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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남산(南山, 금오산 468m)/경북 경주

왕마구리 2013. 6. 8. 00:00

남 산(南山, 금오산)

높     이

468m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탑정동, 배동

 

                  ▲ 바둑바위/상사암에서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 개     관 】

경주 남산일대는 사적 제311호로 지정된 지역으로 경주 남쪽 땅을 지키던 남산은 최고봉인 고위산(494m)을 비롯하여 금오산(468m),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낙동정맥의 백운산(892m)에서 동해로 가지를 뻗은 호미지맥의 치술령(603m)에서 북상하여 경주의 남쪽 금오산까지 이어진 산줄기에 위치해 있으며,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 4km, 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40여개의 계곡이 있고 멋진 전망대와 옹골찬 암릉을 갖추고 있으며, 수많은 불적이 산재되어 있고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여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이 발견되었다는 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 경애왕이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신라 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 김시습이 거처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 등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신라가 국교를 불교로 한 이후 남산도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 곳은 122여개소의 절터, 57여개소의 석불, 64여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야외박물관으로 불려지고,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산 전체를 부처에게 바친 신라인의 신앙심은 천년 세월 동안 화려한 문화를 꽃 피웠으나 꽃이 피고 지듯이 나라의 운명도 피고 지는 것은 인지상정. 천년을 호령하던 신라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가야만 했다.

남산 제1봉 고위봉 중턱에 자리한 천룡사는 천혜의 요새를 지키던 사찰의 기운이 일국의 흥망성쇠를 가렸다고 하는데 문무대왕 때 당나라의 사신 악봉귀는 "이 남산인 금오산 중 고위산 천룡사가 파괴되면 곧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이후 신라 말 천룡사가 파괴되자 신라가 망하였고, 고려 초 정광 최제안이 천룡사를 다시 중창했는데 고려 말 사찰이 다시 파괴되자 고려가 망하였다. 이같은 전설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제자를 보내 천룡사를 3창했는데 사찰이 파괴되자 조선이 망했다고 하며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에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선정하였는데 이 곳 경주 남산이 선정되었으며, 이는 산세의 아름다움이나 웅장함보다는 이처럼 많은 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있어 산 전체가 박물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 ♧ 경주 남산 일원(慶州 南山 一圓)

*사적 제311호(1985년02월23일 지정)

남산 일원의 수 많은 불교유적들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이다.

6세기 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후 경주 남산에는 많은 절과 탑이 세워지고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수 많은 전설과 함께 김시습이 거처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는 용장사터 뿐만 아니라, 신라의 종막을 내린 포석정을 비롯해 수 많은 불교 관련 유적, 왕릉, 무덤, 궁궐터들이 남아 있어 신라 문화의 집결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남산에서 나라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남산에 얽힌 전설이 많은 편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남산 기슭의 '나정'이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남산의 산신이 나타나 헌강왕에게 신라의 멸망을 경고하였으나 깨닫지 못하여 결국은 멸망을 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남산의 40여 계곡 중 절터가 없는 계곡은 거의 없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는 112곳, 탑은 61기, 불상은 80체이다. 보통 평지에 있는 법당 앞에 탑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산의 절에는 법당의 위치와 상관없이 보기 좋은 바위 봉우리 위에 탑을 세워 마치 하늘 높이 솟은 것처럼 보인다.

남산 불상 중에는 입체로 된 것이 29체이고,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상이 51체이다. 특히 마애불상이 많은 것은 우리 조상들이 불교 전래 이전부터 믿어온 암석신앙과 불교신앙이 합쳐진 결과이다. 우리에게는 오랜 옛날부터 바위신앙이 있었는데,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후 바위 속에 영검이 있다고 믿어온 신라사람들은 바위 속에 부처가 있다고 믿게 되어 많은 마애불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 경주 남산의 지정문화제

 국보(1점)  보물(12점)  사적(14개소)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63호)

    -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98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용정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포석정지(사적 1호)

    -남산성(사적 제22호)

    -서출지(사적 제138호)

    -오릉(제172호)

    -일성왕릉(사적 제173호)

    -정강왕릉(사적 제186호)

    -헌강왕릉(사적 제187호)

    -배리삼릉(사적 제219호)

    -지마왕릉(사적 제221호)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나정(사적 제245호)

    -남산일원(사적 제311호)

    -천관사지(사적 제340호)

    -일정교지,월정교지(사적 제457호)

 

▷ 지방유형문화재(11점)

▷ 지방기념물(2점)

▷ 문화재자료(3점)

 

◎ 남산팔경 (경주남산연구소 선정)

1.냉골암봉, 2.칠불암,신선암, 3.천룡고원, 4.용장계곡, 5.황금대, 6.남산부석, 7.늠비봉, 8.삼릉송림

 

【 산행일자 】2013년 5월 4일(토)

【 산행코스 】삼릉입구→삼릉-(삼릉계곡/냉골)→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선각육존불→석불좌상/선각여래좌상→상선암→마애석가여래좌상→삼불사갈림길/능선갈림길→ 금오산(468m) →남산관광일주도로/임도→435봉/용장사지갈림길→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설잠교-(용장계곡)→용장마을/주차장

◈ 이정표 상 산행거리 : 약 6.1km

    삼릉입구-(1.5km)→바둑바위-(0.9km)→금오봉-(0.7km)→용장사지갈림길-(0.55km)→용장사지-(0.6km)→설잠교-(1.85km)→용장마을

 

 

♧ ♧ 남산 주요등산로

▷ 삼릉코스 : 삼릉-석조여래좌상-선각육존불-석불좌상-상선망-마애석가여래좌상-능선갈림길-금오산(2.2km/약 1시간)

▷ 포석정코스 : 포석정-(임도)-마애불좌상-부엉골마애불좌상-부흥사-금오정-금오산(5.4km/약 1시간30분)

▷ 고위산코스 : 틈수골-와룡사-천룡사지-고위산(2.5km/약 1시간30분)

▷ 남산종주코스 : 부처골(또는 탑골)-옥룡암-탑골마애조상군-보리사-일천암-남산일주도로-금오산-용장사지-(은적골)-고위산-천룡사지-백운마을(11km/약 5시간)

 

 

【 산행시간 】총 4시간 소요(관광 및 휴식시간 포함)

【 날     씨 】맑 음

【 참 석 자 】재경대구고 18산우회 회원 총 28명

【 교 통 편 】전세버스 이용

【 산 행 기 】

1박2일의 일정(2008년 6월12일~13일)으로 경주 일원 관광과 남산 산행(2008년6월12일)을 실시한 후 만 5년만에 다시 경주를 1박2일(2013년5월4일~5일) 일정으로 고교 동창생의 산악모임인 18산우회 친구와 가족 등 총 28명과 함께 한 여행으로, 첫째날 경주 도착 후 삼릉 근처의 '보성할매비빔밥'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삼릉 입구를 들머리로 산행을 실시하였다.

2008년 당시에는 산행들머리인 남산 배동 삼불사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배리삼존불상 관광을 마치고 삼불사에서 삼릉까지 잘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삼릉에 도착, 삼릉-금오산 정상-포석정 코스의 남산 산행을 하였었다.

삼릉계곡(일명 냉골)을 따라 금오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이러한 문화유적을 감상하며 오르는 것이 묘미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지난 산행과 동일한 코스로 금오산까지 진행하였고,금오산 정상에서 하산코스를 지난 번의 동쪽의 포석정 방향이 아니라 서쪽 방향의 용장골으로 하산을 실시하게 되었다.

삼릉~금오산정상~용장마을 코스는 정상적인 산행의 경우 지난 번 실시하였던 삼릉~금오산정상~포석정 코스와 마찬가지로 2시간30분~3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많은 인원이 함께 하여 약 4시간 가까이 소요가 되었다.

지난 번 산행 때에는 보물 제666호인 경주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 보수작업중이었는데, 현재는 말끔히 새 단장된 상태였으나, 이번에는 상선암 뒷편의 암벽에 자리한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보수공사중이라 입구부터 탐방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고 입구에는 안내판(공사기간 2013년1월1일~12월31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행코스는 삼릉부터 금오산 정상까지는 대부분이 오르막을 이루고, 정상부터 날머리인 용장마을까지는 내리막길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 문화재 등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관광지 탐방을 하는 것 같아 별 어려움없이 진행이 가능한 산행이었다.

이번 산행기는 각 지점별 등산로에 관한 설명은 이정표 등을 간단히 약술하고, 문화재를 안내하는 것으로 꾸며 보기로 한다.

 

♧ ♧ 경주 배동 삼릉(慶州 拜洞 三陵)

*사적 제219호(지정일:1971년04월28일 지정)

*면적:205,289㎡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에서부터 신라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형태로 후대에 설치된 혼유석만 있을 뿐 다른 시설물은 없다.

산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 무덤은 1953년과 1963년 도굴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 색, 황색, 백색, 군청색, 검정색 등 5색으로 되어 있고, 북면에 6폭, 그리고 좌우로 연속하여 동,서벽에 각각 3폭씩 총 12폭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4m인데 이를 다시 상하로 양분하여 모두 2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채색면의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5색은 오행설, 혹은 그와 결부된 방위신 사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12폭이라는 것은 12지신 사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석실은 평면 방형이었고, 천정은 궁륭상이었으며, 연도는 남벽 가운데에 달렸는데, 석실과 연도 사이에는 판석 2매로 된 문을 달았다. 석실 벽면의 길이는 3.04m~3.09m이고, 석실 바닥에는 천정 뚜껑 돌까지의 높이는 3.91m였다. 석실 바닥 가운데에는 평면 방형으로 깬돌을 쌓고 그 위에 두께 5cm 정도의 판석 2매를 남북으로 놓아 2인 합장용의 시상을 설치하였다. 석실과 연도의 모즌 벽면과 천정, 그리고 시상의 측면에는 석회를 두껍게 발랐다.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이 대형 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재위:154~184) : 박씨이고, 일성왕의 장자로서 왕비는 내예부인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치적은 확인되지 않으며, '삼국사기'에는 서기 184년 3월에 왕이 죽었다고 전하고 있을 뿐 장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삼국유사'에도 왕릉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 신라 제53대 신덕왕(神德王, 재위:912~924) : 본명은 박경휘, 아달라왕의 후손으로 아버지가 대아 우겸이었으며, 왕비는 헌강왕의 딸이었다.

재위기간은 내외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삼국사기'에는 917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신덕이라 하고 죽성에 장사지냈다 하고, '삼국유사'에는 화장하여 잠현 남쪽에 묻었다고 하였다.

▷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 재위:917~924) : 본명은 박승영이고 신덕왕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후삼국의 난립과 함께 국내정치가 혼란한 시기였다. '삼국사기'에는 924년 8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경명이라 하고 황복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며, '삼국유사'에는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성등잉산 서쪽에 산골하였다고 되어 있다.

 

 

                  ▲ 삼릉입구

 

13:30=>삼릉입구

     삼릉표석이 있는 입구에서 숲길의 편한 탐방로를 따라 들어가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그리고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있는 삼릉이 보인다. 무덤의 아름다움보다는 주위의 송림숲이 운치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삼릉 끝 이정표(←삼불사 550m, 삼릉주차장 0.3km/↑금오봉 2.3km, 상선암 1.3km)가 있는 삼불사 갈림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탐방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삼릉 끝의 이정표

 

 

                  ▲ 나무마루가 깔려있는 등산로

 

나무마루가 깔린 등산로를 따라가다 약 3분 후 호젓한 소나무 숲길의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우측으로 삼릉계곡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분간은 이 계곡이 등산로와 함께 하게되어 물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계곡산행을 하게 된다.

이정표(←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50m/↑금오봉 1.85km, 상선암 0.85m/↓삼릉주차장 0.75km)가 있는 ┫자 갈림길에 이르면 좌측으로 얼굴없는 석조여래좌상이 보이고, 마애관음보살상 가는 갈림길이 보이는데 마애관음보살상을 탐방한 후에는 이곳으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작품으로 평가된다.

 

♣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이 불상은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으며 돌 기둥같은 암벽에 돋을새김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머리위에는 삼면 보관을 썼는데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입술에는 붉은 색이 아직 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 위에 서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각각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은 정병(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손가락을 꼬부려 밖으로 향하고 있다.

 

갈림길 입구에 삼릉계 석조여래좌상과 마애관음보살상 안내문이 있으며 좌측으로 돌계단을 50여m 오르면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잠시 오르면 이정표(←선각육존불 20m/↓삼릉주차장 0.9km)가 있는 선각육존불 갈림길이 나타난다.

 

                  ▲ 선각육존불 ┫자 갈림길의 이정표

 

♣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하고 방울 3개를 꿰어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위에 서서 왼손을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 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위에는 당시 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커다란 바위면에 선각된 여섯분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다시 등산로로 되돌아 나와 이정표(←선각여래좌상 180m/↑금오봉 1.45km/↓삼릉주차장 1.15m)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선각여래좌상과 석불좌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갔다가 지난 번 탐방 때에 보수공사중이었던 석불좌상만 구경하고 삼릉계 석불좌상 우측의 길을 따라 등산로로 나와 금오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번 탐방에서는 석불좌상 뒷편 약 2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은 다녀오기를 포기하고 석불좌상만 탐방하였기 때문에 오늘 산행기에 올리는 사진은 2008년도 탐방 때 찍은 것을 사용하였다.

 

♣ ♣ 삼릉계 석불좌상

*보물 제666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1

 

 

이 불상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중턱에 위치한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나발)을 붙였고 정수리 부분에는 상투(육계)가 있다. 얼굴은 풍만한 모습으로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한쪽 어깨에 옷을 걸쳤으며, 원래 불신과 불상 받침과 불상 뒤의 원광인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지금은 얼굴이 크게 손상되었다.

석불이 앉아 있는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 무늬와 창 모양의 안상을 비롯한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안정된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 ♣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이 불상은 높이 10m 가량 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위쪽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다. 얼굴 부분은 돋음새김을 하고 몸은 얕은 돋음새김인데 나머지는 선으로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큼지막하고 넓적하게 표현하고 민머리 위에 상부 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와 구분이 없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으며 양손의 손목까지 덮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여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바위 속에서 얼굴만 내민 듯한 점이 특이하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등산로를 따라 오름길을 이어가면 상선암 입구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를 오르면 시골집 같은 분위기의 조그마한 암자인 상선암에 이르게 된다.

 

                   ▲ 상선암

 

불전과 부속건물 등 총 2동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암자로 대한조계종 제11교구 본산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산사에 자리를 잡고 후미가 모두 도착할 때 따지 휴식을 취하고 건물 사이의 등산로인 돌계단의 경사도 있는 오르막길을 따르면 삼불사 갈림길을 지나 보수공사중이라 출입이 통제된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우회하고 남산의 전망명소 10곳의 하나인 바둑바위에 이르게 된다.

 

                   ▲ 상선암 뒤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가는 길 입구의 출입금지 안내판

                    ▲ 상선암에서 바둑바위로 가는 탐방로 옆의 기암

 

♣ ♣ 삼릉계곡 석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2-6

 

 

 

 

 

이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로 삼았는데 깎아내다가 그만둔 듯 거칠다. 높이 7m로 냉골(삼릉계곡)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 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 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 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업지와 둘째, 세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암릉 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본 보수공사중인 마애석가여래좌상

                   ▲ 바둑바위 전망대

 

삼릉계곡 석가여래좌상을 탐방하고 진행하였다면 넓은 암반의 전망대인 바둑바위를 지나쳐 능선갈림길로 올라 오게된다. 능선갈림길에 오르면 좌측은 바둑바위, 우측은 금오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이다. 

 

 

 

                   ▲ 바둑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경

 

주변 일대 안내도가 있는 바둑바위에 오르면 발 아래로 남산 남쪽 형산강과 배동 일대의 풍경과 서쪽으로는 경주 시가지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바둑바위를 뒤로 하고 잠시 오르면 기암이 어우러진 상사암. 상사암을 내려서면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갈림길이다. 갈림길을 뒤로 하면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주위 기암의 아름다움과 산 아래로 바둑바위 전망대에서 조망되었던 풍경들이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 능선길의 바위위에 자라는 소나무 한 그루

                  ▲ 암릉길에서 뒤돌아본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위치한 상사암

 

암릉길에서 보수공사중인 삼릉계곡 석가여래좌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오르막길을 따르면 약 10여분 후 호젓하고 편안한 능선길과 완만한 오름길을 반복하고 넓은 공터가 있는 금오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 금오봉 정상의 공터(사진 上)

                     금오산 정상의 표지석과 삼각점(사진 中)

                     금오산 정상의 이정표(사진 下)

 

15:15~15:50=>금오산(468m)

     정상은 넓은 공터에 대한산악연맹 경북연맹과 경주일요산악회 설치 정상표지석과 삼각점(경주478/1995재설), '남산과 망산의 유래' 안내문 그리고 이정표(↑용장사지, 통일전주차장 4.2km/↓포석정주차장 4.2km, 삼릉주차장 2.6km, 상선암 1.0km)가 있다. 나무 그늘이 없는 정상 공터를 지나 숲속에 자리를 잡고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한다.

약 35분 가까이 휴식을 취하고 남산관광일주도로를 향해 용장사지와 통일전주차장 방향의 숲길 내리막을 따라 내려간다.

이곳 금오산 정상까지는 지난 2008년 탐방하였던 코스였고, 용장마을로 내려가는 하산코스는 처음 탐방을 하게되는 코스이다.

 

                  ▲ 금오봉 정상에서 내려선 남산순환도로의 이정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경주남산순환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비포장길로 이정표(←포석정주차장 4.7km, 금오봉 0.4km/↓금오봉/→통일전주차장 3.8km)가 있다.

우측/통일전주차장 방향으로 비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정표(←통일전주차장 3.5km/↓금오봉 0.7km, 포석정주차장 5.0km/→용장마을 3km, 용장사지 0.55km)가 설치된 ┣자 갈림길인 435봉에 이르게 된다.

갈림길에는 용장골 안내판이 있다.

 

 

                  ▲ 용장사지갈림길인 ┣자 갈림길(사진 上)

                     용장사지 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下)

 

『 용장골(茸長谷) 』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며, 용장사지 등 18개소의 정터와 7기의 석탑, 그리고 삼륜대좌불 등 5구의 불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400m 아래로 내려가면 용장사터가 있는데 용장사는 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용장사터 동쪽 높은 바위 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삼층석탑 아래에는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스님이 거주하신 곳으로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대현스님이 삼륜대좌불을 돌면 부처님도 따라 머리를 돌렸다고 하며, 그 뒤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지금도 따뜻한 미소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직진의 이영제를 거쳐 봉화대능선~봉화대(476m)~백운재~고위능선을 따라 고위봉으로 가거나 통일전주차장으로 하산을 할 경우 이용하는 남산순환도로인 비포장길을 버리고 우측의 용장계곡으로 내려가는 지능선길을 따라 진행을 하게 된다.

물론 우측의 용장사지 방향의 능선길이 고위봉으로 또 다른 등산코스이기도 하다. 코스는 용장사지~설잠교~백운재~고위능선~고위봉이다.

 

 

 

                  ▲ 용장사지가는 탐방로의 위치표시목과 이정표(사진 上)

                     석탑 흔적인 부재들(사진 下)

 

위치표시목 '경주15-04'와 용장사의 석탑 부재로 보이는 흔적들, 그리고 이정표(↑용장마을 2.6km, 용장사지 0.2km/↓금오봉 0.9km)를 차례로 지나면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진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 직전에 바라본 고위봉과 능선

 

♣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보물 제186호(지정일: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만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케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 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하층기단을 생략하고, 암석에 높이 6cm의 괴임 한단을 직접 마련하여 상층기단 중석을 받게 한 것이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으로 네 귀에 모서리기둥이 있을 뿐이고, 2층 옥신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있다. 상륜부(꼭대기의 머리장식)는 전부 없어져 상태를 알 수 없고, 다만 정부에 찰주공(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지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용장사지에서 뒤돌아 올려다본 용장사곡 삼층석탑

 

고위봉과 고위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아래로는 용장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석조여래좌상과 마애여래좌상으로 내려서는 바윗길

 

좌측으로 바위지대를 돌아 내려가면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과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87호(지정일: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 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목에는 뚜렷한 삼도가 있고,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의로 옷자락은 맨 윗단의 대좌부까지 흘러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왼손에는 보주를 얹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특히 이 불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중첩된 원형 대좌를 하고 있는데, 맨 아래에 자연석 기단부 위에 대좌 받침과 원형대좌를 교대로 하여 삼층으로 중첩되게 만들어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 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만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 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茸長寺谷 磨涯如來坐像)

*보물 제186호(지정일: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 광배와 몸 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이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 된다.

 

                  ▲ 용장사지

 

 

 

 

 

 

 

 

넓은 공터인 용장사지에서 뒤돌아보면 멋진 바위 위에 우뚝 솟아있는 삼층석탑의 모습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우측 '문화유적탐방로' 이정푯말이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용장계곡을 가로지르는 설잠교가 나타난다.

 

 

 

                  ▲ 설잠교

                  ▲ 설잠교 건너 고위봉 갈림길의 이정표

 

설잠교를 건너면 이정표(←고위봉, 이영재 0.95km/↓금오봉 1.7km, 용장사지 0.6km/→용장마을 1.85km)가 설치된 갈림길. 좌측의 등산로는 봉화대능선의 이영재나 백운재를 거쳐 고위봉으로 오르는길이다.

 

 

 

우측으로 계곡을 끼고 내려가면 또 다른 고위봉가는 길이 갈라지는 ┫자 갈림길과 이정표(←고위봉 1.9km/↓금오봉 2.8km, 용장사지 1.7km/↑용장마을 0.75km)가 있다. 좌측 길은 천우사를 거쳐 고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이다.

 

 

                  ▲ 두번째 고위봉 갈림길(사진 上)

                     두번째 고위봉 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下)

 

산길이 끝나는 용장마을 직전 계곡의 돌다리를 건너면 이정표(←고위봉 2.2km/↓금오봉 3.1km/→용장마을 0.45km)가 설치된 시멘트 포장길에 이르게 된다. 또 다른 고위봉 등산로가 갈라지는 곳으로, 좌측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음사~열반재를 거쳐 고위봉(494.6m)에 오르게 된다.

 

 

                  ▲ 산길 탐방로가 끝나는 계곡의 돌다리(사진 上)

                     뒤돌아본 산길 탐방로 끝(사진 下)

 

우측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용장마을을 지나 2차선 포장도로 변에 자리한 용장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 용장사에서 거주하며 한국 최초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김시습

17:25=>용장주차장

     주차장에는 경주국립공원(남산지구) 안내도와 '이야기가 있는 남산 팔영마을' 안내도 등이 있다.

 

전세버스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임해전지) 등 야경 관광을 위해 전세버스에 오르며 두번째 남산 탐방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경주 탐방을 하게 되면 고위봉 산행과 고위봉 등산로 주변의 유적(천룡사와 칠불암 주변)들을 탐방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