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호남권

정남진 장흥(長興)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 사인정 및 방촌리 석장승

왕마구리 2015. 3. 18. 02:01

◀ 녹색 건강휴양촌 정남진 장흥(長興)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에 이르는 경계는 고지대로 화순, 보성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득량만이 접하고 안양, 용산, 대덕,회진면 등 4개 면과 관산읍은 해안선에 연해있어 고흥군, 완도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부에서 서남쪽 경계는 산악지대로 영암,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용반들, 부산들, 한들평야 등 동북쪽의 보성강 유역과 남부의 득량만에 흐르는 대소하천 유역에 평야가 산재해 있다.

북동쪽으로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지나며, 유치면의 삼계봉(503.9m)을 거점으로 동남으로는 장평면의 봉미산, 벽옥산(479.2m) 등에 연결되고, 중앙으로는 유치면의 가지산(509.9m), 용두산, 보성군과 경계인 장흥면의 제암산(807m), 안양면의 사자산(666m), 곰치산 등에 연결되어 있다.

서남으로는 유치면의 민들고랑(479.9m), 국사봉(613.3m), 부산면의 수인산(516.2m), 용산면의 부용산(609m), 관산읍의 천관산(723.1m)과 양암봉(464.9m)으로 연결되어 남북 일대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강진군의 3대 하천의 하나인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유치, 부산, 장흥에 이르기까지 대소 20개 하천이 합류되어 장흥군에서 예양강(일명 금강)이라고 하고 사인암에 이르러 영암강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천과 합류하여 강진만으로 흐른다. 강 유역에는 용반, 부산, 한들 등의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여 장흥군의 명산품의 하나인 은어가 여름철에 서식하고 있다.

기타 대소 하천들 중 동북쪽 장평면의 9개 하천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남상천의 16개 하천은 득량만으로 흐르고 있다.

정남진은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위치한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하여 장흥군에서 발굴한 지역브랜드로서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려오면 도착하는 해변이며 북쪽의 가장 추운 지방인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있다.

그 좌표점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표시되어 있다.

이번 장흥 여행은 남쪽 끝 서울의 정남쪽에 위치하여 이동거리가 멀고,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지정된 천관산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2박3일로 실시가 되었다. 첫째날 숙소는 다음 날 천관산 산행을 위해 산행들머리와 가까운 산림청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정하였으며, 장흥의 관광명소 등의 탐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둘째날 늦은 시간이라도 장흥 탐방을 1박2일으로 마치고 떠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징흥의 별미인 징흥삼합(득량만의 키조개와 새조개, 표고버스, 그리고 한우 쇠고기 구이)을 맛보기 위해 장흥읍내로 이동, 숙소를 정하고 토요시장에서 저녁에는 삼합, 다음 날 아침은 3대곰탕 등의 별미를 즐기고 나머지 관광명소를 탐방하였다.

사흘간의 장흥탐방이라 관광명소만 탐방하지 않고 먹거리 탐방으로 둘째날에 '장흥삼합'으로 저녁식사를 하였고, 세째날 아침식사로는 '3대곰탕',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관산읍 '천관다원(T.061-867-7811)'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차인 '청태전(떡차)'를 음미하고 사흘간의 장흥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의 자생차! 청태전 」

우리 고유의 전통차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유일한 차이며 떡차의 일종이고 고려시대에 전국 19개소 다소(茶所) 중 13개소가 장흥에 존재했을 만큼 장흥은 차산업이 성행했던 지역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장흥차의 품질이 으뜸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경세유표, 가오고락과 임하필기에 장흥의 떡차(청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자생찻잎을 정통제다법으로 제다한 청태전은 만든 직후 녹차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나, 6개월여의 숙성과정을 거쳐 담백하고 독특한 맛과 아름다운 향을 품은 부드러운 발효차이다. 중국의 보이차와 비교가 되곤 한다.

 

장흥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보림사와 천관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천관산은 테마별 분류 '100대명산'에, 그리고 기타 관광명소들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보림사에는 다수의 국가지정문화재를 포함하여 많은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는 등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1>

- 정남진 장흥(長興) Ⅰ편 : 동양의 3보림 중 하나!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2>

- 정남진 장흥(長興) Ⅱ편 :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 천관사(天冠寺)

- 정남진 장흥(長興) Ⅲ편 : 호남의 5대 명산! 천관산(天冠山)

- 정남진 장흥(長興) Ⅳ편 : 장흥의 천년기념물들! 옥당리 효자송과 삼산리 후박나무

- 정남진 장흥(長興)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 사인정 및 방촌리 석장승

 

【 일 정 표 】2015년 2월 12일(목)-14일(토) 2박3일

                             ◈ 첫째날(2/12) 오후 : 보림사

                             ◈ 둘째날(2/13) : 천관산 산행-장흥 방촌리 석장승-장흥 옥당리 효자송(천연기념물)-장흥 삼산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정남진오산도전망대

                             ◈ 세째날(2/14) : 장흥향교-사인정-탑산사-장흥존재고택(위계환가옥)-장흥죽헌고택(위성룡가옥)-천관사

 

◀ Ⅴ편 : 장흥의 문화재들

장흥향교(長興鄕校)

장흥 사인정(長興 舍人亭)

장흥 방촌리 석장승(長興 傍村里 石長丞)

 

♧ ♧ 장흥향교(長興鄕校)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7호(1985년02월25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교촌남외길 33(교촌리)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7년(1398)에 세워진 장흥향교는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8년(1630)에 수리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쳤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제기고 등이 있다.

 

 

                      ▲ 장흥향교 외삼문

 

경사지에 위치한 장흥향교는 내삼문을 경계로 배움의 공간과 제사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 장흥향교 명륜당

 

                      ▲ 장흥향교 명륜당과 내삼문 사이의 동재

 

                      ▲ 장흥향교 명륜당과 내삼문 사이의 서재

                      ▲ 장흥향교 서재의 1칸 규모의 앞마루

 

앞쪽에는 외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과 전사청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전사청은 1981년에 지은 것으로 제사를 관리하는 곳이며, 원래 대성전 앞에 동무, 서무가 있었으나 1970년에 철거하였다.

 

 

                      ▲ 장흥향교 제사공간인 대성전 일원(사진 上)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사진 下)

                      ▲ 장흥향교 전사청 앞에서 바라본 제사공간인 대성전 앞 마당 전경

                      ▲ 장흥향교 제사공간인 대성전

 

                      ▲ 장흥향교 제사공간인 대성전 전면의 2칸 규모의 공간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급 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 장흥향교 보호수 은행나무 2그루 」

장흥향교 외삼문 안쪽 좌우에 식재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향교 창건 이후 조선 중종 때 진사 백문손(1502~1582)이 향수목으로 은행나무 2그루를 식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교 우측 나무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2갈래로 자라 2그루처럼 보인다. 입교문 양쪽에 향수로 식재되어 우직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수령은 약 450년으로 수고 18m와 15m이다. 나무둘레 각 5m, 4.7m로 1982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하마비(下馬碑) 」

태종13년(1413) 처음으로 종묘와 궐문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란 푯말을 세웠다. 이것이 후일 '하마비'를 세우게 된 계기이다.

대개 왕장이나 성현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선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누구든지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타고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 장흥향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마을 도로변에 세워진 하마비

 

그후 세종1년(1419) 상왕전, 노상왕전 문앞에 돌로 만든 비를 건립했으며. 중종14년(1519)에는 성균관에 하마비를 세운 일이 있다.

장흥향교 입구 하마비는 충렬, 고촌, 남외리 마을 길이 옛날 남문으로 통한 거리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며, 향교, 동헌이 있었기에 1930년경 남외리 거주 김갑기씨가 백반석을 다듬어 제작한 것으로 지금까지 내려오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 사인정 뒷편의 암봉(사진 上)

                         사인정 종합안내도(사진 中)

                         사인정 오르는 돌계단길(사진 下)

 

 

♧ ♧ 장흥 사인정(長興 舍人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5호(1974년12월26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진흥로 891(송암리)

 

 

설암 김필(1426~1470)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단종(재위 1452~1455)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은 계유정란(1453) 후 벼슬을 버리고 장흥에 내려와 숨어살다가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舍人)'이란 벼슬 이름을 따서 사인정이라 불렀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을 잘 이용하였다. 잡석으로 된 낮은 기단을 만들고, 주춧도 위로 올라가면서 직선적으로 가늘게 표현한 민흘림의 원형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네모서리의 처마끝이 치솟는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주위를 모두 우물마루로 둘렀다. 건물 안에는 많은 현판들이 있고 대들보에는 상량문이 있는데 숭정후 3년 병오 초봄(崇禎後 三年 丙午 暮春)이라고 록되어 있어, 이것을 볼 때 현재의 건물은 정조10년(1786)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인정 주변에는 설암 김필 선생의 사당인 영정각, 설암각 등의 건물이 있고, 김구 선생의 친필로 알려진 사인정 옆 바위에 새겨진 '第一江山(제일강산)' 글씨, 그리고 이 바위 옆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약 150여m를 올라가면 바위 절벽에 설암 선생의 각상이 있다고 한다.

 

                      ▲ 설암공의 진영 칠분상이 음각된 곳으로 추정되는 암봉 정상의 암벽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따라 암봉 정상 아래까지 올라 갔으나 각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발견하지 못하였고, 단지 정상부를 이루는 거대한 바위절벽에 각상이 있을거란 추정만 하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했다.

사인암 입구에는 신도비 등이 있다.

 

「 제일강산(第一江山) 유래 」

바위에 새겨진 第一江山 이라 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 사인정 옆 동쪽의 바위에 새겨진 '第一江山' 김구 선생의 친필

 

1948년 정부수립이후 실시된 총선의 유세차 장흥초등학교에 오셔서 이천여 청중 앞 연단에서 장흥과 나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와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곳이다. 본인이 상해임시정부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이곳 사인정에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1박하면서 지친 몸을 쉬어간 인연이 있는 곳이다."라고 직접 말씀하신 바 있으며, 또한 선인들도 구전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써 주신 글씨라고 지금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 영정각

 

「 영정각(影禎閣) 」

사인정 동쪽 '第一江山' 이라고 바위에 새겨진 곳으로부터 동북 방향으로 약 150m 지점에 10여m 높이 암벽에 계유정란(1453) 때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오셔서 운둔생활을 하였던 설암공의 진영 칠분상이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작용으로 마멸되어서 더 이상 보존하기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 영정을 모시자는 후손들의 여망에 따라 영정각을 지어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2005년 6월)

 

                      ▲ 설암각과 영정각 

 

 

                      ▲ 설암각

 

♧ ♧ 장흥 방촌리 석장승(長興 傍村里 石長丞)

*중요민속문화재 제275호(2013년06월14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72

 

 

장승은 마을 수호신이나 이정표 또는 경계를 표시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장승은 도로를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것은 미륵석불, 벅수, 돌부처, 여장승 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서쪽의 것은 남장승, 진서대장군이라 부르고 있다.

장승은 머리 부분 이외에는 별 다른 장식이 없이 만들어져 있는데 진서대장군의 주먹코는 얼굴 부분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특이하다.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가는 23번 국도변 양쪽에 서 있는 2기의 장승으로서 고려말에 건립한 성문장승이라는 설과 조선시대 후기(17~18세기)에 창궐한 천연두를 퇴치하고자 세웠다는 설이 있다.

현재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인 별신제의 신격으로서 마을 수호의 기능을 하는 흔치 않는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