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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금남정맥 제13구간 : 부소산성

왕마구리 2007. 10. 31. 09:22

【 부소산(扶蘇山) 관광 】



▲ 부소산 관광안내도

 

♧ ♧ 부소산성(扶蘇山城)


▲ 부소산성 안내판과 표지석

 * 지정별 : 사적 제 5호

 * 소재지 :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외

이 산성은 백제 성왕 16년(538) 공주에서 이곳으로 옮겨 123년간 사용한 사비도성의 중심산성으로 이중의 성벽을 두른 백제식 산성이다. 성내에는 당시의 군창터로 전해오는 곳에서 탄화된 곡식이 나오고 있으며, 사자루, 반월루, 고란사, 궁녀사가 성내에 있고 유명한 낙화암이 있어 관광지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 ♧ 영일루(迎日樓)



▲ 영일루 전경과 영일루 앞에 설치된 이정표

 * 지정별 : 문화재자료 제 101호

 * 소재지 :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 4

부소산의 동쪽 산봉우리를 말하는데 원래 이곳에는 영일대가 있어서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 전한다.

1964년 5월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 관아문을 옮겨 세우면서 이름을 영일루라 하였다. 기단은 정갈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1단으로 쌓고 주춧돌은 귀가 큰 육각장초석을 썼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하고, 귀둥위의 공포는 화려한 다포식으로 짜 올렸다. 아랫층의 기둥이 특히 높아서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건물 폭에 비해 키가 큰 건물이 되었다.

 

♧ ♧ 군창지(軍倉址)


▲ 군창지

 * 지정별 : 문화재자료 제 109호

 * 소재지 :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 4

이곳은 부소산성 동남쪽에 있는 창고터이다. 발굴 조사 결과 백제때 세워진 창고터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지어진 창고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탄한 대지위에 마당을 가운데 두고 건물을 'ㅁ'자 모양으로 배치하였다. 동쪽과 서쪽 건물은 정면 10칸 측면 3칸이고, 북쪽 건물은 정면 18칸 측면 3칸의 긴 평면으로 되어 있다. 남쪽 건물은 훼손이 심하여 확실치는 않으나 서쪽에 치우쳐 안마당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때의 사각형 및 원형의 주춧돌과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및 백자조각이 출토되었다. 불에 탄 곡식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므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나 유사시에 필요한 피난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 반월루(半月樓)


▲ 반월루

 

♧ ♧ 낙화암(落花岩)



▲ 낙화암 '백화정' 전경과 낙화암 입구의 이정표

 * 지정별 : 문화재자료 제 110호

 * 소재지 :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백제의 700여년의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의 궁녀들이 "차라리 자결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하고 이곳에 이르러 강물에 몸을 던져 영혼을 묻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낙화암이라 이름지어진 것은 후세사람들이 그 당시 궁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해서 붙인 것이다. 암벽에 송시열(1607~1689)의 글씨로 전해지는 "落花岩(낙화암)"이라고 조각된 글씨가 있다. 1927년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의 꼭대기에 육각형의 백화정(白花亭)을 건립하였다.

 


▲ 낙화암의 표지석과 백화정

☞ 낙화암 표지석의 전면 내용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던 날(의자왕20년, 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런 삶을 이어가기 보다는 중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으로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날리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절벽 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 낙화암 표지석의 후면 내용

  사자수 내린물에 석양이 빗길제

  버들꽃 날리는데 낙화암 이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춘원 이광수-

 

♧ ♧ 고란사(皐蘭寺)


▲ 고란사 전경

 * 지정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98호

 * 소재지 :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 1

고란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다. 백제 제17대 아신왕때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고,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백제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 초기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절 이름은 뒤편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를 따랐다.

법당 건물은 조선 정조21년(1797) 은산의 승각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연화문을 새긴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조각장식이 화려한 익공식 공포를 짜 올렸다. 초석에 새겨진 연화문양은 고려시대의 기법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낙화암에 얽힌 전설과 더불어 험준하며 기이한 바위, 고란초 등으로 유명하다.



▲ 고란사 유람선선착장


▲ 고란사옆을 흐르는 백마강

 

 

출처 : 부천마구리산악회
글쓴이 : 왕마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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