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해동 용궁사의 2009년 새해 일출 그리고 동백섬과 누리마루

왕마구리 2009. 1. 9. 16:16

2009년 기축년 새해 일출을 맞이 하기 위하여 2008년 새해 일출을 맞았던 포항의 호미곶보다 약 1분 정도 빠르다는 울산광역시 간절곶을 찾을 계획으로 여행사의 관광상품(간절곶 새해일출+양산 통도사 관광)을 예약하였으나 예약인원 부족으로 관광이 출발(12월 31일) 이틀 전 취소되어, 급히 타 여행사의 일출관광 상품을 찾아 떠나게 된 곳이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해동 용궁사 일출 감상과 해운대구 동백섬과 누리마루 APEC 하우스, 그리고 자갈치시장 관광이었다.

2008년 12월 31일(수) 저녁 9시30분경 서울 서부역 롯데마트 앞을 출발하여, 일출장소인 해동 용궁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경. 약 3시간여를 관광버스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6시경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일출장소인 해동 용궁사 앞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리며 약 1시간 30여분을 대기하였다.

오전 7시 30분경부터 수평선 위로 짙게 구름이 드리워져 완벽한 일출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구름뒤로 붉은 기운을 물들이며 2009년 새해를 밝히는 신년 일출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일출 감상을 끝내고 간단하게 해동 용궁사를 구경하고, 오전 8시 30분경 주차장을 출발하여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동백섬과 2005년 21개국 정상들의 제2차 정상회담과 오찬장소로 사용되었던 누리마루 APEC 하우스로 향하였다.

약 2시간여에 걸쳐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동백섬과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관광하고, 12시 30분경 현존하는 우리나라 다리 중 최고 긴 다리이며 감리를 포함하여 순수 우리나라 기술로 건설된 광안대교를 지나 마지막 목적지인 자갈치시장으로 향하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생선구이 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자갈치시장 주변 관광과 먼 발치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의 애환이 담겨 있는 영도다리를 바라보고, 도로 건너 맞은 편 매년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도로로 지정된 광복동 일대를 20여분간 도보로 둘러보는 것으로 신년 해맞이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후 2시 30분경 부산을 출발, 서울로 향하였다.

자갈치시장은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단장이 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었고, 광복동 거리를 둘러보며 인근에 위치해 있는 용두산공원을 시간상의 제약으로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광복동 영화의 거리도 계절 탓이 있었겠지만 을씬련스러운 분위기로 깊은 감명을 받지 못하였다.

 

♧ ♧ 해동 용궁사와 2009년 새해 일출

▲ 일출 전망장소였던 바닷가 바위에서 용궁사를 배경으로...

▲ 일출 전망장소였던 바닷가 바위에서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 2009년 새해 일출 

 

 

 

 

 

 

 

 

 

 

 

  

 

 

▲ 2009년 새해 일출 광경

시간별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한 것들임. 우측 하단의 시간표시는 약 3분 정도가 늦게 표시되어 있음.

♧ 해동 용궁사

 

▲ 바닷가에서 바라본 해동 용궁사 전경

  

  

 

해동 용궁사는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창건으로 한국삼대관음성지의 한 곳이며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어 그 어느 곳보다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으며, 진심으로 기도를 하면 누구나 꼭 현몽을 받고 한가지 소원을 이루는 염험한 곳으로 유명하다.

옛날부터 숫한 변화와 신비를 간직하고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바다! 잔잔함과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동반한 성냄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달리 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이라함이 옳을 것이며, 무안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이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회현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삼대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 용궁사가 해안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며 그 어느 곳보다 신앙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절이 해동 용궁사이다.

 

이 절을 창건하신 나옹화상이 경주 분황사에서 주석하시며 수도하시는데 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들에는 곡식과 풀이 말라죽어 인심이 흉흉하여 만백성이 비 오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원망하였다. 하루는 몽중에 동해 용왕이 큰 스님께 배읍하고 말씀하시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스님께서 이곳에 와 지세를 살펴보니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 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때 복을 받는 곳이다." 하시고 처음으로 절을 지으시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이름지었다 한다. 봉래산은 옛날부터 동해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이 강림하시는 신비스럽고 청정하다는 산이요, 보문이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광대무변하신 원력으로 중생을 구제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 국토를 휩쓴 임진왜란의 전화로 절이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근 300여년만에 통도사 운강화상이 보문사를 중창하신 이후 여러 스님을 지나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한 즉 회향일 꿈에 백의관음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친견하시고 사명을 해동용궁사라 바꾸고 기도를 하신 기도 영험도량이다.

 

▲ 용궁사주차장에서 용궁사로 향하는 진입도로 입구의 표석 

 

▲ 달마상의 배를 만지면 득남을 한다는 득남불인 달마상 

 

▲ 용궁사 입구의 구층석탑 

 

▲ 용궁사에서 바라본 일출 조망장소였던 바닷가 바위지대

 

▲ 용궁사 바로 앞의 바다 전경

 

♧ 용궁사 창건주인 나옹화상 혜근(1320~1376)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화상의 시)

 

고려말의 고승으로 혜근이라고도 한다.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 호는 나옹 또는 강월헌, 선관서영 서구의 아들이다. 21세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에 있는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그 뒤 전국의 이름있는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충혜왕5년(1344) 양주 천보산 회암사에서 대오하였다. 그때 이 절에 우거하고 있던 일본 승 석옹에게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충목왕3년(1347) 원나라로 건너가서 연경 법원사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인도 승 지공의 지도를 받으며 4년동안 지내다가 공민왕7년(1358)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오대산 상두암에 은신하였으나 공민왕과 태후의 간곡한 청에 의하여 잠시 신광사에 머물면서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 뒤 공부선의 시관이 되었고, 1361년부터 용문산, 원적산, 금강산 등지를 순력한 뒤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1371년 왕으로부터 금란가사와 내외법목, 바리를 하사받고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에 봉해졌다.

그는 정도가 혼침한 고려말의 불교계에 습정균혜와 근수, 지혜로써 성불의 가능성을 보여준 고승으로서. 철저한 불이사상의 토대위에서 선을 이해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말의 선풍은 그에 의해서 새롭게 선양되었다. 지공의 선풍이 공해탈선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통적인 간화선의 입장을 취하였고 종래의 구산선문이나 조계종과는 다른 임제의 선풍을 도입하여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그의 "귀의자심삼보"의 주장과 "염불은 곧 참선"이라고 한 것은 이후의 우리나라 선종에서 계속 계승되었다. 계율관에서도 삼귀의가 아닌 사귀의를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 ♧ 동백섬과 누리마루 APEC 하우스

♧ 동백섬

▲ 동백꽃

▲ 동백섬의 산책로

 

▲ 동백섬 해안산책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다 우측으로 눈길을 돌리면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조선비치호텔 뒤편으로 아담하게 자리잡은 동백섬이 있다.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이 난세를 피해 해인사로 들어가다 절경에 감탄하고 동백섬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 후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바위에 새겨 넣은 이름이 해운대이다.

이후 1000년 동안 해운대는 당대 명망가들의 별장지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원래는 섬이었던 이곳은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아직도 동백섬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동백섬을 둘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최치원의 해운대 각자, 동상, 시비를 비롯하여 황옥공주 전설의 주인공 인어상과 2005년 세계 21개국 정상들의 회의장소였던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2007년 12월 31일 회의의 성공개최를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개관되면서 더욱 더 관광명소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또한 동백섬에서 보는 부산의 근원경은 인상적인데 건너편 미포쪽 해안끝선과 달맞이 언덕,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광안대교, 부산바다의 상징인 오륙도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금도 변함없이 겨울에서 봄 사이에 꽃망울을 맺고 빨간 꽃이 통으로 떨어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해안 산책로따라 펼쳐진 풍경들

 

♧ 누리마루 APEC 하우스

▲ 등대에서 바라본 누리마루 APEC 하우스와 광안대교

 

부산시가 19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04년 9월 15일 공사에 착수, 1년만에 준공을 한 건물로 지상 3층, 연면적 905평 규모이다. 12개의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는 한국전통 정자를 본떠 한국의 전통미를 가미한 현대식으로 건축되어졌다.

2005년 11월 APEC 정상회담 떄 제2차 정상회담장과 오찬장으로 사용되며 21개국 정상들의 공식기념촬영과 함께 역사적인 정상선언문 발표가 있었던 곳으로 이후 수준 높은 국제회의시설의 대명사가 되었고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누리마루의 뜻은 순수 우리말인 누리(세상, 세계)와 마루(정상, 꼭대기)를 조합하여 '세계의 정상'이라는 의미이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는 국내,외 인사들의 내방을 통해 역대 정상회담 회의장 가운데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천년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동백섬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소로 부각이 되고 있다.

 

▲ 등대에서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배경으로...

▲ 2005년 APEC 정상회담 당시 21개국 정상들의 공식 기념촬영 장소에서...

 

2007년 12월 31일 APEC 정상회담의 성공게최를 기념하고, 개최효과의 지속화 및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U-시티 사업과 연계하여 APEC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조성된 기념관에는 관람객 전자방명록 작성, URC로봇의 누리마루 소개, APEC 관련 기념품 및 누리마루 모형 등 전시, RFID카드를 이용한 U-미디어보드 시연, 위치에 따른 다국어 홍보시스템의 4개국어(한,영,일,중국어) 체험, 스크린에 맺힌 십이장생도의 12장생 움직임 체험, 시정홍보 패널 등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되어 국제 컨벤션 도시 부산의 미래를 상징하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내려다 보이는 등대

▲ 동백섬 주변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 

 

♧ 광안대교

▲ 광안대교

 

총 연장 7.4km로 광역시도 66호선인 광한대교는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49호광장에서 해운대구 우동 센텀씨티 부근을 잇는 국내 최대의 해상교량이다.

야경 뿐만 아니라 광안대교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도시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차를 타고 달리면 손에 잡힐듯이 다가오는 오륙도, 광안대로를 둘러싼 황령산과 아기자기한 광안리 백사장, 해운대 동백섬과 달맞이 언덕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예술적인 조형미를 갖춘 최첨단 조명시스템이 구축되어 요일별, 계절별로 다양하고 찬란한 불빛으로 색상을 연출한다.

광안대교는 부산 시민들과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낮에는 주변에 위치한 천혜의 관광자원과의 조화를 통한 웅장함을, 밤에는 낭만과 휴식의 야경을 제공하는 등 관광명소와 연계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현재 국내 최장의 교량이며, 인천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가 완성되면 국내 최장의 다리라는 영예는 물려주고,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