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구례)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연곡사(鷰谷寺)

왕마구리 2015. 10. 22. 22:57

◀ 전남 구례 연곡사(鷰谷寺) ▶

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 전남 구례(全南 求禮) 소개 」

구례군(求禮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 지리산이 뻗어내려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북동부와 남서부는 1,000m 이상의 산지로 반야봉(1,732m)·노고단(1,507m)·만복대(1,433m)·고리봉(1,248m)·따리봉(1,127m)·도솔봉(1,123m) 등이 솟아 있으며, 중부와 서부로 갈수록 낮아져 천마산(654m)·깃대봉(691m)·요강바위산(546m) 등이 높이 500~800m의 산지를 이루고 있어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은 구례분지의 남부에서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굽이 돌아 하동군 화개를 거쳐서 남해로 흘러들며, 구례분지의 젖줄인 서시천은 만복대에서 발원하여 구례분지 중앙부를 관류하고 합강정에서 섬진강에 유입한다. 그밖에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연곡천·신도천, 남부 산지의 효곡천·수평천 등이 군내를 지나 섬진강에 흘러든다. 본래 산은 모든 하천의 수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산지에는 큰 하천과 평야가 없는 것이 상례이나 구례군은 규모가 큰 산과 하천, 평야를 모두 갖고 있는 지형적 특색을 보인다. 군의 중앙에 하천을 끼고 형성된 구례분지는 토양이 비옥하여 주요 생산지를 이룬다.

기후는 산간내륙지방으로 한서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3.4℃ 내외, 1월평균기온 -0.2℃ 내외, 8월평균기온 26.7℃ 내외, 연평균강수량은 1,477㎜로서 강수량의 대부분은 6~9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특히 섬진강 유역에 위치하여 지형성 강우가 많으며, 우리나라의 다우지역에 해당한다. 식생은 소나무·대나무·아카시아·상수리나무·밤나무·오리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며 해발고도의 수직적 변화에 따라 상이한 식생이 분포한다.

구례군의 행정 구역은 1읍 7면, 69리 152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구례군의 면적은 443.2㎢이다. 인구는 2015년 5월말 기준 12,426세대 27,088명이다. 현재 전라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군이다.

 

                      ▲ 삼층석탑에서 바라 본 연곡사 전경

 

「구례의 역사」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었으며, 757년 구례현(求禮縣)으로 개칭하고 곡성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940년 남원부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인종21년(1143)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9년(1409) 전라도의 향·소·부곡이 모두 폐지되면서 구례현의 남전소(南田所)·방광소(放光所)·사등촌부곡(沙等村部曲)·유곡부곡(楡谷部曲)·토지처(土旨處)가 폐지되었고, 연산군5년(1499) 현에서 부곡으로 격하되어 남원부에 속하였다.

중종 2년(1507) 구례현으로 복귀되었다가,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다시 남원부 구례군으로 개편하였다. 8면 : 현내면, 계사면, 문척면, 간전면, 마산면, 용강면, 방광면(옛 방광소), 토지면(옛 토지처)

1896년 8월 4일 전라북도 구례군으로 개편되어, 1906년 남원군 산동면·중방면·소의면·고달면이 구례군에 편입되었으며 산동면이 외산면과 내산면으로 분리되어 13면이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이관되면서 고달면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현내면과 계사면을 구례면으로, 간전면과 문척면을 간문면으로, 방광면과 소의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과 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합면하면서 8면 (구례면, 간문면,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용방면, 외산면, 내산면)이 되었고. 1932년 외산면, 내산면을 산동면으로 합면하여 7면이 되았다.

1945년 간문면을 간전면, 문척면으로 환원하여 8면을 유지하다가, 1963년 1월 1일 구례면이 구례읍으로 승격하여 1읍 7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연곡사 안내도

 

『 탐방한 구례군의 문화재들 』

● 화엄사

사적 제505호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명승 제64호 지리산 화엄사 일원(智異山 華嚴寺 一圓)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求禮 華嚴寺 四獅子 三層石塔)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求禮 華嚴寺 覺皇殿)

국보 제301호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東 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西 五層石塔)

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求禮 華嚴寺 大雄殿)

보물 제300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求禮 華嚴寺 圓通殿 앞 獅子塔)

보물 제104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華嚴寺華嚴石經)

보물 제1348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華嚴寺 西五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363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華嚴寺大雄殿三身佛幀)

보물 제1548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화엄사 보제루(華嚴寺 普濟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華嚴寺 九層庵 石燈)

 

 

● 연곡사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보물 제151호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 逍遙大師塔)

 

●구례 운조루(求禮雲鳥樓)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 

●구례 곡전재(穀田齋) 구례군향토문화유산 2003-9호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명승 제111호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求禮 鼇山 四聖庵 一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20호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求禮四聖庵磨崖如來立像) 

 

【 일 정 표 】2015년 10월 2일(금)-3일(토) 1박2일

                             ◈ 첫째날(10/2) : 구례 화엄사-연곡사-하동 쌍계사

                             ◈ 둘째날(10/3) : 운조루-곡전재-사성암&오산

 

전라남도 구례군은 3월 중순과 4월 초순경에 열리는 「산수유꽃」과 「섬진강변 벚꽃」 축제와 지리산 산행으로 이미 수 차례 찾은 바 있으며, 이번에 탐방한 화엄사도 두 번이나 방문을 하였었다.

그러나 당시는 문화재와 명승지 탐방이 목적이 아닌 관계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아 심도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않아, 항상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구례군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꽃이 피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순 경이나, 단풍이 물드는 11월 초순경에 찾았더라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방문 시기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번 탐방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10여년 전 여름 휴가로 구례를 찾았을 당시 숙소로 묵었던 곳으로 화엄사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이번에 탐방한 '운조루'와 곡전재'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전통가옥「쌍산재」를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의미에 한 번 방문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지나친 것에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주 탐방지역이 구례군이었지만, 인접 하동군에 위치한 쌍계사가 연곡사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있어 함께 탐방을 실시하였는데, 물론 쌍계사도 이번 탐방이 3번째이지만 항상 만개한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화개장터, 최참판댁 등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여 깊이 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를 지울 수 있어서 쌍계사 탐방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이번 구례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지리산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은 절로, 국가 지정문화재가 곳곳에 숨어있어 한편의 글로 서술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양이라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과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등 2부로 나누어, 연곡사, 사성암&오산 등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운조루와 곡전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하는 등 아래와 같이 총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구례군에 인접하여 이번 여행에서 함께 찾은 하동 쌍계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 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연곡사(鷰谷)

- 오산 정상의 기암절벽에 지어진 네 성인의 수도처! 사성암(四聖庵)

-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아름다운 고택! 운조루(雲鳥樓)

- 부농의 민가형식 주택! 금환락지(金環落地) 곡전재(穀田齋)

 

                      ▲ 연곡사 일주문

 

  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연곡사(鷰谷寺) 

전쟁으로 세 차례 전소된 사찰!

 

『 구례 연곡사(鷰谷寺) 소개 』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1017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6년(545)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태능(太能, 1562∼1649)이 중창하였다. 영조21년(1745)에는 연곡사가 밤나무로 만드는 왕실의 신주목(神主木)을 봉납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1907년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당시 광양만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정규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 연곡사로 집결시켰다. 이때 그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에 의하여 고광순과 의병들은 모두 순절하였고, 절은 왜병들에 의하여 방화를 당하였다.

 

 

 

                      ▲ 연곡사 대적광전(사진 上)

                         일주문을 지나 경내 마당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활의 삼홍루(사진 中)

                         대적광전 앞 마당 좌측에 위치한 무설전(사진 下)

 

그 뒤 1942년에 다시 중건을 하였으나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된 뒤로 사찰분규와 교통사정 때문에 재흥을 보지 못하다가 1965년에는 소규모의 대웅전이 요사채를 겸하여 세워졌고, 1981년에 1억3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새 대웅전을 준공하였다. 이어서 1983년에 대적광전과 관음전을 지었으며, 1994년에 요사를 증축하였다. 1995년에는 일주문을 세웠고, 1996년에는 종각과 수각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절에는 국보 제53호인 동부도(東浮屠), 국보 제54호인 북부도(北浮屠), 보물 제151호인 삼층석탑과 보물 제152호인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4호인 서부도(西浮屠)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든 도선국사(道詵國師)의 부도로 추정되는 동부도는 일제강점기 때 동경대학으로 옮겨가기 위하여 수개월 동안 연구하였지만, 산길로는 운반이 불가능하였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은 현재 대웅전 남쪽의 길옆에 있는데, 옛날 이 탑이 위치한 곳까지 건물이 있었다고 보면 그때의 절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967년 해체, 보수할 때에 하층기단부에서 높이 23.5㎝, 어깨너비 4.5㎝의 동조여래입상(銅造如來立像) 1구가 발견되었는데,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또한, 서부도의 문비(門扉)에는 ‘逍遙大師之塔(소요대사지탑)’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절이 임진왜란 후 소요대사에 의하여 중건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 연곡사 관음전(사진 左), 명부전(사진 中), 삼성각(사진 右)

 

♧ ♧ 구례 연곡사 동 승탑 (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3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탑이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면, 승탑은 유명했던 스님들의 사리를 두는 곳이다.

승탑의 구성은 석탑과 같아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는다.

이 승탑은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돌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전기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이 승탑 외에도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 등 2기가 더 있다. 동 승탑은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 연곡사 동 승탑 기단부

                      ▲ 연곡사 동 승탑 기단부 중대석의 팔부중상(사진 左)과 하대석의 사자상(사진 右)

 

기단(基壇)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두 단인데,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모양을 각각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몰려든다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뉘어 두 겹의 연꽃잎과 기둥모양을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는데, 이 부분에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불교의 낙원에 사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겨둔 점이 독특하다.

 

                      ▲ 연곡사 동 승탑 탑신부

                      ▲ 연곡사 동 승탑 탑신 받침대의 가릉빈가상(사진 左)과 탑신 몸돌의 사천왕상(사진 右)

 

탑신(塔身)은 몸돌의 각 면에 테두리를 두르고, 그 속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는데, 그 수법이 그리 훌륭하지는 못하다.

 

                      ▲ 연곡사 동 승탑 상륜부와 옥개석

 

                      ▲ 연곡사 동 승탑 봉황과 연꽃무늬의 상륜부(사진 上)과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긴 지붕돌(사진 下)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으며, 기와를 끝맺음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할 정도로 수법이 정교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 아래위로 쌓아 놓았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며, 일제 때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단이 좀 높아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감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탑신 받침대의 기둥 장식

 

                      ▲ 연곡사 동 승탑과 동 승탑비

 

♧ ♧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보물 제15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 연곡사 동 승탑비 정면 전경(사진 上)

                         측면(사진 下左)과 후면(사진 下右) 전경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연곡사에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승탑이 3개 있는데, 이 비(碑)는 동승탑 앞쪽에 서 있는 비로,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잘려진 것을 복구해 놓아 부자연스럽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다.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 동 승탑비 머릿돌인 이수의 구름무늬(사진 左), 받침돌인 귀부의 귀두와 등의 새귓 표현(사진 中), 귀부 후면 다리 부분(사진 右)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작고 아담해진 규모와 통념을 벗어난 조각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비로,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인다.

 

 

                      ▲ 동 승탑에서 북 승탑으로 오르는 계단길(사진 上)

                         보수공사중인 북 승탑 일대(사진 下)

 

동 승탑과 동 승탑비가 있는 곳에서 산 위로 이어지는 돌계단길을 따라 약 150여m를 오르묜 국보 제54호로 지정된 북 승탑이 위치해 있다.

그러나 현재 주변 정비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북 승탑은 공사용 차단벽을 설치해 둔 상태라 관람이 불가능하였지만, 현장 책임자의 양해를 얻어 보호막 틈새로 보이는 북 승탑을 잠시 탐방할 수가 있었다.

 

♧ ♧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국보 제54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 탑이라면, 수행이 높았던 스님의 사리를 두는 곳이 승탑이다. 구성은 석탑과 비슷해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게 된다.

 

 

                     ▲ 연곡사 북 승탑(자료출처:문화재청)

 

이 승탑은 연곡사 내의 북쪽 산 중턱에 네모나게 둔 바닥돌 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초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 곳에는 북 승탑 외에도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등이 더 모셔져 있다. 북 승탑은 그 중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다운 동 승탑을 본떠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크기와 형태는 거의 같고, 단지 세부적인 꾸밈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 탑신 받침대의 가릉빈가(사진 上) 

                       탑신부의 문비(사진 下左)와 사천왕상(사진 下右)

 

기단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으로, 아래에는 구름무늬를, 위에는 두 겹으로 된 16잎의 연꽃무늬를 각각 새겨두었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특히 윗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돋을새김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 등을 꾸며놓았다.

 

 

                       ▲ 탑신과 지붕돌(사진 上) 

                         지붕돌 하면의 기와골과 문양들(사진 下)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는데, 동 승탑과 마찬가지로 기와 끝에 막새기와의 모양을 새겨두었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네 마리의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긴 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승탑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북 승탑’이라고만 부르고 있다. 동 승탑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북 승탑은 그 후인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8각형 승탑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 ♧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보물 제151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 연곡사 삼층석탑의 기단부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 ♧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2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연곡사에 있는 비(碑)로,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 현각선사비 받침돌인 귀부의 머리부분(사진 左)

                         정면에서 바라 본 귀부의 머리와 이수(사진 右)

                      ▲ 현각선사비 이수의 용조각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 현각선사비 이수 앞면의 비명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

 

♧ ♧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求禮 鷰谷寺 逍遙大師塔)

*보물 제154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연곡사(내동리)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까지 선을 닦는 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다. 이 탑은 연곡사 서쪽에 있으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소요대사탑 기단부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 탑신부 신장과 문비(사진 左)

                         소요대사탑임을 알려주는 명문과 조각상들(사진 右)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 옥개석 귀꽃(사진 左)과 상륜부(사진 右)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2기의 탑이 더 있는데, 그 탑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탑신에 새겨진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 효종 원년(1650)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구한말 의병대장 녹천 고병순의사는 헌종14년(1858) 창평고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라가 망국의 조짐이 보이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항일 의병의 길을 택했는데,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에는 호남의병대장이 되어 남원, 광주, 화순, 순천 등지에서 자신이 제작한 '불원복기(태극기에 광복이 머지 않았음을 표시한 깃발)'을 앞세우고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형세가 불리해지자 연곡사에 들어와 유격전을 펴다가 일본군경에 포위되어 집중공격을 받고 1907년 음력 9월11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주민들이 뜻을 모아 돌아가신 자리에 순절비를 세웠으며, 공의 순국 100주년인 2007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