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통도사(通度寺) 제1편/경남 양산

왕마구리 2008. 7. 12. 01:28

◀ 통도사(通度寺) 제1편 ▶

▲ 사명암 입구 돌계단에서...

 

【 일 정 표 】2008년 7월 7일(월)~8일(화) 1박2일

▷ 첫째날(2008년 7월 7일) : 통도사 및 부속암자 관광

   부천출발(06:55)-(영동고속도로)→여주휴게소(08:53~09:24)-(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휴게소(10:21~10:54)-(경부고속도로)→통도사I.C.-(35번국도)→통도사입구삼거리→통도사주차장(13:37)→백련암(13:55~14:10)-옥련암(14:16~14:28)-사명암(14:32~14:51)-서운암(14:57~15;07)-수도암(15:34~15:42)-안양암(15:47~16:07)-비로암(16:19~16:29)-극락암(16:40~16:56)-반야암(17:05~17:17)-자장암(17:24~17:41)-금수암(17:45~17:54)-서축암(17:57~18:07)→통도사주차장→통도사(18:16~19:25)오리박물관(19:41~20:18)→식당 '언양불고기'/저녁식사(20:33~21:20)→등억온천/숙박(21:37)

▷ 둘째날(2008년 7월 8일) : 업무차 대구로 이동

   등억온천(10:25)→서울산I.C.-(경부고속도로)→건천휴게소(11:00~11:25)→대구-------→부천

 

【 교 통 편 】승용차 이용

【 소요경비 】총 \205,860

  1.주유대 : \104,000

  2.주차료 :    \2,000(통도사)

  3,입장료 :    \2,000(통도사)

  4.숙박료(등억온천/울주군 상북면) : \30,000

  5.식 대 : 총 \28,000

    7/7 아침(여주휴게소) :   \6,000

    7/7 저녁(언양불고기) : \17,000

    7/8 아침(건천휴게소) :   \5,000

  6.고속도로 통행료 : \16,860

  7.기타잡비(커피, 음료수, 오리박물관 카페 팥빙수 등) : \23,000

     ※ 주유대, 통행료는 편도만 계산하였고, 7/8 아침이후 발생경비는 미포함(출장비로 대체)

 

【 여 행 기 】

1박2일 일정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며, 삼보사찰(법보사찰:해인사, 승보사찰:송광사)의 하나(불보사찰)인 양산의 통도사를 관광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첫날 통도사와 부속암자들을 들러 관광을 하고, 만약 시간이 부족하여 하루만에 만족할 만큼 보지 못한다면 다음날 일찍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대구로 떠나 업무처리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통도사와 모든 부속 암자들이 포장도로로 연결이 되어 있어 발품을 팔며 고생을 하지 않고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하루만에 대다수의 암자들을 볼 수 있어 다음날 늦게 까지 숙면을 취하고 업무지인 대구로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만약 부속 암자들이 도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산길이나 오솔길로 연결이 되어 있었더라면, 2008년 들어 전국 최고의 기온인 36.2ºC까지 수온주가 올라간 양산의 날씨를 감안하다면 1박2일 전체를 투자하며 걸어서 다녔더라도 통도사 본사와 몇 개의 부속 암자를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았어야 할텐데 암자들을 연결하는 도로 사정이 좋아 여유있게 관광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기는 사찰 탐방만 놓고 따진다면 전부 당일에 이루어진 코스이지만 통도사와 12개의 부속 암자를 찾아 다녀 사진 등 내용이 많은 관계로 3편으로 나누어 게재를 하기로 한다.

 

* 제1편 : 통도사의 부속 암자들(1)

* 제2편 : 통도사의 부속 암자들(2)

* 제3편 : 통도사를 찾아서...

 

양산 주변의 관광지가 통도사 외에도 많지만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이 통도사와 주변 암자를 답사하는 것이었고, 다음 날 업무 관계로 대구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에 방문치 못하였으나 늦은 시간에도 방문이 가능한 카페인 '오리박물관'이 통도사주차장에서 약 4.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호기심에 방문을 하였다.

오리박물관 방문을 마치고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의 이름난 먹거리인 '언양불고기'를 현지를 찾아 맛볼 계획이었으나, 다시 이동할 경우 식당 영업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대신 통도사 입구의 '언양불고기' 식당을 찾아 맛을 보는 기회를 가졌었다. 또한 통도사 주변은 관광지라 숙박료가 \50,000~\70.000정도로 약간 비싼 편인데 식당의 추천을 받아 차량으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울주군 상북면 등억온천 입구에 시설 좋으며 편안하고 값싼 숙소(\30,000)를 잡아 여행의 피로를 풀 수가 있었다.

 

◁ 제1편 : 통도사의 부속 암자들(1) ▷

 ▲ 통도사 안내도

 

매표소가 있는 영축산문을 들어서면 계류를 건너는 다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우측은 보행 산책로이고, 다리 건너 도로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보행로와 차도는 주차장 직전 통도사 입구 안내소에서 만나게 된다.

 

 ▲ 통도사로 향하는 차도

 ▲ 영축산문에서 통도사 입구로 연결되는 보행 산책로

 

▲ 통도사 계곡

 

통도사 입구에서 부속 암자부터 들러 우선 답사를 하고 통도사는 마지막에 들러기로 하고 통도사주차장을 지나 취운암과 보타암 앞을 통과하고 계속되는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 부속 암자로 가는 길

▲ 암자갈림길의 이정표

 

운치있는 도로를 따르면 이정표가 있는 암자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먼저 좌측의 도로를 따라 백련암, 옥련암, 사명암, 서운암을 차례로 답사를 하기로 한다. 도로를 따르면 서운암과 사명암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고, 잠시 후 다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입구에 백련암과 옥련암 표석이 있으며, 우측은 백련암, 좌측은 옥련암 가는 길이다.

 

13:55~14:10=>백련암

 ▲ 백련암 입구의 벼락맞은 나무

 ▲ 백련암 입구

 ▲ 백련암의 거목

 ▲ 백련암의 본전 법당

 ▲ 백련암의 부속 건물들(1)

 ▲ 백련암의 부속건물들(2)

▲ 백련암의 장독대  

▲ 백련암 본당 좌측 뒤편에 우치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기도도량

 

백련암은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되는 지점에 있으며 주위에는 울창한 수림이 있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원래 은행나무는 사찰과 밀접한 관계를 기자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은행나무로 불상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상에는 조소, 석조, 금동불 등 여러가기가 있지만 목조불의 재료로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이 쓰인다.

절의 초창은 공민왕23년(1374) 월화대사에 의하여 이룩되었고, 그 후 300여년이 지나서 인조12년(1634)에 현암대사가 중건하였다. 지금의 건물이 중건 당시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고색이 창연한 것으로 보아 중수를 거듭했을 뿐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전 법당은 다른 암자와 같이 암이라 하지 않고 백련사라고 했으니 이는 부처님 당시의 죽림정사나 기원정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백련사가 유명한 것은 근세 조선에 와서 유명한 선원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유명한 선객치고서 이 백련사에서 한 철씩 지나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가희 백련암의 선풍을 짐작하겠다.

 

▲ 백련암과 옥련암 갈림길의 표석

 

14:16~14:28=>옥련암

 ▲ 옥련암 전경

 ▲ 천이백아라한전인 '큰빛의 집'

 ▲ 옥련암의 무량수전

▲ '큰빛의 집' 법당 우측에 위치한 승방

 

옥련암은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되는 지점에 위치한 암자로 고려 공민왕23년(1374)에 쌍옥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철종8년(1857) 호곡, 청진 두 스님에 의하여 다시 이룩되었다. 절 주위는 평평하여 멀리 북쪽으로 통도사 일주문 밖 선자봉의 연봉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사찰내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옛날에 이 옥련암에 '장군수'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장군수를 매양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언제나 당하지를 못하였다 한다. 하루는 큰 절의 승려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매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는데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고, 이 전설은 통도사 승려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14:32~14:51=>사명암

 ▲ 사명암 들어가는 길목에 설치된 표석

 ▲ 주차장에서 바라본 사명암 전경

 ▲ 좌측에서 바라본 2개의 정자와 사명암 경내로 들어서는 문 전경

 ▲ 사명암 경내로 들어서는 문

 

 ▲ 사명암의 정자(2개의 정자 중 우측) 모습

 

 ▲ 사명암의 정자(2개의 정자 중 좌측) 모습

 ▲ 사명암의 극락보전

 ▲ 사명암의 영각(靈閣)

 ▲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

▲ 사명암 경내에서 좌측 정자(주차장에서 바라본 기준)를 배경으로...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정면에서 보면 사명암 출입문 좌,우로 2개의 정자가 있어 암자라기보다 아담한 옛 궁궐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고 규모도 본전 법당인 극락보전과 영각 등 부속 법당이 있는 등 일반 사찰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암자이다.

임진왜란 시대의 명장 사명대사께서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다. 물론 임진란은 약 20여년 후의 사실이지만 이때부터 사명대사께서는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조6년(1573)에 이기, 신백 두 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이 두 스님이 사명대사의 자취를 흠모하여 암자를 짓고 수행한 듯하다.

 

14:57~15:07=>서운암

 ▲ 서운암 표석

 ▲ 서운암 본전 불당안에 모셔진 삼천개의 불상

 ▲ 서운암 본당 불전인 '삼천불전'

 

▲ 서운암의 수백개의 항아리들

 

주위에는 죽림이 빼곡히 둘러 있고, 절 밖으로는 전답이 바로 이어지는 서운암은 본당 불전인 삼천불전에는 삼천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절 경내에는 수백개의 항아리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 수백개의 항아리들은 절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담아 둔 장독들로 일반인들에게도 판매를 하고 있다.

또한 서운암은 절 주위 산비탈에 각양각색의 들꽃(야생화)들을 심고 산책로를 조성하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구경하며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고려 충목왕2년(1346) 충현대사가 초창하였고, 철종10년(1859) 남봉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어느 해에 상스러운 구름이 감돌았는지 이 암자를 서운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상 통도사 남서쪽에 위치한 4개의 암자를 소개하였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나와 통도사 북서 방향에 위치한 6개의 부속 암자들(비로암, 극락암, 반야암, 자장암, 금수암, 서축암) 향해 가면서 길목에 위치한 수도암과 안양암을 들러 구경하는 것으로 제1편을 마감하기로 하고, 제2편에서 통도사 북서 방향에 위치한 6개의 암자를 소개하기로 한다.

 

15:24~15:42=>수도암

 ▲ 수도암갈림길 입구의 표석

 ▲ 수도암 내려가는 길

 ▲ 수도암 본전 불당

 ▲ 수도암 본전 법당 좌측 뒷편 위쪽 산 사면에 위치한 산신각 

▲ 수도암 본전 법당 좌측 벽면의 화려한 채색

 

취운암에서 남서쪽 비탈길을 약 200m 올라가면 자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이가 바로 수도암으로 고려 공민왕21년(1372) 이관대사가 창건하고 중건 연대는 미상이지만 정신대사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남산이 대체적으로 야산이지만 그 중에서 수도암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용한 개인 수도처로서는 최적의 암자라 할 것이다.

건물은 전체로 7칸 밖에 되지 않는 산내에서 제일 작은 암자이며, 본전 법당과 산신각, 그리고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 등 총 3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5:47~16:07=>안양암

 ▲ 도로 입구에 설치된 안양암 표석

 ▲ 주차장에서 안양암으로 들어가는 숲길

 ▲ 위에서 내려다본 안양암 전경

 ▲ 안양암 본전 법당

 ▲ 안양암의 북극전

 

♣ 안양암 북극전(北極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안양동대라는 평평한 바위위에 자리 잡은 안양암은 통도사에 소속된 작은 암자이다. 본래 암자란 예불을 드리는 불전과 달리 수도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산 속 깊은 곳에 세워진다. 그곳에서는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수도에 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암자는 고려 충렬왕21년(1295)에 창건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고종2년(1865)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안양암의 경내에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를 포함해 세 채의 건물이 있는데 본래는 현재의 북극전만을 안양암이라 불렀고 나머지 건물들은 나중에 지었다.

북극전은 사람의 장수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이다. 이 때문에 칠성전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도교신앙과 관계있는 칠성신앙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신으로 불교화되어 칠성각에 봉안되었다. 칠성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불전으로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말해준다.

칠성전에는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의인화한 칠성그림을 거는데 이곳 북극전에도 역시 칠성탱화를 봉안하였다. 북극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의 건물이지만 기둥 간격이 2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내,외부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장식을 연출하였다. 작은 암자에 불과한 건물을 이처럼 잘 꾸민 것으로 보아 기복적인 칠성신앙이 조선 후기의 민중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 내렸는지를 알 수 있다.

 ▲ 안양암 제일 높은 곳에 위치에 있으며 1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독성각과 산령각

▲ 안양암 정토문

 

안양암은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하여 대웅전 앞 서남쪽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다. 큰 절에서 불과 500m내외에 있는 이 암자는 고려 충렬왕21년(1295) 차인대사에 의해서 창건되었고, 고종2년(1865) 양담대사가 중건하였다. 그리고 1968년 본사 우송화상이 중수했다.

 

- '제2편 : 동도사의 부속 암자들(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