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려수도의 관광명소! 보물섬 남해(南海)를 찾아서 ▶
이번 탐방은 고교 동창들의 모임인 산우회 봄나들이 행사로 기획된 1박2일간의 탐방으로 예년의 벚꽃 만개시기에 맞추어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하동의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인근의 관광지(화개장터와 최참판댁), 그리고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인 보물섬 남해를 찾아 '남해12경'을 위주로 관광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첫째날 이루어진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상 고온으로 예년보다 빠른 시기에 벚꽃이 개화하고 만개하는 바람에 꽃이 지고 말아, 신록의 벚나무길을 잠시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또한 최진사댁은 몇 차례 탐방을 한 곳이라 회원들만 탐방을 시키고 인근의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여 혼자서 30여분간 평사리들판을 하아킹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였았다.
남해 탐방에서는 첫째날 맑은 날씨속에 순조롭게 남해12경 중 세 곳을 탐방하였으나,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며 흐린 날씨가 이어져 '남해 제1경'인 금산과 보리암 탐방에서 남해 앞바다와 기암괴석들로 뒤덮힌 금산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십수년만에 다시 금산 정상에 서는 감회를 맛 볼수가 있었다.
보물선 남해는 주변 지역 탐방 계획을 세워 다시 한 번 더 탐방을 하기로 하고, 그때 이번에 일부만 탐방한 남해12경을 제대로 탐방하기로 하며 아쉬움을 접기로 한다.
이번 1박2일간의 '하동 & 남해' 탐방은 남해에서 탐방한 관광명소만 소개하기로 하고 관광명소별로 나누어 총 7편으로 작성을 한다.
【 남해(南海) 소개 】
장수의 고장으로 이름난 남해는 지석묘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삼한시대에 남쪽 변한의 12개 부족국가 중 군미국 또는 낙노국에 속하였다고 추측된다.
삼한시대를 거쳐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진주 관할인 고령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남해가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7년(687)이다. 신라는 남해도를 전야산군이라 칭하고 청주(현 진주) 관할에 두어 태수를 지방장관으로 하여 2개현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후 경덕왕16년(757)에 단행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해군으로 개칭되었고 강주(현 진주)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9년(1018)에는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남해현이라 개칭하고 현령을 두었다. 그 후 고려 말기부터 왜구들이 남해안 일대를 약탈,살생을 자행함에 따라 정상 행정 수행이 불가능하여 공민왕(1351~1353) 때에는 진주관내 대아천 부곡으로 행정관서를 옮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태종13년(1413)에 행정구역이 남해현은 일시 하동과 병합하여 하남현이 되었다가 하동현이 독립함에 따라 진주의 금양부곡과 합쳐져서 해양현이 되었고, 그 후 금양이 진주에 병합됨에 따라 남해현으로 복귀하였다.
당시의 행정관할은 경상도 우도에 속했으며, 종2품의 경주부윤 정3품의 창원대도호부사, 정3품의 진주목 밑에 종5품 현령의 소관으로 되어 있었고, 그 후 세조 원년에 지방방위조직을 일신하고 세조12년(1446)에는 관제개혁과 더불어 남해지방군은 진주진관진주목사인 첨절제사 휘하에 남해현령이 절제도위 금위로 관장하고 있었으며, 한편 수군은 제포진관 응천첨사 휘하에 평산포만호가 관장하고 있었다.
선조15년(1592)부터 임진,정유왜란의 전란지로 7년간은 거의 무인지경이 된 적도 있었고, 고종32년(1895)에 남해현이 남해군으로 개칭되었다. 1906년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으로 편입되어 8개 면으로 되었다. 1973년 이동면의 갈도가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79년 남해면은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이 되었으며, 1986년 4월 1일 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가 미조면으로 승격되어 1읍 9면이 되었다.
2013년 12월 말 현재 면적은 경상남도의 약 3%인 357.66㎢이며, 이중 78.9㎢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구는 47,244명으로 인구는 줄면서 가구 수는 늘어나는 추세이며, 65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여 장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평균 기온은 15.2º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며,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1,730㎜내외에 평균습도는 64%이다.
1읍 9명 222개리로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6개로 이루어져 있다.
◈ 남해 12경
이번 관광에서 탐방한 곳(남해1경~6경)을 제외한 나머지 명소(남해7경~12경)는 간략하게 설명을 부연한다.
▷ 제 1경 : 금산과 보리암
(금산 38경) 1.망대, 2.문장암, 3.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 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촉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흔들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 제 2경 : 남해대교와 충렬사
▷ 제 3경 : 상주 은모래Beach
▷ 제 4경 :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 제 5경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
▷ 제 6경 :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 제 7경 : 노도 서포 김만중선생 유적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지 300여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소설가요,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 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러운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이외도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 제 8경 : 송정 솔바람해변
상주 은모래해변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해변으로 특색있는 남국의 정취, 환경적으로 완벽한 해수욕장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해군은 1999년 7월 송정생태주차공원을 개장하고, 해수욕장 주변 가로등에 꽃바구니를 설치했다. 해수욕장을 운치있고 낭만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은빛이 나는 백사장과 명경지수같은 바닷물이 송림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맑은 바닷물과 송림으로 유명한 이곳은 서남향의 부드럽고 은빛나는 백사장 앞으로 탁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 준다.
백사장 길이 1,500m, 폭 90m, 면적은 15,120평에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º이다.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욕을 한 후, 때묻지 않은 자연의 청량감을 느껴 볼 수 있는 송정 솔바람 해변 부근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지 지정을 받고, 경상남도와 남해군은 해변을 비롯한 주변 25만평의 부지를 2011년까지 714역원을 투자하여 공공시설에 숙박시설, 그리고 야영장, 휴양소, 전망대를 만들어 국제적인 해양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 제 9경 : 망운산과 화방사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의 목관 묘비가 복원되어 있는 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 법전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는 교육의 장이다. 화방사에서 망운암으로 오르는 숲길 등반은 산사체험을 곁들인 멋진 산책코스이다. 망운암은 정상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암자로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돌일주문을 무심으로 지나면 중병을 낫게 한다는 영험의 기도 도량이다.
남해 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
화방사의 정적을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점점아 떠있는 작은 섬들과 강진만,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 연대봉애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붉게 타오르는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며 등산객들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어 전국 동호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화방사에서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으며, 망운암과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임도가 있어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 제10경 : 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물건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는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 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 근대화의 큰 주역이었던 우리 동포들에게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독일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이 독일식으로 꾸며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물미해안도로는 물건과 미조를 잇는 해안도로로 미조-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며, 지나는 마을마다 간직한 전설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내항도,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바라 볼 수 있고, "어짐을 더한다"는 포구, 가인포는 중국사람이 지나가다 밥 한 상을 대접받고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는 아홉 구비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 제11경 : 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빏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 석불, 조선 인조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 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그리고 문화재로는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는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 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 제12경 : 창선~삼천포대교
총 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성.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드문 다리의 향연!!!
2003년 4월 28일 성웅 이충무공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3번국도)로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 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연결하는 340m의 하로식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사장교인 삼천포대교 등 다섯개의 교량이 다리 박물관을 방물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한 창성~삼천포대교는 총공사비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Ⅰ편 : (남해 제6경)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 가천마을 다랑이 논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Ⅱ편 : (남해 제1경)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錦山)과 3대 기도도량의 하나! 보리암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Ⅲ편 : (남해 제2경)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남해대교와 이순신 장군의 첫 무덤! 충렬사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Ⅳ편 : (남해 제5경)노량해전의 승장. 이순신 장군의 유해 도착지!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Ⅴ편 : (남해 제3경)한 폭의 수채화같은 남해안 최대의 해수욕장! 남해 상주 은모래Beach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Ⅵ편 : (남해 제4경)원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어업! 원시어업 죽방렴
- 보물섬 남해를 찾아서... Ⅶ편 : 이국적인 풍경! 독일마을
【 일 정 표 】2014년 4월 12일(토)-13일(일) 1박2일
◈ 첫째날(4/12) 오후 : (하동)십리벚꽃길-화개장터-최참판댁/평사리들판-(남해)남해대교&충렬사-관음포 이충무공유적-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다랭이논
◈ 둘째날(4/13) : 금산&보리암-상주 은모래Beach-죽방렴
◀ 제Ⅰ편 : (남해 제6경) 가천마을 다랑이 논 ▶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
▲ 가천마을 앞 남면해안
♧♧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南海 加川마을 다랑이 논)
*명승 제15호(2005년01월03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번지 등
다랑이 논은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를 말한다.
남해도의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의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바닷가를 바라본 45도 급경사의 비탈에 108개의 계단식 논으로 되어 있는데, 그 지역에서는 '달갱이논' 또는 '다랭이논'이라고도 부른다.
가천 다랭이는 옛 조상들이 척박한 산기슭에서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만들려고 직각으로 석축을 쌓아 가면서 조금씩 논땅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조성되었다.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아직 소와 쟁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도 있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계단식 논, 그리고 넓게 트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 미륵이 보살피는 가천마을 」
조선 영조27년(1751)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소와 말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으니 나를 일으켜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다음날 현령이 가천마을에 가보니 정말 꿈속에서 노인이 말한 지세와 같아, 그곳을 파보니 암수가 짝을 이룬 두 개의 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수바위는 세우고 암바위는 누인 채로 두고, 논 다섯 마지기를 이곳에 헌납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때부터 가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미륵으로 모시고 해마다 음력 10월23일에 풍농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다랑이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으로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곡선형태의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의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다.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가에 전해오는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신문왕 당시로 추정되어지고 있으며, 미륵전설과 육조문에 대한 전설이 고려시대 이전에 삶이 시작되었고, 400여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흘산 봉수대는 이미 그 전에 이곳 가천마을에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이라고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2년 농촌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다. 논, 산림 및 바다의 자연적 요소와 가천 암수바위, 밥무덤, 설흘산 봉수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와 같은 문화적 요소는 명승적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 가천마을
다랑이 논이 펼쳐지는 남면 가천마을은 8년전인 2006년 방문 후 다시 찾은 탐방지이다.
그러나 당시와는 달리 마을 전체에 많은 변화가 있어, 지난 방문 때 처럼 도로에서 다랑이 논만 조망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마을 전체와 해안가에 설치된 '다랭이 지게길'의 일부인 유채꽃이 아름다운 산책로를 둘러 보았다.
현재 '남해12경' 중 제6경으로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이 지정되어 있어 이 일대를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가천마을 마을길
마을의 모든 민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전부 개,보수가 되어 있었으며 현재 민박집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또한 마을 안에는 '박원숙의 커피&스토리' 카페가 영업중이었는데 내부에는 탈랜트 박원숙씨가 출연중인 종편 Jtbc '님과 함께' 포스트와 젊을 때의 사진 등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 박원숙씨가 직영하는 카페처럼 보여 주인에게 확인을 해 보니 박원숙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한 카페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고 싶은 장소이다.
▲▼ '박원숙의 커피&스토리' 카페
◈ 밥무덤
밥무덤은 마을 중앙과 동,서쪽 3군데에 있는데 매년 음력 10월15일 저녁 8시경에 주민들이 모여 중앙에서 동제를 지낸다.
제주는 한달 전에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사람을 지정하는데 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어서도 안되고, 잔치집이나 상가집 방문도 삼가하고, 집 대문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이 제주집에 못 들어오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마을 뒷산 깨끗한 곳에서 채취한 황토를 기존 밥무덤의 황토와 바꾸어 넣고 햇곡식과 과일, 생선 등으로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며 제사를 지낸 밥을 한지에 싸서 밥무덤에 묻어 둔다.
밥바위를 거쳐 마을 아래 바닷가로 내려가는 산책로에는 암수바위가 있고, 해안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설치된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으며 첫째날의 마지막 탐방지를 여유롭게 산책을 하였다.
♧♧ 남해 제6경 :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 암수바위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킨 신성한 곳인 셈이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인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었더라는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짜투리 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가천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암수바위이며,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이라 부른다.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닮은 숫바위와 이기를 밴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의 암바위로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이라 불러, 숫바위는 숫미륵, 암바위는 암미륵이라 일컷는다.
▲ 숫바위(사진 左)와 암바위(사진 右)
영조27년(1751)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가 다녀 몸이 불편하니 꺼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부탁해 땅을 파 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현령은 암수바위를 꺼내어 미륵불로 봉안하였다. 또 논 다섯 마지기를 이 바위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어민들은 지금도 이 바위를 발견한 날인 음력 10월23일을 기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뱃길의 안전과 많은 고기가 잡히기를 빌고 있다.
원래 이 바위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선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기능이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으로 확대되어 미륵불로 까지 격상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지녔던 풍요와 다산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오늘날에도 아들을 갖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다랭이 마을 뒷쪽에 있는 설흘산(484m)은 망산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 보면 깊숙하게 들어 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설흘산 정상 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망망한 남쪽 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출의 장관이 유명하다. 남면 홍현의 무지개마을에서 오르면 가장 가깝지만 가천마을에서 북쪽으로 곧 바로 오르거나 멀리 임포에서 시작하면 칼바위 등을 지나는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 남면해안과 다랭이 지겟길 산책로에서 바라본 풍경들 』
▲ 다랭이 지겟길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해안산책로와 남면해안, 절벽을 이어주는 구름다리의 모습
▲ 설흘산의 전경과 골짜기를 따라 펼쳐지는 다랭이논과 유채꽃과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
▲ 길을 따라 펼쳐지는 다랭이논의 소박한 정취와 멀리 응봉산의 정기를 느끼게 하는 산책로
▲ 암수바위 아래 다랭이 지겟길 해안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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