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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등대가 있는 아름다운 섬! 팔미도

왕마구리 2014. 11. 11. 19:44

◀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섬! 팔미도 ▶

 

                ▲ 팔미도의 신,구등대

 

【 팔미도(八尾島) 소개 】

사람이 살지 않는 면적 0.067㎢의 무인도로, 형태는 자루가 달린 듯 한 사각형이며, 남북으로 2개의 섬이 사주로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이며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항선을 안내하고 있다.

 

                ▲ 유람선에서 바라본 팔미도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km, 연안부두에서는 1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이다. 팔미도라는 이름은 여덟팔자처럼 양쪽으로 뻗어내린  꼬리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을 비롯한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물이 많이 들어오는 만조 시에는 갯바위 섬과 나뉘어 2개의 섬이 되고, 물이 빠지는 간조 시에는 하나로 연결되는 신비의 섬이다.

 

 

                ▲ 유람선에서 바라본 팔미도의 북섬과 남섬

 

팔미도는 바위섬으로 해변의 경관이 우수하며, 무엇보다 106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예로부터 '팔미귀신', 즉 낙조에 돌아드는 범선의 자취가 아름다워 인천팔경의 하나로 꼽혔던 경승지이며,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팔미도의 일몰이 아름답다고 나와 있다.

 

                ▲ 팔미도 고지도(사진 上)

                   한국전쟁 당시 팔미도에 상륙한 UN군(사진 下)

 

팔미도는 해발고도 58m의 섬이고, 인천상륙작전의 중요한 요충지였던 섬이다. 1903년 6월 1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등대 불빛을 밝힌 팔미도는 인천항 진입 항로 길목에 위치하며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03년 당시에는 본의 아니게 이 나라, 이 항을 수시로 드나들며 휘저었던 열강의 이정표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팔미도등대가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구원의 불빛으로 되살아난 것은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였다. 조수간만의 차가 극심한 인천지역의 해상여건으로 성공확률이 전무하던 이 작전에서 팔미도등대와 그 불빛은 바다의 길잡이가 되어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막중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현재 팔미도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자 가보고 싶은 등대 1호로 등재되어 있다.

2009년 '인천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팔미도는 한국 등대 문화유산 1호,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 제40호로 등재되어 있다.

【 방문일자 】2014년 9월 10일(수)

【 팔미도 유람선 운항 정보 】                  

*유람선 왕복요금 : 어른(19~64세) \22,000

*유람선 운항 정보 :

  - 소요시간 : 2시간 30분 코스

  - 운항시간(매표소:연안여객터미널 해양광장 전망대 1층)

     *주말&공휴일(3회) : 09시30분, 12시30분, 15:30

     *평일(1회) : 12시30분

  - 운항문의 : T.032)885-0001

     운항시간이 변경 또는 취소 될 수 있으므로 문의 후 예약

 

 

【 소재지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372

【 팔미도 탐방코스 】팔미도선착장-청년의빛 광장-옛등대사무실-구등대&신등대-전망대-산책로-팔미도선착장

 

 

 

                 ▲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해양광장의 전망대/팔미도행 매표소(사진 上左)와 팔미도 유람선(사진 上右)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인천 연안부두(사진 下)

 

팔미도 관광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해양광장의 전망대 1층 '팔미도, 아라뱃길 유람선' 매표소에서 유람선 승선권을 구매하고, 매표소 앞 광장에서 대기하다가 유람선 출발시간 10여분 전 가이드의 인솔로 선착장으로 이동, 유람선에 승선하여 팔미도로 출발을 하게 된다.

 

 

 

 

 

 

                 ▲ 팔미도로 가는 유람선이 지나는 인천대교의 전경들

 

인천대교 밑을 통과하여 팔미도까지는 약 45~50분 정도가 소요되며, 팔미도에 도착하여 약 1시간~1시간20분 정도 체류하며 팔미도등대와 산책로를 탐방하고 선착장으로 되돌아 오게 되는 코스에서 투어가 이루어진다.

 

                 ▲ 팔미도 유람선 선착장(사진 上)

                    팔미도 해변(사진 下)

 

왕복 유람선 운항시간과 팔미도 투어 시간을 포함하여 총 2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이다.

 

『 팔미도등대(八尾島燈臺) 』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 제40호/한국 등대문화유산 제1호

고종20년(1883) 인천항이 개항되어 선박 운항이 빈번해짐에 따라 등대의 효용성이 대두되어,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위하여 조선 정부를 압박하여 1902년 3월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 해 5월부터 인천항 입구 팔미도, 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 백암 등표 건설에 착수하여 1903년 6월 1일 점등 운영하게 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다.

 

                  ▲ 110년의 역사를 간직한 팔미도 구등대

 

팔미도등대는 점등 당시 석유 백열등(전기 회전식 6등급 등명기)으로 불빛을 밝혀 왔으나, 1954년 8월 발동발전기를 설치하여 전기등(광도 50,000cd, 18해리/33km)으로 교체하였고, 1991년 9월부터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였다.

또한 1963년 12월 무선표지국을 설치하였으며 1999년 8월 위성 항법 보정 시스템(DGPS 기준국)을 설치, 운영함으로써 정교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등 항로표지 분야의 과학 기술발전을 선도하였다.

 

                  ▲ 팔미도 신등대의 전망대

 

비록 아픈 과거로 만들어진 등대이지만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등대이다.

6.25전쟁 당시 인민군의 대부분 전투력은 낙동강 전선에 진출하고 있어, 당시 UN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장군은 인민군을 효과적으로 격파하기 위해서는 낙동강보다 서울에 있는 인민군 병참선 중심부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이 필요하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나 미 육,해군은 해안이 좁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상륙 작전에 불리한 인천보다는 군산상륙작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맥아더장군은 이미 북한 측의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는 군산항보다 기습성이 높은 인천항으로 정하고 인민군 수중에 있던 팔미도 등대를 탈환, 점등하려고 시도하였다. 왜냐하면 야간에 상륙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등대 불빛의 안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아더장군은 KLO대원 6명을 팔미도에 투입시키기로 하였고, 이들은 먼저 팔미도 섬 인근의 영흥도에 잠입, 정보를 수집하였고, 영흥도 섬 주민들도 이 부대원의 정보원이 되었다. 이러한 사전의 정보로 인해 50년만에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1950년 9월 15일을 D-DAY로 정하게 된다.

9월 15일 팔미도등대를 탈환, 팔미도등대의 불빛을 밝히면서 현합군의 안전한 길잡이가 되어 월미도와 송도에 안전하게 상륙을 하여 인천상륙작전이 성공리에 마무리되게 된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2003년 한국 등대 100주년을 맞이하여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의 중추 항만으로 부상하는 인천항의 해양 환경 변화에 맞추어 지난 100년 동안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항해 길잡이 역할을 해 온 팔믿등대를 퇴역시키고, 현대적인 조형미와 위성항법 보정 시스템 등 첨단 항행 자원 장비를 갖춘 '100주년 기념등대'를 건립하였다.

 

                 ▲ 둘레길 입구에서 뒤돌아본 2003년 새로 준공된 팔미도 신등대

 

새로 건립된 기념 등대는 2002년 8월 총 사업비 38억원을 들여 높이 31m의 등탑, 사무실, 전망대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695㎡ 규모의 업무 시설과 348㎡ 규모의 직원 숙소 및 등대 주변 정비 사업을 추진하여 2003년 12월 준공하였으며, 팔미도등대 100주년 기념 조형물 '천년의 빛'을 설치하였다.

 

 

                 ▲ 선착장에서 팔미도등대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천년의 빛' 광장(사진 上)

                    야외문화공간(사진 下)

 

일제의 강권에 의하여 설치된 암울한 역사와 6.25전쟁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희망의 역사를 지켜보며 100년을 보낸 팔미도등대(높이 7.9m)는 2002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 연구히 보존 관리하게 되고, 이 자리에 해양 한국의 미래를 선도할 첨단 등대가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 팔미도등대 옛 사무실 』

 

 

1903년 6월 1일 팔미도등대 점등 이후 건축하여 1962년 5월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을 신축하기 이전까지 등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연면적 21.25㎡의 단층 목조 함석지붕의 건물로, 좌,우 벽면에 각각 2개, 후면에 1개의 오르내림 창이 있으며, 정면에는 포치 형태의 현관을 두고 있다. 내부 천장과 함께 바닥은 목재의 마루 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하부에는 4개의 환기구가 설치되어 습기로 인한 피해 예방과 해충의 침입을 방지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군인교회로 사용하여 오다가 팔미도등대 점등 100주년을 맞아 옛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 팔미도 둘레길(산책로) 』

 

                  ▲ 팔미도등대 뒷편의 둘레길 입구

 

 

 

                  ▲ 팔미도 둘레길

 

                 ▲ 팔미도 둘레길의 이정표들

                  ▲ 둘레길의 정자 쉼터

 

                   ▲ 둘레길 전망대(사진 上)

                       둘레길 전망대 아래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멀리 바라다 보이는 영흥도(사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