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려수도의 관광명소! 보물섬 남해(南海)를 찾아서 ▶
이번 탐방은 고교 동창들의 모임인 산우회 봄나들이 행사로 기획된 1박2일간의 탐방으로 예년의 벚꽃 만개시기에 맞추어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하동의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인근의 관광지(화개장터와 최참판댁), 그리고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인 보물섬 남해를 찾아 '남해12경'을 위주로 관광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첫째날 이루어진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상 고온으로 예년보다 빠른 시기에 벚꽃이 개화하고 만개하는 바람에 꽃이 지고 말아, 신록의 벚나무길을 잠시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또한 최진사댁은 몇 차례 탐방을 한 곳이라 회원들만 탐방을 시키고 인근의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여 혼자서 30여분간 평사리들판을 하아킹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였았다.
남해 탐방에서는 첫째날 맑은 날씨속에 순조롭게 남해12경 중 세 곳을 탐방하였으나,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며 흐린 날씨가 이어져 '남해 제1경'인 금산과 보리암 탐방에서 남해 앞바다와 기암괴석들로 뒤덮힌 금산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십수년만에 다시 금산 정상에 서는 감회를 맛 볼수가 있었다.
보물선 남해는 주변 지역 탐방 계획을 세워 다시 찾기로 하고, 다음 방문때 이번에 일부만 탐방한 남해12경을 제대로 탐방하기로 하며 아쉬움을 접기로 한다.
이번 1박2일간의 '하동 & 남해' 탐방은 남해에서 탐방한 관광명소만 소개하기로 하고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7편으로 작성을 한다.
▲ 첨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노량 앞바다
【 남해(南海) 소개 】
장수의 고장으로 이름난 남해는 지석묘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의 12개 부족국가 중 군미국 또는 낙노국에 속하였다고 추측된다.
삼한시대를 거쳐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진주 관할인 고령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남해가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7년(687)이다. 신라는 남해도를 전야산군이라 칭하고 청주(현 진주) 관할에 두어 태수를 지방장관으로 하여 2개현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후 경덕왕16년(757)에 단행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해군으로 개칭되었고 강주(현 진주)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9년(1018)에는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남해현이라 개칭하고 현령을 두었다. 그 후 고려 말기부터 왜구들이 남해안 일대를 약탈,살생을 자행함에 따라 정상 행정 수행이 불가능하여 공민왕(1351~1353) 때에는 진주관내 대아천 부곡으로 행정관서를 옮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태종13년(1413)에 행정구역이 남해현은 일시 하동과 병합하여 하남현이 되었다가 하동현이 독립함에 따라 진주의 금양부곡과 합쳐져서 해양현이 되었고, 그 후 금양이 진주에 병합됨에 따라 남해현으로 복귀하였다.
당시의 행정관할은 경상도 우도에 속했으며, 종2품의 경주부윤 정3품의 창원대도호부사, 정3품의 진주목 밑에 종5품 현령의 소관으로 되어 있었고, 그 후 세조 원년에 지방방위조직을 일신하고 세조12년(1446)에는 관제개혁과 더불어 남해지방군은 진주진관진주목사인 첨절제사 휘하에 남해현령이 절제도위 금위로 관장하고 있었으며, 한편 수군은 제포진관 응천첨사 휘하에 평산포만호가 관장하고 있었다.
선조15년(1592)부터 임진,정유왜란의 전란지로 7년간은 거의 무인지경이 된 적도 있었고, 고종32년(1895)에 남해현이 남해군으로 개칭되었다. 1906년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으로 편입되어 8개 면으로 되었다. 1973년 이동면의 갈도가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79년 남해면은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이 되었으며, 1986년 4월 1일 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가 미조면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이 되었다.
2013년 12월 말 현재 면적은 경상남도의 약 3%인 357.66㎢이며, 이중 78.9㎢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는 47,244명으로 인구는 줄면서 가구 수는 늘어나는 추세이며, 65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여 장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평균 기온은 15.2º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며,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1,730㎜내외에 평균습도는 64%이다.
1읍 9명 222개리로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6개로 이루어져 있다.
◈ 남해 12경
이번 관광에서 탐방한 곳(남해1경~6경)을 제외한 나머지 명소(남해7경~12경)는 간략하게 설명을 부연한다.
▷ 제 1경 : 금산과 보리암
(금산 38경) 1.망대, 2.문장암, 3.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 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 제 2경 : 남해대교와 충렬사
▷ 제 3경 : 상주 은모래Beach
▷ 제 4경 :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 제 5경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
▷ 제 6경 :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 제 7경 : 노도 서포 김만중선생 유적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지 300여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소설가요,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 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러운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이외도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 제 8경 : 송정 솔바람해변
상주 은모래해변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해변으로 특색있는 남국의 정취, 환경적으로 완벽한 해수욕장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해군은 1999년 7월 송정생태주차공원을 개장하고, 해수욕장 주변 가로등에 꽃바구니를 설치했다. 해수욕장을 운치있고 낭만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은빛이 나는 백사장과 명경지수같은 바닷물이 송림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맑은 바닷물과 송림으로 유명한 이곳은 서남향의 부드럽고 은빛나는 백사장 앞으로 탁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 준다.
백사장 길이 1,500m, 폭 90m, 면적은 15,120평에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º이다.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욕을 한 후, 때묻지 않은 자연의 청량감을 느껴 볼 수 있는 송정 솔바람 해변 부근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지 지정을 받고, 경상남도와 남해군은 해변을 비롯한 주변 25만평의 부지를 2011년까지 714역원을 투자하여 공공시설에 숙박시설, 그리고 야영장, 휴양소, 전망대를 만들어 국제적인 해양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 제 9경 : 망운산과 화방사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의 목관 묘비가 복원되어 있는 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 법전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는 교육의 장이다. 화방사에서 망운암으로 오르는 숲길 등반은 산사체험을 곁들인 멋진 산책코스이다. 망운암은 정상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암자로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돌일주문을 무심으로 지나면 중병을 낫게 한다는 영험의 기도 도량이다.
남해 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
화방사의 정적을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점점아 떠있는 작은 섬들과 강진만,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 연대봉애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붉게 타오르는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며 등산객들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어 전국 동호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화방사에서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으며, 망운암과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임도가 있어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 제10경 : 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물건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는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 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 근대화의 큰 주역이었던 우리 동포들에게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독일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이 독일식으로 꾸며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물미해안도로는 물건과 미조를 잇는 해안도로로 미조-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며, 지나는 마을마다 간직한 전설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내항도,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바라 볼 수 있고, "어짐을 더한다"는 포구, 가인포는 중국사람이 지나가다 밥 한 상을 대접받고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는 아홉 구비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 제11경 : 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빏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 석불, 조선 인조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 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그리고 문화재로는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는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 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 이락사 비각에 보관중인 유허비
▷ 제12경 : 창선~삼천포대교
총 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성.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드문 다리의 향연!!!
2003년 4월 28일 성웅 이충무공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3번국도)로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 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연결하는 340m의 하로식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사장교인 삼천포대교 등 다섯개의 교량이 다리 박물관을 방물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한 창성~삼천포대교는 총공사비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Ⅰ편 : (남해 제6경)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 가천마을 다랑이 논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Ⅱ편 : (남해 제1경)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錦山)과 3대 기도도량의 하나! 보리암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Ⅲ편 : (남해 제2경)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남해대교와 이순신 장군의 첫 무덤! 충렬사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Ⅳ편 : (남해 제5경)노량해전의 승장. 이순신 장군의 유해 도착지!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Ⅴ편 : (남해 제3경)한 폭의 수채화같은 남해안 최대의 해수욕장! 남해 상주 은모래Beach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Ⅵ편 : (남해 제4경)원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어업! 원시어업 죽방렴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Ⅶ편 : 이국적인 풍경! 독일마을
【 일 정 표 】2014년 4월 12일(토)-13일(일) 1박2일
◈ 첫째날(4/12) 오후 : (하동)십리벚꽃길-화개장터-최참판댁/평사리들판-(남해)남해대교&충렬사-관음포 이충무공유적-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다랑이논
◈ 둘째날(4/13) : 금산&보리암-상주 은모래Beach-죽방렴
◀ 제Ⅳ편 : (남해 제5경)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
大星殞海(대성운해)!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
노량해전의 승장! 이충무공의 유해가 도착한 곳. 李落波(이락파)!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南海 觀音浦 李忠武公 遺蹟)
*사적 제232호(1973년06월1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125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으로 관음포 앞바다는 '이락파(李落波)'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락파와 마주보는 해안에는 이락사가 위치해 있다.
▲ 이락사
노량해전의 마지막 격전지로 선조31년(1598) 11월 19일 이곳에서, 도망치는 왜적을 추적하던 충무공은 적의 유탄에 맞았으나,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충무공의 8대손인 이항권이 충무공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순조32년(1832)에 왕명에 따라 제단을 설치하고 유호비와 비각을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1950년에 남해군민이 헌금하여 유허의 정원가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액자를 내렸다. 이락파가 보이는 연안에 충무공을 모신 '이락사'가 있다.
▲ 이락사 비각
「 조선의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 」
선조30년(1597)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은 명량해전에서 대패하였으며, 지상전에서도 조명 연합군에게 밀려 고전하였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노량 앞바다로 진격했다. 500여 척의 배를 집결시킨 왜군에 비해 조선군은 고작 200여 척 정도였다. 이순신은 굴하지 않고 병사들을 진두 지휘했다. 패색이 짙어진 일본 수군은 남은 배를 이끌고 달아나기 시작했고 조명연합군은 필사적인 추격전을 벌였다.
이순신은 이 추격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순국하고 말았다. 명나라 장수 등자룡과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홍양현감 고득장 등 많은 명장들도 이 해전에서 전사했다.
이락사와 관음포 앞바다는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옛터일 뿐만 아니라 전쟁 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2011년 7월 28일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에서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이 변경, 고시되었다.
▲ 이락사 입구에 세워진 이충무공 유언("지금은 전쟁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비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사철 푸른 육송이 415년 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4,50m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르고, 길 양쪽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 한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 눈에 보인다.
◈ 노량해전 요약
-1598년 (음)11월18일 22시경 : 조명연합함대 장도에서 관음포를 향해 진격
-(음)11월18일 24시경 : 관음포에서 이충무공 축천기도 올림 "이 나라를 위해 적을 섬멸할 수 있다 하오면 죽어도 또한 여한이 없겠나이다."
-(음)11월19일 02시경 : 조명연합함대 200여척과 일본함대 500여척과 접전
-(음)11월19일 04시경 : 조명연합함대와 일본함대의 최대 혈전
-(음)11월19일 09시경 : 일본 저격수의 유탄에 이충무공 왼쪽 가슴에 맞음. 임종전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음)11월19일 10시경 : 이충무공 순국
-(음)11월19일 12시경 : 일본함대 패전으로 관음포 암초에 앉음. 패장병들 육지로 올라와 선소왜성지로 도피.
-(음)11월21일 : 선소왜성지에 있던 일본 패장병들 일본으로 귀국
▲ 이락사 앞 우측 첨망대가는 길 입구
▲ 첨망대가는 길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 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군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선조31년(1598)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대승리를 이끌고 왜군을 추격하다 적의 유탄을 맞고 "지금은 전쟁이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장렬히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1년 2월 16일 건립한 2층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면적은 건평 55.80㎡이다.
충무공의 순국하신 옛 자리를 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첨망대이다.
▲ 첨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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