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녕읍내의 문화재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昌寧 松峴洞 磨崖如來坐像),창녕 인양사 조성비(昌寧 仁陽寺 造成碑),
술정리 하씨초가(述亭里 河氏 草家),창녕향교(昌寧鄕校)!
「 경남 창녕(慶南 昌寧) 소개 」
창녕군은 경상남도 중앙 북단에 위치하며 북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경상북도 고령군과 인접하고, 동쪽은 산악을 경계로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의 밀양시가 접해 있으며, 서남은 낙동강을 사이로 합천군, 의령군, 함안군, 창원시에 접하고 있습니다.
동단은 부곡면 동경 128도 39분, 서단은 이방면 동경 128도 21분으로 동서의 길이는 약 27.36km이며, 남단은 부곡면 북위 35도 22분이며 북단은 성산면 북위 35도 40분으로 남북 길이는 약 34.39km 이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나 평균기온이 여름에는 23.9℃이고, 겨울에는 영하1.2℃정도로서 한서의 차이가 심하며, 하기에는 한발과 수해가 자주있는 지역이다.
창녕군의 군 소재지인 창녕읍은 창녕군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 밀양시 무안면과 북으로 고암면, 서부에는 대지, 유어면과 남부는 계성면과 접하고 있다. 동부산악은 화왕산을 위시한 산악지대이고 서부는 평야 지대로 고온다습한 기후로 수도작을 위주로 양파, 마늘, 고추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당일 등산코스로 최적의 주변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화왕산은 봄, 가을 주말과 화왕산 갈대제가 개최되는 10월에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으며 정상의 분지 지형의 억새 군락지와 가야시대때 축조한 화왕산성이 있으며 최근에는 MBC에서 방영되는 창사특집드라마 허준의 촬영세트장이 있어 추후로 좋은 관광자원이 될것으로 보인다
창녕읍의 특산물은 마늘과 양파가 유명하며, 옥천리 일대에서 채취되는 자연송이는 그 맛과 향이 특이하여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비사벌의 얼이 숨쉬는 문화의 고장인 창녕읍의 화왕산성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곽재우 장군의 승전지로 유명하며 교동 고분군에 위치한 창녕박물관에는 많은 문화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현재 창녕읍에 문화재 현황은 국보2점 보물8점 사적4점 중요민속자료2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5점등 총 27점의 문화재가 있다.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안채 전경
대표적인 남방식 지석묘인 장마면 유리의 지석묘, 부곡면 온정리의 고인돌과 고분, 도천면 일리와 영산면 신제리의 지석묘, 계성면 사리의 사은암 등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우리군에 인류가 취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으로는 1세기 전후, 「삼국지」 변진 24국의 소개에 나타나있는 불사국이 창녕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가야시대에는 불사국(不斯國) 또는 비화가야(非火伽倻)로 존립하여 오다가 일찍이 신라에 병합되어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比斯伐), 비자벌(比子伐)이라 하였다. 영남의 중추인 낙동강을 자양으로 번성하여온 창녕군은 초기국가이던 옛 가야를 거쳐 신라에 이르러서부터 나뉘어져 있던 여러 현이 합하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신라진흥왕 16년(555) 에 하주(下州)의 치소(治所)를 두고 군대 주둔지인 정(停)을 두었다가 同王 26년(565)에 폐지하고, 경덕왕 16년(757)에 화왕군(火王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때 영산현은 본래 서화현(西火縣)이라 불렀으나 상약(尙藥)으로 고쳐서 밀양군의 현(縣)으로 되었다.
계성은 본래 신라 때 읍을 설치하였는데 옛이름은 알 수 없고, 경덕왕 16년에 계성으로 고쳐 화왕군(火王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때에 이르러 태조 23년(940) 3월 화왕군(火王郡)을 지금의 이름인 창녕(昌寧)으로 고쳤다. 그후 현종이 밀성군에 소속시켰으며, 明宗2年(1172年) 감무(監務)를 두었다. 역시 영산도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밀성군에 소속시켰는데. 원종 15년(1274)에 감무를 두었다.
또 계성은 현종 9년(1018)에 밀성군에 속했다가 공민왕 15년(1366)에 영산현에 속하였으나 곧 공양왕 2년(1390)에 다시 밀성에 속하게 되는 등 변화가 많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조 3년(1394) 창녕과 영산에 현감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인조 9년(1631)에 창녕현은 지도(至道)의 역변(逆變)으로 인하여 현이 혁파되고 강등되어 영산현에 합하여 소속되는 수난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6년후 어영군(御營軍)의 상언(上言)에 의하여 인조 15년(1637)에 복현(復縣)되어 다시 창녕과 영산 양현으로 나누어 졌다.
고종 32년(1895) 5월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의 실시로 본 군은 밀양과 함께 대구부(大邱府)에 속하게 되었고, 이듬해(1896) 8월 4일 13도제(道制)가 실시되자 창녕·영산군은 대구부에서 경상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고종 34년(1897) 행정의 말단조직인 방(坊)이 면(面)으로 개칭되었으며, 순종 융희원년(隆熙元年)에 통폐합을 거쳐 1910년 9월 면제(面制)가 시행되었다.
1914년 4월 1일 부군폐치분합(府郡廢置分合)에 따라 함안군에 편입된 길곡면의 사촌(射村)·금곡리 일부(지금의 함안군 칠북면 봉촌리 일대)를 제외한 영산군은 창녕군에 합병, 오늘에 이르고 있다. 2개군의 합병으로 창녕, 고암, 성산, 대합, 이방, 대지, 유어, 창락, 영산, 계성, 남곡, 길곡, 부곡, 도천, 장마 등 15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55년 7월 1일 창락면이 창녕면에 편입되어 14개 면으로 되었다.
1960년 1월 1일 창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어 3년후인 1963년 1월 1일에는 남지면이 읍으로 승격하게 되어 본군은 2읍 12면이 되었다.
1971년 2월 13일 창녕군조례 제175호로 남지읍 고곡출장소를 설치함으로써 2읍 12면 1출장소가 되었다.
1998년 9월 10일 행정조직 개편으로 고곡출장소가 폐지되었고, 현재 139개 법정리에 285개의 행정리가 있다.
『 탐방한 창녕군의 문화재들 』
●창녕읍내 문화재들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東 三層石塔)
보물 제75호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昌寧 松峴洞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227호 창녕 인양사 조성비(昌寧 仁陽寺 造成碑)
보물 제310호 창녕 석빙고(昌寧 石氷庫)
보물 제520호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西 三層石塔)
중요민속문화재 제10호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昌寧 述亭里 河氏 草家)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昌寧 校洞과 松峴洞 古墳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퇴천 삼층석탑(兎川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 창녕객사(昌寧客舍)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창녕향교(昌寧鄕校)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창녕척화비(昌寧斥和碑)
●관룡사(觀龍寺)
보물 제146호 창녕 관룡사 약사전(昌寧 觀龍寺 藥師殿)
보물 제212호 창녕 관룡사 대웅전(昌寧 觀龍寺 大雄殿)
보물 제519호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730호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昌寧 觀龍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臺座)
보물 제1816호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昌寧 觀龍寺 大雄殿 觀音菩薩壁畵)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관룡사사적기(觀龍寺事蹟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6호 창녕 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昌寧 觀龍寺 冥府殿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 관룡사석장승(觀龍寺石長丞)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 관룡사부도(觀龍寺浮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 관룡사 원음각(觀龍寺 圓音閣)
●창녕 영산면 문화재
보물 제564호 창녕 영산 만년교(昌寧 靈山 萬年橋)
보물 제1739호 창녕 영산 석빙고(昌寧 靈山 石氷庫)
●창녕 우포늪 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제524호
【 일 정 표 】2015년 12월 30일(수)-2016년 01월 01일(금) 2박3일
◈ 첫째날(12/30) :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창녕 석빙고-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만옥정공원 내 문화재들(창녕객사,퇴천 삼층석탑 및 창녕 척화비)
◈ 둘째날(12/31) : 관룡산&구룡산 산행-관룡사
◈ 세째날(01/01) : 창녕읍내 문화재들(술정리 서 삼층석탑-술정리 동 삼층석탑-하씨초가-인양사 조성비-창녕향교-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영산 만년교-영산 석빙고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곳간채의 방아
경남 창녕군은 2007년04월29일(일) 부천마구리산악회 회원 35명을 인솔하여 관룡산~화왕산 연계 산행을 위해 방문한지 약 8년8개월여 만에 창녕지역의 문화재 탐방을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다시 방문을 하게 되었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12월31일 송년산행을 2007년04월29일 산행하였던 관룡산을 택하여, 당시 산행코스였던 '관룡사~청룡암~구룡삼거리~관룡산~화왕산' 코스에서 산행들머리는 같지만 산행코스를 '관룡사~노단이마을 능선갈림길~병풍바위 암릉길~구룡산~구룡삼거리~관룡산~용선대~관룡사'로 달리하여 실시하고 관룡사 문화재를 탐방하는 일정과 우포늪 쳔연보호구역 '우포생태길' 탐방 일정이 추가되어 다른 지역과는 달리 2박3일로 실시가 되었다.
창녕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관룡산&구룡산 산행은 일반산행 '영남&호남권'에 산행기를,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관룡사의 문화재들을,
그리고 내가 찾은 관광명소 '영남권'에 창녕 석빙고와 창녕 영산 석빙고,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만옥정공원 내 문화재들(창녕객사, 퇴천 삼층석탑, 척화비), 창녕읍내 두 기의 통일신라 석탑(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서 삼층석탑), 창녕읍내의 문화재들(인왕사 조성비, 창녕향교, 하씨초가,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5~6세기 대형 고분군인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며 람사르협약 등록습지인 우포 늪 천연보호구역, 그리고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창녕 영산 만년교 등 총 9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창녕 석빙고와 창녕 영산 석빙고를 소개할 때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나머지 석빙고(4개소:2008년6월과 2013년5월 방문한 경주 석빙고, 2013년7월 방문한 안동 석빙고, 2013년11월 방문한 청도 석빙고, 그리고 달성 현풍 석빙고)들도 간략하게 함께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신라 8대 사찰 중의 하나! 창녕 관룡사(昌寧 觀龍寺)
-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 석빙고(昌寧 石氷庫)와 창녕 영산 석빙고(昌寧 靈山 石氷庫)
- 신라 진흥왕이 순시하여 세운 기념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와 만옥정공원내 문화재들(창녕객사,퇴천 삼층석탑,창녕 척화비)
- 창녕읍내 두 기의 통일신라 석탑!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 述亭里 東 三層石塔)과 술정리 서 삼층석탑(述亭里 西 三層石塔)
- 창녕읍내의 문화재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昌寧 松峴洞 磨崖如來坐像),창녕 인양사 조성비(昌寧 仁陽寺 造成碑),술정리 하씨초가(述亭里 河氏 草家),창녕향교(昌寧鄕校)
- 5~6세기 대형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昌寧 校洞과 松峴洞 古墳群)
- 국내 최대의 자연늪! 창녕 우포늪 자연보호구역
-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창녕 영산 만년교(昌寧 靈山 萬年橋)
『 창녕읍내의 문화재들 』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안마당과 안채
♧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昌寧 述亭里 河氏 草家)
*중요민속문화재 제10호(1968년11월25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시장1길 63(술정리)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안채
창녕 지방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안채만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현소유자 하경목 씨의 18대 조상이 이 마을에 들어와 세종 7년(1425)에 지은 건물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건륭 25년’<영조 36년(1760)>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어 이 때에 다시 지었거나 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남향한 안채는 중부 이남지방에서 일반적인 앞면 4칸·옆면 1칸의 '一'자형 홑집으로, 왼쪽부터 작은방·대청·큰방·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안채 전면의 처마
처마는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둥의 높이에 가까울 정도로 깊다. 이는 일조량과 강우량을 고려한 남부지방 가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살림집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붕은 억새풀을 엮어서 얹은 초가로 수명이 길 뿐만 아니라 예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안채 마루 내부 구조(사진 上)
안채 천장(사진 下左)과 부엌 천장 구조(사진 下右)
대청은 통나무를 윗부분만 편평히 깎아 깔았는데 매우 오래된 것이다. 또한 목재는 못을 쓰지 않고 구멍을 뚫어 연결하였으며, 천장은 흙을 깔지 않은 상태로 구성하여 가볍게 한 점 등이 내부의 특징이다.
▲ 창녕 술정리 하씨초가 사랑채(사진 上左)과 문간채와 사랑채 사이의 협문(사진 上右)
문간채(사진 下)
앞마당에는 작은 텃밭을 가꾸었고 부엌 앞쪽에는 장독대가 있으며, 안채 뒤로는 꽃계단을 꾸며 몇그루의 오래된 나무들이 어울러 숲을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약간의 변형이 있었지만 일반가옥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술정리란 창녕현감 한강 정구가 지은 정자를 '술정(述亭)'이라 한데에서 지어진 마을 이름으로 지정 당시에는 '창녕하병수씨가옥(昌寧河丙洙氏家屋)'이었으나, 마을이름(술정리), 거주한 내력(하씨), 가옥의 형태(초가) 등을 나타내는 ‘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로 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 창녕 인양사 조성비를 보관한 전각
♧ ♧ 창녕 인양사 조성비(昌寧 仁陽寺 造成碑)
*보물 제227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인양사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절의 범종, 탑, 금당 등의 조성연대와 쓰인 식량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비로, 통일신라 혜공왕 7년(771) 인양사 종을 만든 일로부터 이 비석을 세운 신라 헌덕왕 2년(810)까지 40년간 이루어진 일의 내용이 담겨 있다. ▲ 창녕 인양사 조성비 후면의 스님상 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커다란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 뒷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찰 조성에 관련된 당시의 승려를 기리기 위해 새겨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님은 애띤 얼굴에 자비로운 모습이며, 사람의 몸을 모방한 부드러운 선이 8∼9세기 조각수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문에 새겨진 글씨의 형태는 당시에 유행했던 해서체의 범주를 벗어나 여러 가지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새로운 서체의 전개를 살필 수 있다. 당시 일반적인 비의 형태를 벗어나고, 지나치게 큰 지붕돌이 원래의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찰조성을 기록한 비석으로서 특수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이 보관된 전각
♧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昌寧 松峴洞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75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번지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바위에 앞면을 돌출되게 조각한 마애불(磨崖佛)로 바위 자체를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로 이용하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육계)이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온화한 인상을 풍긴다. 어깨는 넓게 떡 벌어져 있고, 팔과 가슴은 넓지만 볼륨이 약화되어 차분한 느낌을 준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면서 입은 옷은 얇게 신체에 밀착되었는데, 형식적으로 처리된 계단식의 옷주름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얼굴과 상반신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하반신 양 무릎과 손 모양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대체로 이 석불은 얼굴이나 얇게 밀착된 옷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열의 양식을 이어받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굴암 불상보다는 사실성이 줄어들고 힘이 빠져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양식을 보여준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이 양각된 바위 전체 전경
▲ 창녕향교
♧ ♧ 창녕향교(昌寧鄕校)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1983년08월06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442-1번지
▲ 창녕향교 외삼문 ▲ 창녕향교 외삼문 기단석의 문양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창녕향교를 언제 세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효종(재위 1649∼1659) 때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1904년에 보수하고 1987년에 동재, 서재를 복원하였다. ▲ 창녕향교 명륜당(사진 上) 명륜당 앞 동재(사진 下左)와 서재(사진 下右) 건물은 출입문인 외삼문,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등의 건물이 있으며,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 창녕향교 대성전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49)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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