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경남 합천)황매산 남쪽 기슭의 절터!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

왕마구리 2016. 12. 22. 21:10

◀ 황매산 남쪽 기슭의 절터!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 

국가지정 문화재들! 쌍사자 석등, 삼층석탑과 귀부

 

경상남도 합천군은 최근 방문한 2008년8월11일~12일 1박2일간의 해인사와 부속 암자(백련암,희랑대,홍제암,길상암) 탐방 이후 정확히 8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이번 탐방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다시 찾게 되는 해인사와 가야산 일원의 부속 암자 뿐만 아니라 합천군내 곳곳에 흩어져있는 문화재 탐방을 목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인사내 장경판전 전체를 화재로부터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제한관람(기간:2013년1월1일~2016년12월31일까지 4년간)을 실시하여 관람이 불가능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나라 8경의 하나인 가야산의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법보사찰! 해인사(海印寺)의 문화재들'에 소개되는 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장경판전에 보관중인 대장경판(국보 제32호), 고려목판(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 등은 2008년 방문 때 촬영한 사진과 문화재청 자료 등을 인용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 탐방한 합천군의 문화재들 』

▦ 해인사의 문화재들

사적 제504호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

명승 제62호 가야산 해인사 일원(伽倻山 海印寺 一圓)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陜川 海印寺 藏經板殿)

국보 제206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보물 제264호 합천 해인사 석조여래입상(陜川 海印寺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734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보물 제1242호 합천 해인사 길상탑(陜川 海印寺 吉祥塔)

보물 제1273호 해인사 영산회상도(海印寺 靈山會上圖)

보물 제1697호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陜川 海印寺 甘露王圖)

보물 제1777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陜川 海印寺 法寶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및 腹藏遺物)

보물 제1778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陜川 海印寺 法寶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腹藏典籍)

보물 제1779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및 腹藏遺物)

보물 제1780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腹藏典籍)

보물 제1799호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陜川 海印寺 地藏十王圖)

보물 제1806호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陜川 海印寺 內典隨函音疏 卷四百九十 木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삼존상(海印寺 大寂光殿 毘盧舍那佛三尊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海印寺 法寶殿 毘盧舍那佛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 해인사 삼층석탑<정중탑>(海印寺 三層石塔<庭中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5호 해인사 석등(海印寺 石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 해인사 대적광전(海印寺 大寂光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9호 해인사 경학원(海印寺 經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85호 해인사 희랑대 목조 지장보살좌상(海印寺 希郞臺 木造 地藏菩薩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86호 해인사 삼화상 진영(海印寺 三和尙 眞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2호 해인사 용성선사 부도 및 탑비(海印寺 龍城禪師 浮屠 및 塔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4호 해인사 봉황문(海印寺 鳳凰門)

▦ 해인사 부속암자의 문화재들

보물 제518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陜川 海印寺 願堂庵 多層石塔 및 石燈)

보물 제1300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陜川 海印寺 弘濟庵)

보물 제1301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陜川 海印寺 弘濟庵 四溟大師塔 및 石藏碑)

▦ 청량사의 문화재들

보물 제253호 합천 청량사 석등(陜川 淸凉寺 石燈)

보물 제265호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陜川 淸凉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66호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陜川 淸凉寺 三層石塔)

 

                  ▲ 영암사지 금당지

 

▦ 영암사지의 문화재들

사적 제131호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

보물 제353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보물 제480호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陜川 靈岩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489호 합천 영암사지 귀부(陜川 靈岩寺址 龜趺)

▦ 합천군의 기타 문화재들

보물 제129호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陜川 月光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381호 합천 백암리 석등(陜川 伯岩里 石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大同寺址 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함벽루(涵碧樓)

 

【 일 정 표 】2016년 08월 11일(목)-08월 13일(토) 2박3일

                             ◈ 첫째날(08/11) :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청량사

                             ◈ 둘째날(08/12) : 해인사-해인사 부속암자들(홍제암-원당암-백련암-희랑대-국일암-길상암)-함벽루

                             ◈ 세째날(08/13) : 영암사지-백암리 석등&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합천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내가 찾은 명찰'에 '청량사의 문화재들', '해인사의 문화재들', '해인사의 부속암자들' 그리고 '합천 영암사지' 등 4편으로, 나머지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과 '합천 백암리 석등' 등은 '영남권'에 2편으로 나누어 총 6편으로 소개를 한다.

 

- 건립 시기가 다른 2기의 삼층석탑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陜川 月光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 최치원이 거주했던 사찰청량사(淸凉寺)의 문화재들

- 우리나라 8경의 하나인 가야산의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법보사찰해인사(海印寺)

- 우리나라 8경의 하나인 가야산내 암자들! 해인사의 부속암자들

- 황매산 남쪽 기슭의 절터!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

- 통일신라 중기의 우수한 석등! 합천 백암리 석등(陜川 伯岩里 石燈)

 

 

『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岩寺址) 소개 』

*사적 제131호(1964.06.10.지정)

*수량:69,336㎡

*소재지: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둔내리)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 영암사지 금당지 기단부 조각들

                  ▲ 영암사지 석축 중앙부의 돌출대와 쌍사자 석등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 영암사지의 보호수인 느티나무(수령 600년/수고 30m)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 ♧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보물 제35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둔내리)

 

                  ▲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간석인 사자상(사진 上)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상대석(사진 下)

 

                  ▲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아래받침돌인 하대석(사진 上)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하대석의 안상(사진 下)

 

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화사석과 옥개석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 영암사지 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 ♧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陜川 靈岩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480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둔내리)

영암사터는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 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 영암사지 삼층석탑의 탑신부(사진 上)

                     영암사지 삼층석탑의 기단부사진 下)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 영암사지 서금당지

 

♧ ♧ 합천 영암사지 귀부(陜川 靈岩寺址 龜趺)

*보물 제489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둔내리)

이 귀부(龜趺) 2기는 영암사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남아 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基壇)이 남아 있어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영암사지 서금당지의 동쪽 귀부

 

귀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로, 원래는 그 위로 비몸돌과 비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나, 양쪽 모두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동쪽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碑座)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 영암사지 서금당지의 서쪽 귀부

 

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배열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眼象)을,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서귀부는 동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동쪽의 귀부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다.

이 귀부 2기는 각 부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유물 등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