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구례)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

왕마구리 2015. 10. 18. 12:49

◀ 전남 구례 화엄사(華嚴寺)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 보제루를 지나 펼쳐지는 화엄사의 중심영역

 

「 전남 구례(全南 求禮) 소개 」

구례군(求禮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 지리산이 뻗어내려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북동부와 남서부는 1,000m 이상의 산지로 반야봉(1,732m)·노고단(1,507m)·만복대(1,433m)·고리봉(1,248m)·따리봉(1,127m)·도솔봉(1,123m) 등이 솟아 있으며, 중부와 서부로 갈수록 낮아져 천마산(654m)·깃대봉(691m)·요강바위산(546m) 등이 높이 500~800m의 산지를 이루고 있어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은 구례분지의 남부에서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굽이 돌아 하동군 화개를 거쳐서 남해로 흘러들며, 구례분지의 젖줄인 서시천은 만복대에서 발원하여 구례분지 중앙부를 관류하고 합강정에서 섬진강에 유입한다. 그밖에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연곡천·신도천, 남부 산지의 효곡천·수평천 등이 군내를 지나 섬진강에 흘러든다. 본래 산은 모든 하천의 수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산지에는 큰 하천과 평야가 없는 것이 상례이나 구례군은 규모가 큰 산과 하천, 평야를 모두 갖고 있는 지형적 특색을 보인다. 군의 중앙에 하천을 끼고 형성된 구례분지는 토양이 비옥하여 주요 생산지를 이룬다.

기후는 산간내륙지방으로 한서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3.4℃ 내외, 1월평균기온 -0.2℃ 내외, 8월평균기온 26.7℃ 내외, 연평균강수량은 1,477㎜로서 강수량의 대부분은 6~9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특히 섬진강 유역에 위치하여 지형성 강우가 많으며, 우리나라의 다우지역에 해당한다. 식생은 소나무·대나무·아카시아·상수리나무·밤나무·오리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며 해발고도의 수직적 변화에 따라 상이한 식생이 분포한다.

구례군의 행정 구역은 1읍 7면, 69리 152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구례군의 면적은 443.2㎢이다. 인구는 2015년 5월말 기준 12,426세대 27,088명이다. 현재 전라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군이다.

 

                      ▲ 화엄사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서 오층석탑, 각황전 앞 석등, 그리고 긱황전 전경

 

「구례의 역사」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었으며, 757년 구례현(求禮縣)으로 개칭하고 곡성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940년 남원부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인종21년(1143)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9년(1409) 전라도의 향·소·부곡이 모두 폐지되면서 구례현의 남전소(南田所)·방광소(放光所)·사등촌부곡(沙等村部曲)·유곡부곡(楡谷部曲)·토지처(土旨處)가 폐지되었고, 연산군5년(1499) 현에서 부곡으로 격하되어 남원부에 속하였다.

중종 2년(1507) 구례현으로 복귀되었다가,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다시 남원부 구례군으로 개편하였다. 8면 : 현내면, 계사면, 문척면, 간전면, 마산면, 용강면, 방광면(옛 방광소), 토지면(옛 토지처)

1896년 8월 4일 전라북도 구례군으로 개편되어, 1906년 남원군 산동면·중방면·소의면·고달면이 구례군에 편입되었으며 산동면이 외산면과 내산면으로 분리되어 13면이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이관되면서 고달면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현내면과 계사면을 구례면으로, 간전면과 문척면을 간문면으로, 방광면과 소의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과 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합면하면서 8면 (구례면, 간문면,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용방면, 외산면, 내산면)이 되었고. 1932년 외산면, 내산면을 산동면으로 합면하여 7면이 되았다.

1945년 간문면을 간전면, 문척면으로 환원하여 8면을 유지하다가, 1963년 1월 1일 구례면이 구례읍으로 승격하여 1읍 7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화엄사의 중심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해 통과하게 되는 4개의 문

                         일주문(사진 上左)→불이문(사진 上右)→금강문(사진 下左)→천왕문(사진 下右)

 

『 탐방한 구례군의 문화재들 』

● 화엄사

사적 제505호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명승 제64호 지리산 화엄사 일원(智異山 華嚴寺 一圓)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求禮 華嚴寺 四獅子 三層石塔)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求禮 華嚴寺 覺皇殿)

국보 제301호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東 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西 五層石塔)

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求禮 華嚴寺 大雄殿)

보물 제300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求禮 華嚴寺 圓通殿 앞 獅子塔)

보물 제104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華嚴寺華嚴石經)

보물 제1348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華嚴寺 西五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363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華嚴寺大雄殿三身佛幀)

보물 제1548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화엄사 보제루(華嚴寺 普濟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華嚴寺 九層庵 石燈)

 

● 연곡사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보물 제151호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 逍遙大師塔)

 

●구례 운조루(求禮雲鳥樓)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 

●구례 곡전재(穀田齋) 구례군향토문화유산 2003-9호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명승 제111호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求禮 鼇山 四聖庵 一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20호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求禮四聖庵磨崖如來立像) 

 

【 일 정 표 】2015년 10월 2일(금)-3일(토) 1박2일

                             ◈ 첫째날(10/2) : 구례 화엄사-연곡사-하동 쌍계사

                             ◈ 둘째날(10/3) : 운조루-곡전재-사성암&오산

 

전라남도 구례군은 3월 중순과 4월 초순경에 열리는 「산수유꽃」과 「섬진강변 벚꽃」 축제와 지리산 산행으로 이미 수 차례 찾은 바 있으며, 이번에 탐방한 화엄사도 두 번이나 방문을 하였었다.

그러나 당시는 문화재와 명승지 탐방이 목적이 아닌 관계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아 심도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않아, 항상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구례군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꽃이 피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순 경이나, 단풍이 물드는 11월 초순경에 찾았더라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방문 시기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번 탐방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10여년 전 여름 휴가로 구례를 찾았을 당시 숙소로 묵었던 곳으로 화엄사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이번에 탐방한 '운조루'와 곡전재'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전통가옥「쌍산재」를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의미에 한 번 방문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지나친 것에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주 탐방지역이 구례군이었지만, 인접 하동군에 위치한 쌍계사가 연곡사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있어 함께 탐방을 실시하였는데, 물론 쌍계사도 이번 탐방이 3번째이지만 항상 만개한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화개장터, 최참판댁 등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여 깊이 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를 지울 수 있어서 쌍계사 탐방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이번 구례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지리산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은 절로, 국가 지정문화재가 곳곳에 숨어있어 한편의 글로 서술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양이라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과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등 2부로 나누어, 연곡사, 사성암&오산 등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운조루와 곡전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하는 등 아래와 같이 총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구례군에 인접하여 이번 여행에서 함께 찾은 하동 쌍계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 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연곡사(鷰谷)

- 오산 정상의 기암절벽에 지어진 네 성인의 수도처! 사성암(四聖庵)

-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아름다운 고택! 운조루(雲鳥樓)

- 부농의 민가형식 주택! 금환락지(金環落地) 곡전재(穀田齋)

 

                      ▲ 화엄사 대웅전 앞 계단에서 바라본 서쪽의 서 오층석탑과 각황전 앞 석등, 원통전 앞 사자탑, 그리고 각황전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 

화엄종의 원찰로 선·교 양종 총림 대도량!

 

『 구례 화엄사(華嚴寺) 소개 』

*사적 제505호(2009년12월21일 지정)

*수량/면적:25,994㎡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등 (황전리)

 

 

1,500여년을 이어 온 화엄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거기에 지리산 자락에 걸친 구름과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함께 머무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는 절이다.

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화엄종 사찰로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둔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짓고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화엄사가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이다. 

삼국통일 후 의상대사께서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었고, 신라 경덕왕 때(742~764)에 이르러 8 가람 81 암자의 대사찰이 되었다. 이 때 남방제일화엄대종찰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각황전 기단, 각황전 앞 석등과 대석단, 동·서 오층석탑, 그리고 효대라 불리는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당시의 유물이다.

‘도선국사’가 도참설에 의해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 화엄사의 혜안선사와 벽암선사께서 승군을 일으켜 땅을 지키고, 자운스님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바다를 지켰다.

비록 주지스님인 설홍대사와 300여 스님들이 목숨을 잃고 화엄사가 왜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지만 중생을 살피고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을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30년(1630) 경 나라의 도움을 받아 ‘벽암선사’의 중창이후 선·교 양종 총림 대도량의 역할을 하였다.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지리산 화엄사 일원(智異山 華嚴寺 一圓)

*명승 제64호(2009년12월09일 지정)

*수량/면적:2,585,252㎡

지리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이라고 불리우는 영산으로, 천황봉, 노고단 등 수많은 산봉우리, 웅장한 기암절벽, 계곡, 울창한 산림 등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천년고찰 화엄사와 조화되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큰 경승지이다.

 

                      ▲ 화엄사 배치도

 

일주문을 들어서서 금강문과 천왕문을 차례로 통과하면 누각인 보제루를 만나게 된다. 대게 절에 있는 누각은 누하진입이라 하여 누각 아래를 들어가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하여 오른쪽으로 보제루를 끼고 돌아 들어서게 되어 있다.

 

                      ▲ 화엄사 천왕문을 통해 본 보제루

 

이는 중심영역의 장엄함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이며,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보제루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이 펼쳐지는 화엄사 중심영역의 멋진 경관을 대하게 된다.

높은 석단으로 둘어 쌓인 마당에는 두 기의 석탑이 서 있고, 석단 위에는 각황전, 원통전, 대웅전, 명부전이 지리산 산봉우리들과 함께 펼쳐지는데, 마치 연꽃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이늑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장엄하기도 하다.

보제루 툇마루에 걸터 앉아 각황전을 올려다 보면 장엄하기 이를데 없고 대웅전은 단아하기 그지 없다.

 

                      ▲ 화엄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서쪽의 서 오층석탑과 각황전 앞 석등, 원통전 앞 사자탑, 그리고 각황전

 

♧ ♧ 구례 화엄사 각황전(求禮 華嚴寺 覺皇殿)

*국보 제67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 화엄사 각황전 내부

                      ▲ 화엄사 각황전 내부 가구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 각황전 귀공포(사진 左)

                         각황전 정면 공포와 편액(사진 右)

 

화엄사의 제일 유명한 전각 각황전의 원래 이름은 장육전으로 3층 건물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1장 6척(약 4.8m)의 거대한 석가여래입상을 모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긱황전 앞 뜰의 커다란 석등을 보면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각황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해지는 목조건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 화엄사 각황전과 각황전 앞 석등

 

♧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국보 제12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 8각 바닥돌 위에 엎어놓은 연꽃무늬의 아래받침돌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 형태의 중간받침돌과 연꽃무늬가 조각된 윗받침돌(사진 左)

                         화사석과 옥개석 및 상륜부(사진 右)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 각황전 좌측 사사자 삼층석탑가는 길 입구(사진 左)와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오르는 108계단(사진 右)

 

각황전 왼편 동백꽃 사이의 108계단을 따라 오르면 효대라 불리는 화엄사를 청건한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그러나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현재 보수공사중이라 이번 탐방에서는 잘 정리된 주변환경과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가 없었으나, 보수공사중인 실무자들의 배려로 근접하여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을 감상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수를 알리는 안내판

 

♧ ♧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求禮 華嚴寺 四獅子 三層石塔)

*국보 제35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황전리)

 

                      ▲ 보수공사 전의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 보수공사중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사진 上)

                         사사자 삼층석탑 앞의 석등 전면과 후면(사진 下)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로,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많은 부속 건물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해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아래층 기단의 비천상들

                      ▲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사자상(사지 左)과 탑신의 문비와 인왕상(사진 右)

                      ▲ 탑 위층 기단을 받치고 있는 연화문 조각의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의 사사자와 승상 머리 부분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 사사자 삼층석탑을 향해 석등을 이고 꿇어 앉아 있는 승상(사진 上)

                         석등의 화사석과 상륜부(사진 下)

                      ▲ 보수공사중인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등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의 실물은 감상할 수 없었으나, 각황전 내부 3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는 불단 뒷편으로 돌아가면 괘불탱을 넣어두는 보관함과 축소하여 제작한 영산회 괘불탱 그림 모조품이 안내문과 함께 걸려 있어 어떤 그림이지를 알 수가 있다.

 

♧ ♧ 구례 화엄영산회 괘불탱(求禮 華嚴寺 靈山會 掛佛幀)

*국보 제301호(1997년09월22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황전리)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들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손가락이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각황전 내 후면에 영산회괘불탱을 보관하는 나무합(사진 上)

                         각황전 내 후면에 걸어둔 영산회괘불탱 모조품(사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