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강원&충청권

(충남 보령)조선시대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왕마구리 2015. 12. 23. 11:32

◀ 충남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 ▶

조선시대 충청지역 수군지휘부!!!

 

                      ▲ 충청수영성 성곽위에서 바라본 천수만 일대 전경

 

「 충남 보령(忠南 保寧) 소개 」

대한민국 최대 관광휴양지!!!

보령시(保寧市)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해안 중앙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청양군·부여군, 서쪽은 서해에 면하며,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편에는 114.9㎞의 해안선이다.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장항선 철도와 국도 제21호선이, 동·서로는 국도 제36호선과 국도 제40호선이 각각 통과하여 서해안 교통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리아시스식 해안을 따라 발달된 천혜의 관광 휴양지인 대천해수욕장 및 1.5㎞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무창포 해수욕장은 이미 널리 이름나 있다. 보령 해안에 산재되어 있는 진흙을 이용 머드화장품을 개발 판매하여 전국 최우수 경영수익 기관으로 수상한 바 있으며, 매년 보령머드축제를 개최한다. 대천을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하며, 행정구역은 1읍 10면 5동이다.

보령시의 면적은 569.01 ㎢이며, 인구는 2012년 말을 기준으로 45,275 세대, 106,421 명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도심인 대천에 거주하고 있다.

 

                      ▲ 충청수영성 북쪽 성곽위에서 내려다본 충청수영성과 주변 전경

 

삼한시대에는 마한 만로국(삼한의 78개 부족국가형성기 · 삼국지한전 참고)이었으며, 삼국시대 때는 백제의 결기군 신촌현, 신라시대 웅진도독부(삼국사기 지리지명 참고)에 속한 13현중 산곤현이었다가 제30대 문무왕 6년 병인(666년)에 웅주도독부로 개칭하였다가 제35대 경덕왕 16년 정유(757년)에 웅주도독부로 개편하여 결성군 신읍현이 되였다.

고려시대에는 6대 성종14년 을미(995년)에 10도제 개편에 따라 하남도 웅주(현공주) 보령현, 8대 현종 9년 무오년(1018년)에 전국을 5도로 병합 통치할 때 양광도 운주(현홍성)보령현이었다.

조선시대 태종 13년 계사(1413년) 보령현이었으며, 17대 효종 3년 임진(1652년)에 도독부로 승격하여 수군절도사로 하여금 부사를 겸임케 하다가, 17대 효종 6년 을미(1655년)에 보령현으로 강등되어 장척,금신,주포,목충,명암,청라동,오산외 청소의 8개면을 관할하였다.

26대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할 개편에 따라 보령군으로 개정 명암면을 우라면으로 오산외면을 오삼전면으로 고치고, 금신면을 오천군에 넘겨주었다.

1914년 갑인 일제강점기 초 부군 통폐합령에 의거 남포군의 군내,신안,북내, 웅천,고읍,불은,습의,북외,심전의 9개면, 오천군의 천동,하남,하서, 천북의 4개면과 결성군 가산면의 죽현,농현,감리,신리,마촌,점촌,6개리, 홍산군 상서면의 자명리를 병합하여 보령군으로 개편하였으며, 주포면 신성리(현 보령리)에 위치하고 있던 군청을 대천면 대천리로 이전하여 대천,주포,오천,천북,청소,청라,남포,웅천,주산,미산면의 10개면 111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해방 후 1963년 계묘 1월 1일 법령 제1177호에 의하여 대천면을 대천읍으로 승격시켰으며,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로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되어 보령군에서 분리 6개 행정동,10개 법정동에 67통 214개반을 관할하였다.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로 대천시와 보령군 통합 보령시로 개명하였으며, 2013년 9월 23일 보령시 조례 제 906호에 의거 1읍 10개면 5개동 235리 114통 1,214개반으로 행정구역이 확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수영성 안에서 충청수영성 서문

 

『 탐방한 보령시의 문화재들 』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 사적 제501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충청수영 내삼문(忠淸水營 內三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충청수영 장교청(忠淸水營 將校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2호 충청수영 진휼청(忠淸水營 賑恤廳)

●보령관아문(保寧官衙門) &  보령성곽(保寧城郭)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보령관아문(保寧官衙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 보령성곽(保寧城郭)

보령향교(保寧鄕校) 충청남도 기념물 제112호

화암서원(化巖書院)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보령 성주사지(保寧 聖住寺址) 사적 제307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국보 제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 보물 제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 보물 제47호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聖住寺址 東 三層石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성주사지 석등(聖住寺址石燈)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성주사지 석계단(聖住寺址石階段)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保寧 聖住寺址 石佛立像)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3호

남포관아문(藍浦官衙門) & 남포읍성(藍浦邑城)

남포관아문<진서루.내삼문.외동헌>(藍浦官衙門<鎭西樓.內三門.外東軒>)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5호

남포읍성(藍浦邑城)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 일 정 표 】2015년 11월 19일(목)-20일(금) 1박2일

                             ◈ 첫째날(11/19) : (보령)충청수영성-보령관아문&보령성곽-보령향교-화암서원-성주사지-남포관아문&남포읍성

                             ◈ 둘째날(11/20) : 죽도관광지-무창포해수욕장-(태안)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 충청수영성 '호서제일의 천수만 낙조 감상명소'인 성곽 위에서 바라본 전경들

                         오천항(사진 上)

                         천수만 일대(사진 中)

                         충청수영성 진율청과 서쪽 성벽(사진 下)

 

충청남도 보령시 여행은 첫째날은 역사·문화유적 탐방, 둘째날은 꿈과 낭만이 있는 서해안 바닷가를 찾는 코스로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둘째날 탐방을 한 무창포해수욕장 '신비의 바닷길'은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매월 음력 그믐과 보름 사리때)을 사전에 조사해 보지를 않아 약 1.3km의 바닷길이 나타나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초겨울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하는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둘째날 보령 여행이 아쉬움만 남겨, 일찍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을 다시 탐방을 하였다.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입상은 약 8년 5개월 전인 2007년06월23일 금북정맥 제18구간(백화산구간) 산행 때 한 차례 탐방을 하였지만, 당시는 정맥 종주산행 중이라 그냥 지나치 듯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탐방을 하였으므로 다시 찾게 된 것이다. 

보령시 여행에서 탐방한 관광 명소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강원&충청권'에 보령 충청수영성, 보령관아문 & 보령성곽, 남포관아문 & 남포읍성, 그리고 보령향교 & 화암서원 등 4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보령 성주사지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입상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강원&충청권'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통일신라 구산선문의 하나. 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의 유물이 출토된 옛 절터! 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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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남포현의 관아 건물과 읍성!  남포관아문(藍浦官衙門) & 남포읍성(藍浦邑城)

-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 향교와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 보령향교(保寧鄕校) & 화암서원(化巖書院)

 

                      ▲ 충청수영성 안내도

 

                      ▲ 충청수영청 고지도(사진 上)

                         충청수영성 조감도(사진 下)

 

『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 소개 』

*사적 제501호(2009년08월24일 지정)

*수량/면적 125.326㎡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 일대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 충청수영청 성벽 위에서 바라본 서문

                      ▲ 충청수영청 서문

 

또한,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 충청수영청 내에 마련된 장교청 북쪽의 쉼터(사진 左)

                         충청수영성을 가로 지르는 도로(사진 右)

                      ▲ 옛 성벽 흔적이 남아 있는 충청수영청 북쪽 성벽 모습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 충청수영 내삼문(忠淸水營 內三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2010년12월30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596

 

 

                      ▲ 충청수영청 내사문 현판(사진 上)

                         내삼문 전면(사진 下左)과 후면(사진 下右) 전경

 

충청수영의 북동측에 있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3칸 중 가운데 한칸을 높여 솟을지붕형태로 건축되었다.

작은 규모의 건축물임에 비해 기둥과 보, 도리 등이 모두 견실한 부재로 건축되어 건물의 품격이 당당하고 육중해 수영성내 중요한 영사(營舍)의 출입문이었던 듯 하다.

 

                      ▲ 충청수영청 내삼문과 장교청

                      ▲ 충청수영청 내삼문 앞 공덕비들

 

♧ 충청수영 장교청(忠淸水營 將校廳)/객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2010년12월30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02

 

                      ▲ 충청수영청 객사 건물인 장교청

 

충청수영의 영사건물 중 가장 뚜렷한 형체로 유존되는 건물이다. 수영이 폐지된 후에도 오천군의 중심청사로 사용되었고, 근년에는 오천면 청사로도 사용되었었다. 

 

 

                      ▲ 충청수영청 장교청

 

지금은 북문지 동편의 구릉지 정상부에 이건(移建)되어 수영의 옛영화를 상징하는 표지가 된다.

장교청 앞에는 역대 수군절도사와 관찰사, 군수들의 모아 세운 비석군이 있다.

 

 

 

♧ 충청수영 진휼청(忠淸水營 賑恤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2호(2010년12월30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58

 

 

 

 

 

충청수영성 서문 부근에 있는 진휼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건축되었다. 왼쪽에 대청을 두고 나머지 2칸을 방으로 만든 홋처마 팔작지붕이다.

진휼청은 수영 부근의 백성들을 구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 영보정터(永保亭址)

영보정은 수영성 안에 있던 정자로 1504년 수사 이량이 처음 짓고 계속 손질하여 고쳐 온 우리나라 최고 절경의 정자였다.

 

 

 

바다 건너편의 황학루, 한산사와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로 조선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은 이곳이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수영이 폐지되면서 없어져 터만 남아 있던 것을, 2016년 11월 18일(수) 복원, 준공식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보정도가 전해진다.

 

                      ▲ 충청수영청 영보정도(이돈중 作)

 

                      ▲ 성곽위에서 바라본 충청수영청 서쪽 성벽 전경

                      ▲ 성밖에서 바라본 충청수영청 서쪽 성벽

 

                     ▲ 충청수영성 서문 밖에 위치한 2곳의 손칼국수집('오양손칼국수'와 '조은 손 칼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