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

왕마구리 2019. 11. 18. 18:58

◀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 ▶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



2014년 2월20일~21일 1박2일간 '경북 북부 나드리 :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란 테마로 상주시, 안동시, 그리고 예천군의 명소들을 일부 탐방을 실시하였었다. 당시 상주시에서는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명소! 경천대'와 ''사벌국을 건국한 왕의 릉! 진사벌왕릉',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등 3곳의 명소만을 탐방하여, 이번에 다시 찾아 1박2일간 '상주의 역사와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 탐방을 실시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철 탐방이라 피서를 대신하여 첫째날은 상주시 북부지역에 인접해 있고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잇는 3곳의 폭포를 찾아 연속적으로 탐방을 실시하고, 두 곳의 국가지정문화재 탐방을 이어 갔었다.

둘째날은 2019년 7월6일 제43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 목록으로 등제된 한국의 서원 9곳(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작하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2호로 지정된 상주 옥동서원, 조선시대 주거 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주 양진당(방문 당시 보수공사중),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인 우복 종택, 그리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노악산 아래 자리한 천년 고찰 남장사와 남장사 게곡을 탐방하였다.


【 일 정 표 】2019년 7월 29일(월)-7월 30일(화) 1박2일

                             ◈ 첫째날(7/29) : 옥양폭포-오송폭포-장각폭포-상오리 칠층석탑-용화사(중촌리 석조여래좌상 및 석조여래입상)

                             ◈ 둘째날(7/30) : 옥동서원-상주 양진당-남장사&남장사계곡-우복종택



상주지역 재탐방에서의 명소 소개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남장사', '영남권'에 '경북 상주의 3대 폭포 탐방! 옥양폭포, 오송폭포, 그리고 장각폭포', '장중하며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 전기의 석탑!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통일신라 후기의 석불!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및 좌상', '조선시대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 상주 양진당' 그리고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 상주 우복 종택', 그리고 '한국의 서원'에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황희를 배향한 유일한 서원! 상주 옥동서원' 등 총 7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한다.


- 경북 상주의 3대 폭포 탐방! 옥양폭포, 오송폭포, 그리고 장각폭포

-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신라 천년사찰남장사(南長寺)

- 장중하며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난 고려 전기의 석탑상주 상오리 칠층석탑(尙州 上吾里 七層石塔)

- 통일신라 후기의 석불! 상주 증촌리 석조여래입상 및 좌상(尙州 曾村里 石造如來立像 및 坐像)

- 조선시대 주거유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 상주 양진당(尙州 養眞堂)

- 퇴계 이황이 태어난 곳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

-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황희를 배향한 유일한 서원! 상주 옥동서원 (尙州 玉洞書院)


                 △ 협문과 장독대가 보이는 안채 좌측 외부 전경


♧ ♧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2018년11월01일 지정)

*수량:8동

*소재지: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안동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인 우복종택은 퇴계 이황(1501~1570)이 출생한 곳으로, 그의 조부인 노송정 이계양(1424~1488)이 1454년(단종 2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은 퇴계 이황의 온계전거사적과 송계 신용계가 지은 이계양의 묘갈명(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에 새기는 글)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종택의 가장 큰 역사적 가치는 건립과 중수에 관련된 기록 다수가 남아 있다는 점으로 종택의 사당을 개수한 후에 기록한 가묘개창상량문과 선조퇴계선생태실중수기, 노송정중수상량문, 성림문중수기 등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 행랑채 뒷편 담장으로 둘러싸인 우복 선생의 사당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의 생전에 조성된 초기 건축물들과 사후에 조성된 종택이 조화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 건축군이다.

정경세는 1602년에 초당(훗날 대산루)을 짓고, 1603년에는 별서 기능을 가진 계정인 청간정을 지었다. 이후 정경세의 5대손인 정주원(1686~1756)이 조선 21대 왕 영조가 내린 사패지(임금이 왕족이나 공신에게 전지 등을 하사한 토지)인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일대에 종택을 지으면서 진주 정씨 종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 1988년에 복원한 우복종택 대문채 전면과 후면


이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자리하고 있으며,1988년 복원한 5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편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튼구(口)자형으로 배치됐다. 또한 담장 안에는 우복 선생의 사당, 밖에는 입재 선생의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환기와 통풍에 유리하며, 북부 지역과는 다른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배치법으로서 자연 조건에 따른 종택으로써 갖추어야 할 건축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영남지방의 반가의 배치형태라 할 수 있다.


               △ 석축 위에 높게 자리한 우복종택 사랑채

               △우복종택 사랑채 앞면

              △우복종택 사랑채 대청마루

               △ 좌측면 대각방향에서 바라본 사랑채

               △ 우측면 대각방향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행랑채 후면


종택보다 이전에 건립된 계정과 대산루는 별서 기능에서 종택의 별당과 또는 접빈공간으로 기능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대산루 T자형 평면구성은 오른편 온돌방 외벽에서 정(丁)자 형태로 연결된 누각의 윗부분까지 연결되는 계단이 설치된 영남지방 반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랑채는 앞쪽에 네벌대 석축을 쌓고 뒤로 조금 물린 곳에 다시 네벌대 기단을 축조하여 앉혔기 때문에 이색적으로 높다. 사랑채에서 대문칸 너머 뛰어난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어 '산수헌(山水軒)'이라 했다.


               △ 우복종택 안채

               △ 우복종택 안채 후면 전경

               △ 안채 우측면에 붙어있는 행랑채


정조가 하사한 시문판을 소장하고 있고 기제사와 묘제 등 조선시대 제례문화가 현재까지 전승 되는 등 역사적․학술적․민속적․건축적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있다.


               △ 사당 출입문 앞에서 바라본 사랑채 우측면과 대문채 전경

               △ 우복종택 좌측 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