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한려수도의 관광명소! 보물섬 남해(南海) 제Ⅲ편:남해대교와 충렬사

왕마구리 2014. 5. 4. 01:34

◀ 한려수도의 관광명소! 보물섬 남해(南海)를 찾아서

이번 탐방은 고교 동창들의 모임인 산우회 봄나들이 행사로 기획된 1박2일간의 탐방으로 예년의 벚꽃 만개시기에 맞추어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하동의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인근의 관광지(화개장터와 최참판댁), 그리고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인 보물섬 남해를 찾아 '남해12경'을 위주로 관광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첫째날 이루어진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상 고온으로 예년보다 빠른 시기에 벚꽃이 개화하고 만개하는 바람에 꽃이 지고 말아, 신록의 벚나무길을 잠시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또한 최진사댁은 몇 차례 탐방을 한 곳이라 회원들만 탐방을 시키고 인근의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여 혼자서 30여분간 평사리들판을 하아킹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였았다.

남해 탐방에서는 첫째날 맑은 날씨속에 순조롭게 남해12경 중 세 곳을 탐방하였으나,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며 흐린 날씨가 이어져 '남해 제1경'인 금산과 보리암 탐방에서 남해 앞바다와 기암괴석들로 뒤덮힌 금산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십수년만에 다시 금산 정상에 서는 감회를 맛 볼수가 있었다.

보물선 남해는 주변 지역 탐방 계획을 세워 다시 찾기로 하고, 그때 일부만 탐방한 남해12경을 제대로 탐방하기로 하며 아쉬움을 접기로 한다.

이번 1박2일간의 '하동 & 남해' 탐방은 남해에서 탐방한 관광명소만 소개하기로 하고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7편으로 작성을 한다.

 

【 남해(南海) 소개 】

장수의 고장으로 이름난 남해는 지석묘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의 12개 부족국가 중 군미국 또는 낙노국에 속하였다고 추측된다.

삼한시대를 거쳐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진주 관할인 고령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남해가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7년(687)이다. 신라는 남해도를 전야산군이라 칭하고 청주(현 진주) 관할에 두어 태수를 지방장관으로 하여 2개현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후 경덕왕16년(757)에 단행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해군으로 개칭되었고 강주(현 진주)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9년(1018)에는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남해현이라 개칭하고 현령을 두었다. 그 후 고려 말기부터 왜구들이 남해안 일대를 약탈,살생을 자행함에 따라 정상 행정 수행이 불가능하여 공민왕(1351~1353) 때에는 진주관내 대아천 부곡으로 행정관서를 옮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태종13년(1413)에 행정구역이 남해현은 일시 하동과 병합하여 하남현이 되었다가 하동현이 독립함에 따라 진주의 금양부곡과 합쳐져서 해양현이 되었고, 그 후 금양이 진주에 병합됨에 따라 남해현으로 복귀하였다.

당시의 행정관할은 경상도 우도에 속했으며, 종2품의 경주부윤 정3품의 창원대도호부사, 정3품의 진주목 밑에 종5품 현령의 소관으로 되어 있었고, 그 후 세조 원년에 지방방위조직을 일신하고 세조12년(1446)에는 관제개혁과 더불어 남해지방군은 진주진관진주목사인 첨절제사 휘하에 남해현령이 절제도위 금위로 관장하고 있었으며, 한편 수군은 제포진관 응천첨사 휘하에 평산포만호가 관장하고 있었다.

선조15년(1592)부터 임진,정유왜란의 전란지로 7년간은 거의 무인지경이 된 적도 있었고, 고종32년(1895)에 남해현이 남해군으로 개칭되었다. 1906년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으로 편입되어 8개 면으로 되었다. 1973년 이동면의 갈도가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79년 남해면은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이 되었으며, 1986년 4월 1일 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가 미조면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이 되었다.

2013년 12월 말 현재 면적은 경상남도의 약 3%인 357.66㎢이며, 이중 78.9㎢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는 47,244명으로 인구는 줄면서 가구 수는 늘어나는 추세이며, 65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여 장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평균 기온은 15.2º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며,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1,730㎜내외에 평균습도는 64%이다.

1읍 9명 222개리로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6개로 이루어져 있다.

 

                  ▲ 충렬사 안에서 뒤돌아본 외삼문

 

◈ 남해 12경

이번 관광에서 탐방한 곳(남해1경~6경)을 제외한 나머지 명소(남해7경~12경)는 간략하게 설명을 부연한다.

▷ 제 1경 : 금산과 보리암

    (금산 38경) 1.망대, 2.문장암, 3.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 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 제 2경 : 남해대교와 충렬사

▷ 제 3경 : 상주 은모래Beach

▷ 제 4경 :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 제 5경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

▷ 제 6경 :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 제 7경 : 노도 서포 김만중선생 유적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지 300여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소설가요,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 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러운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이외도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 제 8경 : 송정 솔바람해변

                상주 은모래해변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해변으로 특색있는 남국의 정취, 환경적으로 완벽한 해수욕장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해군은 1999년 7월 송정생태주차공원을 개장하고, 해수욕장 주변 가로등에 꽃바구니를 설치했다. 해수욕장을 운치있고 낭만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은빛이 나는 백사장과 명경지수같은 바닷물이 송림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맑은 바닷물과 송림으로 유명한 이곳은 서남향의 부드럽고 은빛나는 백사장 앞으로 탁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 준다.

백사장 길이 1,500m, 폭 90m, 면적은 15,120평에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º이다.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욕을 한 후, 때묻지 않은 자연의 청량감을 느껴 볼 수 있는 송정 솔바람 해변 부근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지 지정을 받고, 경상남도와 남해군은 해변을 비롯한 주변 25만평의 부지를 2011년까지 714역원을 투자하여 공공시설에 숙박시설, 그리고 야영장, 휴양소, 전망대를 만들어 국제적인 해양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 제 9경 : 망운산과 화방사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의 목관 묘비가 복원되어 있는 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 법전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는 교육의 장이다. 화방사에서 망운암으로 오르는 숲길 등반은 산사체험을 곁들인 멋진 산책코스이다. 망운암은 정상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암자로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돌일주문을 무심으로 지나면 중병을 낫게 한다는 영험의 기도 도량이다.

남해 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

화방사의 정적을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점점아 떠있는 작은 섬들과 강진만,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 연대봉애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붉게 타오르는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며 등산객들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어 전국 동호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화방사에서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으며, 망운암과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임도가 있어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 제10경 : 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물건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는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 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 근대화의 큰 주역이었던 우리 동포들에게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독일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이 독일식으로 꾸며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물미해안도로는 물건과 미조를 잇는 해안도로로 미조-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며, 지나는 마을마다 간직한 전설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내항도,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바라 볼 수 있고, "어짐을 더한다"는 포구, 가인포는 중국사람이 지나가다 밥 한 상을 대접받고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는 아홉 구비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 제11경 : 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빏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 석불, 조선 인조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 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그리고 문화재로는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는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 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 제12경 : 창선~삼천포대교

                총 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성.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드문 다리의 향연!!!

2003년 4월 28일 성웅 이충무공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3번국도)로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 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연결하는 340m의 하로식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사장교인 삼천포대교 등 다섯개의 교량이 다리 박물관을 방물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한 창성~삼천포대교는 총공사비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Ⅰ편 : (남해 제6경)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 가천마을 다랑이 논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Ⅱ편 : (남해 제1경)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錦山)과 3대 기도도량의 하나! 보리암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Ⅲ편 : (남해 제2경)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남해대교와 이순신 장군의 첫 무덤! 충렬사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Ⅳ편 : (남해 제5경)노량해전의 승장. 이순신 장군의 유해 도착지!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Ⅴ편 : (남해 제3경)한 폭의 수채화같은 남해안 최대의 해수욕장! 남해 상주 은모래Beach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Ⅵ편 : (남해 제4경)원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어업! 원시어업 죽방렴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Ⅶ편 : 이국적인 풍경! 독일마을

 

【 일 정 표 】2014년 4월 12일(토)-13일(일) 1박2일

             ◈ 첫째날(4/12) 오후 : (하동)십리벚꽃길-화개장터-최참판댁/평사리들판-(남해)남해대교&충렬사-관음포 이충무공유적-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다랭이논

             ◈ 둘째날(4/13) : 금산&보리암-상주 은모래Beach-죽방렴

 

제Ⅲ편 : (남해 제2경) 남해대교와 충렬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남해대교

이충무공의 첫 무덤! 충의와 넋을 기리는 충렬사

 

 

 

♧♧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

*사적 제233호(1973년06월1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1598년 11월 관음포에서 전사한 뒤 1599년 2월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시신을 안치했던 곳이다.

 

                  ▲ 충렬사 내삼문 앞 좌측에 있는충렬사비

 

인조10년(1632)부터 유림들이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고 효종9년(1659)에 사당을 건립하고 비도 다시 세웠다. 현종3년(1662)에 '충렬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사당, 재실, 비각,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충무공의 시신을 묻었던 자리에 가묘가 남아 있다.

 

 

                  ▲ 충렬사 외삼문(사진 上)과 내삼문(사진 下)

 

「 충무공을 기린 승장(僧將)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도운 '옥형'과 '자운'이라는 승장이 있었다. 자운은 충무공이 지휘하는 배에 올라 공을 세웠고, 옥형은 군량미를 조달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충무공이 전사하자 자운은 쌀 6백석을 노량으로 싣고 와 공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옥형은 여수 충민사 절에 초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바다에서 사고가 있을 때면 꿈에서 꼭 충무공을 보았다고 한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 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 충렬사 사당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내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4년(1663)에 퐁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지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하여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 충렬사 비각(사진 上)

                     사당 좌측의 충민공비(사진 下左)와 우측의 충무공비(사진 下右)

 

경내에는 비각,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충렬사비가 있다.

 

 

                  ▲ 충렬사 비각 내 비(사진 上)와 사당 뒤 정원의 이충무공 가묘(사진 下)

 

◈ 충렬사 입구에 세원진 비(碑)들

▷ 자암 김구 비(自庵 金絿 碑)

자는 대유, 호는 자암으로 성종19년(1488) 서울 연희방에서 출생, 약관 16세에 한성시에 장원하고, 20세에 중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중종 때 조광조에게 발탁되어 32세의 나이로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남해에서 13년간 유배되었다.

조선시대 4대 서예가 중 1인인 그가 남해에서 유배중에 저술한 '화전별곡'은 일점선도 남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경기체가이다.

이 비는 그의 6대손인 김만화가 남해현령으로 제직하던 숙종9년(1706)에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자암 김구 비(사진 上)와 삼도통제사 이태상 비(사진 下)

 

▷ 삼도통제사 이태상비(三道統制使 李泰祥碑)

이태상의 본관은 덕수, 자는 내숙으로 숙종27년(1701)에 출생핬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이다.

이태상이 진주병마사로 재직중인 영조36년(1760)에 남해 충렬사를 참배하고 청해루를 세웠다. 이 비는 1882년 전 판관 문경일의 감독하에 건립된 것으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리고, 백성의 세금을 탕감해 선정을 칭송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남해대교(南海大橋)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인 남해의 창선-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으로 동양 최대의 현수교이며,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6월 22일 개통된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람히 간직한 산 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탓던 한 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4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거뜬히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이어지는데,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벚꽃터널을 지나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남해 충렬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앞 바다에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떠 있다.

 

                  ▲ 충렬사 앞 바다의 실물 크기의 거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