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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인천답동성당

왕마구리 2014. 11. 12. 01:26

◀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인천답동성당(仁川沓洞聖堂) ▶

한국의 근대 성당 건축물

 

인천답동성당 방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팔미도 탐방을 마치고, 인천연안부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탐방을 하게 되었다.

인천의 한복판 중구 답동 언덕에 우뚝 솟은 천주교 인천교구청 답동주교좌 답동 성바오로성당은 117년 전 처음 축성식 후 1937년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 근대 건축물이다.

 

【 방문일자 】2014년 9월 10일(수)

【 인천답동교회(仁川沓洞聖堂) 】

*사적 제287호(1981년09년25일 지정)

*면적:1,015.50㎡

*소재지: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50번길 2(답동)

 

 

구한말에 건립된 성당이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지에서 토지매입과 성당 건축이 가능해지자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1884~1890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의 결정에 의해 제물포에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1842~1896)를 파견하여 성당 건립을 서두르게 하였다.

이후 페낭신학교에 있던 빌렘(홍 요셉 1860~1938)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인천지역 첫번째 본당인 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 전신)을 1889년 7월 1일 설립하고, 일주일 후 답동 언덕에 마련한 임시성당에서 84명(한국인 59명, 일본인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격적인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답동성당의 건립은 빌헴 신부가 이듬해 지금의 성당 자리인 답동 언덕에 3,212평의 대지를 매입하였고, 189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전임된 빌렘 신부에 이어 르 비엘 신부(신바오르 1890~1893)가 2대 신부로 부임해 성당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를 요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병으로 인해 휴양을 떠나면서 성전 건립은 1893년 부임한 마라발(서요셉 1893~1904) 신부의 몫으로 넘어갔다.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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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발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수녀원 건립을 시작하는 동시에 코스트 신부로부터 성전 설계도를 받아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성전 건립은 1895년 정초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이듬 해 종탑이 완성되고, 마침내 1897년 7월 4일 조선교구장 뮈텐(1890~1933 재임)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축성식이 이루어졌다.

300평 규모로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전이다.

 

 

 

1933년 신자수기 1500여명에 육박하게 되자 제4대 드뇌(전 으제니오 1904~1937) 신부는 증축 계획을 세우고 1935년부터 성전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리는 개축작업을 시작하여 2년 후인 1937년 원 라리보(1933~1940 재임) 주교 주례로 성대한 축성식을 가졌다.

 

 

 

1937년에는 성당은 그대로 두고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려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두 차례에 걸친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성당의 평면은 십자형으로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여 중요한 곳에는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정면의 중앙과 양 옆으로 출입구가 나있고, 가운데 출입구 위로 장미꽃 모양의 창을 설치했다.

 

 

                 ▲ 답동성당의 외부 창

 

건물 중앙에 큰 탑을 두고 경사진 지붕을 날개로 단 다음, 끝부분에 장식적인 작은 탑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리나라 교회건물의 보편적 형식이다.

제물포 개항이후 지어진 근대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 답동성당 내부 전경(사진 上)

                    성당 내부의 창들(사진 下)

 

「 한국의 근대 성당 건축물 」

구한말 유럽 열강들은 조선에 진출하기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여 여러 신식문물을 전파했다.

서양과의 수호조약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천주교 성당들은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며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 되었고, 현재는 이런 역사성 외에도 그 자체가 아름다운 건축물로 남았다.

1921년 프랑스인 콩베르신부가 한옥과 서양식 건축을 절충하여 지은 안성 구포동성당.

 

 

                    ▲ 안성 구포동성당(사진 左)과 전주 전동성당(사진 右)

 

1908년 순교지에 비잔틴풍의 돔 성당으로, 호남의 근대건축물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전주 전동성당,

1907년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인 횡성 풍수원성당,

 

 

                                        ▲ 횡성 풍수원성당(사진 左)와 익산 나바위성당(사진 右)

 

1906년 한옥성당으로 지어져 유명해진 익산 나바위성당,

 

 

               ▲ 아산 공세리성당

 

긱종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된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산 공세리성당, 등

전국 곳곳에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근대 성당 건축물이 남아있다. 건축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도 대부분의 성당들은 프랑스와 홍콩에서 자재를 구해오고, 공장을 세워 벽돌을 굽고,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했으며 스테인드글라스 등은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경유하여 열차로 공수하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