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분류/괴산의 명산35

[스크랩] 보광산(普光山, 539m)

왕마구리 2007. 10. 18. 01:32

  【 보광산(普光山)/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

 

【 개     관 】


▲ 정상 직전의 봉학사지 오층석탑

산세가 빼어나거나 경치가 좋고 바위가 있다던가 하는 그런산은 아니다. 나즈막한 육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같은 현실에 인간 욕심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접근이 용이하고 험하지 않아 가족단위로 등산할수 있는 좋은 산이다. 산행의 시작은 모래재 고개에서 시작을 하거나, 모래재 고개에서 800미터 괴산쪽으로 위치한 수암리 시동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래재 고개에는 보광산관광농원이 있어 휴식을 취하고, 특색있는 먹거리와 농원뒤의 방가로식 숙박시설과 각종 조류를 관찰할수 있는 사육시설이 있어 가족단위로 찾기에 좋다.  【 괴산의 명산35 p.148~151 】

【 산행일자 】2005년 11월 20일(일)

【 산행코스 】보광산관광농원/모래재 고개(해발 228m)→수암낙시터→34번국도 굴다리→'보광산등산안내도' 있는 산행들머리→시동마을 하산로 갈림길/이정표→보광사 차도/인도갈림길→보광사갈림길→고리티재갈림길→ 보광산(539m) →전망대→보광산→고리티재갈림길→봉학사지 오층석탑/김참판의 묘→보광사→보광사 차도/인도갈림길→시동마을 하산로 갈림길/이정표→송전탑→단양우공지묘 3기→34번국도→34번국도 굴다리→보광산관광농원/구 34번국도

【 산행시간 】총 2시간 48분 소요(휴식 : 55분 포함)/실제 산행시간 : 1시간 53분 소요

【 날     씨 】맑 음

【 참 가 자 】김경옥, 도상금, 안용준, 천영면(이상 4명)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갈 때 >> 부천상동(08:18)→중동I/C-(도시외곽순환도로)→조남분기점/서서울요금소(08:35)→안산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휴게소(09:20~09:51)/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I/C(10:26)-(19번국도/괴산방향)→괴강삼거리/34번국도 분기점(10:42)-(34번국도/증평,음성방향)→모래재 고개(구 34번국도)/보광산관광농원(11:04)

<< 올 때 >> 보광산관광농원(14:06)-(34번국도)→연탄사거리(14:18)-(510번지방도/증평I/C방향)→증평I/C(14:29)-(중부고속도로)→음성휴게소(14:50~15:36/중식)→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덕평I/C(16:38)-(42번국도/용인방향)→경기도 광주시-(3번국도)→성남I/C(18:06)-(도시외곽순환도로)→시흥요금소(18:32)→중동I/C(18:46)→부천

※중부고속도로 음성~일죽구간, 영동고속도로 덕평~신갈구간이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덕평I/C에서 탈출, 국도를 이용하여 성남I/C까지 우회하여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에 접근하였음.

【 산 행 기 】


▲ 보광산관광농원과 모래재 의병격전유적비

11:04~11:14=>모래재 고개(구 34번국도, 해발 228m)/보광산관광농원 주차장

      구 34번국도 2차선포장도로 모래재 직전 좌측으로 보광산관광농원이 위치해 있어 이곳 농원앞 앞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준비에 들어간다. 농원 입구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설치한 모래재 의병격전유적비와 안내문이 있다. 34번국도를 건너면 '수암낚시터' 입간판 아래로 산행들머리임을 알리는 '→보광산' 이란 이정표가 보이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함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후 우측으로 낚시터가 나타나고 정면으로는 새로 확장된 34번국도 4차선포장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굴다리를 통해 도로를 횡단하여 34번국도를 끼고 좌측의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보광산등산안내도'가 있다. 새로 국도가 확장 포장되면서 이곳이 새로운 산행들머리가 된 것이다. 등산안내도 좌측의 등산로 입구에 이정표(↑보광산 70분) 설치되어 있고 10여m 진행하면 우측으로 또 다른 '보광산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등산안내도에는 현위치 기준 각 구간별 소요시간이 상세히 적혀있다.


▲ 산행들머리의 수암낚시터입간판과 '보광산'이정표(사진 上)/보광산 등산로 안내판(사진 下)

현위치-(50분)→보광사-(10분)→김참판묘, 봉학사5층석탑-(5분)→보광산 정상-(15분)→보광사-(60분)→시동마을   안내도의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약 2시간 20분정도가 소요되는 산행코스이나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고 누구나 손 쉽게 산행을 즐길수 있는 가족산행코스이다. 이정표(보광산 65분) 방향을 따라 우측의 오르막으로 들어서면 묘지대가 나타나고 이를 지나 오르면 숲길 입구에 또 다른 이정표(보광산 60분)가 설치되어 있다. 숲길을 들어 약 2분간 편안한 등로를 따르면 서서히 등로가 오르막으로 변하고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 시동마을갈림길의 이정표

11:42~11:44=>이정표 있는 갈림길(시동마을 하산로 갈림길)

      이정표( ↑보광산 20분/↓모래재 30분/→시동마을 40분 )가 있는 갈림길에서 보광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되는데 나중에 하산을 할 때 다시 이 지점으로 되돌아와 시동마을 방향의 내리막을 따르게 된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다 차도에 내려서게 되는데 우측으로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쉼터 갈림길이다. 갈림길 중앙에 '천혜의 기도 도량 보광사'란 입간판이 보이고 좌측은 차도(500m), 우측은 인도(500m)라고 적혀 있다. 우측의 비포장 오르막 인도를 진행하여 10여분을 오르면 우측으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11:54=>보광사갈림길

     인도 우측으로 이정표( ↑보광사 10분/→보광산 15분 )가 보이는데 직진하면 보광사에 이르게 되는데 하산때 보광사 경내를 둘러 보기로 하고 우측 숲길로 들어 보광산 정상을 향한다. 낙엽이 등로를 덮고 있으나 확연한 등로에 마치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 푹씬푹씬한 전형적인 능선길 같은 산책로를 편하게 진행을 할 수가 있다. 잠시후 좌측 아래로 김참판묘와 봉학사터의 5층석탑이 눈에 들어 오지만 하산길에 들러 볼 생각에 이를 지나쳐 십자로사거리가 있는 고리티재에 이른다.



▲ 보광사방향 차도,인도갈림길(사진 上)/보광사방향 인도 오르막길(사진 下)



▲ 보광사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上)/고리테재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下)

12:03~12:04=>고리테재 갈림길/이정표

     이정표( ↑보광산 5분/↓모래재 50분/→고리티재 30분 )있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하면 김참판묘와 봉학사지에 있는 5층석탑에 바로 내려설 수 있고, 우측의 지능선 등로를 따라 하산을 할 경우는 철쭉터널 길을 30여분 지나 고리테고개에 이르게 되고 계속 직진을 하게 되면 백마산까지 종주산행(고리테고개에서 백마산 정상까지 약 1시간 20분 소요)이 가능하고, 고개에서 좌측의 하산로로 방향을 잡을 경우는 사리면의 둔터골에 이르게 된다. 둔터골에서 약 15분 정도 더가면 백마초등학교가 있는 넓은 도로가에 이르게 된다. 이정표를 지나 능선길을 100여m 정도 따르면 조그만한 공터에 정상표지석이 있는 보광산에 이르게 된다.


▲ 보광산의 정상표지석

12:05=>보광산(539m)

     정상표지석(↑전망대 0.5km/↓보광사 0.4km) 옆으로는 흉물스럽게 누군가가 이곳까지 끌고와서 버렸는지 조그만한 리어커가 방치되어 있다. 정면의 등로 입구에는 이정표(↑전망대 5분)가 있고 이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을 이어가면 정면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전망대이다.

12:12~12:35=>전망대/헬기장

     사리면 일대의 평야와 농촌풍경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쌀쌀한 날씨에 햇빛이 들어 추운줄 모를 정도로 따뜻하여 주위의 정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며 간식시간을 가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면 3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조망되는데 단연코 둔터골 인근의 백마저수지가 제일 크고 주위의 경관도 저수지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나와 보광산 정상에 이르고 이곳에서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 전망대의 세여인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사리면일대와 백마저수지 정경

12:42~12:46=>보광산(539m) 정상

     기념촬영을 마치고 왔던길을 되돌아 나와 고리테고개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향하며 지나쳤던 봉학사지 오층석탑을 감상하기 위해 우측의 길로 내려서니 넓은 터에 커다란 묘 2기(김참판묘)가 자리를 잡고 있고 이를 지나 5층석탑이 있는 봉학사지에 이른다.





▲ 보광산 정상에서(사진 위에서부터 : 안용준, 도상금, 김경옥, 천영면)

12:50~12:59=>봉학사지 오층석탑

      『 봉학사와 관련있는 김참판의 묘에 관한 전설 』

김판서의 묘가 있는 자리는 봉학사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로 이터가 '금계포란형'으로 천하에 드문 명당자리라 참판을 지낸 김아무개의 자손들이 세도를 등에 업고 절을 허물어 이명당 자리에 김참판의 묘를 썼다고 한다. 봉학사가 철거된지 여러해 지난후 괴승이 나타나 앞산의 물길을 둑을 쌓아 돌리도록 하여 후손을 잇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봉학사지 오층석탑 』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소재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인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은 보광사 뒷편의 옛 절터에 남아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4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가 없어진 채 탑 몸돌 부분이 올라가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으며 초층을 제외하고 2층부터 탑 몸돌과 지붕돌이 1매로 이루어져 있다. 체감 비율이 약해서 경쾌한 맛은 없으며 1966년 2층 지붕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사리함과 청동불상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에서 '봉학산 봉학사(鳳鶴山 鳳鶴寺)'라는 시주문이 발견되었다.

 

오층석탑을 둘러보고 주위의 넓은 공터에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위를 걸어보며 저물어 가는 마지막 늦가을의 운치를 만끽하며 주위의 절터를 살펴보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대리석 주춧돌등이 눈에 들어와 옛 번성했을 때의 봉학사를 머리속에 그려본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김판서의 묘에 얽힌 전설에서 느낄수 있는 인간 욕심의 무상함과 사라져 버린 옛절의 황량함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을씬년스러운 날씨보다 더 추위를 느끼게 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사라져 버린 옛 절에 대한 상상과 미련을 낙엽속에 묻어 버리고 이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보광사를 향해 발길을 돌려 다시 등로가 나있는 능선으로 되돌아 나온다. 능선에 붙어 왔던 길을 되 짚으며 완만한 내리막의 산책로를 이어가 보광사 갈림길 인도에 내려선다. 비포장 인도를 따라 약 2분간 진행을 하면 적막감이 감도는 보광사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13:07~13:11=>보광사

     사라진 봉학사의 후신으로 그 명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규모는 크지가 않고 아담하다. 대웅전에는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으며 대웅전 양쪽 처마끝에 매달아둔 풍경이 인상적이다. 대웅전 우측으로는 오래된듯한 빛이 바랜 조그만한 건물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바위밑에서 석간수가 샘솟는데 가을 가뭄에도 넘쳐나는 샘물이 여름철 산행에서는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울 것 같다. 인도를 따라 다시 되돌아 나와 약 9분후 인도와 차도가 갈라지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고 갈림길 쉼터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 보광사 정경과 처마끝의 풍경


▲ 임도옆 쉼터에서

13:20~13:32=>보광사 차도, 인도갈림길/쉼터

     다시 쉼터 좌측의 등로를 따라 오르면 시동마을과 모래재 갈림길 이정표에 이르게 되고 하산은 시동마을 방향의 완만한 내리막을 따른다. 솔잎이 깔려있는 산책로같은 송림 숲길을 따르면 송전탑(13:45)이 나타나고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여 완만한 내리막을 이어가면 도로(확장된 34번국도)가 보이기 시작을 한다. 도로직전 우측에 일렬로 서 있는 '단양우공지묘' 3기(13:50)를 지나 34번국도 변에 내려선다.

13:52=>34번국도/4차선포장도로

     도로 갓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잠시후 등산안내도가 있는 산행들머리(13:58)에 도착을 하여 굴다리를 통해 국도를 횡단하여 낚시터를 지나 구 34번국도가 지나는 보광산관광농원에 도착을 하게 된다.

14:02=>구 34번국도(2차선포장도로)/보광산관광농원

       『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관리번호:24-1-8/관리자:사리면장/소재지: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산49-2/안내판 설치기관:충주보훈지청)인 이 유적비는 의병장 한봉수를 주축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괴산군에서 건립한 것이다.항일구국의 뜻을 품은 한봉수는 이정구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8년 5월 이곳을 지나가는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 등을 노획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봉수 선생은 1883년 4월 18일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동년 8월(음)에 의병장 김규환 의진에 가담하여 일본 수비대 및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맹활약하였다. 가을에는 해산 군인 100여명을 규합하여 왜적구축대를 조직하였으며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오근장 부근에서 일 헌병대위 도기선치를 사살하고 강원도로 수송되는 세금수송대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일군과 33회의 격전을 치렀다. 1919년에는 고종황제 국장에 즈음하여 홍명희, 손병희 등과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였고, 4월 1일에는 북일면 세교리 구시장에서 다시 면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다음 날에 다시 내수보통학교 학생 80여명과 같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으며 괴산군에서는 국권회복과 민족의 정통성을 이으려는 선열의 우국충절을 길이 잔하고자 높이 3m, 넓이 2.5m 크기의 이 유적비를 1984년도에 건립하였다.

출처 : 부천마구리산악회
글쓴이 : 왕마구리 원글보기
메모 : 보광산은 한남금북정맥 상에 위치한 산으로 한남금북정맥 종주시 정상을 다시 밟았으며, 한남금북정맥 제4구간을 참고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