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세계유산 조선왕릉

서오릉(西五陵, 경기 고양)에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느끼며...

왕마구리 2009. 2. 20. 11:28

◀ 서 오 릉(西五陵) ▶

 

【 일 정 표 】2009년 2월 14일(일)

전날 실시하였던 관악지맥 제2구간(청게산구간:하오고개~찬우물) 산행으로 온 몸이 뻑적지근하여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가까운 근교 산인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찾을까 생각하다, 일단 산에 오르면 코스를 정하여 진행하게 되어 산행시간이 또 길어지게 되고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산행들머리로 이동하는데에도 1시간30분에서 2시간은 족히 걸려 왕복 3~4시간을 전철이나 버스안에서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에서 딩굴고있자니 전날의 산행여독을 풀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보다가 조선일보사에서 연재한 '365일 52주 걷기 명소'가 생각이 나 이 중 한 곳을 택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승용차를 몰고 늦은 시간인 아침 10가 넘어 집을 나선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인근의 서울한양CC 와 농협대학 방향에 위치한 '서삼릉'을 '서오릉'으로 착각하여 행주대교를 넘어 39번국도를 따라 벽제쪽으로 향하다, 진입도로 입구에 설치해 둔 이정표를 보고 위치를 잘못 알고 있었음을 알고, 39번국도를 따라 계속 벽제방향으로 진행하여 통일로인 1번국도를 따라 구파발을 지나 박석고개 삼거리에서 은평구 대조동 방향으로 향한다. 대조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63번지방도를 따라 고양시 방향으로 향하여 오전 11시 20분경 서오릉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 산책코스 】서오릉주차장/매표소(11:22)→수경원(11:24~11:27)→익릉(11:30~11:39)-(소나무로)→소나무로와 서어나무로 갈림길(11:50)-(서어나무로)→창릉(12:24~12:33)→홍릉(12:35~12:53)/휴식 및 간식→소나무로와 단풍나무로 갈림길(12:56)-(단풍나무로)→대빈묘(12:59~13:01)→경릉(13:03~13:08)→순창원(13:13)→매표소(13:18~13:23)→명릉(13:24~13:35)→서오릉주차장/매표소(13:36)

 

▲ 서오릉 안내도

▲ 서오릉 산책길 안내도

 

*** 대중교통 안내

      *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출구 또는 원당역 3번출구-(시내버스 환승)- #702번 시내버스(서오릉입구행), #9701번 좌석버스

      * 지하철 6호선 구산역 1번출구-(시내버스 환승)- #702번 시내버스(서오릉입구행), #9701번 좌석버스

*** 서오릉 입장 시간

      * 동절기(11~2월) : 06:30~16:30(관람:17:30)

      * 하절기(3~10월) : 06:00~17:30(관람:18:3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문의전화:02-359-0090)

*** 관람요금(입장료)

      * 대인(19~64세):\1,000/단체(20인 이상):\800

      * 소인(7~18세):\500/단체(10인 이상):\400

      * 소인과 대인 합하여 20인 이상인 경우에는 각각의 단체요금을 적용

 

【 서오릉 소개 】

*사적 제198호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이란 이곳에 모여 있는 다섯 능. 곧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을 일컷는 말이다.

경릉 : 조선 제7대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

창릉 :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익릉 :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

명릉 : 숙동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

홍릉 :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

현재 서오능 경내에는 관리면적이 약 51만평에 이르며 오릉외에도 순창원(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묘), 수경원(영조후궁 선희궁 영빈 이씨), 대빈묘(숙종의 후궁 옥산부대빈 장씨, 경종의 생모인 장희빈) 등이 있다.

 

【 산책로 탐방 】

 

▲ 서오릉 입구/매표소

 

11:22=>서오릉입구/매표소

     매표소를 들어서면 좌측으로 만남의 광장이 있으며, 돌다리를 건너면 산책로 안내도와 이정표(↖홍릉,창릉,대빈묘,경릉,순창원/↗수경원,익릉)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 갈림길의 이정표

▲ 수경원, 익릉 가는길

 

갈림길에서 우측의 비포장도로처럼 넓은 산책로를 따르면, 산책로 우측으로 수경원과 익릉이 차례로 나온다. 갈림길 좌측의 산책로는 단충나무로로 순창원을 마지막으로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 수경원 입구 전경

▲ 수경원

 

11:24~11:29=>수경원(綏慶園)

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소이다.

영빈이씨는 영조11년(1735)에 사도세자인 장헌세자(후에 장조로 추존)를 낳았으며(제22대 정조의 친할머니), 영조40년(1764)에 6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수경원은 원래 서대문구 신촌에 있었으나 1968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익릉 전경

▲ 측면에서 바라본 정자각과 익릉 전경

 

▲ 익릉 신도비 

 

▲ 익릉 정자각 

 

11:30~11:39=>익릉(翼陵)

조선 제19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현종2년(1661) 탄생하여 1671년 세자빈에 책봉되고 숙종원년(1674)에 왕비가 되었으나 숙종6년(1680) 10월 26일 경덕궁 회상전에서 춘추 20세에 승하하여 이듬해 2월 22일 이곳에 모셨다.

능제는 숭릉(제18대 현종) 양식에 따라 조영한 것으로 석상은 숭릉과 비슷한 가공석이다. 전 측면이 1칸씩 늘어난 5칸의 익실이 딸린 정자각을 세웠다. 명등석과 망주석의 받침에는 화문조각을 했으며 특히 망주석귀에 구멍이 없어지고 위로 향한 세호를 새겼다.

 

익릉을 보고 나와 ㅏ자 갈림길에서 우측의 오르막길을 따르면 산책길 안내판이 일정 거리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는 소나무로이다. 약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소나무로와 서어나무로가 나누어지는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좌측으로는 소나무로가 계속되고, 우측으로 서어나무로가 시작되는데 이 길을 따르면 잠시 올랐다 완만한 내리막의 편안한 산책길이 U자 형태로 이어지게 된다.

갈림길에서 나뉘어진 소나무로는 창릉부터 시작되는 단풍나무로와 대빈묘 직전 고갯마루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합쳐진 산책로는 단풍나무길로 서오릉 입구인 매표소까지 이어진다. 서어나무로는 소나무로와 나뉘어진 갈림길에서 창릉까지 이다.

 

▲ 소나무로 산책길

 

11:50=>소나무로와 시어나무로 갈림길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이정표를 따라 몇 군데 갈림길이 나오지만 출입금지 표지판과 나무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정식 산책로만 따라 진행하면 별 어려움없이 서오릉 입구인 매표소까지 원점회귀하여 산책을 마칠 수가 있다. 소나무로 나무벤치 쉼터에서 휴식(11:55~12:00).

 

 

▲ 소나무로 이정표/위치표시판 

 

▲ 서어나무로 이정표/위치표시판 

 

 

▲ 서어나무로

 

12:24~12:33=>창릉(昌陵)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종32년(1450) 1월 15일에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해양대군에 책봉되고, 세조3년(1457)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세조13년(1468) 9월 7일 수강궁에서 왕위에 올랐으나 이듬해 11월 28일 춘추 20세에 2남1녀를 남기고 승하하였다. 성종원년(1470) 2월 5일 경릉의 북쪽에 모셔졌다.

안순왕후 한씨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예종 즉위년(1468) 왕비로 책봉되었고, 연산군4년(1498) 12월 23일 창경궁에서 승하하여 다음 해인 1499년 2월 14일 왕릉 동쪽에 묻혔다.

석물배치의 특징은 상석의 받침돌은 문고리 모양으로 조각하였으므로 실제 사용하는 북과 흡사한 표현을 하였으며, 난간석의 석주는 원주 밑에 환상 받침을 마련하고 4각 석주형식을 하고 있다.

 

▲ 창릉 입구 홍살문에서 바라본 전경

▲ 창릉의 정자각

 

창릉을 뒤로하면 단풍나무로가 매표소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창릉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홍릉이 나오고, 홍릉 정자각 옆 잔디에 앉아 약간의 간식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며 휴식을 취한다.

 

▲ 홍릉 전경

 

12:35~12:53=>홍릉(弘陵)

조선 제21대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의 능이다.

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숙종18년(1692) 12월 7일 탄생하여 경종원년(172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정조가 즉위년(1724)에 왕비가 되었다. 영조33년(1757) 2월 15일 창덕궁 관리각에서 소생없이 춘추 66세로 승하하여 같은 해 6월 4일 이곳에 묻혔다. 왕후릉의 오른쪽은 영조의 능지로 하고자 공간을 남겨 두었지만 영조는 동구릉의 원릉에 묻혔다.

 

 

▲ 소나무로와 단풍나무로가 만나는 삼거리

 

홍릉을 지나 잠시 고갯마루에 오르면 좌측으로 소나무로가 내려와 단풍나무로와 만나는 삼거리(12:56)가 있으며,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우측으로 유명한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묘소인 대빈묘가 있다.

한 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내고 왕후의 자리까지 올라 파란만장의 생을 살았고, 사후지만 소생인 왕자 윤이 왕위(경종)에 등극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2:59~13:01=>대빈묘(大嬪墓)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1701)의 묘소이다.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숙종14년(1688) 궁녀 장소의에게서 왕자 윤, 경종을 얻었다. 이듬해 윤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소의에게 희빈이라는 품계를 내렸다. 그 후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숙종은 곧 이를 후회하고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1969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젔다.

 

단풍나무로를 따라 경릉과 순창원을 차례로 지나면 다시 정문 매표소에 도착을 하게 된다. 정문을 빠져나와 주차장 뒷편에 별도로 조성된 숙종과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묘소가 있는 명릉이 위치해 있다.

명릉에 출입할 때는 서오릉 매표소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제시하여야 출입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입장권은 잘 챙겨 두어야 한다. 매표소에서 명릉을 먼저 관람하고, 나중에 익릉, 창릉, 홍릉 등을 관람할 경우라도 입장권을 입구에서 제시를 하여야 한다.

 

▲ 경릉 전경

 

13:03~13:08=>경릉(敬陵)

의경세자(덕종 추존)와 그의 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의경세자는 조선 제7대 세조의 장남으로 세종20년(1438) 9월 15일 탄생하여 세조원년(1455)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457년 9월 2일 춘추 20세에 승하하자 같은 해 11월 24일 대군묘제 형식으로 장례를 치루었고 성종2년(1471)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슬하에 2남1녀(월산대군, 성종, 명숙공주)를 두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세종19년(1437) 9월 8일 탄생하여 세조원년(1455)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가 성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연산군10년(1504) 4월 27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춘추 68세로 승하하여 같은 해 5월 왕릉 서쪽에 묻혔다.

경릉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능은 앞에서 보았을 때 왕은 왼쪽, 왕비는 오른쪽으로 만드는 것이 보편적이나 경릉은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왕으로 추존되었음에도 대군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왕후릉의 형식은 창릉의 제도를 따랐다.

 

▲ 단풍나무로 

▲ 순창원

 

13:13=>순창원(順昌園)

조선 제13대 명종의 맏아들 순회세자(1551~1563)와 공회빈 윤씨의 묘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12년(1557)에 세자가 되었으나 13세에 돌아가셨다. 공회빈 윤씨는 윤옥의 딸로 선조25년(1592) 3월 3일 돌아가셨다.

 

▲ 단풍나무로

▲ 순창원에서 매표소로 가는 산책길

▲ 명릉 입구

▲ 명릉 전경

 

13:24~13:35=>명릉(明陵)

조선 제19대 숙종과 그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으로 쓰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하였다. 숙종은 왕비를 세 번 맞아 들였는데,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은 서오릉 안에 있다.

숙종은 현종2년(1661)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에서 탄생하여 1667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 8월 2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숙종은 재위 46년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대동법 실시 및 토지개혁 종결, 상평통보의 주조 등 경제정책에 전력을 다하였고, 1712년 백두산정계비의 건립으로 국경선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예의에 관한 선비들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 때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시키는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 1720년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에서 춘추 60세로 6남2녀를 남기고 승하하여 그 해 10월 21일 인현왕후릉 옆에 묻혔다.

임현왕후 민씨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현종8년(1667) 4월 23일 탄생하여 숙종7년(1681)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경종의 책봉문제로 폐위되었다가 복위하였다. 숙종27년(1701) 8월 14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춘추 35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여 같은 해 12월 9일 이곳에 모셨다.

인원왕후 김씨는 경원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1687년 9월 29일 탄생하여 1704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영조33년(1757) 3월 26일 창덕궁 영모당에서 춘추 71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여 같은 해 7월 12일 왕릉의 서쪽에 떨어져 조성되었다.

명릉은 조선능제의 분수령으로서 상례보편(喪禮補編)과 산릉의(山陵儀)의 기초를 이루었다. 석수와 석인의 칫수를 실물에 가깝게 하였으며 부장품 명기의 수량도 감소하였으며 문인석의 미소와 무인석의 늘어진 투구와 이마에 새긴 투구의 파상선 등은 장릉(長陵:제16대 인조)의 석인상을 따르고 있다. 또한 8각의 장명등 옥개석을 4각형으로 제도화하였다.

 

 

▲ 숙종과 인현왕후 신도비 

 

▲ 숙종의 제2계비 인원왕후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