레킹코스인 '행주산성로' 2차선 포장도로

▲ 행주서원 입구 ┤자 삼거리

 

11:10~11:16=>행주서원

     ┤자 삼거리인 입구에서 좌측의 골목길로 약 100여m를 들어가면 행주서원이 있다.

외삼문인 대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어 담장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도로로 되돌아 나와 길을 따라 행주대교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 행주서원(幸州書院)

*경기도 기념물 제71호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162-1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적들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을 모신 곳으로 헌종8년(1842)에 세웠다. 처음에 위패를 모신 사당을 기공사라 하였으나, 6.25 때 소실되었다가 점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판은 고종때의 무신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난 신헌이 썼다.

권율 장군은 선조15년(1582)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32년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3만여명의 왜군과 싸워 1만여명을 사상자를 내는 전과를 올린 행주대첩을 세운 공로로 대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37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에 제수되었고, 시호는 충장공이라 하였다.

 

▲ 행주나루터 표석

▲ 행주나루터 표석이 있는 식당 주차장 뒷편에서 바라본 행주대교

 

'행주나루터' 표석(11:20)이 있는 식당 주차장 안쪽 한강변에는 군 철망팬스가 보이고, 철망 너머로는 한강과 행주대교가 조망이 된다.

 

▲ 행주대교 직전의 Y자 삼거리 전경 

 

▲ 삼거리의 버스정류장과 도로표지판

▲ 행주대교고가 밑을 통과하고...

 

'나루터' 버스정류장이 있는 Y자 삼거리(11:24~11:29) 정면에는 도로표지판(↖39번국도:김포공항,행주대교/↗23번지방도:자유로,능곡)이 보이는데 좌측의 길을 따라 행주대교 밑을 통과하고 한강변 철망팬스를 따르면 우측 행주대교쪽으로 돌아가는 도로를 버리고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철망팬스를 따르게 된다.

 

▲ 철책길

 

열려진 철문이 있는 넓은 비포장 군 작전도로이다.

약 200여m 정도 철책길을 따르면 직진의 강변 철책길 입구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우측 열려진 찰문으로 이어지는 비포장길로 진행을 하게 된다.

 

▲ 철책길이 끝나는 지점

▲ 자유로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

 

자유로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11:35)를 빠져 나가면 자유로를 옆에 두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는데 길 오른쪽으로는 대파밭과 비닐하우스 등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그 너머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으로는 '제2자유로' 도로공사가 자유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행선을 그리며 한창 진행중이다.

 

▲ 자유로 옆 시멘트 포장도로

 

현재 걷고 있는 트레킹코스에서도 자유로를 오가는 차량들 소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인데 제2자유로가 개통되면 양쪽에서 들려오는 차량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 길을 걸어가야 할 것 같다.

 

▲ 하수천과 만나는 지점

▲ 하수천 옆 둑방길

 

11:53=>하수천

     자유로와 함께 한 길이 끝나며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하수천을 따라 둑방길을 걷게 되는 지점으로 정면으로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와 자유로가 만나는 '자유로분기점'이 지척에서 조망이 된다.

하수천을 좌측에 두고 둑방길을 따라 공사중인 제2자유로 고가 밑(11:58~12:00)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 이른다.

 

▲ 하수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사거리

 

12:01=>사거리

     좌측의 하수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시멘트 포장길을 100여m 가면 앞이 막힌 ┬자 갈림길.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농로를 따라 약 200여m를 진행하면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는 ┤자 갈림길(12:06~12:07).

정면 전신주에 '←트레킹코스' 곤색 화살표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시멘트 농로

▲ 삼성당마을로 방향을 바꾸는 ┬자 갈림길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일직선의 농로 끝까지 진행하면 다시 앞이 막힌 ┬자 갈림길(12:13~12:15)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들어가면 삼성당마을이 나타난다. ┬자 갈림길에도 전신주에 '→트레킹코스'란 오렌지색 화살표 스티커가 붙어 있고, 좌측에는 '↓낙원농장 200m' 입간판이 있다.

가로지르는 수로를 건너는 작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 50여m 더 진행하면 삼성당마을내 ┬자 갈림길. 정면 주택에 붙은 '호수로71번길' 푯말이 보인다.

좌측으로 마을길을 따라 '삼성당노인정' 앞을 지나 빠져 나오면 4차선 포장도로인 '호수로'와 만나는 '삼성당마을 입구'에 이르게 된다.

 

 

▲ 뒤돌아본 삼성당마을 입구 전경과 도로이정표판

 

12:20~12:22=>삼성당마을입구/호수로

     마을 입구 삼거리에 도로이정표(←호수공원, 백석동/→능곡역, 능곡동주민자치센터)가 있고, 길 건너에는 SK주유소가 자리를 하고 있다. 좌측 호수공원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도로를 가로지르는 '대장천' 다리를 건너면 정면으로 도시외관순환고속도로가 도로위를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도로 건너편 대장천 다리 입구에는 '지방2급하천 대장천' 푯말이 설치되어 있다.  

 

 

▲ 호수로 도로가에 부착해둔 트레킹코스 표시들

▲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호수로

 

4차선 포장도로 옆 인도를 따라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 고가 밑과 '신주택앞' 버스정류장(12:37)을 차례로 지나 도촌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이르게 되는데 섬말다리이다.

 

 

▲ 섬말다리와 섬말다리사거리의 표지판

 

▲ 섬말다리 표시와 버스정류장의 입간판

 

12:45~12:49=>섬말다리/섬말다리사거리

     다리를 건너면 '섬말다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섬말상회가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는 20여m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설치된 사거리가 있다.

큰 도로 기준 사거리이지만 실제로는 11시 방향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어 오거리를 이루고 있으며 트레킹코스는 이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게 되어 있다.

 

▲ 섬말다리사거리에서 바라본 왕벚나무길 입구

▲ 왕벚나무길

 

호수로인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호수로와 나란히 진행하는 11시 방향의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왕벚나무길'이다.

 

▲ 공사중인 도로 밑 굴다리를 통과하고...

 

도로 공사중인 굴다리(12:55)를 통과하고 길게 쭉 뻗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우측 호수로 주변에는 일산 신도시의 높은 건물들이 길따라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밭들과 비닐하우스 단지, 그리고 창고 건물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보인다.

우측으로 '고양우편집중국' 건물(13:03)이 보이면, 약 5분 후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 장항5로인 2차선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

 

13:18~13:22=>장항5로/2차선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약 70여m 정도를 나가면 6차선 포장도로인 '호수로'와 다시 만나고, 좌측의 S-OIL 신세계주유소 앞 인도를 따라 가면 50여m 떨어진 곳에 ├자 도로삼거리가 있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호수마을' APT단지가 보이고, 좌측에는 '용수유입시설'이 있다.

 

▲ 인도옆으로 보이는 호수공원

 

이곳부터 일산호수공원이 시작이 되는데 약 100여m 진행하면 '유원아파트 앞' 버스정류장과 좌측으로 호수공원 입구가 있고 길 건너에는 호수마을 312동이 보인다.

 

▲ 호수공원 입구

 

13:25~13:29=>호수공원 입구

     좌측 호수공원으로 들어서면 이정표(↑청평지 30m/→샘터광장 250m, 운동장 50m, 폭포 1.2km)가 있고, 잠시 직진하여 청평지를 우측에 두고 공원 산책로를 따른다. 나무벤치에 앉아 빵과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휴식(13:32~13:43)을 취하고 계속 공원내 산책로를 이어간다.

 

▲ 일산호수공원내의 청평지

▲ 일산호수공원내의 산책로

 

샘터광장(13:46),

게이트볼 전용구장과 농구장(13:48~1352). 발길을 멈추고 어르신들의 게이트볼 경기를 잠시 지켜보고 산책로를 따르다 공원내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공원에 다시 들어가면 대형 이정표(←메타세쿼이아길 300m, 선인장전시관 1.3km, 노래하는분수대 2km, 두루미사육장 2.2km/↖애수교 200m, 주제광장 750m, 꽃전시관 650m, 종합관리사무소 750m, 한울광장 900m/→인공폭포 250m, 제4주차장 350m)가 있다.

 

▲ 호수공원내의 이정표

▲ 호수공원내의 산책로

 

좌측의 산책로를 따라 진행하여 자유로 장항I.C.로 이어지는 호수교 고가 밑에 이르면 우측으로 넓은 호수가 펼쳐지고, 고가 밑을 지나면 Y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고가 밑에는 평상과 테이블이 딸린 의자 등이 설치된 쉼터이고, 매일 오후 2시경 이곳에서 섹스폰 연주를 하신다는 할아버지의 연주가 있어 평상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잠시 감상을 해 본다.

 

▲ 호수교 밑 쉼터에서 섹스폰 연주하시는 모습

 

♧ 일산 호수공원 

 

 

 

일산신도시 택지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 근린공원으로서 국내최대의 인공호수를 만들어 도시인이 접할 수 없었던 자연생태계를 재현하고 다양한 주변경관 및 호수를 이용한 레크레이션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호수를 중심으로 한 4.7km의 자전거도로와 8.3km의 산책로는 시민들의 산책과 운동장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매년 고양꽃 전시회와 3년 주기로 고양세계 꽃박람회가 개최되는 장소로 수도권은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공원이다.

1992년 12월 31일부터 1995년 12월 28일까지 3년에 걸친 공사기간과 순공사비 255억원의 조성비가 들어간 공원으로 전체면적 1,034,000㎡(313,000평)이며 담수용량 453,000㎥, 전체면적 300,000㎡(91,000평)인 호수가 있다.

 

 

 

14:02~14:13=>호수교밑 쉼터

     입구에 이정표(↑선인장전시관 1.05km, 노래하는분수대 1.85km/↓샘터광장 780m, 제4주차장 500m, 인공폭포 450m)가 있는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우측 산책로를 버리고 좌측의 산책로로 들어가면 다시 Y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메타세쿼이아길 입구이다. 

 

 

 

 

 

좌측으로 들어서면 메타세쿼이아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흙길의 산책로 양쪽에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을 한다.

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나는 ├자 갈림길(14:22)에서 계속 직진하면 좌측으로 돌무더기탑이 있고, 정면으로 선인장전시관 유리 건물이 나타난다.

 

▲ 선인장전시관 직전의 돌무더기탑

▲ 정면에서 바라본 선인장전시관

▲ 선인장전시관 뒷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트레킹길

 

14:25~14:41=>선인장전시관

     선인장전시관 뒷편으로 계속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이곳이 고양시 제1코스와 2코스의 분기지점이다. 전시관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나가면 전시관 외벽 우측에 경기MZ트레킹코스 이정표(←고양 첫째길 10.2km/→고양 둘째길 14.3km)가 붙어 있다.

 

▲ 선인장전시관 앞 벽면에 부착된 고양시 트레킹코스 이정표

 

▲ 선인장전시관 내부 전경

 

 

 

 

 

 

전시관 내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경기DMZ트레킹코스 안내 리플렛을 수령하고, 전시관 내를 한바퀴 둘러본 후 호수안에 만들어진 인공섬인 달맞이섬의 월파정 정자(14:43~14:50)에 올라 호수 주변의 전경을 감상해 보고 다리를 건너 호수를 가로질러 장미원에 도착을 한다.

 

 

 

 

 

 

 

 

 

장미원(14:55~15:09)에 꾸며 놓은 장미들을 감상하고 장발산역으로 향하기 위해 청원레이크빌과 중앙하이츠빌 오피스텔 건물을 향해 진행을 한다.

한울광장(15:13) 좌측의 보행육교를 이용하여 호수공원을 벗어나 정발산역 2번출구(15:23)에 도착하여 우측 방향으로 약 150여m 정도 떨어진 '일산동구청앞'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며 오늘의 걷기를 마감한다.

15:27~15:32=>일산동구청앞 버스정류장

     부천행 시외버스(문산~부천간 운행) 시간표를 알 수가 없어, 영등포행 #9707번 광역버스에 오르며 고양 제1코스의 일정을 마무리를 하였다.

다음 제2코스 때에는 출발지인 선인장전시관까지 접근하는 방법을 호수를 끼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