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경북 울진)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사찰! 불영사(佛影寺)

왕마구리 2019. 1. 18. 18:45

◀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사찰! 불영사(佛影寺) 

불영사의 문화재들!


                   ▲ 불영지에서 바라본 불영사 전경

 

경상북도 울진군은 예전에 경유지로만 몇 차례 지나 갔었었고, 탐방 목적으로는 처음이다.

2007년 하반기에 진행하였던 낙동정맥 종주시 청송군과 영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를 따라 진행할 때 울진군의 서쪽 경계선을 종주하였으며, 이때는 산행들머리와 날머리를 접근성과 이동거리를 감안하여 청송군과 영양군 쪽을 이용하였었다.

이번 울진군 탐방은 문화재 탐방 위주로 진행하여,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안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울진군의 진면목을 제대로 탐방할 여유가 없었으나, 다음에 탐방할 때는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왕피천 생태예약탐방로, 불영사계곡 트레킹 등 자연과 어우러진 도보여행을 위주로 진행해 볼 생각이다.


                   ▲ 설법전 옆에서 바라본 경내 전경


【  울진군 소개 】

울진군(蔚珍郡)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군으로 현재 행정구역은 2읍(울진·평해), 8면(북·금강송·근남·매화·기성·온정·죽변·후포)이다.

울진군과 평해군이 합군한 곳으로 본시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이었으며 통일신라 때 울진으로 고쳐 군으로 하고, 고려 때 현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읍성이 있었으며 울진포영(浦營)을 설치하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다. 평해는 본래 고구려의 근을어(斤乙於)로서 고려 초에 평해로 고쳐 군으로 했다. 1895년 울진현을 군으로 하고 1914년 두 군을 합하여 울진군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었으며, 1983년 2월 서면 전곡리 일부가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편입되면서 승부역이 봉화군에 편입되어 2016년 현재 울진군 관내에는 철도 교통이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봉화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영동선의 양원역이다. 2019년경 동해선의 영덕역 - 삼척역 구간이 개통되며 이때 울진역이 생길 예정이다. 장기계획으로 영동선과 동해선을 연결하는 울진-분천선이 계획되어 있다.



울진군은 고속도로가 없고 남북으로 관통하는 국도 제7호선 동서로 관통하는 국도 제36호선과 평해읍과 영양군을 연결하는 국도 제88호선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포항~울진간 국도 확장공사가 완공되기 전에는 교통이 불편하기 짝이없어 가장 가까운 광역시인 대구에서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교통 오지로 유명하였다. 현재 국도 제7호선은 20년간의 확장 공사 끝에 모든 구간의 4차선 확장공사 및 직선화가 완료 되었으며 제한속도도 80km/h로 향상되었다. 경기/강원 구간의 경우 서울특별시까지의 소요시간이 4시간 전후로 앞당겨졌으며 국도 36호선은 봉화 현동과 울진간 확장계획이 있으나 최근 교통량수요 재조사로 인해 착공이 불투명하다. 추후 동해고속도로가 영덕 ~ 삼척 구간이 개통되면. 울진군을 경유할 예정이다.

울진공항은 건설되었지만, 저조한 사업성 때문에 개항되지 못하고 2011년 현재 울진비행교육훈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울진군은 거의 화강편마암 지형으로 되어 있으며 서쪽 군계를 낙동정맥이 남으로 뻗어 있다. 그리하여 험준한 산악이 많고 동해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어, 해안에는 약간의 좁고 긴 해안평야가 있으며, 해안단구와 카르스트 지형이 곳곳에 발달하여 있다. 하천은 남쪽의 남대천과 북쪽의 왕피천이 각각 동해로 유입되나 물결이 빠르고 유로가 짧다. 1,000m가 넘는 높은 산으로 통고산(通高山:1,067m)·백암산(白巖山:1,004m) 등이 있다. 면적 989.05km2, 인구 51,139명(2017. 8)이다.

울진읍 남쪽은 왕피천 하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이다. 이 지대는 해안단구가 발달되어 10m 이상의 언덕에서도 바다 생물의 화석이 나오곤 한다. 북쪽 죽변은 외항으로 어업협동조합과 큰 통조림 공장이 있으며 부근은 좋은 어업 기지이다. 울진에는 유원지로 이름난 연호정이 있고, 평해는 구읍이며 역시 관동 팔경의 하나인 월송정이 있다. 평해 남쪽 후포는 어업으로 발달한 항구이다. 온전면에는 백암온천(白巖溫泉:수온 42 )이 있는데 유황질이다. 또 근남면에는 관동 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다. 근남면 부근에는 석회암이 분포되어 지하 금강이라고 하는 성류굴(聖留窟:길이 470m)이 있는데 동룡굴 못지않은 석회동이 발달하여 관광객이 많이 온다.





                                    ▲ 불영사 배치도


『 탐방한 경상북도 울진군의 문화재들 』

▦ 불영사의 문화재들

보물 제730호 울진 불영사 응진전(蔚珍 佛影寺 應眞殿)

보물 제1201호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蔚珍 佛影寺 大雄寶殿)

보물 제1272호 불영사 영산회상도(佛影寺 靈山會上圖)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 삼층석탑(佛影寺 三層石塔)

문화재자료 제162호 불영사 부도(佛影寺 浮屠)

▦ 울진군의 천연기념물들

천연기념물 제96호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蔚珍 守山里 굴참나무)

천연기념물 제158호 울진 후정리 향나무(蔚珍 後亭里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312호 울진 화성리 향나무(蔚珍 花城里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409호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蔚珍 杏谷里 처진소나무

▦ 울진군의 기타 문화재들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

보물 제498호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蔚珍 九山里 三層石塔)

명승 제6호 울진 불영사 계곡일원(蔚珍 佛影寺 溪谷 一圓)

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 울진 죽변등대(蔚珍 竹邊燈臺)


【 일 정 표 】2018년 07월 07일(토)-07월 08일(일) 1박2일

                             ◈ 첫째날(07/07) : 불영사계곡-불영사-행곡리 처진소나무

                             ◈ 둘째날(07/08) : 죽변등대&죽변항-후정리 향나무-화성리 향나무-봉평 신라비-구산리 삼층석탑&왕피천-망양정&거북바위-수산리 굴참나무


울진에서의 탐방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내가 찾은 명찰'에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사찰! 불영사'  그리고 '살아있는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한국의 그랜드 캐년! 불영사계곡', '울진군의 천연기념물들! 행곡리 처진소나무, 후정리 향나무, 화성리 향나무, 수산리 굴참나무', '울진군의 문화재들! 봉평리 신라비와 구산리 삼층석탑', 죽변항과 망양정 일대' 등 4편을 '영남권'에 나누어 총 5편으로 소개를 한다.

 

- 살아있는 자연의 신비한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한국의 그랜드 캐년불영사계곡

-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사찰불영사(佛影寺)

울진군의 천연기념물들! 행곡리 처진소나무, 후정리 향나무, 화성리 향나무, 수산리 굴참나무

- 울진군의 문화재들! 봉평리 신라비와 구산리 삼층석탑

- 죽변항과 망양정 일대


                  ▲ 불영사 일주문에서 불영사 경내가는 길


울진 불영사(佛影寺) 소개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370년(공민왕 19) 유백유(柳伯儒)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에 그 기록이 나온다.

의상이 경주로부터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에 들어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또 맑은 냇물 위에서 다섯 부처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내려가서 살펴보니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법(法)을 설하며 그곳에다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독룡이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은 뒤 용지(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 동쪽에 청련전(靑蓮殿) 3칸과 무영탑(無影塔) 1좌를 세우고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이 다시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선사촌(仙槎村)에 이르렀는데,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오셨구나." 하면서 기뻐하였다.


                  ▲ 불영사 일주문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 불렀다. 의상은 이 절에서 9년을 살았으며, 뒤에 원효도 이곳에 와서 의상과 함께 수행하였다 한다. 청련전과 무영탑료는 환희료(歡喜寮)와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08년(태종 8) 이문명(李文命)이 지은 「환생전기」에 의하면 옛날에 백극재(白克齋)가 울진현령으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급병을 얻어 횡사하니 그 부인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불영사로 와서 남편의 관을 탑전(塔前)에 옮겨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3일 만에 남편이 되살아나 관을 뚫고 나오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탑료(塔寮)를 환희료, 불전(佛殿)을 환생전이라 하고, 『법화경』 7권을 금자(金字)로 사경하여 불은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 불영지 서쪽에서 바라본 불영사 전경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1396년(태조 5)에 화재로 인하여 나한전(羅漢殿)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던 것을 이듬해에 소설(小雪)이 중건하였다. 그 뒤 1500년(연산군 6)에는 양성(養性)이 중건하였고 1568년(선조 1) 무렵에 성원(性元)이 목어·법고·범종·바라 등을 조성하였고, 남쪽 절벽 밑에 남암(南庵)을 지었으며, 의상이 세웠던 청련전을 옛터에 중건한 뒤 동전(東殿)이라 하였다.


                   ▲ 불영사 불영지


그리고 임진왜란 전에 영산전(靈山殿)과 서전(西殿)을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영산전만이 남고 모두 전소되었다. 성원은 1603년에서 1609년(광해군 1) 사이에 선당(禪堂)을 건립하였고, 불전(佛殿)·승사(僧舍)를 중건하였다. 1701년(숙종 27)에는 진성(眞性)이 중수하였고, 1721년에는 천옥(天玉)이 중건하였다.

그 뒤 혜능(惠能)이 요사채를 신축하였으며, 재헌(在軒)과 유일(有逸)이 원통전(圓通殿)을 중수하고 청련암(靑蓮庵)을 이건하였다. 1899년과 1906년에는 설운(雪雲)이 절을 중수하고 선방(禪房)을 신축하였다.



                  ▲ 불영사 일주문에서 불영사 경내가는 길에 조망된 명승 제6호로 지정된 불영사계곡의 전경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730호인 불영사 응진전(佛影寺 應眞殿), 보물 제1201호인 불영사 대웅보전(佛影寺 大雄寶殿)을 비롯하여 극락전·명부전(冥府殿)·조사전(祖師殿)·칠성각·범종각·산신각·황화당(黃華堂)·설선당(說禪堂)·응향각(凝香閣)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272호인 불영사 영산회상도(佛影寺 靈山會上圖),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인 불영사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인 불영사 부도(佛影寺 浮屠), 그 밖에도 대웅전 축대 밑에 있는 석귀(石龜)와 배례석(拜禮石)·불영사 사적비 등이 있다.

이 절의 동쪽에는 삼각봉(三角峰), 아래에는 좌망대(坐望臺)와 오룡대(五龍臺), 남쪽에는 향로봉(香爐峰)·청라봉(靑螺峰)·종암봉(鐘岩峰), 서쪽에는 부용성(芙蓉城)·학소대(鶴巢臺), 북쪽에는 금탑봉(金塔峰)·의상대(義湘臺)·원효굴(元曉窟)·용혈(龍穴)이 있는데 모두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 불영사 경내 입구에 조성진 불영지와 연못가에 세워진 법영루(사진 上)

                      대웅보전으로 가는 불영지 옆길(사진 下)


♧ ♧ 울진 불영사 응진전(蔚珍 佛影寺 應眞殿)

*보물 제730호(1981년07월1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 (금강송면, 불영사)



                   ▲ 불영사 응진전 정면 전경(사진 上)

                      응진전 우측면(사진 下左)과 좌 대각방향 전경(사진 右下)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이 세웠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 연못 위에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거기 살던 용을 쫓아낸 뒤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 태조 5년(1396) 나한전만 남긴 채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버렸고 임진왜란 때에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불영사 응진전 정면 공포와 편액(사진 上)

                      응진전 귀공포(사진 下)


응진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가섭과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984년 수리 공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여러번 고쳐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4짝 여닫이문을, 양쪽 칸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 불영사 응진전 내부 공포와 천장(사진 上)

                      응진전 내부 천장 가구(사진 下)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에 남아 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


                   ▲ 불영사 대웅보전과 앞마당의 삼층석탑

 

♧ ♧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蔚珍 佛影寺 大雄寶殿)

*보물 제1201호(1994년05월02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금강송면, 불영사)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불영사 대웅보전 전면의 편액(사진 上)과 공포(사진 下)


                   ▲ 불영사 대웅보전 귀공포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각 공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 불영사 대웅보전 내부 가구

                   ▲ 불영사 대웅보전 내부 귀공포


                   ▲ 불영사 대웅보전 우물천장


                   ▲ 불영사 대웅보전 내부 천장과 벽면의 그림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천장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연구, 격조 높은 불교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 불영사 대웅보전 돌축대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석귀) 형상


                   ▲ 불영사 대웅보전 돌계단 좌,우에 축대를 받치고 있는 두 마리의 돌거북상

 

♧ ♧ 불영사 영산회상도(佛影寺 靈山會上圖)

*보물 제1272호(1997년08월08일 지정)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 불영사 대웅보전 내부 불단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 불영사 영산회상도의 본존도(사진 左)와 협시보살 및 사천왕상(사진 右)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 ♧ 불영사 삼층석탑(佛影寺 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1979년01월2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 (금강송면, 불영사)




불영사 내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올렸으며, 몸돌의 각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을 가지런히 새겼다.


                   ▲ 불영사 삼층석탑의 탑신과 상륜부

                   ▲ 불영사 삼층석탑 기단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아담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균형을 이루고 탑으로, 기단의 조각수법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 불영사 대웅보전 안에서 바라다본 삼층석탑과 설법전

 

♧ ♧ 울진 불영사 불연(蔚珍 佛影寺 佛輦)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7호(2007년01월08일 지정)

*수량:2점

불영사에는 2채의 불연이 있는데, 매년 석가탄신일때 아기부처를 모시고 경내를 도는 시련의식을 행하고 있으며, 이때 이 불연을 사용하고 있다.

불연 1의 받침대 하부에는 조련기가, 불연 2의 받침대 하부에는 시주질이 묵서되어 있는데, 이 명문들에 의해 불연의 제작시기와 제작동기, 공역에 참가한 시주자와 승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불연 1의 크기는 높이 125 × 난간폭 86 × 길이 311cm이며, 불연 2는 높이 125 × 난간폭 80 × 길이 303cm이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나간을 두른 집모양으로 받침대, 몸체, 지붕으로 분리되게 조립하였다. 받침대는 누각의 난간과 같은 형태이며, 앞뒤에 두개씩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난간 모서리에는 용머리를 각각 장식하였다. 몸체는 창이 있는 벽체를 돌렸으며, 벽체에는 화려하게 여러 가지 꽃을 조각하였다. 지붕은 녹색비단으로 처리하였으며, 상부에는 연봉을 세워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불연들은 1670년(조선 현종 11)에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불영사 불연은 제작연대가 있어서 유물양식의 편년을 설정할 수 있고 시주질(施主秩)을 통하여 불영사의 알려지지 않은 승려의 계보 등을 알 수 있어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특히 조각수법이 정교하며 현재까지 알려진 불연 가운데 연대가 알려진 것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 울진 불영사 불패(蔚珍 佛影寺 佛牌)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98호(2007년01월08일 지정)

*수량:2점

불영사에는 불패 2기가 대웅보전 안에 있다. 불패 1은 좌대와 패신으로 나뉘어 지는데, 패신 앞면에는 ‘우순풍조 국태민안(雨順風調 國泰民安)’이라는 글자(원래 한글로)가 적혀 있으며, 액자 주위로는 황용과 운문 등 화려한 문양을 장식하였으며, 크기는 높이 71.8 × 폭 40.5cm이다. 불패 2는 좌대는 결실(현 복원됨)되고 앙련대와 패신만 남아있는데, 중앙의 액자에는 명문을 확인할 수 없으며, 주위로 봉황, 운문과 꽃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크기는 높이 34 × 폭 24.2cm이다.


                   ▲ 불영사 불패1 변경전(사진 左)과 변경후(사진 右)의 모습


불패 1의 패신 뒷면에는 불패를 조성하게 된 발원문이 묵서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불보살의 명칭을 적은 불패(佛牌) 3위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 3위를 1678년(조선 숙종 4)에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는 2점만이 남아 있다.


                   ▲ 불영사 불패2 변경전(사진 左)과 변경후(사진 右)의 모습


                   ▲ 불영사 부도가 있는 '명상의 길' 이정표(사진 上)

                      불영사 부도가 있는 명상의 길 갈림길(사진 中)

                      불영사 부도로 가는 명상의 길(사진 下)


♧ ♧ 불영사 부도(佛影寺 浮屠)

*문화재자료 제162호(1985년08월05일 지정)

불영사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조선 전기의 승려인 양성당 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 불영사 부도탑과 부도비


양성당 선사의 이름은 혜능(惠能)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숙종 22년(1696)에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사리가 발견되어 이곳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모셔두었다 한다.

탑은 사각 바닥돌 위로 납작하고 둥근 기단(基壇)을 두고,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의 옆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러 새겨 놓았고, 탑신의 어깨부분에도 연꽃무늬로 받침을 이루게 한 뒤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두었다.

선사가 돌아가신 해인 조선 숙종 22년(1696)에 부도를 세웠으며, 부도비는 조선 영조12년(1736)에 설치하였다.


【 불영사의 기타 전각들 】

♧ 불영사 명부전


                   ▲ 불영사 명부전

                   ▲ 불영사 명부전 내부 전경


♧ 불영사 의상전


                   ▲ 불영사 의상전

                   ▲ 불영사 의상전 내부에 모셔진 영정들


♧ 불영사 칠성각


                   ▲ 불영사 칠성각

                   ▲ 도서관처럼 꾸며진 불영사 칠성각 내부 전경


♧ 불영사 극릭전

영조15년(1739)에 창건되었으며 중앙에 앉은 세 분 중 가운데 앉은 분은 아미타여래불이시고 좌,우편에는 관음세지보살과 양대보살이시며, 건너편 서화는 도량을 수호하는 도량신을 모신 곳이다.


                   ▲ 불영사 극락전


【 불영사에서 일주문으로 나가는 길의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