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경기 남양주)두물머리의 아름다운 전망과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왕마구리 2016. 9. 9. 17:21

◀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의 어름다운 경관이 조망되는곳!

 

                     ▲ 수종사에서 바라본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일대 전경

 

수도권에 위치한 문화유적지를 탐방하기 위해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는 경기도 하남시의 동사지(보물 제12호 동사지 오층석탑과 보물 제13호 동사지 삼층석탑)와 교산동 선법사의 보물 제981호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남양주시 수종사(보물 제1808호 팔각오층석탑)를 찾았다.

운길산 수종사 일원은 명승 제109호로 지정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이며, 보물 제1808호인 팔각오층석탑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인 수종사 부도 등 문화재도 있는 곳이다.

또한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료로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수종사는 운길산 산행으로 몇 차례 이미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번 탐방에서는 문화재 탐방과 다도 체험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 다도체험장인 수종사 삼정헌

 

【 일 정 표 】2016년 09월 2일(금)

                             ◈ (하남)동사지(오층석탑&삼층석탑)-고산동 마애여래좌상-(남양주)수종사(팔각오층석탑&부도)

                            

이번에 탐방한 수도권 문화재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아래와 같이 총 3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동사’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절의 이름을 말려주는 하남 동사지(河南 桐寺址)의 문화재들하남 동사지 오층석탑(河南 桐寺址 五層石塔)과 삼층석탑(三層石塔)

-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고려 초기의 불상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전망과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남양주 운길산 수종사(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一圓) 소개 』

*명승 109호(2014년03월12일 지정)

*소재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외 7필지

*면적:502,980.67㎡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온다.

 

                     ▲ 2008년12월28일 방문시 촬영한 두물머리 전경

                     ▲ 수종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운해

 

운길산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 수종사 은행나무 보호수 아래서 조망한 두물머리 전경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 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다.

 

                     ▲ 수종사 일주문(사진 左)과 불이문(사진 右)

                     ▲ 수종사 일주문에서 불이문으로 가는 길

                     ▲ 수종사 불이문을 통과하고 경내로 오르는 길

                     ▲ 수종사 불이문을 통과하고 경내로 들어가는 돌계단길

                     ▲ 수종사 불이문에서 보호수 은행나무로 가는 우측 길

 

【 수종사(水鍾寺) 】

수종사(水鍾寺)는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광주산맥이 남서로 내려오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운길산은 웅장하지 않지만 그윽함이 감도는 명산이다.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본 풍광은 빼어난데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한강으로 합류하기 직전의 북한강의 물길이 장관이다.

 

                     ▲ 수종사 응진전에서 내려다본 수종사 경내 전경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도중 양수리(兩水里)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와 기이하게 여겨 다음날 조사해보니 운길산에 고찰(古刹)의 유지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그 바위굴 속에서 16나한을 발견했으며 굴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1439년(세종 21)에 조성된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로 확인되어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수종사 대웅전(사진 上左)과 응진전(사진 上右)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경학원(사진 下)

 

수종사는 여러 해를 거치면서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오랜 세월로 인해 대웅전과 요사채가 무너지고 불상 또한 그 사정이 참담하였다. 1890년(고종 27)에는 풍계혜일(楓溪慧一)화상이 고종에게서 내탕금 8000냥을 받아 3월 27일에 중창을 시작해서 6월 28일에 마쳤고, 이듬해 3월에는 4000냥을 더 받아 불상 4존(尊)과 탱화 3축(軸)을 새로 봉안하였으며, 대법당· 나한전·어향각(御香閣), 그리고 산왕각(山王閣)을 단청하였다. 1939년에는 주지 일조태욱(日照泰旭)이 대웅전·선루(禪樓)를 1940년에는 영산전(靈山殿)·독성각(獨聖閣)·산신각·어영각(御影閣) 등을 중건하였지만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1975년 혜광(慧光)스님이 대웅보전을 복원하여 사세를 확장해오며 1999년 주시 동산(東山)이 선불장과 삼정헌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2년 팔각오층석탑(제22호)과 1995년 부도(제157호)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보존되어 오고 있다.

「 수종사의 전설 」

수종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세조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선(龍船)을 타고 양수만(兩水灣 : 현재 양수리)에서 하룻밤 머물고 있을 때였는데 밤에 홀연히 어디에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사람을 시켜 그 출처를 찾게 했더니 그곳에는 바위굴이 있었고 내부에 18나한상이 있었다. 종소리는 굴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울려나온 소리로 청아하고도 명징하게 들렸던 것이다. 세조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이곳에 축대를 쌓고 장인(匠人)들을 불러 절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전답을 하사하고 승려를 거처하게 하였으며 절 이름을 수종사라 하였다 한다.

 

 

                     ▲ 수종사 보호수인 은행나무 2그루

                        - 경기-남양주-17호(1982년10월15일 지정)/수령:500년/ 수고:35m, 25m/흉고 직경:2m, 1.2m

 

♧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

*보물 제1808호(2013년09월04일 지정)

*소재지: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433번길 186(조안면,수종사)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의 석탑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하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여 경관이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석조부도, 소형석탑과 함께 대웅전 옆에 옮겨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나 북한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 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시에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서 이 불상들 가운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1479)가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홍치 6년(1493)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숭정원년(1628)에 화원[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기단부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탑신의 우주 문양들(사진 上)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상륜부(사진 下)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건립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도 확인된다. 또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각부의 부재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 수종사 오층석탑의 유래와 전설 」

수종사는 운길산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절에서 보면 양수대교를 비롯한 양수리와 북한강 일대가 확연히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1460년에 창건되었는데 일화를 보면,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는 뱃길에 이수두(양수리)에서 묵으면서 야경을 즐기던 중, 갑자기 종소리가 들리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음날 주민을 불러 종소리의 출처를 물었더니 ‘근처에 종은 없고 종소리가 날 만한 곳은 운길산 중에 오래된 절터가 한 곳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즉시 이를 답사하게 하였는데 절터의 암굴 속에 18나한상이 열좌하고 있고, 바위 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고 있음을 발견하고, 사찰을 만들게 하고 수종사라고 이름하였다. 동시에 나한을 봉안하기 위하여 산 중턱에 조성한 탑이 수종사 오층석탑이라고 전해진다.

그후 40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수종사는 퇴락하여 창건 당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자 1890년(고종 27)에 8천 냥의 하사금을 내려 풍계화상에게 중건하도록 하였고 이듬해 4천 냥과 금백홍사를 불전에 공상하였다. 1962년에 관리 관계로 현 위치로 이전할 때 각 탑신에서 불상, 보살상 등 18점의 유물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옆에 자리한 삼층석탑

 

                     ▲ 수종사 대웅전 옆 탑들(左로부터 수종사 부도,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 

 

♧ ♧ 남양주 수종사 부도(南楊州 水鍾寺 浮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1995년08월07일 지정)

*소재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433번길 186(송촌리)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이 부도는 운길산에 자리한 수종사에 있는데, 수종사는 조선 세조 4년(1458)에 왕명에 의해 중창된 사찰이다.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하여, 2단을 이루는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 수종사 부도의 기단부

 

기단부는 일반적으로 상·중·하의 3단으로 구성되는데 이 부도는 간략하게 2개의 돌로만 마련한 것이 특이하다.

 

                     ▲ 부조 문양의 수종사 부도 탑신의 몸돌

 

탑신의 몸돌은 둥근 형태가 변하여 거의 사각형에 가깝고, 용의 모습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겼다.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고, 처마는 느린 U자형을 이룬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로 보주(寶珠:구슬모양 장식),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 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 수종사 부도 지붕돌

                     ▲ 수종사 부도 옥개석 낙수면 명문

 

지붕돌 윗면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조선 세종 21년(1439) 왕실에서 뜻을 모아 이 부도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부도 안에서 고려시대 청자로 만든 항아리와 은으로 만들어 금을 입힌 6각의 단지(보물 제259호)를 발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수종사 불이문 지나 운길산 등산로 입구

                      ▲ 수종사 은행나무 우측의 운길산 등산로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