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화순 쌍봉사(和順 雙峯寺) ▶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 전남 화순(全南 和順) 소개 」
화순군(和順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순천시·곡성군, 서쪽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장흥군, 북쪽은 광주광역시·담양군·곡성군과 접한다. 도곡면, 춘양면 일대의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군청 소재지는 화순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다.
면적은 787㎢ (전남의 6.6%)로 전라남도내 3번째(해남, 순천)로 넓고, 임야는 도내 2번째(순천) 규모이다.
동단 화순군 북면 송단리 127′12′12″ 35′10′58″ ,서단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 126′49′34″ 34′52′04″로 동서간 길이는 32㎞이며, 남단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 126′56′48″ 34′49′18″, 북단 화순군 북면 방리 127′11′10″ 35′12′40″로 남북간 길이는 43㎞이다.
▲ 범종각 앞에서 바라본 쌍봉사 경내 전경
마한시대에는 능주, 화순방면에는 평지를 바탕으로 한 여래비리국(如來卑里國), 동복방면에는 벽비리국(辟卑里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백제시대에 화순, 능주, 동복의 세개 현(縣)이 독자적인 행정편제를 유지하였는데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능주방면), 냇가변에 자리잡은 잉리아현(仍利阿縣:화순방면), 항아리 같은 바위가 있는 두부지현(豆夫只縣:동복방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757년)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 및 두자로 줄이는 작업을 하면서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은 능성군(陵城郡)으로, 잉리아현은 여미현(汝湄縣)으로, 두부지현은 동복현으로 변경되면서 곡성군으로 속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인 940년에 이르러 능성현은 한자를 바꾸어 능성현(綾城縣)으로 하고, 여미현은 오늘날의 지명인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에는 동복현(同福縣)을 곡성에서 보성군 소속으로 변경하였다. 1143년에 처음으로 중앙에서 능성현에 감무(監務:현재의 군수)라는 행정관이 파견되었으며 이어 충열왕 때인 1280년경 동복오씨 조영(祖英) 혹은 조염(祖琰)국사의 고향이라 하여 동복에도 처음으로 감무가 파견되고 고려말 1390년에 화순에도 감무가 파견되면서 남평현을 겸임하였으니 이때에 이르러 중앙행정이 직접적으로 이곳까지 미치게 되었다.감무관이 파견되기 이전에 이곳은 모두 자치고을로서 토호들에 의한 간접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복현이 있었던 자치고을로는 보령현(保寧縣:현 이서면지역), 대곡현(大谷縣:현 남면지역), 수촌현(水村縣:현 북면 수리부근), 압곡현(鴨谷縣:현 북면 옥리부근)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불과 몇 년 만에 세 현이 폐치분합을 거듭하게 되는데 처음 1396년에는 화순현을 없애고 능성현과 동복감무(화순현 겸임)만을 두었다가 1405년에 능성현, 화순감무(동복겸임), 1407년에 능성현, 복순현(福順縣.동복과 화순 합함), 1413년에 능성현, 화순현(동복겸임), 1416년에는 순성현(順城縣.화순과 능성 합함), 동복현으로 하였다가 다시 1418년에 이르러 세 지역의 통합이 불가하여 능성현, 화순현, 동복현으로 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의 피해가 너무 심하여 화순현의 백성들은 스스로 폐현을 자청 능성현에 합하였고 1611년에 이르러서야 화순현이 복현되기도 하였다. 이 복현을 기념하여 당시 객관앞에 심은 것이 바로 화순군청에 서 있는 은행나무이다. 1632년 인조반정이 있은지 10년후 인조의 모친인 인헌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능성현은 일약 능주목으로 한 등급 올라서게 되었다. 이로서 화순지역에는 능주목, 화순현, 동복현의 세 고을로 이어져 왔는데 1655년 동복현의 객사와 전패가 화재로 불에 타자 잠시 화순현에 합하였다가 다시 1664년 세 현으로 있었고 이 체제는 대한민국시대까지 유지되었다. 1895년 5월 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능주군, 화순군, 동복군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 10월 15일에는 화순군을 폐지하여 능주군에 흡수시킴으로써 능주군, 동복군으로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고 동복군과 병존하다가 1914년 3월 1일 동복군 마저 폐지하고 화순군에 편입시킴으로써 오늘날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1읍 12면 1출장소 342행정리로 운영하고 있다.
▲ 철감국사부도탑 가는 길 입구에서 바라본 쌍봉사 경내 전경
능주면 일대에는 역사적 유적지가 비교적 많은데, 특히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를 폈던 조광조가 귀양 와서 죽음을 당한 터와 적려유허추모비가 있다. 동복면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맑은 물로 유명한 화순적벽이 있다. 그 밖에 남면 벽송리에 고인돌군, 북면 백아산에 천연 동굴이 있다. 천태산에는 비자나무 숲과 수령이 5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를 비롯해 만연사·쌍봉사·유마사·개천사가 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알려진 운주사에는 석불과 석탑이 많다. 그 밖에 오성산성·예산산성·철옹산성·물염정·화순적벽이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는 화순온천과 도곡온천이 개장되었다.
『 탐방한 화순군의 문화재들 』
1 국보 제57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2 보물 제170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3 보물 제1726호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一括)
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 화순쌍봉사대웅전목조삼존불상(和順雙峰寺大雄殿木造三尊佛像)
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2호 화순쌍봉사극락전목조아미타여래좌상(和順雙峰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
6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247호 화순 쌍봉사(和順 雙峯寺)
7 사적 제312호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8 보물 제796호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9 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10 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11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3호 화순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
12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4호 화순운주사광배석불좌상(和順雲住寺光背石佛坐像)
13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5호 화순운주사마애여래좌상(和順雲住寺磨崖如來坐像)
1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6호 화순운주사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層石塔)
1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7호 화순운주사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雙交叉紋七層石塔)
16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8호 화순운주사석조불감앞칠층석탑(和順 雲住寺石造佛龕앞七層石塔)
17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9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
18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0호 화순운주사대웅전앞다층석탑(和順雲住寺大雄殿앞多層石塔)
19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1호 화순운주사칠성바위앞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星바위앞七層石塔)
20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2호 화순운주사발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鉢形多層石塔)
21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오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五層石塔) 전남 화순군
22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화순운주사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
23 중요민속문화재 제152호 화순양동호가옥(和順梁東浩家屋)
24 중요민속문화재 제154호 화순양승수가옥(和順梁承壽家屋)
【 일 정 표 】2015년 6월 29일(월)-30일(화) 1박2일
◈ 첫째날(6/29) : 운주사-조광조선생 유배지
◈ 둘째날(6/30) : 쌍봉사-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학포선생부조묘
이번 전남 화순군 방문의 주 목적은 천불천탑의 운주사와 국보 제 57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 탐방이었다. 먼 거리의 이동이라 많은 곳을 둘러 보기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운주사의 탐방은 단순한 사찰 탐방이 아니라 주변 산중턱에 위치한 석탑과 석불들을 탐방하게 되므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첫째날은 운주사의 문화재들을 탐방하고, 숙소로 정한 화순읍내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조광조선생 유배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화순군내 유일의 국보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를 첫번째 목적지로 정하였고, 인근의 양동호와 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를 방문하는 것으로화순 탐방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화순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운주사와 쌍봉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조광조선생 유배지, 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는 '호남권'에 아래와 같이 문화유적이 많은 운주사를 제1,2부로 나누는 등 총 5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1부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2부
-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쌍봉사(雙峯寺)
- 전통민속마을! 양동호&양승수가옥(梁東浩&梁承壽家屋)
- 기묘사화에 연루된 선비들의 삶! 조광조선생 유배지와 학포선생부조묘
『 화순 쌍봉사(和順 雙峯寺) 소개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39년에 창건되었습니다. 문성왕 9년(847)에 귀국한 철감선사는 이 절에서 선문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선풍을 떨친 도량이다.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 요사 옆 담장에서 바라본 쌍봉사 경내 전경
절의 앞과 뒤 산봉우리가 쌍봉(두개)이어서 철감선사의 도호를 쌍봉이라 하였으며 사찰명도 쌍봉사라 하였다. 철감선사 도윤의 선풍을 이어받은 징효대사가 영월의 흥녕사(현재 법흥사)에서 사자산문을 개산하였다.
창건 이후 퇴락한 절을 고려 문종 35년(1081)에 혜소국사가 창건 당시의 모습대로 중건하였고, 공민왕 때 전라도관찰사 김방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절의 땅을 면세해 주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인조 6년(1628)에 중건하였고, 현종 8년(1667)과 경종 4년(1724)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봉사에는 대웅전, 지장전, 극락전과 철감선사 진영을 모신 호성전,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 탑과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 탑비가 있다.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되어 보물 163호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198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정면1칸, 측면1칸에 3층 목탑형식의 독특한 전각으로 1986년 말 다시 복원하였다.
특히, 대웅전안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조선 숙종20년, 1694년조성.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51호)중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섭존자의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케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장전의 지장삼존불상과 시왕상, 인왕상등의 조각과 채색솜씨가 매우 뛰어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 쌍봉사 일주문(사진 上)
쌍봉사 천왕문(사진 中)
천왕문에서 내려다본 천왕문과 일주문 사이의 연못과 일주문(사진 下)
【 쌍봉사 탐방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루어 쌍봉사 탐방이었다.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 연못 옆으로 마련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일주문을 시작으로 계단길을 올라 천왕문을 들어서며 쌍봉사 경내에 이르게 된다.
쌍봉사 경내 탐방 순서는 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대웅전, T자형의 조선왕릉의 정자각 형태의 호선전, 조선시대 옛 양반집 전통가옥처럼 보이는 요사, 대웅전 뒷편 일렬로 배치된 나한전, 극락전, 지장전을 차례로 거쳐, 지장전 좌측 철감선사탑과 철감선사탑비로 향하는 '부도탑가는 길' 표지판이 있는 입구에 도착을 한다.
▲ 철감선사탑과 탑비 가는 길 입구의 이정표
이곳에서 우측 산길을 따라 100여m를 오르면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과 보물 제170호로 지정된 철감선사탑비가 좌측 넓은 터에 자리를 하고 있다.
우선 이곳에서는 쌍봉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인 쌍봉사 철감선사탑과 철감선사탑비를 우선 소개를 하고, 이후부터는 쌍봉사 탐방 순서대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철감선사탑과 탑비 가는 길
♧ ♧ 쌍봉사 철감선사탑 (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국보 제57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195-1번지 쌍봉사
쌍봉사(雙峰寺)에 세워져 있는 철감선사의 탑이다.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 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높이는 1.4m이며, 8각 원당형에 속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중에서 조식이 화려한 걸작품이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며,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 철감선사탑 기단부
▲ 철감선사탑 기단부 사자상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 철감선사탑 중대석의 가릉빈가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다.
▲ 철감선사탑 탑신부
▲ 철감선사탑 탑신부의 가릉빈가
▲ 철감선사탑 탑신부의 다문천왕상(사진 左), 비천상(사진 中), 지국천왕(사진 右)
사리가 모셔진 탑신(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四天王像), 비천상(飛天像) 등을 아름답게 조각해 두었다.
▲ 철감선사탑 옥개석 암수 막새기와
▲ 철감선사탑 옥개석 밑의 비천상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고, 각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에는 서까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탑을 만든 시기는 선사가 입적한 해인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 즈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듬은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작품으로, 당시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가 1957년 재건하였다.
▲ 철감선사탑과 탑비
♧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보물 제170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95-1번지 쌍봉사
쌍봉사에 있는 철감선사 도윤의 탑비이다.
▲ 철감선사탑비의 전면(사진 上)
옆면(사진 中)
후면(사진 下)
철감선사(798∼868)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헌덕왕 7년(825)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문성왕 9년(847)에 범일국사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기도 하였다. 71세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철감’이라 내리었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어 흥미롭다. 머릿돌은 용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특히 격렬한 거북받침돌의 조각들은 매우 훌륭한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탑비에 따르면, 철감선사는 한주 사람으로 호는 쌍봉, 속성은 박이며, 798년에 출생하였고, 18세에 중이 되어 귀신사에서 수학하였다.
825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남천보원의 법을 전승하고, 847년 범임 국사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시켰다. 868년 71세로 입적하였으며, 철감은 시호, 탑명은 징소라하였다.
철감선사탑과 탑비의 주인공은 도윤 선사이다.
「 철감선사 도윤 」
사자산문의 선승으로 속성은 박씨. 호는 쌍봉. 도윤은 위이다. 18세에 출가하여 귀신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하였으나, 원돈을 가르치는 화엄이 심인을 전하는 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825년 당나라로 가셨다.
마조도일의 제자 남전보원은 첫눈에 법기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신라 문성왕 9년(847) 범일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경문왕도 그때 그에게 귀의하였다. 868년 4월 18일 문인들을 모아 법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고 나이 71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철감선사이며, 탑호는 징소이다. 죽을 때 오색 과명이 입에서 나와 과명이 입에서 나와 공중에 상서로운 상이 퍼져나갔다 하여 서기만천 철감국사라고도 한다.
철감선사 도윤 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 호성전이다. 호선전에는 도윤 선사외에도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을 함꼐 모시고 있는데, 이는 도윤 선사가 중국으로 유학갔을 때 맺은 깊은 인연 때문이다.
♧ 쌍봉사 호성전(雙峰寺 護聖殿)
T자형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전각이다.
원래는 세조의 위패를 봉안한 건물로 짐작되나 현재는 쌍봉사 창건주 철감 도윤선사와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 절 가운데 최초로 조주선사 진영을 모시고 있는 까닭은 두 선사의 깊은 인영 때문이다. 철감선사는 신라 헌덕왕17년(825) 28세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남전 보원선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때 조주선사를 만났던 것이다.
조주선사는 철감선사보다 20년 연상의 사형으로서 이미 남전선사에게 '평상의 마음이 도다.(平常心是道)'라는 말을 듣고 단박에 깨달음을 이룬 출중한 스님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주선사를 훗날 사람들이 도를 물어오면 '차를 한잔 마시게', '바리때를 씻게나' 등등 선을 생활현장과 다도로 끌어 들였던 바,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에게 생활선을 제창한 고불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철감선사가 조주선사와 스승인 남전선사 문하에서 함께 정진하던 시기는 825년 부터 834년 까지 11년 정도였으나, 두 스님의 인연은 남달랐다.
철감선사 역시 중국으로 가기 전에 이미 화엄학을 통달하여 남전선사와 조주선사의 기대와 신뢰가 컸기 때문이다.
남전선사가 철감선사에게 '우리 종의 법인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하고 인가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이와 같이 남전선사의 승풍은 조주선사를 통해서 중국에 이어졌고, 철감선사를 총하여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할 수 있으므로 호선전에 법과 차의 인연이 깊은 두 분의 진영을 모시게 된 것이다.
참고로 조주선사 진영은 조주선사가 40년 동안 머물렀던 중국 하북성 백림선사를 찾아가 송나라 때 판각한 조주선사 초산화 영인본을 참고하여 제작한 것이다.
▲ 천왕문을 통해 바라본 쌍봉사 대웅전(사진 上)
요사 담장 옆에서 바라본 쌍봉사 대웅전(사진 下)
♧ 쌍봉사 대웅전(雙峰寺 大雄殿)
▲ 쌍봉사 대웅전 정면 전경(사진 上)
대웅전 측면(사진 下左)과 후면(사진 下右) 전경
평면이 방형인 3층 전각으로 사모지붕의 목조탑파형식을 지닌 희귀한 양식이다.
목조탑파건축으로는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등 2동 만이 현존한다. 보물 제161호(1936년05월03일 지정)로 지정되어 보존되어 오던 중 1984년 4월 3일 신도의 부주의로 소실,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복원공사는 문화재관리국이 그간 자료를 수집하여 1985년 8월 5일 착공하여 1986년 12월 30일 준공.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 범종각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 ♧ 화순 쌍봉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상 (和順 雙峰寺 大雄殿 木造三尊佛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2001년06월05일 지정)
*수량/면적:3구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증리)
화순 쌍봉사에 모셔져 있는 목조삼존불좌상으로서 앉은 모습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양옆에 서있는 특이한 형식의 삼존불상이다. 쌍봉사는 우리나라 현존 유일의 3층 목탑식 전각이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하여 왔으나 1984년 불에 타 다시 지었다. 불이 난 당시 다행히도 목조삼존불좌상은 화를 입지 않았다.
가운데 모셔져 있는 석가여래상은 약간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으로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발이다. 붉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귀는 크고 두툼하다. 양어깨를 감싼 옷은 두툼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서 자연스럽게 무릎 안쪽에 올려 놓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오른발바닥 위에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양옆에 서있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고 있다.
가섭·아난존자와 함께 조선 숙종 20년(1694)에 만들어진 석가여래좌상은 조성 수법이나 형식에 있어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여 연대를 알 수 없는 다른 조각상의 표준이 되는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 쌍봉사 지장전
♧ ♧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一括)
*보물 제1726호(2011년11월01일 지정)
*수량:21구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741 쌍봉사
화순 쌍봉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과 「綾州地獅子山雙峰寺諸殿記文輯錄」과 「雙峰寺事蹟記」등을 통해 이 상은 1667년경 雲惠를 비롯한 그의 일파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의 경향은 조선후기 17세기 중·후반 전라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했던 조각승 운혜의 조각 경향을 잘 간직하고 있고,더불어 과거에 시문된 고색 찬연한 채색문양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곧 이 시왕상과 권속상들은 회화와 조각이 잘 어우러진 불상으로 조선후기 채색불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각승 운혜는 17세기 전반을 활약했던 守衍-靈哲의 계보를 잇는 조각승으로 그의 조각 경향은 敬林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특히 입체적이고 건장하면서도 중량감 넘치는 선 굵은 조각 경향을 선호하였는데,쌍봉사 지장시왕상에서도 이러한 조각 경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특히 이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기를 통해 이 상은 1667년경에 조성된 것이 확실하므로 아직 제작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해남 대흥사 지장시왕상, 강진 백련사 지장시왕상,해남 미황사 지장시왕상,순천 동화사 지장시왕상,순천 정혜사 지장시왕상 등 운혜파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들의 조성연대 추정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고, 더불어 이 중에서 冥界彫刻이라는 종교적 엄숙성과 17세기 불교 조각계가 추구한 대중적 평담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화순 쌍봉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17세기 중·후반경 활발한 조각활동을 펼친 조각승 운혜의 불상양식 연구와 운혜파 조각승의 조각활동과 경향을 시기별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내역>
1. 지장보살좌상 2. 도명존자입상 3. 무독귀왕입상 4. 제1 진광대왕 5. 제2 초강대왕
6. 제3 송제대왕 7. 제4 오관대왕 8. 제5 염라대왕 9. 제6 변성대왕 10. 제7 태산대왕
11. 제8 평등대왕 12. 제9 도시대왕 13. 제10 오도전륜대왕 14. 귀왕상(좌) 15. 귀왕상(우)
16. 판관상(좌) 17. 판관상(우)18. 사자상(좌)19. 동자상 20. 인왕상(좌) 21. 인왕상(우)
▲ 쌍봉사 극락전
♧ ♧ 화순 쌍봉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和順 雙峰寺 極樂殿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2001년06월05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증리)
쌍봉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앉은 모습의 아미타여래상이다. 원래는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협시불과 함께 삼존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1989년 8월경 양 협시불을 도난당하여 이후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아미타여래좌상은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으며 등이 약간 굽은 모습이다.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발이고, 짧은 목에는 삼도가 얕게 그려져 있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의 주름은 뚜렷하면서도 두툼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린 모습인데 양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걸쳐 앉아 있다.
이 불상은 숙종 20년(1694)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삼존불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과 조각형식이 매우 흡사하다.
▲ 쌍봉사 나한전(사진 上)
나한전 내부 전경(사진 下)
▲ 쌍봉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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