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사(甲寺) ▶
16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라 화엄 10대 명찰의 하나!
▲ 갑사계곡(사진 上)
자연관찰로(사진 下)
봄에는 공주 마곡사, 가을에는 공주 갑사의 풍경을 으뜸으로 친다고 해서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고 불리는데, 일년에 한 번 뿐인 가을 계룡산 자락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는 갑사계곡을 찾았다.
▲ 갑사 산사음악회 장면
그리고 계획한 오늘은 갑사에서 승병장 영규대사의 추모제 겸 산사음악회가 열린다니 탐방 날짜는 잘 잡았다는 생각에 계룡산 산행과 금남정맥 종주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로 대여섯번을 찾은 갑사이지만 이번만은 잔뜩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 갑사가는 도로변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갑사로 향하는 진입도로가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들 때문에 멋진 풍경의 갑사계곡 단풍을 기대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갑사에 도착한 때에는 출발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가 그쳐 우중 탐방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계룡산 8부능선까지 짙게 드리운 운무와 흐린 날씨 탓에 우울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가, 시기상으로 온 산 전체가 울긋불긋한 만홍의 가을 단풍이 계룡산 전체를 덮고 있어야 정상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군데군데 물든 단풍만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산사음악회에 시간을 맞쳐 갑사 대웅전 앞 마당에 도착.
잠시 음악회 공연을 구경하고, 갑사계곡의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되었다는 갑사구곡(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수정봉)의 하나이며 예로부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용문폭포까지 계곡 탐방을 하기로 한다.
갑사에서 0.6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용문폭포까지는 왕복 40~50분이면 충분하고, 계룡산국립공원 금잔디고개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르면 된다.
용문폭포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탓에 돌길로 이루어져 있지만 완만한 오르막길이라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않은 주변의 나무들이 원망스럽기만 할 뿐이었으나 오전에 내린 가을비 덕분인지 더욱 웅장하고 더욱 깊어진 소를 이루는 용문폭포의 위용을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수정처럼 맑은 폭포수를 바라보니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근심, 걱정을 씻어내는 느낌이 들어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계곡 탐방을 마치고 갑사로 돌아와 마무리에 접어든 산사음악회를 감상하고 갑사 주변의 문화재들을 찾아 탐방을 하고 갑사 대적전에서 갑사 철당간을 거쳐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숲속 길인 자연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갑사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 방문일자 】2012년 10월 27일(토)
【 탐방코스 】갑사주차장→일주문→사천왕문→갑사강당→범종루→대웅전→삼성각→부도탑→팔상전→표충원→종각/갑사동종→석조약사여래입상-(갑사계곡)→갑사구곡 제6곡 '명월담'→갑사구곡 제8곡 '용문폭포'→공우탑&얼음계곡→대적전→공주갑사승탑→공주갑사철당간-(자연관찰로)→일주문→갑사주차장
【 갑사 소개 】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首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 중 서악(西嶽), 고려시대엔 상악인 묘향산, 하악인 지리산과 더불어 중악으로 일컬어지던 명산 계룡산의 서편 기슭인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한 갑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고 400년이 지나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펼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사리보탑에 있던 부처님의 사리를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천왕들로 하여금 마흔여덟 방향에 봉안케 하였다.
이때 북쪽을 관장하던 다문천왕이 동방 남섬부주 가운데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 석벽에 봉안한 것이 지금의 천진보탑이다.
그 후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 사찰인 선산 도리사(挑李寺)를 창건하시고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산중에서 상서러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찾아가 보니 천진보탑이 있었다. 이로써 탑 아래에 배대에서 예배하고 갑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가 백제 구리신왕 원년(420)이다.
위덕왕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과 진광명전, 대광명전을 중건하고,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칸의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으로 전국의 화엄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어 국중대찰로 크게 번창하였다.
▲ 갑사 경내 대적선원옆 부도탑들
진흥왕 원년(887) 무염대사가 중창한 것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임진왜란 와중에도 융성하였으나 선조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선조37년(1604) 인호, 정순, 성안, 보윤 등이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했고, 효종5년(1654)에는 사정, 신정, 경환, 일행, 정화, 균행 등이 중수하였으며, 이 후에도 부분적인 개축과 중수를 거쳐 고종12년(1875)에 대웅전과 진해당이 중수되고 1899년 적묵당이 신축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고, 조선 후기 들어 새롭게 조성된 불상과 탱화 경판이 남아 있으며, 고종3년(1866) 개금불상한 시주추(施主秋)가 있다.
강력한 억불정책을 시행하던 조선 때인 세종 때는 오히려 승려 정원을 70명 더 허가 받고 토지도 하사받기도 했다.
또한 갑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장 영규대사를 배출한 호국불교 도량으로도 유명한 유서 깊은 고찰로서 그의 활약상은 범우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갑사는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수행도량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고자 사천왕문 복원불사를 하였고, 법당 바로 앞에 놓여진 강당을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협조로 현 위치로 이전불사함과 동시에 불전 사물각(범종루)를 불사하였고, 관람객들의 성보물 관람 편의를 위한 성보물전시관을 불사하였다.
또한 승병장 영규대사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영규대사 추모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갑사는 岬寺, 岬士寺, 鷄龍甲寺 등으로 불리어 지다가 으뜸 또는 첫째란 뜻의 지금의 명칭은 18세기말 산 이름을 따서 鷄龍甲寺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1911년 제정된 사찰령에 따라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首말사가 되었고 경내에는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짜기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동구의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하고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갑사의 국가지정 문화재들))
◈ 갑사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佛幀) : 국보 제298호
◈ 공주 갑사 철당간(公州 甲寺 鐵幢竿) : 보물 제256호
◈ 공주 갑사 승탑(公州 甲寺 僧塔) : 보물 제257호
◈ 갑사동종(甲寺銅鐘) : 보물 제478호
◈ 월인석보목판(月印釋譜木板) : 보물 제582호
((갑사의 지방유형문화재들))
◇ 갑사 대웅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 갑사 대적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 갑사 강당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 갑사소조삼세불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 석조약사여래입상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 석조보살입상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
◇ 갑사 사적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범우고'에 기술된 승병장 영규대사 활약상
영규대사는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어 항상 갑사에서 주석하고 있었는데,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 해 여름에 왜군이 청주지방까지 이르러 청주가 점거당하자 영규대사는 승병 700명을 엄선하여 승군을 일으켰으며, 청주지방의 승려 300명도 참여한 1000명의 승군으로 홀로 왜군과 싸웠다.
8월에 영규대사의 승군이 청주로 쳐들어가자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왜군과 싸워 청주를 되찾았다.
한 편 금산에 있던 초토사 고경명 군대가 고바야가와의 왜군에게 패하여 왜군들이 창궐하고 전라도 지방으로 진격하려하자 영규대사는 조헌과 함께 진군하여 곧바로 금산의 외곽에 진영을 갖추고 있을 때 왜병이 쳐들어와 조헌이 먼저 전사하였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와 의병들이 전의를 잃고는 의병장 조헌이 이미 죽고 적은 더욱 기승을 부리니 물러섬을 간청하자 영규대사는 오히려 그들에게 조금도 굽히지않고 죽게 되면 죽는것이거늘 어찌 홀로 살겠다고 하겠는가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는 흐트러진 전력을 다시 가다듬어 사력을 다해 종일토록 싸웠으나 그 또한 전사하였다.
이로써 최후의 한 사람까지 왜병들과 싸움으로써 왜군의 호남 침공을 끝내 저지하였다.
임진왜란리 일어난 뒤 승병을 일으킨 것은 영규대사가 처음으로 그 뒤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그의 충의를 포상하여 복국우세기허당일합대선사를 추증하고 당시의 뜻을 기리도록 갑사에 표충원을 세워 휴정과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공주시 진두면 유산에 영규대사의 묘가 있다.
▲ 갑사주차장 옆 갑사계곡(사진 上)
갑사주차장에서 갑사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길(사진 下)
▲ 갑사 일주문(사진 上)
뒤돌아본 갑사 일주분(사진 下)
▲ 갑사 일주문에서 사천왕으로 가는 길
▲ 갑사 사천왕문(사진 上)
갑사 입구에서 바라본 범종루(사진 下)
【 갑사의 문화재들 】
▷ 국가지정문화재들
♧♧ 갑사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佛幀)
*국보 제298호(1997년09월22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길이 12.47cm, 폭 9.48c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맨 윗부분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묘사되어 있다.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가운데 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큰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해 몸은 다소 왜소하며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이 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의 왼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의 손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은 특이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맨 윗부분은 붉은 색의 두광을 가진 관음,세지보살과 십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과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효종원년(1650)에 화원 경잠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는데 중단부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림에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17세기 중반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공주 갑사 철당간(公州 甲寺 鐵幢竿)
*보물 제25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8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는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는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 공주 갑사 승탑(公州 甲寺 僧塔)
*보물 제257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갑사로 568-2)
갑사 뒷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 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츨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힘차고 웅대하나,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각기법이 약해졌다. 특히 지붕돌이 지나치게 작아져 전체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잃고 있다.
기단부의 조각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전체에 조각된 각종 무늬와 기법 등은 고려시대 승탑들 중에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 갑사 동종(甲寺 銅鐘)
*보물 제478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갑사로 567-3)
▲ 갑사 동종과 동종이 보관되어 있는 종각
갑사 종각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이며, 높이는 132.5cm, 입지름이 92cm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17년(1584)에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2마리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 위에는 여의주 입화형이 돌려 있고, 그 아래 한 가닥의 융기선으로 2줄의 가로띠를 만들어 위 띠에 나란한 4각형 모양의 유곽속에 연꽃무늬를, 아래띠에는 동그라미속에 범자를 양주하여 촘촘히 배치하였다.
이 가로띠에 붙여서 4곳에 가슴과 같은 돌기가 3개씩 3줄로 늘어선 유곽을 마련하고 그 둘레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유곽 밑에는 원형의 당좌를 배치하고 아래에 구름무늬를 깔았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로 두었고, 구 사이에는 구름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돌렸다.
일제강점기에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함께 한 종이다.
♧♧ 월인석보목판(月印釋譜木板)
*보물 제582호(1974년12월3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갑사로 567-3)
월인석보목판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으로 석가의 일대기와 공덕을 찬송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지은 것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세종29(1447)에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다
'월인석보'는 본래 57매 233장으로 모두 24권이었으나 현재는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이 판목은 선조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이 시주하여 활자를 새기고,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갑사로 옮겨 왔다는데 그 이유와 시기는 알 수가 없으며 70여 년 전에 입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는 시주자와 새긴 이의 이름이 있다. 내용표기에 있어서는 방점과 글짜획이 닳아 없어져 변모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이후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교대장경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15세기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국어 변천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갑사의 전각들과 기타 문화재들
♧♧ 갑사 강당(甲寺 講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1981년12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의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층은 완잔히 탈색되어 무늬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고종24년(1887)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 갑사 대웅전(甲寺 大雄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1984년01월1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백제 구이신왕1년(420)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676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8년과 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이며,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 갑사소조삼세불(甲寺塑造三世佛)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5호(2002년01월10일 지정)
갑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높이 255cm로 둥근 얼굴에 백호가 조각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법의는 통건으로 소조좌불이다. 우측에는 아미타불(높이 235cm), 좌측에는 약사여래(높이 235cm), 그리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4대 협시불이 봉안되어 있다.
♧♧ 갑사 삼성각(甲寺 三聖閣)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
삼성각은 칠성, 산신, 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않고 '각(閣)'이라 한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영장생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무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갑사 팔상전(甲寺 八相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4호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 그리고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며,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호법신은 대개 우리나라 전통의 신이다.
건물 규모는 작지만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 격식을 갖추고 있다.
▲ 팔상전에서 내원암가는 길 입구
♧♧ 갑사 표충원(甲寺 表忠院)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
▲ 표충원 원내 전체 모습(사진 上)
표충원 입구(사진 中)
표충원과 원내의 영규대사사기적비(사진 下)
영조14년(1738)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물 안에는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고종31년(1894)에 복원되었다. 경내 우측에는 정인보가 지은 글을 바탕으로 1973년에 세운 의승장영규대사사기적비가 있다.
♧♧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甲寺 表忠院)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갑사 동쪽 계곡 약 100m 지점의 자연 동굴안에 있는데, 원래는 갑사 뒷산의 사자암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고 얼굴은 긴 편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을 약간 노출시키고,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가슴 아래로는 반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쪽 어깨 부근에서는 한 가닥의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을 살펴보면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미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든 불상으로 추정된다.
▲ 석조약사여래입상 옆의 갑사계곡(사진 上)
석조약사여래입상 옆의 갑사구곡 중 제6곡인 '명월담'(사진 下)
▲ 갑사옆 등산로입구의 이정표(사진 上)
등산로 입구(사진 中)
뒤돌아 본 등산로 입구(사진 下)
▲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로 이어지는 갑사계곡
▲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갑사구곡 중 제8곡인 '용문폭포'
▲ 용문푹포로 오르는 갑사계곡의 등산로
♧♧ 공우탑(攻牛塔)
*비지정문화재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개울 건너 계곡변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갑사의 부속 암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한다. 3층으로 이루어진 탑은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신의 1층에는 탑의 건립 내용이, 2,3층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탑의 건립은 옥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기에 큰 공을 세웠던 소로 인해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 대적전 입구
▲ 대적전 입구 공우탑 옆 갑사계곡
'1박2일' 공주편에서 박찬호와 출연자들이 계곡의 얼음을 깨고 입수한 장소
♧♧ 갑사 대적전(甲寺 大寂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1984년01월1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 아마타불,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는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앞 마당에는 보물 제257호로 지정된 공주갑사승탑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약 100여m 떨어진 자연관찰로에는 보물 제256호로 지정된 공주갑사철당간이 있다.
▲ 대적전 앞 마당의 배롱나무
♧♧ 계룡산 천진보탑(鷄龍山 天眞寶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8호
계룡산 내에 봉우리처럼 우뚝 솟아있는 자연바위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탑이다.
탑이란 부처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을 일컷는 것으로, 이 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인도의 아육왕은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많은 양의 사리를 발견하여 이를 열곳의 방향에 있는 중생의 세계로 동,서,남,북,동북,동남,서남,서북,상,하에 있는 무한한 세계인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나누어 주었다. 그 때 사천왕 가운데 북쪽을 담당하던 비사문천왕이 이곳 계룡산으로 보내어 이 바위안에 담아 두도록 하였고, 뒷날 아도화상이 이를 발견하여 '천진보탑'이라 이름붙여 놓았다고 한다.
▷ 갑사의 자연관찰로 갑사 일주문에서 대적전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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