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남 구례)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왕마구리 2015. 10. 22. 19:10

◀ 전남 구례 화엄사(華嚴寺)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 전남 구례(全南 求禮) 소개 」

구례군(求禮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동북부에 있는 군이다.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 지리산이 뻗어내려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북동부와 남서부는 1,000m 이상의 산지로 반야봉(1,732m)·노고단(1,507m)·만복대(1,433m)·고리봉(1,248m)·따리봉(1,127m)·도솔봉(1,123m) 등이 솟아 있으며, 중부와 서부로 갈수록 낮아져 천마산(654m)·깃대봉(691m)·요강바위산(546m) 등이 높이 500~800m의 산지를 이루고 있어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은 구례분지의 남부에서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굽이 돌아 하동군 화개를 거쳐서 남해로 흘러들며, 구례분지의 젖줄인 서시천은 만복대에서 발원하여 구례분지 중앙부를 관류하고 합강정에서 섬진강에 유입한다. 그밖에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연곡천·신도천, 남부 산지의 효곡천·수평천 등이 군내를 지나 섬진강에 흘러든다. 본래 산은 모든 하천의 수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산지에는 큰 하천과 평야가 없는 것이 상례이나 구례군은 규모가 큰 산과 하천, 평야를 모두 갖고 있는 지형적 특색을 보인다. 군의 중앙에 하천을 끼고 형성된 구례분지는 토양이 비옥하여 주요 생산지를 이룬다.

기후는 산간내륙지방으로 한서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 13.4℃ 내외, 1월평균기온 -0.2℃ 내외, 8월평균기온 26.7℃ 내외, 연평균강수량은 1,477㎜로서 강수량의 대부분은 6~9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특히 섬진강 유역에 위치하여 지형성 강우가 많으며, 우리나라의 다우지역에 해당한다. 식생은 소나무·대나무·아카시아·상수리나무·밤나무·오리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며 해발고도의 수직적 변화에 따라 상이한 식생이 분포한다.

구례군의 행정 구역은 1읍 7면, 69리 152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구례군의 면적은 443.2㎢이다. 인구는 2015년 5월말 기준 12,426세대 27,088명이다. 현재 전라남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군이다.

 

                      ▲ 화엄사 중심영역  전체 전경

 

「구례의 역사」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었으며, 757년 구례현(求禮縣)으로 개칭하고 곡성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940년 남원부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인종21년(1143)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9년(1409) 전라도의 향·소·부곡이 모두 폐지되면서 구례현의 남전소(南田所)·방광소(放光所)·사등촌부곡(沙等村部曲)·유곡부곡(楡谷部曲)·토지처(土旨處)가 폐지되었고, 연산군5년(1499) 현에서 부곡으로 격하되어 남원부에 속하였다.

중종 2년(1507) 구례현으로 복귀되었다가,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다시 남원부 구례군으로 개편하였다. 8면 : 현내면, 계사면, 문척면, 간전면, 마산면, 용강면, 방광면(옛 방광소), 토지면(옛 토지처)

1896년 8월 4일 전라북도 구례군으로 개편되어, 1906년 남원군 산동면·중방면·소의면·고달면이 구례군에 편입되었으며 산동면이 외산면과 내산면으로 분리되어 13면이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이관되면서 고달면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현내면과 계사면을 구례면으로, 간전면과 문척면을 간문면으로, 방광면과 소의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과 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합면하면서 8면 (구례면, 간문면,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용방면, 외산면, 내산면)이 되었고. 1932년 외산면, 내산면을 산동면으로 합면하여 7면이 되았다.

1945년 간문면을 간전면, 문척면으로 환원하여 8면을 유지하다가, 1963년 1월 1일 구례면이 구례읍으로 승격하여 1읍 7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보제루 옆 범종각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동·서 오층석탑

 

『 탐방한 구례군의 문화재들 』

● 화엄사

사적 제505호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명승 제64호 지리산 화엄사 일원(智異山 華嚴寺 一圓)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求禮 華嚴寺 覺皇殿 앞 石燈)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求禮 華嚴寺 四獅子 三層石塔)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求禮 華嚴寺 覺皇殿)

국보 제301호 구례 화엄사 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東 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西 五層石塔)

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求禮 華嚴寺 大雄殿)

보물 제300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求禮 華嚴寺 圓通殿 앞 獅子塔)

보물 제104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華嚴寺華嚴石經)

보물 제1348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華嚴寺 西五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363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華嚴寺大雄殿三身佛幀)

보물 제1548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화엄사 보제루(華嚴寺 普濟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구층암 석등(華嚴寺 九層庵 石燈)

 

● 연곡사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국보 제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보물 제151호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보물 제152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 逍遙大師塔)

 

●구례 운조루(求禮雲鳥樓)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 

●구례 곡전재(穀田齋) 구례군향토문화유산 2003-9호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명승 제111호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求禮 鼇山 四聖庵 一圓)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20호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求禮四聖庵磨崖如來立像) 

 

【 일 정 표 】2015년 10월 2일(금)-3일(토) 1박2일

                             ◈ 첫째날(10/2) : 구례 화엄사-연곡사-하동 쌍계사

                             ◈ 둘째날(10/3) : 운조루-곡전재-사성암&오산

 

전라남도 구례군은 3월 중순과 4월 초순경에 열리는 「산수유꽃」과 「섬진강변 벚꽃」 축제와 지리산 산행으로 이미 수 차례 찾은 바 있으며, 이번에 탐방한 화엄사도 두 번이나 방문을 하였었다.

그러나 당시는 문화재와 명승지 탐방이 목적이 아닌 관계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아 심도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않아, 항상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구례군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꽃이 피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순 경이나, 단풍이 물드는 11월 초순경에 찾았더라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방문 시기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번 탐방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10여년 전 여름 휴가로 구례를 찾았을 당시 숙소로 묵었던 곳으로 화엄사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고, 이번에 탐방한 '운조루'와 곡전재'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전통가옥「쌍산재」를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의미에 한 번 방문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지나친 것에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주 탐방지역이 구례군이었지만, 인접 하동군에 위치한 쌍계사가 연곡사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있어 함께 탐방을 실시하였는데, 물론 쌍계사도 이번 탐방이 3번째이지만 항상 만개한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화개장터, 최참판댁 등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여 깊이 있는 탐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를 지울 수 있어서 쌍계사 탐방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이번 구례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지리산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은 절로, 국가 지정문화재가 곳곳에 숨어있어 한편의 글로 서술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양이라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과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등 2부로 나누어, 연곡사, 사성암&오산 등과 함께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운조루와 곡전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하는 등 아래와 같이 총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구례군에 인접하여 이번 여행에서 함께 찾은 하동 쌍계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별도로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1부 '화엄사의 국보들'

-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 아름다운 승탑의 보고! 연곡사(鷰谷)

- 오산 정상의 기암절벽에 지어진 네 성인의 수도처! 사성암(四聖庵)

-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아름다운 고택! 운조루(雲鳥樓)

- 부농의 민가형식 주택! 금환락지(金環落地) 곡전재(穀田齋)

 

 

                      ▲ 화엄사 불이문 앞을 흐르는 지리산 화엄계곡(사진 上)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 우측의 탐방로(화엄사관찰로) 입구와 탐방로 안내도(사진 下)

                         ~탐방로 입구에서의 각 지점까지 거리 : 노고단고개 7km, 성삼재 7.5km,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정상 32.5km

 

 지리산 속의 보물창고! 화엄사(華嚴寺) 제2부 '화엄사의 보물과 기타 문화재들' 

화엄종의 원찰로 선·교 양종 총림 대도량!

 

『 구례 화엄사(華嚴寺) 소개 』

*사적 제505호(2009년12월21일 지정)

*수량/면적:25,994㎡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등 (황전리)

1,500여년을 이어 온 화엄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거기에 지리산 자락에 걸친 구름과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함께 머무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는 절이다.

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화엄종 사찰로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둔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짓고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화엄사가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이다. 

삼국통일 후 의상대사께서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었고, 신라 경덕왕 때(742~764)에 이르러 8 가람 81 암자의 대사찰이 되었다. 이 때 남방제일화엄대종찰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각황전 기단, 각황전 앞 석등과 대석단, 동·서 오층석탑, 그리고 효대라 불리는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이 당시의 유물이다.

‘도선국사’가 도참설에 의해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 화엄사의 혜안선사와 벽암선사께서 승군을 일으켜 땅을 지키고, 자운스님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바다를 지켰다.

비록 주지스님인 설홍대사와 300여 스님들이 목숨을 잃고 화엄사가 왜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지만 중생을 살피고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을 고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30년(1630) 경 나라의 도움을 받아 ‘벽암선사’의 중창이후 선·교 양종 총림 대도량의 역할을 하였다.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지리산 화엄사 일원(智異山 華嚴寺 一圓)

*명승 제64호(2009년12월09일 지정)

*수량/면적:2,585,252㎡

지리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이라고 불리우는 영산으로, 천황봉, 노고단 등 수많은 산봉우리, 웅장한 기암절벽, 계곡, 울창한 산림 등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천년고찰 화엄사와 조화되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큰 경승지이다.

 

                      ▲ 산신각 쪽에서 바라본 삼층석탑과 석등(사진 上)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삼층석탑과 석등(사진 下)

 

일주문을 들어서서 금강문과 천왕문을 차례로 통과하면 누각인 보제루를 만나게 된다. 대게 절에 있는 누각은 누하진입이라 하여 누각 아래를 들어가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하여 오른쪽으로 보제루를 끼고 돌아 들어서게 되어 있다.

이는 중심영역의 장엄함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이며,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보제루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이 펼쳐지는 화엄사 중심영역의 멋진 경관을 대하게 된다.

높은 석단으로 둘어 쌓인 마당에는 두 기의 석탑이 서 있고, 석단 위에는 각황전, 원통전, 대웅전, 명부전이 지리산 산봉우리들과 함께 펼쳐지는데, 마치 연꽃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이늑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장엄하기도 하다.

보제루 툇마루에 걸터 앉아 각황전을 올려다 보면 장엄하기 이를데 없고 대웅전은 단아하기 그지 없다.

 

                      ▲ 화엄사 배치도

                      ▲ 화엄사 긱황전 앞에서 내려다 본 대웅전 앞마당의 동·서 오층석탑과 보제루

 

♧ ♧ 구례 화엄 동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東 五層石塔)

*보물 제132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서 있다. 그 중에 동쪽에 서 있는 것이 이 탑으로 크기는 서로 비슷하지만 서탑이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정하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서탑의 기단이 2단인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 동오층석탑 탑신부(사진 上)

                         기단부(사진 下)

 

탑신부는 1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또한 각 층 몸돌 너비의 줄어드는 정도에 비해 높이의 줄어드는 정도가 적어서 늘씬해 보인다. 지붕돌은 매우 평평하고 얇은데 몸돌을 따라 너비의 줄어드는 정도가 큰 편이며, 그 중 1층과 2층의 차이가 한층 크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있고, 다시 사잇기둥을 두어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올려 놓았다.

이 탑은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의 탑이 2단 기단인데 비해 1단 기단으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돌구성이 다소 느슨해진 경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만들어진 시기는 서탑과 비슷한 9세기 경으로 짐작된다.

 

                      ▲ 적묵당 앞에서 바라본 동·서 오층석탑

 

♧ ♧ 구례 화엄 서 오층석탑(求禮 華嚴寺 西 五層石塔)

*보물 제13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동탑이 아무런 조각이 없는 반면 서탑에는 조각과 장식이 가득하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 동북 방향에서 바라본 화엄사 서오층석탑(사진 左)

                          1층 탑신의 동쪽 사천왕상, 상층 기단면석의 팔부중상 그리고 기단부 팔부신상(사진 右)

 

아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眼象) 속에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고, 윗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나뉜 두 면에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이며 몸돌에는 각 층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 화엄사 서오층석탑 기단부 팔부신상과 상층 기단면석의 팔부중상

                      ▲ 화엄사 서오층석탑 1층탑신 네 방향(左로부터 동,서,남,북쪽면)에 조각된 사천왕상

 

1층 몸돌 4면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 배치하였다. 지붕돌은 각 층마다 밑면에 5단의 받침을 갖추고 처마밑은 수평이 되게 하였다. 머리장식으로는 2층의 단이 있는 받침 위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있다.

석탑의 형태는 높고 가파르면서도 상하의 체감비율이라든지,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수법 등이 잘 조화되어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특히 아래층 기단의 12지신상 조각은 석탑에서 흔하지 않은 예의 하나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1층 몸돌 세 곳에 나타난 조각상은 그 배치에 보다 신중을 기하였고, 특히 12지신·8부중·4천왕 모두 불교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닌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탑 안에 모셔진 사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각상을 각 부분에 새긴 점이나, 지붕의 조형이 보다 유연한 느낌을 주는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탑 남쪽으로는 안상과 연꽃이 조각된 배례석이 놓여 있다.

 

                      ▲ 탑신부와 상륜부

 

♧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求禮 華嚴寺 西五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348호(2002년10월19일 지정)

1995년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소재하고 있는 화엄사 경내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의 해체보수작업을 하던 중 탑 내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일괄 유물이다. 백지묵서다라니경, 청동불상범 외에 청동방울과 장식, 철제칼, 금속편, 수정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 백지묵서다라니경

 

이들 유물 중 백지묵서다라니경은 다라니경의 내용을 필사한 것으로, 고려시대 이전의 서적이나 기록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통일신라기의 종이·글자체·문자 등 서지학적 혹은 불교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탑인은 한국 고대인쇄사에 있어서 초기단계를 알게 해주는 국내 유일의 실물자료이다. 청동불상범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불상주조용 틀로서 불상의 대량생산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 청동불상범

 

화엄사 서오층석탑 발견유물은 통일신라시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유물들로 서지학, 미술사 등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화엄사 각황전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동·서 오층석탑

 

♧ ♧ 구례 화엄 대웅전(求禮 華嚴寺 大雄殿)

*보물 제299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큰 절이었고,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탄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화엄사의 건물 중 각황전(국보 제67호)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인조 8년(1630)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든 우물 천장이며, 삼존불 위쪽으로 장식적인 성격을 띠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놓아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높이고 있다.

 

 

                      ▲ 대웅전 귀공포(사진 上)

                         특이한 구조의 대웅전 옆 벽체(사진 下)

 

규모도 크고 아름다우며 건축 형식의 특징과 균형이 잘 잡혀있어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이 건물(建物)은 인조(仁祖) 8년(1630) 벽암대사(碧巖大師)가 건립(建立)하였으며 경내(境內)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전내(殿內)에는 삼존불(三尊佛)이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영조(英祖) 33년(1757)작의 후불탱화(後拂幀畵)가 장엄(莊嚴)하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양식(多包樣式)으로 조선(朝鮮) 중기(中期) 불전(佛殿)의 대표적(代表的)인 일례(一例)라 할 수 있다. 대웅전(大雄殿)의 편액(扁額)은 인조(仁祖) 14년(1636) 왕자 의창군(義昌君)이 썼다.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보물 제1548호(2008년03월12일 지정)

*수량/면적 3구

 

 

화엄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화엄사상의 삼신불인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불을 표현한 것인데, 도상면에서 법신, 보신, 화신(응신)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이러한 삼신불은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으로는 드문 편이다.

 

                      ▲ 대웅전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左로부터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석가여래불)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이른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삼신불상은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고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한층 상의 중후함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화엄사사적기』(1697년 간행)에 의하면 1636년 조각승 청헌, 영이, 인균, 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승려장인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화엄사 대웅전은 삼신불상은 조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고,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17세기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높은 의의가 있는 상으로 평가된다.

 

♧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求禮 華嚴寺 大雄殿 三身佛幀)

*보물 제1363호(2003년02월03일 지정)

화엄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 등 삼신불을 그린 탱화이다. 이 삼신불탱은 3폭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의 비로자나불탱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사나불탱,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탱을 각 한 폭씩 그렸다.

 

                      ▲ 대웅전 삼신불탱(左로부터 노사나불도, 비로자나불도, 석가모니불도)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도는 화면 중앙 상단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문수·보현보살과 8대보살, 4위의 타방불과 6위의 제불, 사자와 코끼리 탈을 쓴 성중(호계대신(護戒大神), 복덕대신(福德大神))들이 에워싸듯 배치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다. 키 모양의 광배를 가지고 있는 본존불은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으며,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고,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귀는 기다랗고, 다자색 법의의 깃을 따라 연두빛과 분홍빛깔의 보상화무늬가 장식되어 다소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보신(報身)인 노사나불도는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에 보관을 쓴 보살형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사천왕상 2위, 4위의 타방불, 3신장과 4금강이 주위에 빙둘러 배치되어 있다. 단정한 귀·눈·입·코 등에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는 있으나, 둥근 머리광배에 보관을 쓰고 귀걸이·목걸이·팔찌·구슬 장식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보살형 불상으로서의 꾸밈이 돋보인다.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도는 유난히 몸광배가 큼직한 키형 광배에 악귀를 물리치는 뜻을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문수·보현보살을 포함한 6대보살과 함께 2구의 사천왕상을 그리고, 그 위로는 흔히 등장하는 타방불 대신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제자 및 4금강과 3신장, 용왕·용녀를 에워싸듯 배치하였다.

이 삼신불탱은 18세기 조계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겸 스님 외 13명의 화원이 동원되어 그린 뛰어난 작품으로 필선이 섬세하며 녹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길이가 4m를 넘는 거대한 3폭의 화면에 삼신불을 완전히 갖춘 매우 드문 예로, 통도사대광명전삼신불도(보물 제1042호)와 더불어 18세기 삼신불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각황전에서 바라 본 석등과 원통전 앞 사자상(사진 上)

                         원통전과 원통전 앞 사자탑(사진 下)

                      ▲ 화엄사 원통전

 

♧ ♧ 구례 화엄 원통전 앞 사자탑(求禮 華嚴寺 圓通殿 앞 獅子塔)

*보물 제300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로,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을 이루어 왔다. 신라 후기에는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때에는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어 일주문 밖에 큰 창고를 짓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원통전 앞 사자탑의 사자상(사진 左)

                         탑신부의 신장상(사진 右)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원통전 앞 사자탑의 기단부

 

♧ ♧ 구례 화엄 화엄석경(求禮 華嚴寺 華嚴石經)

*보물 제1040호(1990년05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수량/면적 8980점 외 일괄

 

 

석경(石經)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인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다. 각황전의 안쪽 벽에는 현재 그림이 걸려 있으나, 원래는 여기에 화엄석경이 벽을 이루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경에는 네모진 돌들을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석경들이 파손되었고, 색깔도 회갈색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파손된 것을 모아 지금은 약 9천여 점이 남아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로 최치원이 정강왕 2년(887)에 쓴 쌍계사 진감국사비문과 비슷한데, 당시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희귀한 석경의 대표적인 예로 주목되고 있다.

이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사찰의 상징적 유물로서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후기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보제루의 매력」

절의 누각은 누하진입이라 하여 누각 아래로 들어가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 하여 오른쪽으로 돌아 대웅저 앞마당으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이 펼쳐지는 화엄사 중심영역의 장엄한 경관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이며,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스런 건축적 장치보다 보제루의 기둥이 더 매력적인데, 자연 그대로의 굵은 나무를 굽은대로 설렁설렁 다듬어 사용하여 얼핏 보면 나무들이 춤을 추는 듯하다.

숲속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도 하다. 단청도 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자연스러움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 ♧ 구례 화엄 보제루(求禮 華嚴寺 普濟樓)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1974년09월24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화엄사는 통일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연기가 처음 지은 절이다. 그 후 신라말 도선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다. 조선 인조 8년(1630)에 승려 각성이 다시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인 인조 14년(1636)에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완성하였고, 그 다음해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각성이 다시 지은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화엄사 보제루는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대웅전 앞 한단 낮은 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 구층암(九層庵)」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우측 계단을 따라 화엄사 뒤뜰을 지나 입구에 '구층암 130m' 푯말이 세워진 화엄사의 부속암자 구층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완만한 오르막의 오솔길.

계곡이 물소리가 대숲을 흔들어도, 새소리, 바람소리가 하늘에 가들차도 고요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 대나무숲을 빠져 나오면 수줍은 자태의 구층암이 반기며 나타난다.

승방 앞에는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쌓아 놓은 신라 말기의 삼층석탑마저도 자연스러운 구층암은 자연을 닮은 암자 그 자체이다.

구층암에는 작은 불상 1,000구가 봉안된 천불보전과 수세전,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가 있다. 천불보전의 지붕 밑에는 민화풍의 거북이와 토끼 조각상이 있는데, 이것은 토끼와 거북이 설화를 묘사하여 조각했다고 전한다.

또한 요사채 곳곳에 조각된 사자상과 코끼리상은 다른 암자에서 느낄 수 없는 서민적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 구층암 승방 앞 삼층석탑

 

이 암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스님이 기거하는 승방에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다.

이 기둥은 인간의 손끝이 전혀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기둥은 나뭇가지의 흔적, 나무의 결과 옹이까지도 그대로 드러낸다. 독특한 이 기둥은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한눈으로 보여준다.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천불보전 앞에 서 있는 살아 있는 모과나무다. 이 나무의 수령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무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 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자연을 그스르는 일이 없는 구층암은 뜰에 자라던 모과나무가 죽어 승방의 기둥이 되었으며, 다듬거나 손대지 않은 밑둥은 주춧돌에 뿌리를 내리고 위는 서까래에 가지를 뻗었다. 동편에 자라던 모과나무는 동쪽 승방의 기둥으로, 서편에 자라던 나무는 서쪽 승방의 기둥으로 다시 자라고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자연의 미학이다.

천불의 부처가 모셔진 천불보전 앞 뜰에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 그리고 산 모과나무와 죽은 모과나무 기둥이 그저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 구층암 천불보전

 

♧ ♧ 구례 화엄 구층암 석등(求禮 華嚴寺 九層庵 石燈)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1986년02월07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화엄사의 부속암자인 구층암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받침돌로 구성된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각 면에 안상(眼像)을 조각하고,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다.4각의 가운데기둥은 길고 가늘어 보인다. 윗받침돌은 8잎의 연꽃을 둘러 놓았고, 밑면에 1단의 받침을 두었다. 8각을 이루는 화사석은 4곳에 창을 마련해 놓았다. 지붕돌은 여덟 처마가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각 귀퉁이가 위로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이는 둥근 석재가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8각을 이루고 있고, 안상과 연꽃장식 등의 각 부 양식과 수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  화엄사의 기타 불전들 」

 

 

                      ▲ 범종각에서 내려다 본 천왕문 일대(사진 上)

                         범종각에사 내려다 본 만월당(사진 下)

 

                      ▲ 범종각(사진 上左), 운고각(사진 上右), 나한전(사진 下左), 명부전(사진 下右)

 

「 기타 화엄사의 유물들 」

♧ 돌항아리

불이문을 통과하면 우측으로 보호 전각에 위치해 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돌항아리는 네모난 화강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항아리처럼 만든 것이다.

법주가에도 이와 비슷하 것이 있는데, 용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풍수지리로 볼 때 화엄사는 전체적인 형국이 항해하는 배의 모양을 닮아 있어 항해 중에 필요한 물을 담는 항아리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돌항아리 보호전각과 돌항아리 입구

 

♧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都大禪師碑)

조선시대(1663년)에 조성한 높이 355.5cm의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 각성(1575~1660)의 탑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을 하였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하는 등 조선 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한 승려로, 전란 후 화엄사를 비롯하려 해인사, 법주사 등의 여러 사찰 중수를 주도하여 조선 후기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 벽암국일도대선사비

 

♧ 홍매화(紅梅花)

장륙전이 있던 자리에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각황전 우측에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장륙화라고 하며, 다른 홍매화보다 꽃이 검붉어 흑매화라 불리기도 한다.

 

                      ▲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의 홍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