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태탐방로/2012년 지정탐방로

한국사(韓國史)의 축소판! 홍주성 천년 여행길(Ⅰ)

왕마구리 2013. 6. 26. 17:34

◀ 홍주성 천년 여행길(Ⅰ) ▶

천년 넘는 세월의 역사 흔적이 남아 있는 홍주!!!

천주교 2대 순교성지!!!

 

 

                  ▲ 여하정 일대

                  ▲ 홍주성의 성곽

 

【 홍성군 소개 】

홍성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옛 홍주군과 결성군이 햡쳐져 이루어진 군이다. 홍성이라는 이름은 주군과 결군의 한자씩을 따서 "홍성"이라 이름하였는데, 항일운동의 중심지역인 "홍주"라는 지명을 격하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고려 성종14년(995년) 도단련사를 두고, 현종3년(1012) 홍주라 하고 지주사를 두었다.

고려 공민왕5년(1356) 홍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고려 공민왕17년(1368) 홍주라 하고 지주사를 두었다. 공민왕20년(1371) 다시 홍주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1895년에 군이 되었고, 1914년에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결성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인데 신라 때 결성으로 고쳐 고려시대인 1018년 운주에 이속되었다가 1172년에 감무를 두었다. 우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1390년에는 진성을 두고 주민을 정착시켰다.

조선시대 1413년 현감을 두었다가 1895년 군으로 승격, 1914년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하여 홍성군이 되었다.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고, 1942년 광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산군 고북면 대사리와 결성면에, 홍동면 월림,대평,운용리를 광천읍에, 결성면 중리를 서부면에, 홍북면 내범리, 홍동면 구룡리를 홍성읍에 각각 편입하여 현재와 같이 홍성, 광천읍, 갈산,결성,구항,금마,서부,은하,장곡,홍동,홍북 등 2개읍 9개면으로 개편되었다.

 

충청남도 중서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예산군, 서쪽은 서해, 남쪽은 청양군과 보령시, 북쪽은 서산시와 예산군에 접하고 있다.

면적은 443.59㎢이고, 군청소재지는 홍성읍 오관리에 있다.

동,남,북이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은 천수만이 면하고 있다. 동쪽에는 봉수산과 초롱산, 남쪽에는 오서산과 아차산, 북쪽에는 용봉산과 백월산 등이 솟아있고 그 줄기가 군내 각처에 뻗어 있어 대부분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용봉산에서 발원한 금마천이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홍성군의 북동부를 북류하며, 와룡천이 북서부를 서류하여 천수만에 유입된다. 천수만 연안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이가 커서 간석지로 이용된다.

【 걷기일자 】 2013년 6월 3일(월)

【 걷기코스 】홍성역→고암공원→장군상오거리/김좌진장군 동상→홍성전통시장 입구→문전성시→홍성대장간(장터보물2호)→대교리 석불입상(장터보물1호)→의사총사거리→홍성 홍주의사총→대교2리마을회관→매봉재입구/산길 입구→매봉재→홍주향교→홍성고등학교 정문↔홍성고 강당(근대문화유산)→홍성고사거리→대교공원입구→대교공원/백월교→홍주성 북문터→북서리방앗간→홍주초등학교-(홍주성 성곽)→홍주성 남문/성밖→'홍주성 옛모습'안내도→성주옥과 우물터→홍주성 남문/성안→홍주성수성비→홍주성역사관→안회당→여하정→홍성군청 앞 느티나무/보호수→홍주아문

 

 

【 코스거리 】 약 6.40km

이번 탐방은 홍성군청 앞 홍성읍사무소 앞에서 마무리하였으며, 남문을 통하여 홍성군청으로 향하여야 하나 현재 남문 복원공사 중이라 홍주성곽을 따라 우회하여 홍성군청으로 진행하였으며 총 탐방거리는 약 6.4km로 추정됨.

 

*이정표 상 탐방로 거리 : 약 6.40km

홍성역-(0.5km)-고암공원-(0.6km)-장군상오거리-(0.3km)-대교리 미륵불-(0.5km)-홍주의사총-(0.5km)-대교2리마을회관-(0.4km)-매봉재-(0.8km)-홍주향교-(0.7km)-대교공원-(0.3km)-홍주성 북문터-(0.9km)-홍주성 남문-(0.9km)-조양문

【 소요시간 】 총 4시간 41분 소요(휴식 및 유적지 탐방 : 1시간 53분 포함)/실제 걷기시간 : 2시간 48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코스탐방 】

홍주성 천년 여행길은 홍성역을 출발하여 홍주의사총에서 홍성천주교순교성지를 를 거쳐 대교공원으로 진행하게 되어 있는 약 8.5km의 탐방로와 홍주의사총에서 매봉재, 홍주향교, 홍성고교 강당을 거쳐 대교공원에서 홍주 천년여행길과 만나는 연계코스인 '매봉재길' 약 3.5km의 탐방로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제 탐방로의 코스는 두 개의 코스가 결합된 상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개의 코스가 결합된 실제 탐방로의 코스를 살펴보면 홍성역-홍주의사총-대교2리마을회관-매봉재-홍주향교-홍성고교 강당-대교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어, 홍주성 천년여행길 탐방코스 중 홍주의사총-홍성천주교순교성지-대교공원 구간이 빠져 있다.

 

                  ▲ 홍주성 천년 여행길과 천주교순례길 탐방 코스

 

 

 

                  ▲ 탐방로의 안내 표시들

 

이번 총주성 천년 여행길 탐방은 홍성역~홍성군청 앞 홍성 읍사무소까지 실시가 되었으며, 나머지 구간(홍성 읍사무소~홍성역)은 다음 홍성의 명산 '용봉산' 산행과 함께 실시를 하기로 하고 남겨 두기로 한다.

이번 구간에 '매봉재길'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면 100% 인도와 포장길을 따르게 되었을텐데, 다행스럽게도 '매봉재길'이 포함되어 약 1km 정도 산길을 진행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월요일 탐방을 하게 되어 '홍주의사총'이 휴관이라 의사총을 참배하지 못하였고, 홍주향교의 문이 잠겨있어 향교의 내부를 관람하지 못하고 담장 넘어로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탐방이 되었다. 또한 홍주성 남문과 옛 홍주목의 동헌이었던 안회당이 복원이나 보수공사로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보수공사 중이라 출입이 통제되어 성곽을 따라 코스를 일부 우회하게 되었었다.

 

                  ▲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출발지인 홍성역

 

12:04=>홍성역

     역 앞 광장에는 '홍주성 천년 여행길' 안내도와 '천년여행길 (1)' 이정표지판이 있다.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홍주성 천년 여행길(2)' 이정표지판이 보인다. 앞으로 중요지점이나 갈림길 등에 일련번호가 적힌 이정표지판이 계속 나타나게 되고, 이 표지판을 따라 진행을 하면 된다.

우측 인도를 따라 가면 ┳자 도로삼거리.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좌측 홍성읍 시내를 향해 진행을 하여 길을 건너면 '홍주성 천년 여행길(3)' 이정표지판을 지나 20여m 떨어진 도로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도로사거리에서 도로를 건너면 사거리 코너에 '홍주성 천년 여행길(4) 고암공원, ←장군상오거리 0.6km/↓홍성역 0.5km/→터미널' 이정표지판이 있는 고암공원이다.

 

 

                   ▲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이정표들 : 홍성역 앞(사진 左), 고암공원 앞(사진 右)

                  ▲ 고암공원

 

12:12=>고암공원

     우측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롯데마트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홍성버스터미널로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또 다른 출발지이기도 하다.

인도를 따라 시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인도 보도블럭에는 '홍주성 천년여행길' 동판들이 박혀 있으며 이 동판들도 이정표지판들과 함께 탐방객들의 길 안내를 담당하고 있다.

도로 건너 반대 편에 자리한 홍성의료원 앞을 지나 홍성성당 입구에 이르니 '내포문화숲길, 천주교순례길(2), ←80m' 표시목이 있다. 이 표시목은 천주교 2대 순교성지인 홍성지역을 찾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를 위해 조성된 천주교순례길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홍성지역은 충청도에서 공주와 더불어 천주교의 최대성지이다. 내포의 개방성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 홍주는 충청도 전영장이 배치되었던 천주교도의 처형장이 되어 순교자가 많았으며, 정조16년(1702) 홍주 옥에서 얼어 죽은 원시장을 비롯하여 신유박해 때 6명, 을해박해 때 1명, 기해,병오박해 때 6명, 병인박해 때 117명 등이 홍주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 김좌진 장군상(사진 上)

                     김좌진 장군상 안내문과 장군상오거리(사진 下)

 

12:23=>장군상오거리/김좌진장군 동상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3년 주민의 성금 등으로 건립한 동상 끝의 보도블럭에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동판과 천주교순례길 '(03)' 표시목이 있다.

우측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좌측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천년여행길 이정표('05' 장군상오거리, ↓고암공원 0.6km/→미륵불 0.3km)가 있다.

 

                 

                  ▲ 장군상오거리와 홍성전통시장 입구의 천년 여행길 이정표

 

우측으로 도로 따라 100여m를 올라가면 천년여행길 이정표('06' 홍성전통시장입구, ←↓)가 있는 홍성전통시장 입구이다.

 

 

                  ▲ 홍성전통시장 입구(사진 上)

                     홍성전통시장(사진 下)

 

홍성전통시장은 천수만의 해산물과 내포평야의 농산물이 넘쳐 나던 곳으로 홍주성에는 과거에 드물게 성안에 장터가 형성되어, 일제시대와 근대에 이르러 도심의 발전과 상권의 이동에 따라 지금의 장터로 이전되어 70년 세월을 지역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160여년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좌측 시장 안으로 들어가 첫번째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가면 시장 골목 중간 쯤에 우측으로 쉼터인 '문전성시'가 자리를 하고 있다.

 

                  ▲ 홍성전통시장 내 장터 사랑방인 문전성시

 

12:30~12:53=>홍성전통시장 내 문전성시

     홍성 5일장 내 문화공간으로 여행객들에게 시장과 관광정보를 제공하는 관광안내소 및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는 장터 사랑방이다.

문전성시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장 골목 끝 ┳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나가면 ╋자 사거리. 사거리 코너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된 홍성대장간이 자리를 하고 있다.

 

                   ▲ 홍성대장간

                   ▲ 홍성대장간 내부 전경

 

                  ▲ 홍성전통시장 내 장터보물 목록표와 장터보물 제2호 홍성대장간의 모루,나무통 안내문

 

홍성 장터 보물 제2호로 지정된 홍성대장간은 3대에 걸쳐 100년의 세월을 넘게 이어오고 있는 대장간으로 화로에서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모루와 나무물통을 만든 장인의 마지막 작품인 다듬어진 쇳덩이를 식힐 물을 담아 두는 나무물통이 있다.

사거리에서 우측 골목길로 방향을 잡고 진행하여 사거리에 이르면 우측으로 대교 제2어린이놀이터가 있으며, 입구에 천년여행길 이정표('07' 미륵불, ↓장군상오거리 0.3km/→홍주의사총 0.5km)가 보인다.

공원을 겸하는 놀이터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홍성 장터 보물 제1호로 지정된 대교리 석불입상이 있다.

 

                   ▲ 홍성전통시장 지나 놀이터와 미륵불이 있는 공원

                       ◀▼ 홍성 장터보물 제1호인 미륵불

 

 

13:00=>대교리석불입상

     전형적인 미륵의 모습이 아닌 포근한 서민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어 민속신앙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현재도 대교4구 마을에서는 안녕과 번영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미륵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천년여행길 이정표('08' ↓→)와 화장실이 있는 석불입상 우측으로 공원을 빠져 나가 우측으로 진행하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서거리. 진행해야 할 좌측 인도 입구에도 천년여행길 이정표('09' ←↓)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 인도따라 100여m를 올라가면 정면 길 건너 편으로 홍성천이 가로지르는 2차선 포장도로 사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천년여행길 이정표('10' 의사총사거리)가 있다.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 건너 홍성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좌측으로 홍성 총주의사총이 자리를 하고 있다.

 

                  ▲ 홍성 의사총 입구를 흐르는 홍성천

 

♧ ♧ 홍성 의사총(洪城 義士塚)

*사적 제431호(지정일:2001년08월17일)

*소재지: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 79외(대교리)

 

 

한말 홍성군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활동 가운데 홍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수백 의병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분묘이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충청남도 홍성지방에서는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을 중심으로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 등 옛 관료들이 의병을 일으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고종 황제의 명을 받아 의병을 모아 남포와 보령에 있는 일본군을 습격하여 병기를 탈취하였으며, 3월20일에는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일본군의 대포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홍주천변과 남산 일대에 흩어져 방치되었다가, 1949년에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져 현재와 같은 분묘를 만들어 이곳에 모셔졌다.

홍주의병의 핵심적 연구자료인 '흥양일기', '흥양기사', '조선최근사' 등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 전사자는 최소한 98인, 많게는 수백이라는 기록이 확인되었다.

묘는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고, 묘의 오른쪽에는 정인보가 짓고 심상직이 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사당인 창의사에 900의사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어 수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바꾸었다. 매년 5월30일 순국의사 추모제를 올리고 있으며, 을미의병으로부터 연면히 계승되어 온 한말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유적이다.

 

13:10~13:20=>홍성 홍주의사총

     사적 제431호로 지정된 홍성 홍주의사총 입구에도 천년여행길 이정표('12' 홍주의사총, ←대교2리마을회관 0.5km/↓미륵불 0.5km)가 있고, 홍성 관광안내도와 의사총 안내도도 설치가 되어 있다.

 

  

                  ▲ 홍성 홍주의사총 입구와 끝에 설치된 이정표와 표지석들

 

월요일 휴관하는 관계로 내부 참배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사총 앞을 지나 의사총 담장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좌측에 '홍주 의사총' 표지석이 있고 정면에는 '의사동마을' 표석과 천년여행길 이정표('13' 홍주의사총, ↓→)가 있는 ┣자 갈림길.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홍성고사거리의 대교공원 입구로 진행하는 것이 원래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다. 그러나 홍성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연계코스인 '매봉재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이 길을 따라 잔행을 하기로 한다.

 

 

                  ▲ 대교2리마을회관로 향하는 골목길 입구 갈림길(사진 上)

                     대교2리마을회관으로 가는 골목길(사진 下)

 

【매봉재길 탐방】

우측 골목길로 의사총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천년여행길 이정표('14')가 있고 도로가 90º 직각으로 꺾이어지는 ┣자 갈림길. 우측 골목길 따라 홍성 구세군 교회를 지나 계속 진행하면 ┫자 갈림길 우측에 천년여행길 이정표('16' 홍주의사총, ↑↓)가 있고, 길 따라 올라가면 좌측으로는 홍성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천년여행길 이정표(13:29, '17' ↑↓),

20여m를 직진하면 은행나무 밑에 천년여행길 이정표('18' ↑↓)를 지나면 대교2리마을회관 앞에 이르게 된다.

 

                  ▲ 대교2리마을회관

 

13:33=>대교2리마을회관

     천년여행길 이정표('20' 대교2리마을회관, ↓홍주의사총 0.5km/→매봉재 0.4km)가 있는 ┳자 삼거리. 우측으로 10여m를 가면 또 다른 천년여행길 이정표('21` 매봉재입구, ↑↓)가 있는 사거리이다.

 

 

                  ▲ 매봉재 입구(사진 上)

                     매봉재로 가는 길(사진 下)

 

직진의 간동1길 시멘트 포장길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 민가에서 포장길은 끝(13:39)이 나고 산길이 시작된다.

 

 

 

                  ▲ 산길 입구(사진 上)

                     숲길이 시작되는 입구(사진 中)

                     숲속 사거리(사진 下)

 

산길 따라 100여m를 오르면 천년여행길 이정표('22` ↑↓). 100여m를 더 오르면 천년여행길 이정표('23` ↑↓)가 나타나며 숲길이 이어진다.

천년여행길 이정표('24' ↖↓)가 있는 사거리(13:43)에서 11시 방향의 중간 길로 들어서면 사거리인 매봉재에 이르게 된다.

 

                  ▲ 매봉재

 

13:44~13:46=>매봉재

     천년여행길 이정표('25' 매봉재, ←홍주향교 0.8km/↓대교2리마을회관 0.4km)가 있는 사거리에서 좌측 길로 내려가면 천년여행길 이정표('26` ←↓)가 있는 ┳자 삼거리(14:49).

좌측 길로 편안하게 내려가면 묘지가 나타나며 임도를 만나게 된다.(13:49)

 

                  ▲ 임도와 만나는 매봉재길

 

임도따라 내려가면 우측에서 내려오는 시멘트 포장길과 만나는 삼거리. 천년여행길 이정표('28` ↑↓).

20여m를 내려가면 시멘트 포장길이 가로 지르는 삼거리. 천년여행길 이정표('29` ↓→).

우측으로 포장길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270º 꺾이어 내려가는 ┳자 삼거리. 천년여행길 이정표('30` ←↓).

'충서로 1575번길'인 시멘트 포장도로 따라 내려가면 천년여행길 이정표('32` ↓→)가 있는 ┣자 삼거리(13:58).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을 하면 우측으로 홍주향교 담장이 나타나고 홍주향교 홍살문이 있는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 홍주향교 안내문과 입구에 설치된 천년 여행길 이정표(사진 上)

                     홍주향교(사진 中)

                     홍주향교 명륜당과 대성전(사진 下)

 

14:01~14:13=>홍주향교

     홍주향교 입구 삼거리에는 천년여행길 이정표('33' 홍주향교, ↑대교공원 0.7km/↓매봉재 0.8km)가 있다.

홍살문을 통과하고 향교 내부를 둘러 보기 위해 정문인 외삼문 앞에 이르니 향교의 외삼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 출입이 불가능하다. 전학후묘의 기본 구조이지만 그래도 내부를 둘러 보고 가기를 원했지만 아쉽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좌측으로 향교 담장을 끼고 돌아가다 담장 넘어로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홍주향교 탐방을 마무리한다.

다시 홍살문이 있는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마을길을 따라 직진을 하면 천년여행길 이정표('35` ↑↓)를 지나 홍성고 정문 앞에 도착을 하게 되면서 매봉재길은 끝이 난다.

【매봉재길 탐방 완료】

 

 

                  ▲ 홍성고 정문(사진 上)

                     홍성고 입구 사거리(사진 下)

 

14:24~15:00=>홍성고등학교 정문

     홍성교 교내에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당이 있어, 학교 안으로 들어가 확인을 해 보고, 학교 앞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홍성고 정문 앞 50여m 떨어진 곳에 사거리가 지나고 있으며, 횡단보도에는 천년여행길 이정표('37' ←↑)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천년여행길 이정표('38' 광경교, ↑→)가 있으며, 앞으로는 홍주성의 자연 해자인 월계천이 흐르고 있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월계천변에 조성된 대교공원 입구이다.

 

 

                  ▲ 대교공원 입구의 광경교(사진 上)

                     대교공원 입구(사진 下)

 

천년여행길 이정표('39' 대교공원입구, ↑↓)가 설치된 대교공원 입구(15:03)에서 월계천을 좌측에 두고 이어지는 대교공원 산책로를 따라 간다.

대교공원은 홍주성의 자연 해자인 월계천변에 조성된 도심공원으로 소나무, 왕벚나무, 느티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으며, 분수대와 지압산책로 등의 편의시설과 파리장서기념비, 이산보 선생 공적비 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 백월교와 만나는 대교공원(사진 上)

                     파리장서비와 대교공원의 이정표(사진 中)

                     천주교순례비가 있는 대교공원(사진 下)

 

15:10=>대교공원

     좌측 월계천을 가로지르는 백월교를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곳에 이르면 천년여행길 이정표('40' 대교공원, ←홍주성북문터 0.3km/↓홍주향교 0.7km)와 우측으로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가 있고, 길 건너 계속되는 공원 산책로 입구에는 '내포문화숲길, 천주교순례길(13), ↑180m' 표시목이 보인다.

 

파리장서는 1919년 3.1독립선언 직후 곽종석, 김복한 등 유림대표 137명이 파리강화회의에 일제의 국권 침탈을 폭로하고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서를 지어 연서한 다음 파리에 보낸 사건이다.

파리장서비는 호서지역에서도 홍성 출신 김복한 등 17명이 국란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연서를 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를 세워 선열들의 얼을 되살리고 그 뜻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2006년 12월에 건립한 비이다.

 

좌측 백원교 다리를 건너면 천년여행길 이정표('41' ↓→).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10여m 이동하면 천년여행길 이정표('42' ↓→) ┣자 삼거리. 좌측 11시 방향으로 대한지적공사 건물이 보인다.

우측 '문화로181번길'인 골목길을 빠져 나가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면 홍주성 북문터이다.

 

 

 

15:20=>홍주성 북문터

     천년여행길 이정표('45' 홍주성북문터, ↑홍주성남문 0.9km/↓대교공원 0.3km)와 북문터 안내문이 있다.

직진의 골목을 빠져 나가면 월계천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다리가 있는 2차선 포장도로. 다리 입구에는 천년여행길 이정표('47' 북서리방앗간, ←↓→목빙고)가 보이고, 좌측에는 방앗간이 자리를 하고 있다.

 

 

 

                  ▲ 북서리방앗간 앞 삼거리(사진 上)

                     북서리방앗간과 이정표(사진 下)

 

하천을 우측에 두고 끼고 올라가면 좌측으로 홍주초등학교 건물이 보이기 시작을 하고, 우측으로 월계천을 가로지르는 '서문교'가 있는 ┣자 갈림길에 이르면 이곳에도 어김없이 천년여행길 이정표('49' 서문교, ←↓)가 설치되어 있다.

 

 

 

                  ▲ 북서리방앗간에서 홍주초등하교로 가는 하턴 제방길(사진 上)

                     서문교 앞 ┣자 갈림길(사진 下左)과 횡단보도 건너에 자리한 홍주초등학교(사진 下右)

 

좌측 횡단보도를 건너면 천년여행길 이정표('50' 홍주초등학교, ↓→)가 있고, 정면으로 홍주초등학교가 자리를 하고 있다.

 

홍주성은 나말여초에 처음 쌓은 성으로 왕건과 견휜이 후삼국 쟁패의 운명을 건 운주성 전투가 있었던 곳이며, 광해군과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천주교 박해, 홍주의병, 동학농민운동 등 한국사의 축소판이며 홍주의 주 무대였다.

 

                  ▲ 홍주초등학교 담장을 일부 이루는 홍주성 성곽

 

우측의 인도를 따라 진행을 하면 좌측에는 보수된 성곽이 홍주초등학교 담장을 일부 이루는 홍주성 성곽이 시작된다.

성곽 앞에는 '기봉 최영 장군상'과 '매죽헌 성삼문 선생상' 이 설치되어 있으며 옛 모습을 간직한 홍주성곽이 계속 이어진다. 성곽 밖에는 이 지역 출신의 유명 인사들의 안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 홍주성 성곽

                  ▲ 홍주성 성곽을 가로질러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

 

                  ▲ 홍주성 성곽

                  ▲ 곡성을 이루며 남문으로 향하는 홍주성 성곽

 

천년여행길 이정표('52' ↑↓)가 있고 끊어진 성벽을 가로지르는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계속 성곽을 좌측에 두고 따라 올라가 '만해 한용운상'을 지나 '백야 김좌진 장군상' 앞에 이르면 성곽은 좌측으로 완만하게 원을 그리며 곡성을 이루게 되는데 천년여행길 이정표('54' 홍주성, ↑↓)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복원 공사중인 홍주성 남문에 이르게 된다.

 

                  ▲ 복원 공사중인 홍주성 남문

 

15:51=>홍주성 남문

     천년여행길 이정표('55' 홍주성남문, ←조양문 0.9km/↓홍주성북문터 0.9km)가 설치된 남문은 현재 복원 공사중이라 출입이 통제된 상태이다. 원 탐방코스는 좌측 남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 홍주성역사관을 지나 홍성군청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나 성문 복원 공사로 출입이 통제된 상태라 성곽을 따라 돌아서 성 안 남문으로 되돌아 올라가야 한다.

 

                  ▲ 남문 지나 밖으로 돌출된 홍주성 치성

                  ▲ 홍주성 성곽이 끝나는 곳에 설치된 홍주성 안내도

 

밖으로 돌출된 치성 옆(15:55)을 지나 내려가면 '홍주성 옛 모습' 안내도가 있는 2차선 포장도로(15:57). 이곳에서 홍주성의 성벽은 끝이 나므로 성 안으로 들어 이번에는 반대로 성곽을 좌측에 두고 남문을 향해 다시 올라간다.

 

 

 

 

 

'성주옥순교성지' 안내판과 복원된 성주옥과 우물터를 차례로 지나 복원 중인 남문(16:05~16:11) 앞에 이르면 홍주성 수성비 안내문이 있고, 그 뒷편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수성비가 세워져 있다.

 

 

 

약간 내려가면 천년여행길 이정표('56' ←↓)가 있는 ┫자 갈림길. 이정표 뒷편에는 남문 성벽 일부 구간 해체 때 출토된 석탑 석재들이 놓여 있다. 그 뒷편에는 홍주성역사관 건물이 자리를 하고 있다.

 

 

                  ▲ 홍주성역사관과 역사관 옥상의 산책로

 

16:13~16:15=>홍주성역사관

     역사관 앞 횡단보도에는 천년여행길 이정표('58' 홍주아문입구, ↑↓)가 있고, 길을 건너면 또 다른 천년여행길 이정표('59' ↑↓)가 있다.

잠시 들어가면 홍성군청 청사 뒷편에 이르게 되는데 군청 건물 바로 뒤에 '보수공사 중인 안회당'이 자리하고, 그 좌측으로 넓은 풀밭에는 여하정과 연못이 자리를 하고 있다.

16:17~16:45=>홍성군청

     조양문, 홍주아문, 내삼문, 안회당 순으로 자리했던 홍주관아를 일제가 내삼문을 헐고 동헌인 안회당을 막고 헐어버린 내삼문 자리에 목조기와 20칸을 지어 군민의 수탈 장소로 이용하였는데 군청 건물이다.

1913년 홍주성 서문을 철훼하고, 1914년 북문 철훼에 이어 현재의 조양문인 동문과 안회당을 철훼하려 시도하였으나 홍성읍민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현재 천년 홍주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겪어온 쌍 느티나무가 군청 앞마당에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보우국사가 왕사가 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홍주목에 액운이 감돌 때는 우는 소리를 내어 화를 미리 예방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염험한 나무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역대 목민관들이 부임할 때나 주요 행사 때에 이 느티나무 앞에서 백성의 안녕과 고을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를 올려왔으며, 이때 사용하던 기대가 두 나무 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홍주성 천년 여행길 탐방은 홍성군청내 남아있는 보수공사중인 안회당, 안회당 뒤뜰 넓은 잔디밭에 자리잡은 여하정과 작은 연못, 그리고 군청 건물 앞 정문 역할을 하는 홍주아문 등을 살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나머지 구간은 다음 기회에 용봉산 산행과 함께 탐방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 ♧ 홍성 홍주읍성(洪城 洪州邑城)

*사적 제231호(지정일:1972년10월14일)

*소재지: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

*면적:46,961㎡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성으로 최초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백월산 중턱에 위치한 해풍현을 현재 옮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 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잇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km), 높이는 11척(약 2.2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 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성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 확장을 하였고 고종7년(1870) 홍주목사 한응필이 연봉금 3천냥과 원납금, 지세부과금으로 석성을 개축하여 1,830척에 560척을 증보하여 석축하면서 650개의 첩과 130개의 치, 2개의 곡성, 4개의 우물과 연못을 신설한 다음 동서에 수문을 두어 서문천의 물을 끌어 동편 수문을 거쳐 남문천과 금마천으로 흐르게 하고, 동서북에 문을 세우고, 남문은 문루가 없는 상태에서 홍예문이라 하였다.

같은 해 대원군이 휘호한 문액을 받았는데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였으며, 전란 때 망실되었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1894)때는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향되었다.

 

 

고종 광무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인에 의해 1913년 서문과 1914년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과 안회당 또한 파괴하려 하였으나 읍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현재까지 남아 있고, 1975년 조양문 문루를 해체, 복원하였다.

또한 홍주관아 부속건물인 내삼문을 헐고 이 자리에 목조기와 20칸을 지어 군민 수탈 장소로 사용하였다.

홍주성은 최장 1,772m에 달하였으나 810m만 현존하며, 성내 관아의 건물이 35동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조양문, 안회당(동헌), 여하정, 홍주아문만이 남아 있다. 1978년 10월7일 강도 5의 지진이 발생하여 성곽의 일부가 붕괴된 것을 계기로 성곽 주변 가옥 64동 철거와 토지를 매입하여 주변 정비 및 성곽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홍주아문(洪州衙門)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의 외삼문으로서 고종 때인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며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같이 세운 것이다.

대원군이 사액한 홍주아문의 현판은 6.25전후해서 망실되었으며, 이 아문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 안회당(安懷堂)

 

 

                  ▲ 보수공사 전의 안회당(사진 上)

                     보수공사 중인 안회당(사진 下)

 

홍주군의 동헌으로 22칸의 목조와가로 축조되었다.

옛 정사당이 해체될 때의 상량문에 의하면 상량시기는 숙종4년(1678) 4월10일이었고, 좌향은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위치하였다. 이곳에 한응필 목사가 1870년 1월10일 축시에 안회당 상량식을 올리고 근대식 동헌으로 축조하였다.

홍성군에 신청사가 건축되기 이전에는 여러 명의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던 사무실이었으며, 대원군이 안회당이란 편액을 하사하여 그 후로 안회당이라고 하였는데 편액은 전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전국에서 원형대로 보존된 4개(전북 정읍의 태인동헌, 전북 고창의 무장동헌, 충북 괴산의 천안동헌, 안회당)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동헌은 그 지역명에 동헌을 붙여 불리었으나 홍주 동헌만 안회당이라 한 점이 특이하다. 이 안회당은 전란이 많았던 홍주에서 여러 차례 재화를 면한 건물로 충청남도 유일의 목도(牧都) 청사이다.

'안회'는 논어의 공야장편(公冶長篇)의 "老子安之 明友信之 小者懷之"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인을 평안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하며 연소자를 사랑하여야 한다"라는 뜻이다.

 

♧ 여하정(余何亭)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고종33년(1896) 이승우 목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으로, 역대 홍주 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자 내의 기둥에는 시액 12현판이 걸려 있다.

 

 

 

이 여하정은 작은 규모의 정자지만 고목과 연못의 연꽃들의 정취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여하정 옆의 고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