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호남권

순천(順天) Ⅲ편: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아름다운 동행! 낙안읍성(樂安邑城)

왕마구리 2014. 4. 22. 21:22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여행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대한민국 생태 수도 순천 탐방은

호남정맥 산줄기에 자리한 조계산(889m) 기슭에 아름다운 경관,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루어 명승 제65호로 지정된 16국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 법보, 승보)의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와 많은 선승을 배출한 임제선풍의 대쪽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량이자 천년고찰인 한국불교 태고총림 선암사.

전국 유일하게 남아있는 납매(납월매) 6그루와 700년 이상된 야생차나무가 자라고 있는 선종가람 금둔사, 그리고 역사와 민속, 생태가 어우러진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도시로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 등재 및 CNN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된 대한민국 3대 읍성의 하나! 순천 낙안읍성 등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순천 탐방에서 대한민국 대표 생태관광지인 순천만, 임진왜란 7년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일본군에 의해 축성된 순천왜성과 60~80년대 달동네 추억의 거리로 조성된 드라마촬영장 등은 짧은 일정으로 탐방을 하지 못하여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박람회장을 새롭게 꾸며 2014년 4월 20일 개장하게 될 순천만정원과 함께 다음 기회에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이번 탐방에 포함된 천자암 쌍향수는 2008년 6월 7일 호남정맥 제16구간(붓재~오도재) 산행을 마치고, 낙안읍성은 2008년 7월 5일 호남정맥 제18구간(접치~석거리재) 산행 때 이미 탐방한 곳이지만 6년만에 다시 찾게된 여행지가 되었다.

 

 

이번 순천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송광사, 선암사 및 금둔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그리고 낙안읍성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송광사와 선암사에는 다수의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각각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하며, '천자암 쌍향수'는 승보사찰 송광사<2>에 함께 게재를 한다.이번 순천 탐방은 송광사, 선암사 각 2편씩 포함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Ⅰ편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1>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Ⅰ편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2>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Ⅱ편 : 청정도량인 천년고찰! 한국불교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1>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Ⅱ편 : 청정도량인 천년고찰! 한국불교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2>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Ⅲ편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아름다운 동행! 낙안읍성(樂安邑城)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Ⅳ편 : 국내 유일의 납매와 700년 이상된 야생차나무의 선종가람! 금둔사(金芚寺)

 

【 일 정 표 】2014년 4월 3일(목)-4일(금) 1박2일

                             ◈ 첫째날(4/3) 오후 : 송광사-천자암 쌍향수

                             ◈ 둘째날(4/4) : 낙안읍성-금둔사-선암사

 

◀ Ⅲ편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낙안읍성(樂安邑城) ▶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도시! 

 

 

【 낙안읍성 소개 】

*사적 제302호(1983년06월14일 지정)

*면적:223,108㎡(성내:135,597 + 성외:87,511)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

 

조선시대의 성곽유적이다.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태조6년(1397)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왜구를 토벌하고, 이때 백성들을 동원하여 토성을 쌓은 것이 현재 낙안읍성의 전신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그후 1424년부터 흙으로 쌓았던 읍성을 여러 해 동안 돌로 쌓으면서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조선 후기 인조4년(1626)에는 임경업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 보이는 석성으로 중수했다. 한국전쟁이후 많은 훼손이 있었으나, 1983년 성과 마을이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상당 부분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길이 1.41km, 높이 4m로 낙안면의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3개 마을, 넓은 평야지대에 쌓은 긴 직사각형의 석성으로, 1~2m 크기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아 끊어진 곳 없이 이어져 있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평소에는 성의 출입문 구실을 하지만 전쟁시 적군을 막아주는 방어역할을 하던 옹성은 서문터인 낙민루와 남문터인 쌍청루에만 자리하고 있다. 성곽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쌓고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 돌로 쐐기박음을 했다.

 

◀ 낙안읍성의 봄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돌출된 4군데의 치성이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 낙안읍성의 여름(사진 左)과 가을(사진 右)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성곽으로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원형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정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하여 2011년 3월 1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성안에는 50여 가구의 민가가 있으며 실제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으며, 보통 1가구당 2~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구성되었다.

초가집은 3칸 정도릐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 외 재래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국가지정 문화재 10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3점을 보유하고 있다.

 

『 임경업 장군과 누나의 아름다운 내기 』

낙안읍성 군수였던 임경업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누나는 힘든 성곽을 쌓는 동생을 위해 내기를 했다.

임경업 장군이 성곽을 앃는 동안 누나는 성을 쌓는 군사들의 군복을 짓는데 누가 더 빨리 끝내는지 겨루는 내기였다고 한다.

봄에 목화를 심고 가꾸어 수확을 하여 2천여 명이 넘는 군사들의 군복을 만드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옸다.

누나가 2쳔여 벌의 옷을 다지어 놓고 나서 성곽을 보니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만큼 성곽을 쌓기는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던 것이다.

누나는 일국의 장수를 아녀자가 이기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을까 염려돼, 다지어 놓은 군복 중 한 벌의 옷고름을 잘라 놓고 성곽이 다 쌓아지기를 기다렸다가 동생이 성곽을 모두 완성한 후 다시 달아 일부러 져주었다고 한다.

 

                                                                                     낙안읍성의 겨울 ▶

◈ 낙안읍성 연혁

= 삼한시대 마한

= 삼국시대 파지성

= 고려 태조23년(940) 낙안군(양악)으로 개칭

= 조선 태조6년(1397) 낙안태생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토성 축조

= 조선 세종6년(1424)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 조선 인조4년(1626)~6년(1628)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석성 완공

=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로 지정

= 2011년 3월 1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 낙안읍성 노거수(老巨樹)

*전라남도기념물 제133호(1990년12월05일 지정)

*수량:15그루

낙안읍성내 노거수들은 낙안읍성 성벽과 성안에 심어진 나무들로 은행나무 3그루, 팽나무 6그루, 푸조나무 2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등 모두 15그루가 있다. 객사 뒷편의 길이 약 150m에 이르는 성벽에는 팽나무 5그루, 푸조나무 2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등 모두 10그루의 나무가 있고, 객사 동쪽에 팽나무 1그루, 객사 뒷편 마당에 큰 푸조나무 1그루가 있다

 

.

낙안읍성 동문에서 남서쪽 50m 거리와 남내리 객사 남쪽 110m 거리, 그리고 객사 남서쪽 130m 거리에 각각 은행나무 한그루씩 심어져 있다.

나무의 크기는 다양한 편이며 나이를 200년 이상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둘레가 3m이상 되는 것으로 팽나무 5그루, 은행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푸조나무 2그루 등이며, 300년 이상은 푸조나무 1그루, 팽나무 1그루, 은행나무 1그루 정도로 추정된다.

닉인읍성이 세워진 것은 인조4년(1626)인데 300년 이상된 나무들은 이때 기념으로 심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낙안읍성의 노거수는 오늘날 낭간읍성과 그 주변의 경치를 더울 아름답게 해주고 있으며 나무의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나무가 오래되고 생물학적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어 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낙안읍성 주요 관람코스

 

낙안읍성 관람코스는 소요시간에 따라 크게 3가지가 있다.

 

 

= A코스(약 1시간 소요) :

동문(낙풍루)-임경업장군비각-객사-놀이마당-동헌(사무당)-내아-낙민루-낙민관자료전시관-서문-성곽길/전망좋은곳-남문-옥사-연지-동문

= B코스(약 2시간 소요) :

동문(낙풍루)-임경업장군비각-객사-놀이마당-동헌(사무당)-내아-낙민루-낙민관자료전시관-서문-상설체험관-대장금세트장-성곽길/전망좋은곳-남문-뿌리깊은나무박물관-남문--큰샘-옥사-연지-동문

= C코스(약 4시간 소요) :

동문(낙풍루)-임경업장군비각-객사-놀이마당-동헌(사무당)-내아-낙민루-낙민관자료전시관-서문-상설체험관-대장금세트장-큰샘-남문-뿌리깊은나무박물관-고인돌공원-동문-서문-성곽길/전망좋은곳-남문-옥사-연지-동문

 

                  ▲ 낙안읍성 안내도

 

2008년 7월 5일 호남정맥 제18구간(접치~석거래재) 산행을 마치고, 낙안읍성 내 난전음식점을 찾아 점심식사 및 뒤풀이시간을 갖고 낙안읍성 탐방을 하였으니, 횟수로 만 6년만에 다시 낙안읍성 탐방을 하게 되었다.

2008년은 사계 중 여름 탐방이었다면, 이번 탐방은 봄 탐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당시 탐방 때는 주말이라 그런지 동문 앞에서 거행된 수문장 교대식까지 관람을 하였지만, 이번 탐방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지 않아 관람치 못하고 'A코스'를 따라 낙안읍성 탐방을 실시하였다.

낙안읍성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9개(제92호~제100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낙안객사', 잔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7호 '임경업장군 비각', 그리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133호 '낙안읍성 노거수'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중요민속문화재는 A코스 탐방 코스에 포함된 중요민속문화재 제95호 '낙안성 김대자가옥'과 제96호 '낙안성 주두영가옥'만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낙안읍성 탐방 】

「 탐방코스 」 동문(낙풍루)-임경업장군비각-객사-놀이마당-동헌(사무당)-내아-낙민루-낙민관자료전시관-서문-성곽길/전망좋은곳-남문-옥사-연지-동문

낙안읍성 소개는 상기 탐방 코스를 따라 진행하며 만난 문화재나 주변의 풍경을 위주로 탐방 순서대로 소개를 하게 된다.

 

♧ 낙안읍성 동문(낙풍루)

 

 

 

 

                  ▲ 낙안읍성 동문 주변의 전경(위에서 부터)

                     (사진 1)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이 설치된 동문

                     (사진 2) 성안에서 바라본 동문과 낙풍루

                     (사진 3) 동문밖에서 바라본 남쪽 성벽

                     (사진 4) 낙풍루에서 바라본 북쪽 성벽

 

동문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설치하였거, 성문 위에는 낙풍루가 있다.

 

 

                  ▲ 낙안읍성 동문의 낙풍루 

 

 

 

 

                  ▲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에서 바라본 전경(위에서 부터)

                     (사진 1) 낙풍루에서 바라본 남쪽 성곽길

                     (사진 2) 낙풍루에서 바라본 북쪽 성곽길

                     (사진 3 & 4) 동문의 옹성 상부

                     (사진 4) 낙풍루에서 바라본 성내 풍경

 

*동문 앞 석구(石拘)

우리나라에서 개를 수호신으로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

일본의 경우는 새로 짓는 신사나 절에도 정문 밖에 돌로 만든 개를 앉히고 '고마이누(犬, 高麗犬)'라고 부르는데 고마이누는 고려개라는 뜻이다. 따라서 고려의 승려들이 불법과 절 짓는 일 외에 개도 함께 보급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데, 동문 밖에 있는 석구는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읍성의 석구는 원래 3마리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한마리는 멸악산(지금의 오봉산)이 험준하고 산세가 강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고자 세웠으며, 또 한마리는 제석산과 거선붕의 사나운 기운을, 북쪽의 한마리는 음전산, 조산, 우산, 고동산의 기운을 누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2기만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낙안에 유일하게 존재한다.

 

♧ 낙안읍성 임경업장군 비각(林慶業將軍 碑閣)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7호(1984년02월29일 지정)

 

 

 

낙안읍성 내의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가에 있는 한 채의 비각과 그 안에 서 있는 비로, 임경업장군의 어진 다스림을 기리고 있다.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4년(1626) 낙안지역의 군수로 부임해 왔다. 인조6년(1628) 3월 서울로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축조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큰 공을 세웠다.

 

비각내 선정비▶

 

 

    ▲ 낙안읍성 비각

 

이 지역에는 그에 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를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신봉하기도 하여 매년 정월 보름이면 낙안면 주민들이 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이다. 앞면과 옆면의 기둥사이에는 붉은 막대들을 세워 놓았고, 뒷면은 길다란 널판을 끼워 벽을 이루게 하였다. 비각 앞에는 '전군수임장군비각 영건표적비'가 자리하고 있고, 비각 앞면 윗부분에 '차임장군비각판상운(1893, 신명우)'과 '비각문관중건기(1952, 김상언)'이라 새긴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어, 영조24년(1748)에 비각을 세운 후 1893년과 1952년에 각각 보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이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고, 귀가 표현되어 있으며 코는 닳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등은 볼록해져 있으며, 중앙에 비를 꽂아 두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몸 앞면 중앙에는 '군수임공경업선정비'라는 비의 명칭을 세로로 새겨 놓았고, 왼쪽 아래부분에 건립연대를 적어 놓았다. 이 기록을 통해 임경업이 군수직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던 인조6년(1628)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 낙안객사(樂安客舍)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0호(1990년02월24일 지정)

조선시대 건물로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예를 올리고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던 건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군수 이인이 세종32년(1450)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고 '승주문헌집'에 인조9년(1631)과 철종8년(1857)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객사 중심 건물만 남아 있었는데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1982년에 수리하였다.

 

 

 

 

총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로 정면 3칸짜리 건물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이 대청으로 붙어 있는 구성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중앙의 3칸 건물은 앞뒤로 간략하게 맞댄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는 반면, 부속건물은 옆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앞면에 연봉우리와 연꽃 모양으로 장식해 놓았지만 부속 건물에는 모두 잘라 간소하게 꾸몄다. 한편 본 건물에 전패를 두었으나 학교 건물로 사용하면서 전패 봉안처는 없어졌다.

안쪽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객사에 맞는 색상과 문양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용 몸 모양의 대들보 양 끝에 남아있는 문양은 옛 법식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있던 주변 건물들은 없어졌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객사의 양식을 갖춘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 낙민루(樂民樓)

 

 

 

 

조선 헌종때 군수 민충현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924년 일부분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동안 희노애락을 나눈 누각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었던 것을  1986년 기존의 초석위에 17평 규모로 겹처마 팔작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

 

♧ 낙안읍성 동헌(東軒, 사무당<使無堂>)

 

 

 

                  ▲ 낙안읍성 동헌인 사무당

 

                  ▲ 낙안읍성 관아 대문인 문간채 전,후면

 

이 건물은 조선 왕조 때 지방 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동쪽은 수령이, 서쪽 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 낙안읍성 동헌의 내아

 

좌측에 있는 건물은 내아(內衙)로서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내동헌이라고도 한다.

당초 건립연대나 퇴락한 연대는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으나 문헌을 참고하고 옛 터의 발굴조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1990년 복원하였다.

 

                  ▲ 낙안읍성 동헌 내아의 문간채

 

『 낙안읍성의 중요민속문화재 』

 

♧ 낙안성 김대자가옥(樂安城 金大子家屋)

*중요유형문화재 제95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0

 

 

                  ▲ 낙안읍성 김대자가옥

                                    외부에서 바라본 전체 전경(사진 上)

                                    담장 너머로 바라본 앞마당 전경(사진 下)

 

19세기 초에 건축된 집으로 추정되며, 낙안성의 동서를 잇는 큰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초가집이다. 반듯하고 넓은 대지에 자리한 이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깊숙한 자리에 안채가 있고, 대문 바로 옆 서쪽에 화장실이 있다.

 

 

한일자 4칸 전퇴집인데 뒤퇴와 머리퇴는 툇보없이 기둥과 도리로만 덧달아 내었다. 안채는 서쪽부터 부엌, 안방, 마루, 작은방으로 배열되어 있고 부엌과 안방의 사이에 흙으로 벽을 만들어 놓았다. 그 중간쯤에는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와 광솔불을 켜던 선반을 설치한 자리가 있다. 앞쪽벽의 윗부분에는 빛이 통할 수 있는 봉창들이 있어 부엌이 좀 밝다.

 

 

                  ▲ 낙안읍성 김대자가옥 안채(사진 左)와 안채 건너방 작은 부엌(사진 右)

 

 

◀ 안채 상부가구

 

 

특이한 점은 작은방 처마 밑에 토담을 둘러쳐서 작은 부엌을 만든 것으로 이것은 중부지방의 오래된 민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구조는 2고주 5량인데 뒤퇴보가 없으며, 기둥머리는 상투맞춤의 민가방식에 따랐다.

안방에는 앉았을 때 눈높이에 맞는 창문이 달려있어 채광과 함께 통풍도 되고 앞을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마루는 작은방을 넓게 하기 위해 좁게 만들었다. 작은방 앞에는 'ㄱ'자로 꺾인 돌담을 쌓아 흙바닥의 돌담 안쪽을 헛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장독대는 부엌 앞쪽으로 담을 의지하여 아담하게 꾸몄다.

외부 공간은 그 짜임새의 맛은 없지만 장독대의 모양새, 집앞의 윗돌(기단석)과 디딤돌 구조의 정교한 상세(특히 안방문의 미닫이 문살), 각종 민구 가정신앙에 관련되는 민속자료(부뚜막 위의 조광) 등 모두 19세기 말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특색있는 평면구조와 일부 건축구조에서 특스한 면을 보이고 있어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낙안읍성 김대자가옥 부엌 내부 ▶

 

 

*중요민속문화재 제 92호 낙안성 박의준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93호 낙안성 양규철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94호 낙안성 이한호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97호 낙안성 최창우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98호 낙안성 최선준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99호 낙안성 김소아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100호 낙안성 곽형두가옥

 

◀ 낙안읍성 주두열가옥 안채

 

♧ 낙안성 주두열가옥(樂安城 朱斗烈家屋)

*중요유형문화재 제96호(1979년01월26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2

낙안성의 동문과 서문을 잇는 큰 도로의 서쪽, 큰 길로부터 북쪽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위치한 초가집이다. 건립연대는 19세기 초로 추정된다.

부엌 1칸, 방이 2칸인 아주 작은 한일자 3칸 전퇴집으로 담장을 쌓다가 터 놓은 부분이 대문이다. 뒷벽은 처마 밑까지 올려쌓아 내부 공간을 크게 쓰며, 머리퇴는 특이하게 모퇴만 달아내고 토담을 둘러서 헛정을 만들었다. 이런 기법은 산골의 작은 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제법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 깊숙한 곳에 안채가 남향하고 자리잡고 있다. 구조는 2고주 4량인데 뒤퇴를 담장 형식으로 덧달아내어 5량집처럼 처리했다. 아무래도 안 지붕의 길이가 뒷 것보다 길게 뽑혀있다.

안채는 부엌, 큰방, 작은방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큰방 뒷편으로 작은 벽장이 있다. 작은방의 옆쪽으로는 'ㄱ'자로 꺾인 돌담을 쌓아 그 사이의 공간을 헛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부엌 앞에는 우물이 설치되어 있고 넓은 마당의 한 곳을 채마밭과 텃밭으로 쓰고 있다.

장독대와 확기둥의 민구, 대나무를 써서 만든 부연의 처리기법 등은 민가의 고유한 정취를 맛보게 한다.

 

 

♧ 낙안읍성 서문지

 

 

 

 

                  ▲ 낙안읍성 서문지에서(위에서 부터)

                      (사진 1) 서문지 전경

                      (사진 2) 서문지의 성곽 위에서 바라본 북쪽 성곽 전경

                      (사진 3) 남쪽 성곽길을 따르다 뒤돌아본 서문지 일대 전경

 

♧ 낙안읍성 성곽길/전망 좋은 곳

 

 

 

 

                  ▲ 낙안읍성 서문지와 남문 중간에 위치한 전망좋은 곳에서(위에서 부터)

                      (사진 1) 낙안읍성 성안 전경

                      (사진 2) 낙안읍성 성곽길과 성 안밖의 마을 전경

                      (사진 3)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사진 4) 뒤돌아본 '전망좋은 곳' 계단길

 

♧ 낙안읍성 남문(쌍청루, 雙淸樓)

 

 

 

 

                  ▲ 낙안읍성 성밖에서 바라본 남문(사진 上)

                     옹성에서 바라본 남문의 쌍청루(사진 中左)와 성곽길에서 바라본 쌍청루 측면(사진 中右)

                     옹성에서 바라본 동문으로 이어지는 낙안읍성 성곽(사진 下)

 

 

                  ▲ 낙안읍성 남문의 옹성

 

♧ 낙안읍성 연지(蓮池) & 옥사지

 

 

                  ▲ 낙안읍성 연지

                  ▲ 낙안읍성 옥사

 

옥사지는 옛날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했던 건물 옥터로서 다른 읍성과 다른 점은 관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점이 다름 점임을 알 수 있다.

옥사 주변의 연지는 죄수들의 탈주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낙안읍성 마을 토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