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푸른 산! 맑은 물! 아름다운 함양(咸陽)을 찾아서... 제Ⅱ편 함양 안의면내의 볼거리들

왕마구리 2012. 12. 13. 23:26

◀ 산삼고장!!! 물레방아고을!!! 함양을 찾아서

경상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함양군은 동쪽으로 산청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남쪽으로 하동군, 북쪽으로는 거창군과 인접해 있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며 2개의 국립공원(지리산, 덕유산)이 자리한 함양군은 1읍(함양읍) 10개 면, 103개 리, 256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2년 11월 현재 인구는 40,727명이다.

선비의 고장을 일컬을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듯이,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던 일두 정여창 선생을 비롯하여 뛰어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으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마을마다 100여개 세워져 있으며, 선비의 기개, 가문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이다.

유서 깊은 고색창연한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 태수 최치원이 조성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함양상림, 과거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 유생들이 육십령 고개를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 위치한 화림동계곡의 '팔담팔경'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문화탐방로,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 등 자연 속에 녹아있는 500여년이 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곳이다.

이번 함양 여행은 총 4편으로 나누어 여행지를소개해볼까 한다.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Ⅰ편 :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찾아 선비문화탐방로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Ⅱ편 : 함양 안의면내의 볼거리들(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Ⅲ편 : 천년의 숲! 함양상림(咸陽上林)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Ⅳ편 : 함양읍내의 볼거리들(학사루느티나무, 학사루, 함양향교, 교산리석조여래좌상)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Ⅴ편 : 한국 두번째 사액서원! 남계서원(灆溪書院)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Ⅵ편 : 선비정신을 만나다! 개평마을

 

【 일 정 표 】2012년 12월 10일(월)-11일(화) 1박2일

                     ◈ 첫째날(12/10) 오후 : 선비문화탐방로-안의면 명소(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둘째날(12/11) : 함양상림-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학사루-함양교산리석조여래좌상(보물)-함양향교-남계서원(사적)/청계서원-개평마을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Ⅱ편) : 안의면내의 볼거리들

허삼둘가옥, 안의향교, 안의 광풍루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 주변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허삼둘가옥,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안의향교와 광풍루가 있다.

그러나 안의향교는 굳게 자물쇠가 잠겨져 있어 내부를 탐방할 수가 없었고, 안의 금천리 윤씨고가인 허삼둘가옥은 2004년 4월(안채), 7월(사랑채) 2차례에 걸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안채의 대부분과 사랑채의 내부가 불타 현재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2012년 9월부터 안채 정비사업이 진행중이라 화재로 그을리고 타버린 건물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 안의 금천리 윤씨고가(安義 錦川里 尹氏古家, 함양 허삼둘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207호(1984년12월24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허삼돌길 11-7)

 

 

이 가옥은 쇠부리마을 가운데에 자리잡은 기와집이며, 1918년에 진양갑부 허씨 문중의 허삼둘이 토호 윤대홍에게 시집와 지은 집으로 특히 안채의 구성에서는 특출함을 보인다.

당시의 시대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여성중심의 공간배치와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전퇴를 열고 토상화한 것이 특이하며 학술적인 자료로도 중요하다. 안채의 평면구성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예라고 할만큼 특이한 집으로, 일제시대 전통가옥의 변화를 밝힐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동향한 넓은 터에 북향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바깥행랑채가 있다. 사랑채 안쪽에는 'ㄱ'자형의 안채와 'ㅡ'자형의 안행랑채 그리고 곳간이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은 안채, 특히 부엌이 주택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ㄱ'자형이다. 보통의 'ㄱ'자형이 아니라 꺾인 부분을 귀접이한 형식으로 하였고 꺾인 좌,우가 거의 대등한 규모로 구성은 남측엔 정면 3칸, 동쪽은 정면 4칸으로 되어있다. 부엌에 들어서면 거의 오방형의 넓이인데 꺾인 부분이 모서리가 죽어 일그러져 있고, 중간에 기둥 둘 만이 서 있어 넓어 보인다.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는 앞에 퇴를 두고 높게 한 구조로 특이하다. 부엌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들과 대청이 겹집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에는 평면이 'ㄱ'자형인데 정면 7칸으로 구성되었으며, 동향하였는데 그 남단 칸은 방이다. 전퇴가 있는데 루각을 세우듯 높이 설치하였고 난간을 만들었다.

그 외에 안채, 사랑채, 바깥 행랑채, 안행랑채, 대문칸채, 곡간채가 더 있어 일곽을 이루고 있다.

 

                  ▲ 허삼둘가옥 솟을대문

 

▷ 안채

*중요민속문화재 제207-1호(1984년12월24일 지정)

 

                  ▲ 허삼둘가옥 안채(화재 전의 모습)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는데, 흔히 보이는 'ㄱ'자형이 아니라 꺾이는 모서리 부분을 1번 접은 듯한 형상이다. 부엌을 중심으로 꺾인 부분 왼쪽과 오른쪽에 방,대청 등의 공간을 배치하고 있는 겹줄집이다.

 

 

                  ▲ 보수공사중인 허삼둘가옥 안채와 안채의 중앙부엌 입구(화재 전의 모습)

 

방은 앞과 뒤쪽으로 2개씩 있으며 왼쪽 맨 끝은 마루방, 방, 마루방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모서리 부분이 접힌 듯한 'ㄱ'자형 구조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남아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 사랑채

*중요민속문화재 제207-2호(1984년12월24일 지정)

 

 

 

                  ▲ 허삼둘가옥 사랑채(화재 전의 모습, 사진 上)

                      허삼둘가옥 사랑채의 난간(사진 下左)과 방문(사진 下右) : 화재 전의 모습 -출처:문화재청-

                  ▲ 허삼둘가옥 사랑채(현재의 모습)

 

  

                  ▲ 현재 화재로 불탄채 방치된 허삼둘가옥 사랑채 내부 모습들

 

'ㄱ'자형 평면을 갖춘 집으로, 정면 7칸으로 구성되었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각각 툇마루가 설치된 방 3칸을 놓았으며, 오른쪽에는 안채쪽으로 꺾이면서 큰방 3칸과 작은 대청을 놓았다.

작은 대청에는 옆과 앞쪽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 허삼둘가옥 사랑채와 바깥행랑채 

 

                  ▲ 허삼둘가옥 사랑채 측면 모습(사진 左)과 바깥행랑채(사진 右)

 

♧♧ 안의 광풍루(安義 光風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이 누각은 안의면 소재지 진입로 입구인 금호강변에 우뚝 서 있으며, 조선 태종12년(1412)에 당시 이안(현재의 안의면) 현감인 전우가 창건하여 선화루(宣化樓)라 하였다.

그 후 조선 세종7년(1425) 김홍의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조선 성종25년(1494)에 안의 현감 일두 정여창 선생이 중건하고 광풍루로 개칭하였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34년(1601)에 안의 현감 심종침이 복원하였고, 숙종9년(1683)에 현감 장세남이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5량 구조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와가로 되어 있다. 우람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다.

 

♧♧ 안의향교(安義鄕校)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6호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성종4년(1473) 현감 최영이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영조12년(1736)에 다시 짓고 그 뒤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건물은 출입문인 재천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학생들이 거처였던 회우재, 출숙재, 사당인 대성전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인데 이것은 평지에 세워진 향교의 일반적인 전묘후학의 배치와는 어긋난다. 따라서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대성전의 기단과 층계를 높이 쌓은 것으로 보인다.

 

 

                  ▲ 안의향교 재천루(사진 左)와 대성전(사진 右, -출처:문화재청-)

 

문묘부에는 동,서 양무가 없고 대성전만 배치허였으며, 중국의 5성과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고 있다.

교당부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전면 좌우에 동,서 양재가 안으로 좁혀지도록 배치되어 좁고 깊은 마당을 이루며, 명륜당 동쪽 측면에 제기고가 있다. 이 향교의 배치는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 제천루의 중심을 일치시키는 일축선을 이루고 있으며, 정문인 제천루는 '자재천상(子在川上)'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루이고, 기둥은 평주초이지만 활주는 장주초를 사용하였다.

안의면 소재지에서 동북 방향 교북마을내에 위치하여 마을 인가가 인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이 지방 향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많이 제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