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화순)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1부

왕마구리 2015. 7. 31. 21:32

◀ 전남 화순 운주사(和順 雲住寺) 제1부 ▶

천불천탑의 불가사의한 신비의 사찰!!!

 

「 전남 화순(全南 和順) 소개 」

화순군(和順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순천시·곡성군, 서쪽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장흥군, 북쪽은 광주광역시·담양군·곡성군과 접한다. 도곡면, 춘양면 일대의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군청 소재지는 화순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다.

면적은 787㎢ (전남의 6.6%)로 전라남도내 3번째(해남, 순천)로 넓고, 임야는 도내 2번째(순천) 규모이다.

동단 화순군 북면 송단리 127′12′12″ 35′10′58″ ,서단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 126′49′34″ 34′52′04″로 동서간 길이는 32㎞이며, 남단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 126′56′48″ 34′49′18″, 북단 화순군 북면 방리 127′11′10″ 35′12′40″로 남북간 길이는 43㎞이다.

 

                      ▲ 운주사 대웅전 뒷편 불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남쪽 계곡에 자리한 운주사 일대 전경

 

마한시대에는 능주, 화순방면에는 평지를 바탕으로 한 여래비리국(如來卑里國), 동복방면에는 벽비리국(辟卑里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백제시대에 화순, 능주, 동복의 세개 현(縣)이 독자적인 행정편제를 유지하였는데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능주방면), 냇가변에 자리잡은 잉리아현(仍利阿縣:화순방면), 항아리 같은 바위가 있는 두부지현(豆夫只縣:동복방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757년)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 및 두자로 줄이는 작업을 하면서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은 능성군(陵城郡)으로, 잉리아현은 여미현(汝湄縣)으로, 두부지현은 동복현으로 변경되면서 곡성군으로 속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인 940년에 이르러 능성현은 한자를 바꾸어 능성현(綾城縣)으로 하고, 여미현은 오늘날의 지명인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에는 동복현(同福縣)을 곡성에서 보성군 소속으로 변경하였다. 1143년에 처음으로 중앙에서 능성현에 감무(監務:현재의 군수)라는 행정관이 파견되었으며 이어 충열왕 때인 1280년경 동복오씨 조영(祖英) 혹은 조염(祖琰)국사의 고향이라 하여 동복에도 처음으로 감무가 파견되고 고려말 1390년에 화순에도 감무가 파견되면서 남평현을 겸임하였으니 이때에 이르러 중앙행정이 직접적으로 이곳까지 미치게 되었다.감무관이 파견되기 이전에 이곳은 모두 자치고을로서 토호들에 의한 간접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복현이 있었던 자치고을로는 보령현(保寧縣:현 이서면지역), 대곡현(大谷縣:현 남면지역), 수촌현(水村縣:현 북면 수리부근), 압곡현(鴨谷縣:현 북면 옥리부근)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불과 몇 년 만에 세 현이 폐치분합을 거듭하게 되는데 처음 1396년에는 화순현을 없애고 능성현과 동복감무(화순현 겸임)만을 두었다가 1405년에 능성현, 화순감무(동복겸임), 1407년에 능성현, 복순현(福順縣.동복과 화순 합함), 1413년에 능성현, 화순현(동복겸임), 1416년에는 순성현(順城縣.화순과 능성 합함), 동복현으로 하였다가 다시 1418년에 이르러 세 지역의 통합이 불가하여 능성현, 화순현, 동복현으로 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의 피해가 너무 심하여 화순현의 백성들은 스스로 폐현을 자청 능성현에 합하였고 1611년에 이르러서야 화순현이 복현되기도 하였다. 이 복현을 기념하여 당시 객관앞에 심은 것이 바로 화순군청에 서 있는 은행나무이다. 1632년 인조반정이 있은지 10년후 인조의 모친인 인헌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능성현은 일약 능주목으로 한 등급 올라서게 되었다. 이로서 화순지역에는 능주목, 화순현, 동복현의 세 고을로 이어져 왔는데 1655년 동복현의 객사와 전패가 화재로 불에 타자 잠시 화순현에 합하였다가 다시 1664년 세 현으로 있었고 이 체제는 대한민국시대까지 유지되었다. 1895년 5월 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능주군, 화순군, 동복군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 10월 15일에는 화순군을 폐지하여 능주군에 흡수시킴으로써 능주군, 동복군으로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고 동복군과 병존하다가 1914년 3월 1일 동복군 마저 폐지하고 화순군에 편입시킴으로써 오늘날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1읍 12면 1출장소 342행정리로 운영하고 있다.

 

능주면 일대에는 역사적 유적지가 비교적 많은데, 특히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를 폈던 조광조가 귀양 와서 죽음을 당한 터와 적려유허추모비가 있다. 동복면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맑은 물로 유명한 화순적벽이 있다. 그 밖에 남면 벽송리에 고인돌군, 북면 백아산에 천연 동굴이 있다. 천태산에는 비자나무 숲과 수령이 5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를 비롯해 만연사·쌍봉사·유마사·개천사가 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알려진 운주사에는 석불과 석탑이 많다. 그 밖에 오성산성·예산산성·철옹산성·물염정·화순적벽이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는 화순온천과 도곡온천이 개장되었다.

 

『 탐방한 화순군의 문화재들 』

1 국보 제57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2 보물 제170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3 보물 제1726호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一括)

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 화순쌍봉사대웅전목조삼존불상(和順雙峰寺大雄殿木造三尊佛像)

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2호 화순쌍봉사극락전목조아미타여래좌상(和順雙峰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

6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247호 화순 쌍봉사(和順 雙峯寺)

7 사적 제312호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8 보물 제796호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9 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10 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11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3호 화순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

12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4호 화순운주사광배석불좌상(和順雲住寺光背石佛坐像) 

13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5호 화순운주사마애여래좌상(和順雲住寺磨崖如來坐像) 

1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6호 화순운주사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層石塔)

1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7호 화순운주사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雙交叉紋七層石塔)

16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8호 화순운주사석조불감앞칠층석탑(和順 雲住寺石造佛龕앞七層石塔) 

17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9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

18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0호 화순운주사대웅전앞다층석탑(和順雲住寺大雄殿앞多層石塔)

19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1호 화순운주사칠성바위앞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星바위앞七層石塔)

20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2호 화순운주사발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鉢形多層石塔) 

21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오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五層石塔)

22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화순운주사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

23 중요민속문화재 제152호 화순양동호가옥(和順梁東浩家屋)

24 중요민속문화재 제154호 화순양승수가옥(和順梁承壽家屋)

 

【 일 정 표 】2015년 6월 29일(월)-30일(화) 1박2일

                             ◈ 첫째날(6/29) : 운주사-조광조선생 유배지

                             ◈ 둘째날(6/30) : 쌍봉사-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학포선생부조묘

 

이번 전남 화순군 방문의 주 목적은 천불천탑의 운주사와 국보 제 57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 탐방이었다. 먼 거리의 이동이라 많은 곳을 둘러 보기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운주사의 탐방은 단순한 사찰 탐방이 아니라 주변 산중턱에 위치한 석탑과 석불들을 탐방하게 되므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첫째날은 운주사의 문화재들을 탐방하고, 숙소로 정한 화순읍내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조광조선생 유배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화순군내 유일의 국보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를 첫번째 목적지로 정하였고, 인근의 양동호와 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를 방문하는 것으로화순 탐방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화순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운주사와 쌍봉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조광조선생 유배지, 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는 '호남권'에 아래와 같이 문화유적이 많은 운주사를 제1,2부로 나누는 등 총 5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1부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2부

-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쌍봉사(雙峯寺)

- 전통민속마을! 양동호&양승수가옥(梁東浩&梁承壽家屋)

- 기묘사화에 연루된 선비들의 삶! 조광조선생 유배지와 학포선생부조묘

 

『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소개 』

*사적 제312호(1985년04월15일 지정)

*수량/면적497,090㎡

*소재지: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산3번지 외

 

                      ▲ 운주사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이 중 도선창건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영암 출신인 도선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곳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도력(道力)으로 조성하여 놓았다고 한다. 이 전설을 뒷받침이나 하듯이 절에서 멀지 않은 춘양면에는 돛대봉이 있다. 돛대봉에 돛을 달고 절에서 노를 젓는 형세라 한다. 또 절을 지을 때 신들이 회의를 열었다는 중장(衆場)터(일설에는 승려들이 장터를 이룰 만큼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가 멀지 않고, 신들이 해를 묶어놓고 작업하였다는 일봉암(日封巖)도 가까이에 솟아 있다.

절의 이름을 운주사(運舟寺)라 한 것은 풍수상 움직이는 배 모양의 땅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법당을 비롯한 석불과 석탑이 크게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自優, 1769∼1830)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당시는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음을 각안(覺岸, 1820∼1896)이 지은 「능주운주동(綾州雲住洞)」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921년에 간행한 『도암면지』를 보면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 등 16명이 시주하여 중건하였음이 나와 있고, 최근에도 중창불사가 있었다.

현재 대웅전과 지장전·법성료·범종각·객실·요사채가 있으며, 비구니들의 수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석탑 12기, 석불 70기만이 있다. 1980년 6월에 절 주변 일원이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는 연화탑(蓮華塔)과 굴미륵석불(窟彌勒石佛)·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대웅전 내에 있는 오층석탑·구형오층봉발탑(球形五層奉鉢塔)·부부와불(夫婦臥佛) 등이 있다. 현존하는 이 절의 석탑과 석불은 동일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이름 없는 석공이 평생을 두고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 운주사 경내 전경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유일한 기록이 있다. 이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때까지만 하여도 석불 석탑이 일천기씩이 실존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또한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 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 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이 22기, 석불이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뼈아픈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운주사 70여 구의 불상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5층·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이 있어 유명하다. 부부와불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조각하였는데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운주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3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12점의 지방문화재를 포함하여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가 남아 있다.

현존하는 유물들을 한 편의 탐방기에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자료라

일주문에서 경내 대웅전까지 평지에 조성된 문화재들을 제1부에,

대웅전 뒷편 북동편 산중턱과 와불이 자리한 서편 산자락을 따라 조성된 '천불천탑 운주사 탐방로'에 자리한 문화재들을 제2부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또한 소개되는 문화재들은 일주문을 출발하여 탐방한 순서에 따라 서술을 하기로 한다.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1부 ◈

운주사 제1편에서는 일주문을 지나 운주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석탑과 석불들, 그리고 운주사 경내의 전각 및 석탑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3점의 보물인 국가지정문화재와 5점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그리고 1점의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등 총 9점의 지정문화재와 석불과 석탑 등 미지정 문화재들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이곳에서는 탐방 순서대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운주사 안내도(사진 左)와 참배 코스 안내도(사진 右)

 

【 운주사 문화재 탐방순서 】

일주문-운주사 오층석탑(보물 제796호)-석불군A-오층석탑-운주사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운주사 쌍교차문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석불군C-운주사 수직문 칠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운주사 광배석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운주사 석조불감앞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운주사 원형 다층석탑(보물 제798호)-운주사 경내 탐방[보제루-운주사 대웅전앞 다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0호)-대웅전-지장전-경내 삼층석탑-경내 실패탑-범종각]

 

 

                      ▲ 운주사 일주문(사진 上)

                         일주문에서 운주사 경내로 가는 길(사진 下)

                      ▲ 운주사 경내로 가는 길에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보물 제796호인 운주사 구층석탑

 

♧ ♧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1984년11월30일 지정)일

*소재지: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용강리)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러하여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는데, 이러한 수법은 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 운주사 구층석탑의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의 문양(사진 右)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형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였다가 1984년 보물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 오층석탑이 있는 우측 암벽 상부에서 내려다 본 구층석탑

 

                      ▲ 운주사 구층석탑과 운주사 경내로 이어지는 남쪽 골짜기에 세워진 2기의 칠층석탑들

                      ▲ 운주사 구층석탑 우측으로 석불군 "가"와 암벽 상부에 위치한 오층석탑

 

◈ 석불군 "가" (A)

합장 수인의 모양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배치된 형식이다. 바위너설 안에 모셔져 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풍우를 피할수 있게 바위 너설 위를 인공적으로 다듬어 낸 흔적을 엿볼수 있다. 바위너설이 실내의 법당 역할을 훌륭히 해낼수 있도록 조성한 듯 싶다. 다른 곳의 불상 보다도 그 생긴 모양이 특이하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가 인상적이다. 그저 우리 이웃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마치 천불천탑을 세웠던 듯 이런식으로 불상이 배치된 것을 보면 마치 천불이 이곳에 실재했는 듯 싶다. 맨 오른쪽 불상 대좌 뒤편에서는 8-9세기로 추정되는 금동 불상과 여래 입상이 출토 되었다. 특이하게도 중성불의 개념을 깨뜨려 아버지부처 어머니부처 아들 딸 부처로 부르고 있는데 운주사 불상을 바위너설 야지에 집단적으로 배치한 모습과 더불어 이 또한 운주사만이 가지는 특이한 개성이라 할만하다.

 

 

 

석불군 "가"가 위치한 암벽 위로 오층석탑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우측으로 오층석탑으로 오르는 돌계단 신규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오층석탑에 올라 발 아래 펼쳐지는 운주사 구층석탑과 칠층석탑 등을 내려다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운주사 경내를 향해 탐방을 계속한다. 오층석탑에서 신규 탐방로를 따라 산길을 계속 이어가면 광배를 갖춘 불상(광배석불좌상)과 세번째 칠층석탑인 운주사 석조불감앞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옆으로 내려서게 된다.

 

 

                      ▲ 구층석탑 우측 암벽 상부에 세워진 운주사 오층석탑

 

♧ ♧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和順 雲住寺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정사각형의 기단에 둥그런 원형을 둘러 그 위에 탑을 세웠다. 옥개석(지붕돌)이 육중하고 날렵해 활달한 남성적인 위용이 느껴진다.

 

 

기단석을 이렇게 반듯하게 다듬어 이곳으로 운반해 여기 꼭 이 탑을 세워야만 했던 까닭을 생각해보면 운주사 조성자들의 심오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직선적이고 다소 가파른 처마의 선, 우람한 옥개석의 인상이 신라탑의 원형인 감포 감은사지 석탑과 유형이 닮아서 탑의 형식적 분류상 신라탑이라고 한다.

 

                      ▲ 운주사 칠층석탑의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사진 右)

 

그렇다면 이곳은 예전 백제땅인데 왜 이곳에 신라탑이 함께 조형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운주사 탑들이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파격적이다. 반듯한 기단부와 우람한 옥개석이 연이어 오른 모습이 야무지고 단단한 사내의 웅혼한 기상이 넘쳐 흐르는 듯 하다.

높이 9.6m의 탑이다.

 

 

                      ▲ 운주사 구층석탑 뒷편으로 세워진 2기의 칠층석탑

                          (두번쨰 칠층석탑인 쌍교차문치층석탑과 광배석블좌상 사이에서 뒤돌아본 전경)

 

♧ ♧ 화순 운주사 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 雲住寺 雙交叉紋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

 

 

탑신에 개성적인 교차문양을 갖고있는 날렵한 인상의 칠층석탑이다. 기단석도 잘 다듬어서 이곳으로 운반하여 그 위에 직사각형으로 돋을 새김하여 탑을 세웠다. 운주사의 탑의 기단부나 탑신부는 네 개의 직사각형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세우고 그 위에 옥개석(지붕돌)을 올려 놓은 형식으로 건립하였다. 때문에 그 가운데는 텅비어 있다.

 

 

                      ▲ 운주사 구층석탑의 기단부(사진 上)와 탑신부의 문양(사진 下)

 

네개의 돌판을 이어 올려 육중한 옥개석의 무게 중심을 지탱하고 있는 그 신비로운 건축술을 생각해보면 조상들의 지혜가 어떠한것인가를 가늠해보게 한다.

교차문양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름모꼴들의 연속이다. 동서남북 사방의 부처의 기운이 이곳으로 한데 모여 사방팔방 부처의 세계가 아닌곳이 없이 자비의 빛으로 온세상을 환하게 밝히기를 염원하는 깊은 뜻이 깃든 게 아닌가싶다.

 

◈ 석불군 "다" (C)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한 돌부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발가락이 선명하고 그 인상 또한 친근감이 묻어나온다. 가장자리에 서있는 애기 돌부처는 마치 갓난아기마냥 정겹고 앙증맞다. 발가락과 손 모양이 너무나도 귀엽다.

 

 

운주사의 불상들이 갖는 특징들은 이렇게 너 나가 따로 구분되어 높은 단위에 올라 위압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각기 다른 개성으로 정겹게 하나되어 있다는 그 어울림에 있다. 남편과 아내 갓난 아이가 오손도손 정겹게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자비로운 세계가 실현된 듯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석불군 "다" 우측으로 산중턱 암벽 암반 위에 자리한 운주사 수직문 칠층석탑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계단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운주사 수직문 칠층석탑을 만나게 되고, 다시 계단길을 내려와 광배석불좌상, 석조불감과 원형다층석탑을 탐방하고 운주사 경내로 향하게 된다.

 

                      ▲ 석불군 "다" 우측 수직문 칠층석탑 오르는 길

 

♧ ♧ 화순 운주사 수직문 칠층석탑(和順 雲住寺 垂直紋 七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운주사 동쪽 산중턱의 높직한 암반위에 있는 전체 높이 7.2m의 석탑이다.

 

                      ▲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의 문양(사진 右)

 

지대석 등의 별 다른 시설없이 암반위에 방형단을 만들어 기단부를 대신하고 탑신부를 얹었다. 모서리 기둥 사이의 면석에는 가늘게 층에 따라 7~11선의 수직 종선문을 음각하였는데 각 층이 똑 같은 형태이다.

각 층의 옥개석 하면에는 받침을 생략하고 대신 마름모 꼴을 음각하였다.

현재 6층까지 탑신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시기는 고려시대이다.

 

♧ ♧ 화순 운주사 광배석불좌상(和順 雲住寺 光背石佛坐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비로자나부처님의 수인을 하고 있는 사다리꼴형의 판석에 돋을 새김하여 새겼다. 가늘고 길게 솟은 코, 두툼한 입술 크고 긴 귓바퀴가 선명하다. 육계는 솟아 있으며 합장한 수인과 법의 자락은 그저 선만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광배를 갖춘 불상은 매우 특이한 유형이다. 주변 전체에 동글동글 구름문양의 화염문을 아름답게 음각하였다. 이렇게 화염문을 음각한 정도의 수준이라 한다면 이곳 조성자들이 불교 사상에 정통하였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 운주사 광배석불좌상의 광배와 얼굴 부분(사진 上)

                          불상 하부의 수인과 가부좌 조각 형태(사진 下)

 

얼굴은 뚜렷하지 않지만 권위나 위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우 정겹고 친근감이 가는 모습이다. 발굴 조사때 조선시대때의 기와가 많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목조 기와집을 지어 모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 운주사 광배석불좌상과 주변의 불상들(사진 上)

                         광배석불좌상 뒷편에서 바라본 광배석불좌상의 후면과 2기의 칠층석탑, 구층석탑(사진 下)

 

♧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앞 칠층석탑(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앞 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석조불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석탑이 큰 방형 지대석을 설치하여 기단을 대신한 것과 달리 규모가 작고 낮은 지대석 위에 1단 괴임을 마련하여 탑을 세웠다. 옥개석의 층급 받침은 약하며, 상면에 탑신괴임이 생략되었다.

 

                      ▲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사진 右)

 

넓고 평평한 옥개석과 그 윗면에 귀퉁이의 우동마루가 예리한 선을 이루지 않고 두툼하게 표현된 것은 백제계 석탑에서 나타나는 기법이어서 주목된다.

또한 옥개석의 폭과 탑신 높이의 체감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라 추정된다.

 

                      ▲ 운주사 석조감실과 석조감실 앞 칠층석탑

 

♧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보물 제797호(1984년11월3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용강리)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다. 다탑봉(多塔峰) 골짜기에 자리한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 예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의 정상에 이르는 동안 여러 기의 석탑과 불상을 볼 수 있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 운주사 석조불감 내 불상(사진 左)과 석조불감 측면 모습(사진 右)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운주사 석조감실과 원형다층석탑

 

♧ ♧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보물 제798호(1984년11월3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용강리)

 

 

운주사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아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하루낮 하루밤 사이에 도력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절에는 탑 18기, 불상 70구가 남아 있는데,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앞에 자리잡은 이 탑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형태에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따르지 않은 특이한 모양의 석탑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기단부(사진 左)와 탑신부(사진 右)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 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라 하겠다. 기단의 맨윗돌이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지붕돌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

탑의 전체 높이는 5.8m이다.

 

                      ▲ 원형다층석탑 뒷편의 삼층석탑

 

원형다층석탑 뒷편의 삼층석탑을 지나 운주사 종무소인 보제루를 통과하고 경내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4층 높이만 남아 있는 다층석탑과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 운주사 경내로 들어가는 보제루

 

                      ▲ 운주사 경내 전경

 

대웅전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요사채 건물 몇 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 실패탑과 삼층석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종무소 건물인 보제루 좌측으로는 종각이 잇다. 또한 대웅전 앞마당 우측에는 지장전이 위치하고 있다.

 

♧ ♧ 화순 운주사 대웅전앞 다층석탑(和順 雲住寺 大雄殿앞 多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0호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의 석탑을 빼어닮은 완전한 신라탑의 유형이다. 전탑양식은 벽돌을 쌓아 만든 탑으로 그 형식에 있어서 옥개석(지붕돌)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목조 기와지붕의 양식이 아니라 계단식 지붕형태를 보여주는 점이 그렇다.

 

                      ▲ 기단부(사진 左)와 훼손된 탑신부(사진 右)

 

지금은 4층만 남아있으나 실재로는 7층 혹은 9층은 되었음직한 크기다. 일설에는 이 탑을 건립할 때 맑은 날 거대한 이무기가 감고 올라가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그 요물을 벌하였는데 그때 이렇게 파손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운주사의 석질은 사토에 모래와 자갈이 섞인듯한 토속적인 돌담양식의 인상을 주고 있다. 반들반들 윤기가 나지 않고 거친듯하면서도 다정다감 포근한 인상을 더해준다.

 

 

                      ▲ 요사채 입구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지장전(사진 上)

                         운주사 대웅전(사진 下左)과 범종각(사진 下右)

 

                      ▲ 요사채 앞의 삼층석탑(사진 上)

                         실패탑(사진 下右)

 

대웅전을 끝으로 운주사 제1부 소개를 마치고, 대웅전 우측 산길을 따라 오르며 운주사 제2부의 소개가 시작된다.

 

                      ▲ 운주사 제1부와 제2부 소개의 경계인 대웅전 옆 이정표

                         이정표에서 미륵전/산신각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오르면서 제2부의 탐방 문화재 소개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