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강원&충청권

(충남 아산)고려 최영 장군의 집으로 조선 전기 맹사성 가족이 살았던 집!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왕마구리 2016. 10. 22. 21:34

◀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고려 후기 최영 장군의 집!

조선 전기 맹사성 가족이 살았던 집!

 

천안시와 아산시는 수도 없이 방문을 하였으나, 역사,문화 탐방을 위해 방문을 한 것은 2~3회에 지나지 않고 방문을 한 때에도 광덕사, 외암민속마을, 현충사 등 한 두곳의 관광지를 정해 방문을 하였거나, 산행과 금북정맥 종주 산행 때 방문을 하였었다.

그러나 이번 탐방은 1박 2일간 문화재 탐방을 목적으로 실시를 하게 되었고, 기존에 방문하였던 천안 광덕사, 아산 현충사를 제외한 문화재들 중에서 일부 문화재들을 지정하여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 탐방한 천안시와 아산시의 문화재들 』

▦ 천안시의 문화재들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보물 제99호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天安 天興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354호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天安 天興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407호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天安 三台里 磨崖如來立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직산현관아<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稷山縣官衙<內東軒.外東軒.內三門.外三門>)

▦ 아산시의 문화재들

보물 제536호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牙山 坪村里 石造藥師如來立像)

보물 제537호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牙山 邑內洞 幢竿支柱)

사적 제109호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중요민속문화재 제194호 아산 성준경 가옥(牙山 成俊慶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95호 아산 외암리 참판댁(牙山 外岩里 參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96호 윤보선 전대통령생가(尹潽善 前大統領生家)

중요민속문화재 제233호 아산 건재고택(牙山 建齋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아산 외암마을(牙山 外巖마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온주아문 및 동헌(溫州衙門 및 東軒)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 아산 공세리성당(牙山 貢稅里聖堂)

 

 

【 일 정 표 】2016년 07월 11일(월)-2016년 07월 12일(화) 1박2일

                             ◈ 첫째날(07/11) : (천안)본선홍경사 갈기비-직산현관아-천흥사지 오층석탑 & 당간지주-삼태리 마애여래입상-(아산)맹씨행단-온주아문 및 동헌-                                                        읍내리 당간지주-평촌리 석조여래입상

                             ◈ 둘째날(07/12) : (아산)외암민속마을(외암리 참판댁, 건재고택)-윤보선 전대통령생가-공세리성당

 

천안 및 아산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강원&충청권'에 총 10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해동공자' 최충의 글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 고려시대 불교양식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天安 三台里 磨崖如來立像)

- 고려 초기 창건된 천흥사지의 문화재들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天安 天興寺址 幢竿支柱) 및 오층석탑(五層石塔)

-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관청! 직산현관아<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稷山縣官衙<內東軒.外東軒.內三門.外三門>)

- 고려 최영 장군의 집으로 조선 전기 맹사성 가족이 살았던 !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 고려시대 아산의 불교문화재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牙山 坪村里 石造藥師如來立像) 및 읍내동 당간지주(邑內洞 幢竿支柱)

- 예안 이씨가 대대로 살던 마을! 아산 외암마을(牙山 外巖마을)

-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건물! 온주아문 및 동헌(溫州衙門 및 東軒)

-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구성을 한 상류주택! 윤보선 전대통령생가(尹潽善 前大統領生家)

- 주위 경관이 아름다운 천주교의 성지! 아산 공세리성당(牙山 貢稅里聖堂)

 

                 ▲ 아산 맹씨행단 배치도

 

「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 성지, 호는 일명당(日明堂) 세칭 고불이며, 시호는 문정공이다.

고려의 절신 두문동 72현인 맹유가 조부이며,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맹희도의 아들로 최영 장군의 손주 사위이다.

고려 우왕12년(1386) 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조선왕조 건국 후 출사하여 수원판관을 시작으로 예조,호조,공조,이조 등 4조 판서, 예문관대제학, 의정부 찬성사,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치적을 남겼고, 세종17년(1435) 연로하여 좌의정을 사임한 후에도 중대사에 자문하였다.

세종20년(1438) 10월 4일 79세에 별세하니 세종이 슬퍼하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애도하고 관장으로 장사를 치르고 문정공(文貞公)의 시호를 내렸다.

 

                 ▲ 아산 맹씨행단의 출입문인 일각대문

 

♧ ♧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

*사적 제109호(1963년01월21일 지정)

*면적:7,856㎡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번지

 

                 ▲ 아산 맹씨행단의 맹씨고택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의 문신으로, 최영 장군의 손주 사위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내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의 벼슬을 했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조정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행단(杏壇)’이란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ㄷ자형 맞배집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일반 백성이 살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집의 마당에는 6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 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다.

이 집을 통해 조선 전기 민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 맹씨고택(孟氏古宅)

    고려 충숙왕17년(1330) 2월 무민공 최영의 부친 최원직이 지었다고 전해지며, 실제로 최영이 살았던 집이다.

 

 

                 ▲ 아산 맹씨행단의 맹씨고택

                    우대각 방향 전경(사진 上)

                    좌측면 전경(사진 下左)과 우측면 및 후면 전경(사진 下右)

 

우왕14년(1388)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최영이 죽은 후 비워있던 집에 맹사성(최영의 손녀사위)의 아버지 맹희도가 정란을 피하여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은거하였다.

 

 

 

                 ▲ 아산 맹씨행단의 맹씨고택 천장 대들보(사진 上)

                    툇마루와 창호(사진 中)

                    방 내부 전경(사진 下)

 

성종13년(1482), 인조20년(1642), 순조14년(1814), 1929년에 건물을 손질하여 고친 기록이 있으며, 고택 가구부에 남아있는 고부재와 창호 등이 견실한 고법을 간직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이 집은 '工'자형 맞배지붕으로 건평은 90.72㎡(27.5평)이다.

 

♧ 세덕사(世德祠)

    고려말 이군불사의 고귀한 절개를 지키다 순절한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맹유 상서공, 맹희도 동포공과 조선조의 대표적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 문정공 등 신창맹씨 선조 삼대의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 아산 맹씨행단의 사당인 세덕사

                 ▲ 아산 맹씨행단의 구괴정가는 맹씨고택 우측 언덕의 협문(사진 左)

                    세덕사 우측의 외부로 통하는 협문(사진 下)

 

♧ 구괴정(九槐亭)

   이 정각은 조선시대 명산이신 고불 맹사성 정승이 방촌 황희, 독수와 권진 정승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어 구괴정이라 명명한 정각으로, 삼정승이 이곳에서 국사를 논의하였다고 하여 일명 삼상당(三相堂)이라고도 한다.

 

                 ▲ 아산 맹씨행단의 구괴정가는 길가에서 올려다본 구괴정 전경

                 ▲ 아산 맹씨행단의 구괴정의 편액들

                 ▲ 아산 맹씨행단의 구괴정 정면 전경

 

600여년 전의 이곳은 오봉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북풍을 막아주는 배방산과 복부성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금곡천의 맑은 물이 당긴 활 모양으로 흘러내려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명승지이다.

세 정승은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시문을 지어 읊으며 망중한을 즐겼고, 국정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일하는 농민을 불러 위로하며 민정을 살폈다.

 

 

                 ▲ 세 정승이 심었던 아홉 그루 중 남아있는 아산 맹씨행단 구괴정의 두 그루 느티나무

 

60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홉 그루 중 일곱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명을 다하였고, 두 그루만이 허리를 굽힌 채 받침대에 의지하여 흥망성쇠하였던 500년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 쌍행수(雙杏樹)

   1982년11월1일 충청남도 도 나무로 지정된 은행나무(고유번호 8-91)로 640영 년 정도 수령의 쌍행수이다.

 

                 ▲ 아산 맹씨행단의 쌍행수

 

쌍행수는 각각 높이 40m, 나무둘레 5.8m와 높이 45m, 나무둘레 8.5m이며,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맹씨행단 경내에 있는 나무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 정승이 1380년경에 심은 나무이다.

 

                 ▲ 아산 맹씨행단의 쌍행수/좌측과 우측 은행나무

                 ▲ 원목 옆 사방으로 돋아 나 거목이 된 아산 맹씨행단의 쌍행수

 

당시 맹사겅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는데, 뜻있는 사람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이곳을 행단이라 하였다. 한편 이 나무들은 2~300년 전부터 근 맹아가 원목옆 사방에서 돋아나 지금과 같은 거목으로 자랐으며, 1987년 원목의 구멍 안이 부패하여 외과수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