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호남권

자연 그대로 향기로운 담양을 찾아서... - 제 1편 -

왕마구리 2009. 7. 18. 12:22

◀ 대나무의 고장, 담양 둘러보기 ▶ 

제 1편 : 옛 선인들의 정취를 느끼며...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명옥헌원림 그리고 면앙정

 

 

▲ 소쇄원 광풍각을 배경으로...

 

KBS '1박2일'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더욱 더 각광을 받기 시작한 관광지이다.

새로이 개장한 죽녹원 내 죽향문화체험마을에서는 연중 민박이 가능한 3동의 한옥으로 구성된 '한옥체험장'(예약문의 T061-380-2690)이 있어 이곳에서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고, 인접의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을 관광할 수 있다.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 삼지천마을에서는 문화유산지정 돌담길, 전통한옥 등을 둘러볼 수가 있으며, 창평면사무소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어 쉽게 관광을 즐길 수가 있다.

담양의 명소를 구석구석 관광하려면 최소한 1박2일 또는 2박3일은 잡아야 제대로 볼 수가 있고, 당일 코스로는 담양10경을 위주로 중요 관광지를 택해서 관광을 실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담양10경 중 1경인 가마골 용소를 찾을 경우 짧게는 30분, 길게는 4시간여가 소요되는 등산로가 있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관광을 즐기는 편이 낫고, 그 외에 호남의 3대 산성(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의 하나인 금성산성을 둘러볼 경우는 산성산(603m) 주변의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산성(전체길이 7,345m, 외성 6,486m, 내성 859m)이므로 4~5시간 정도 산성산 등반을 하여야 한다. 용추봉과 추월산 사이 영산강의 시원이기도 한 담양호는 차량을 이용하여 드라이브를 즐기며 관광을 할 수가 있다.

 

*담양10경

- 1경 : 가마골 용소

- 2경 : 추월산

- 3경 : 금성산성

- 4경 : 병풍산

- 5경 : 삼인산

- 6경 :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7경 : 죽녹원

- 8경 : 용흥사 계곡

- 9경 : 담양 관방제림

-10경 : 일동삼승지-환벽당, 식영정, 소쇄원

 

 

이번 여행은 당일 일정으로 실시를 하여 담양10경 중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관광지인 가마골 용소와 용흥사 계곡, 산행이 필요한 병풍산, 삼인산은 제외하였고 2경 추월산과 3경 금성산성은 알반산행과 호남정맥 종주 때 다녀간 적이 있어 대상에서 제외를 하였다.

 

또한 여행기를 작성함에 있어 한꺼번에 전부를 소개하기에는 분량이 많아 여러 편으로 나누어 작성을 하기로 하였다.

 

- 제 1편 : 옛 선인들의 정취를 느끼며...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명옥헌원림 그리고 면앙정

- 제 2편 : 숲이 그리는 아름다운 풍경,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제 3편 : 죽향체험마을 죽녹원과 슬로시티 창평 삼지천 마을을 찾아서...

 

【 일 정 표 】2009년 6월 8일(월)

부천출발→창평I.C(11:53)-(324km)→소쇄원(12:12~12:51)-(1.3km)→환벽당(12:58~13:10)-(0.8km)→식영정(13:15~13:42)-(7.8km)→명옥헌원림(14:02~14:17)-(4.1km)→창평 삼지천마을 슬로시티(14:28~15:20)-(13.7km)→죽녹원 & 국수거리(15:46~15:20)-관방제림 &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자전거하이킹 17:20~18:35)-(6.8km)→면앙정(18:49~19:00)→담양출발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갈 때 >> 부천-중동I.C-(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조남분기점-(서해안고속도로)→고창분기점-(고창~담양고속도로)→담양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고서분기점-(호남고속도로)→창평I.C

<< 올 때 >> 면앙정→담양I.C-(88올림픽고속도로)→담양분기점-(호남고속도로)→논산분기점-(천안~논산고속도로)→천안분기점-(경부고속도로)→신갈분기점-(영동고속도로)→서서울요금소/조남분기점-(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부천

 

【 소쇄원(瀟灑園) 】

* 명승 제40호

* 소재지: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외

 

 

▲ 소쇄원 기는 길

 

소쇄원은 양산보(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이다.

명승 제40호로 지정된 이곳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약간의 손질만 더하여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원림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 있다.

 

▲ 대봉대 앞의 흙담

▲ 소쇄원 담 아래로 계원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

 

전원(前園)은 대봉대와 상하지,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 아래에는 석가산이 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堂)과 오곡문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 광풍각

▲ 제월당괴 광풍각 사이의 협문인 오곡문

 

오곡문 옆의 오암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 중국 종으로는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중종 25년(1530)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 제월당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사랑방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광풍각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영조 31년(1755)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

-입장료 : 어른 \1,000/청소년,군인 \800/어린이 \500 (단체:20인이상 \800/\500/\300)

-주차료 : 소형 \2,000/대형 \5,000

-문의처 TEL:061-382-1071

 

【 환벽당 】

*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

* 소재지: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

 

 

 

1972년 1월 29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며, 당호는 신잠이 지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이 걸려 있고, 임억령,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이고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그 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고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과 김성원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와 용소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조부의 묘가 있는 고향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당시 14살의 정철이 순천에 사는 형을 만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던 김윤제가 꿈에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 마리가 노는 것을 보고, 꿈을 깨고서 용소에 내려가보니 용모가 비범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김윤재는 소년을 데려다가 여러가지 문답을 하는 동안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되어 순천에 가는 것을 만류하고 슬하에 두어 학문을 닦게 하였다.

 

▲ 환벽당 가는 입구 문

 

정철은 이곳에서 김인후, 기대승 등 명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고,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에 관계로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 인근에 취가정, 독수정, 소쇄원이 있고, 정철의 4대손 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식영정(息影亭) 】

*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

* 소재지: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5-1

 

▲ 식영정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특이한 것은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전면과 측면이 마루이다.

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창건하여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에게 증여한 것이다.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딴 '서하정'이란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에 복원하였다.

'서하당유고'의 기록에 따르면 식영정과 서하당이 1560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가 있고 제봉 고경명(1533~1592), 송강 정철(1536~1593) 등과 함께 '식영정 사선(四仙)'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 '성산별곡'을 창작하였으며,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고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 귀봉 송익필 등과 교우하였다.

 

▲ 식영정 입구에서...

 

 

▲ 식영정 입구에 새로 복원 조성된 건물들

 

이곳은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 노자암, 방초주, 조대, 부용당, 서석대 등이 있었으나 광주호가 생기면서 일부는 물에 잠기고 현재는 부용당만이 최근 새로 복원되었다.

 

▲ 복원된 서하당

▲ 복원된 부용당(1972년 건립)

▲ 송강집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1973년 건립)

 

식영정 옆에는 1973년 송강집의 목판을 보호하기 위한 장서각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 성산별곡 시비가 건립되었다.

 

【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

*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

* 소재지: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 명옥헌원림

▲ 정자 앞으로 조성된 연못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으로 도입한 정사 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 정원양식이지만 전과 후의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의 지당부를 도입하였다. 전(前)의 지당부는 명옥헌의 북쪽에 위치하며 그 고저차는 약 6.3m이다. 동서너비 약 20m, 남북길이 약 40m 크기를 갖는 방지의 중심부는 원형의 섬이 있으며 주위에 약 20주의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은 100여 년 정도이다.

명옥헌 동쪽에 자리잡은 지당은 동서 16m, 남북 11m 크기로 1979년 여름에 조사 발굴된 것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계류의 물을 끌어 채운 것으로 북과 서쪽에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로 실의 구성은 외부로 툇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을 둔 중앙실형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평천장을 하였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오이정(1619~1655)이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헌을 짓고 이름을 명옥헌이라 지었으며, 오이정의 호가 장계라 '장계정(藏溪亭)'이라고 불리는데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이 다시 중수하였으며 '장계정'이란 현판이 결려 있다.

또한 뒤편에 도장사라는 사당이 있어 도장정(道藏亭)이라고도 부른다.

백일홍이 활짝 피는 8월에는 그 아름다움이 더하고, 넓은 뜰에 정자, 시냇물, 연못, 백일홍, 노송 또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광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 면앙정 】

*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 소재지: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402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없이 넓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면앙정 송순의 마음을 담고 있는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로 전면,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을 배치하였다. 1979년 지붕번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앙정 송순(1493~1583)의 자는 수초, 호는 기촌, 면앙정으로 성종 24년(1493) 담양군 봉산에서 태어났다.

중종 14년(1519)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이후 명종 2년(1547) 봉문사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개성부유수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선조 2년(1569) 대사헌,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 겸 춘추관사를 지내다 77세에 사임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강호재현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정계생활은 그의 군자다운 인품과 고매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순탄하였으며, 후에 명유가 된 제봉 고경명, 고봉 기대승, 백호 임제, 송강 정철 등이 그에게서 사사하였다. 문학작품을 보면 가사인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 1편, 잡가 2편, '면앙정단가' 등과 '오륜가' 5편 등이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