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성곽돌기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 강화산성

왕마구리 2010. 6. 27. 23:34

◀ 강화산성 성곽 돌기 ▶    

 

▲ 남장대지가 있는 남산에서 뒤돌아본 강화산성 남쪽 성곽길과 강화읍, 그리고 한강 전경  

 

【 강화산성(江華山城)의 역사 】

*사적 제132호(1964년 6월 10일 지정)

*면적:784.170㎡

몽고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 당시 실권자였던 최우가 1232년 강화도로 천도를 하고 고종28년(1234) 1월부터 왕궁과 내성, 관아시설의 공사를 본격적으로 실시를 하였다. 내성, 중성, 외성의 3중으로 구성된 구조였으며, 당시의 내성은 토석혼축 방식으로 규모있게 궁궐의 내성으로 쌓았는데 길이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그리고 중성은 내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종37년(1250)에 축조되었으며, 둘레가 약 7km에 달하는 토성이었다. 또한 중성을 둘러싸는 외성은 1233년부터 강화 동쪽 해안을 따라 축조하기 시작하여 1235년에 전국 주, 현에서 일품군을 징발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37.070척에 달하는 성이 1237년에 일차 완성되었다.

고려시대의 강화 내성에는 고려 궁궐과 관청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 규모나 배치를 모두 송도(개성)의 것을 옮겨놓은 듯이 비슷하게 하여 왕족과 귀족들은 송도에서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궁궐의 정문은 정남향의 승평문 이었으며, 중성에는 모두 8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송도의 것을 그대로 본떠 동에 선인문, 서남에 광적문, 서북에 선의문, 동북에 창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와 몽고의 강화가 성립되어가던 고종46년(1259) 몽고의 요구로 내성이 헐리게 되었고, 외성도 허물었다. 그리고 송도로 완잔히 환도하는 고려 원종11년(1270)에는 궁궐도 헐리어 현재는 궁궐터마저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전기에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축조하였고, 인조5년(1627)에 정묘호란이 있자 인조가 잠시 피난했으며, 인조14년(1636) 병자호란 때는 봉림대군을 비롯한 빈궁과 신하들이 피난했으나 강화성이 함락되면서 청군에 포로가 되었다.

이렇게 외침이 잦자 수차에 걸쳐 강화성을 개축하여 화강암의 석성으로 바꾸고 여장도 설치했다. 이렇게 하여 강화성은 4개의 성문과 4개의 암문, 남,북,서쪽의 장대와 2개의 수문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현재 북악과 남산을 연결하는 지역에 남아 있는 성벽의 일부와 성문은 거의가 조선시대에 축조되어 1970년대에 보수한 것이다.

동문은 망한루인데 없어진 것을 복원하였고, 첨화루인 서문은 숙종37년(1711)에 건립되어 그동안 퇴락되었다가 1977년에 개축되었다. 안파루인 남문은 1711년 건립되었으나 1955년 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것이다.

북문은 1783년에 건립하여 진송루라 했으나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조선시대에는 성내에 많은 관아가 들어서 있었으나 고종3년(1866) 당시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는 고려 궁터에 동헌과 이방청 등이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성곽은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 남쪽과 북쪽 산자락의 성곽은 보수되어 잘 보존된 상태이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일본의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으로 서문 근방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조인되었던 연무당터가 있다.

【 소 재 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내가면, 하점면 일원

【 강화산성 성곽 돌기코스 】강화산성 남문/안파루→남산약수터 갈림길→남산/남장대지→서문/첨화루→강화정수장→강화나들길 갈림길/'은수물'갈림길→쉼터→군시설물→북문/진송루→전망대/삼각점→북장대/강화나들길 갈림길→북산→동문/망한루→견자산/충혼탑→48번국도/강화읍→남문 

【 탐방일자 】 2010년 6월 22일

【 소요시간 】총 4시간 25분 소요(휴식 : 1시간 32분 포함)/실제 탐방시간 : 2시간 53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탐 방 기 】

강화나들길 제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강화터미널~역사관)을 탐방하면서 은수물 뒷편 성곽에서 북문을 거쳐 오읍약수터 갈림길이었던 북장대까지 약 1km정도, 일부 구간이지만 이미 탐방을 한 곳이다.

강화산성 성곽돌기의 출발점은 남문, 서문, 동문 등 대중교통의 접근이 가능한 어느 곳을 정하여도 무방하나 강화터미널이 가까운 남문을 시작점으로 하여 성곽돌기를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진행을 하였다. 현재도 성곽 보수와 복원공사, 그리고 주변의 문화재 및 건물지 발굴 조사가 한창 진행중이었으며 성곽 주변으로는 벌목이 되어 있어 성곽길을 걷는데는 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서문과 동문 일대는 도시화로 도로와 일반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성곽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서문과 북문 사이에는 강화정수장과 군시설물이 성곽길을 막고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 우회를 하여야 했다.

또한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거의 사라지고, 충혼탑이 있는 견자산 정상에서 남문으로 내려서는 길에 토성 형태의 성곽만이 일부 남아 있는 상태라 아쉬움이 들었었다.

성곽이 복원이 되었든,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든 성곽이 남아 있는 구간은 강화산성의 남쪽 성곽(남문~남장대지), 서쪽 성곽 일부(남장대~서문) 그리고 북쪽 성곽 일부(북문~북산 정상)였으며, 4개의 암문중 서쪽 성벽에 있는 한 곳만 확인할 수 있었고 나머지 3곳의 암문은 흔적이 없어 위치도 확인치 못하였다.  

 

 

 

▲ 성곽돌기 출발점인 강화산성 남문

11:34=>남문/안파루   

     문루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남문을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성곽돌기를 시작한다.

 

▲ 남문 밖에서 바라본 남장대 방향의 성벽

▲ 현재 여장 설치공사가 진행중인 성곽

 

남문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을 따라 여장 설치공사가 한창인 성곽을 좌측에 두고 성 안으로 진행을 하여, 가파른 오르막을 끝내니 복원중인 성곽은 끝이나고 넓은 밭 지대가 나타난다.

 

▲ 성곽 주변의 넓은 밭 지대

▲ 밭지대에서 우측으로 조망된 강화시가지와 시가자 뒷편의 강화산성 북쪽 성곽이 이어지는 산줄기

 

 

▲ 토성 형태를 나타내는 성곽길

 

좌측의 성곽은 잡풀이 덮여 있는 토성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밭 지대를 지나 약 3~4분여를 편안하게 진행하니 잡풀들은 없지만 여전히 토성의 형태를 유지하며 완만하게 남산을 향해 이어진다.

깨어진 삼각점을 지나 100여m를 더 오르니 이정표(↑정상 440m/↓마을/→약수터 290m)가 설치된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남산약수터 갈림길이다.

 

▲ 남산약수터 갈림길

 

▲ 남산약수터 갈림길의 깨어진 삼각점과 이정표

 

11:51~11:53=>남산약수터갈림길

     이정표에 표시된 정상은 남장대지가 있는 남산 정상을 의미하고, 우측의 길은 남산약수터 가는 길이다. 좌측의 길을 따라 성밖으로 나가보니 석축의 흔적들이 일부 드러나 보인다. 갈림길에서 약 100여m를 완만하게 더 오르면 첫번째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 성곽 옆 나무계단길

 

두번째 나무계단길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허물어진 성벽을 넘어 내려가 보니 옛 성벽의 석축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 성밖에서 확인한 성벽의 석축 흔적들

▲ 두번째 계단길에서 뒤돌아본 강화시가지, 문수산성이 있는 김포 문수산 그리고 강화해협인 염하강 전경

 

'NO.12구간'이란 푯말이 있는 곳(11:59~12:01)부터 두번째 계단길이 시작되는데 이곳에서 뒤돌아보면 강화시가지와 강화해협인 염하강, 그리고 강 건너 문수산성이 자리한 문수산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계단길을 오르면 중간 중간 성밖으로 나가보니 높이 약 1~1.5m 정도의 성벽들이 남산 정상을 향해 이어지며 옛 모습을 간직한채 남아 있다.

 

 

 

▲ 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곽길과 성벽

▲ 뒤돌아본 성곽길

 

계단길이 끝나며 오르막도 끝이 나고 편안하게 약 200여m를 진행하면 복원해 둔 것 같은 낮은 성곽이 길게 이어진다. 또 다시 계단이 설치된 오르막 성곽길을 대하고 이를 극복하면 남장대지인 남산 정상에 서게 된다.

 

▲ 남장대 건물지 유구 전경

 

▲ 남산 정상의 산불감시탑과 남장대지 발굴 현장

 

12:15~12:28=>남장대지/남산

     강화산성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생각이 든다. 정상에는 남장대지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며, 산불감시탑이 있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동쪽으로는 강화해협과 문수산, 북쪽으로는 강화산성 북문과 북쪽 성곽이 위치한 산줄기, 남쪽 방향으로는 선원면 일대 등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강화산성에서는 최상의 자리인 것 같다.

 

▲ 남장대지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의 강화시가지와 강화산성 북쪽 능선이 이어지는 산줄기, 그리고 한강과 강 건너의 북녁 땅

▲ 남장대지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의 강화시가지와 문수산 

▲ 남장대지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선원면 알대와 강화해협인 염하강 

▲ 남장대지에서 바라본 한강에서 염하강이 분기하는 위도 일대와 문수산 

▲ 강화산성 남쪽 성벽에서 서쪽 성벽으로 꺾이는 남산 정상의 곡성

 

이곳 남장대지가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곡성을 이루며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이다.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는 곡성 부분에서 서쪽 성곽이 시작되는 우측으로 돌아가는 성곽을 따라 나무계단길에 들어서면 정면 산 아래로 서문 일대와 국화저수지가 펼쳐지고, 국화저수지 뒷편으로는 군통신시설이 설치된 고려산이 조망이 된다.

 

▲ 서쪽 성곽이 시작되는 계단길에서 바라본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과 국화저수지

 

계단길을 내려서면 양쪽으로 뚜렷한 산길이 갈라지는 사거리가 나타나고,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 서쪽 성곽의 암문이 설치된 사거리

 

▲ 성밖에서 바라본 암문(左)과 성안에서 바라본 암문(右) 전경

 

12:31~12:32=>서쪽 성곽의 암문

     옛 성곽의 모습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서쪽 성벽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가면 정면으로 한강과 강 건너 북녁 땅이 조망이 된다.

편안하던 성곽길이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내려가는데 거의 완전한 형태를 보이던 성곽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며 성벽은 흙과 돌의 섞인 혼축의 형태를 보이거나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 남장대지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서쪽 성곽길과 성벽

 

'2100m'란 푯말이 있는 곳부터 가파른 계단길 내리막이 이어지고 산 아래로는 도로와 도시화로 성벽이 사라진 서문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계단길이 끝나면서 성벽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우측으로 꺾이며 곡성을 이루는 곳 우측에는 인삼밭이 자리를 하고 있다.

 

▲ 성곽길 따라 내려서며 바라본 서문 일대 전경

▲ 뒤돌아본 계단이 설치된 성곽길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약 50여m를 진행하고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면 복원된 성벽이 담장처럼 느껴지는 덕신고등학교(12:52~12:54)이다.

 

 

▲ 덕신고등학교 옆 복원된 성벽

▲ 연무당 옛터 표석

 

복원된 성곽을 따라 진행하면 동락천이 흐르는 곳에 복원된 '강화석수문'이 있고, 우측으로 강화도조약의 체결 장소였던 '연무당 옛터' 표석이 보인다.

48번국도와 4번군도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면 서문이 자리를 하고 있다.

 

♧ 강화석수문(江華石水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

 

이 수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어 강화읍을 통하여 흐르는 동락천을 가로지르는 수문으로서 조선 숙종37년(1711)에 축조되었다.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으로 재질은 화강암이며 길이가 18.2m, 높이 2.7m, 폭 2.4m이며, 홍예의 높이는 1.7m, 폭은 3m이다.

1910년 갑곶리 동락천 입구의 다리로 사용되었다가 1972년 하수문 자리로 옮겨졌던 것을 1992년 현 위치에 옮겨 복원하였다.

 

▲ 48번 국도변에 복원된 서문

 

12:58~13:14=>서문/첨하루

     서문에서 산쪽으로 복원된 약 50여m의 성벽을 따르면 성곽은 흔적은 사라지고 넓은 밭과 집들이 앞을 막는다. 어쩔 수 없이 좌측으로 보이는 '강화동산교회'쪽으로 내려가 교회 건물을 좌측에 끼고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설치된 잡출덤불을 헤치고 오르니 ┬자 갈림길이 나타나며 정면의 성곽길을 이번에는 시멘트 옹벽과 철망팬스가 앞을 가로 막는다.

'강화정수장' 시설물이다. 어쩔 수 없이 돌아 가기로 하고 우측으로 정수장 시멘트 옹벽을 따라 내려가니 밭이 나타나고, 밭 지대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향교길33번길' 마을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좌측으로 마을길을 따라 오르니 '강화정수장' 푯말이 있는 고갯마루 삼거리이다.

 

 

▲ 강화정수장 입구 삼거리

▲ 강화정수장 삼거리 우측의 성곽이 이어지는 숲길 입구

 

13:33=>강화정수장 입구 삼거리

     강화산성 성곽길에 강화정수장이 설치되어 있는 셈이다. 우측으로 검은 그물망이 쳐진 산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토성처럼 보이는 성곽길이 다시 나타나고, 성곽길 좌측, 성밖에는 밤나무과수원이 자리를 하고 있다. 

 

▲ 다시 나타난 토성 형태의 성곽길

▲ 강화나들길 갈림길인 안부 전경

 

주변으로 벌목이 되어 있는 성곽길을 편안하게 진행하고 안부에 내려서면 우측으로 문화재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어떤 유적지인지는 모르겠다.  

3월 말경(3/28) 강화나들길 제1-1구간 탐방 때 은수물에서 우측의 산길을 따라 이곳 안부에 올라 올 때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이곳이 강화나들길 제1-1구간 탐방 때 강화향교와 은수물을 거쳐 강화산성에 접근한 지점으로, 북문까지는 성곽길이 아닌 숲 사면길을 따랐고, 북문에서 북장대까지는 성곽길을 따라 탐방을 한 구간이다.

 

 

▲ 강화나들길 갈림길에서 뒤돌아본 안부와 성곽길(左), 그리고 강화나들길 Y자 갈림길

 

안부를 뒤로 하고 약 50여m를 벌목된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Y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강화나들길은 우측의 산 사면 숲길로 이어지게 된다. 직진의 오르막을 따라 성곽길을 이어가면 좌측 아래 무너진 성벽을 쌓았던 돌들이 흩어져 있고, 성밖으로 나가보면 일부 남아 있는 석축 흔적들을 확인할 수가 있다.

뽑혀진 군삼각점(331FOB/A-8168)이 있는 지점에 이르면 서쪽 성벽이 끝나고, 우측으로 꺾이며 북쪽 성벽이 시작되는 곡성이다.

 

 

 

 

▲ 서쪽 성벽에서 북쪽 성벽으로 방향을 바꾸는 곡성의 삼각점과 성밖에서 확인한 석축 흔적들

▲ 강화산성 북쪽 성곽길

▲ 성밖에서 바라본 지나온 성벽

 

13:48~13:52=>곡성/북쪽 성곽 시작지점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한강과 강 건너 북녁 땅이 간간이 조망이 된다. 성곽길을 약 3~4분여를 계속 이어가면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아래로 사면길인 강화나들길이 보이고 간이 쉼터가 자리를 하고 있다.

 

▲ 간이쉼터

 

13:56~14:03=>강화나들길 간이쉼터

     쉼터로 내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성곽길로 되돌아 올라와 잠시 따르면 잡목이 성곽길을 덮고 길을 막아 이를 헤집고 나아가니 이번에는 군부대 시설물과 철망팬스가 성곽길을 막고 자리를 하고 있다.(14:6~14:09)

좌측으로 내려가 군부대 철망팬스를 따라 우회를 하기로 한다. 잡풀과 잡목이 무성한 희미한 산길을 찾아 나아가 묘 2기를 지나 철망팬스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성곽 위로 올라간다. 철망팬스가 끝나는 곳에 일부 석축 흔적이 드러나 있다.

 

▲ 군시설물이 끝나는 지점의 남아있는 석축 흔적

▲ 군시설물이 끝나는 성곽 위에서 뒤돌아 조망된 고려산(右)과 혈구산(左)

 

14:14=>철망팬스 끝

     잡풀과 잡목이 성가시지만 성곽길을 고집하면 군 안테나 3개가 설치된 곳을 지나면서 완만하고 편안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일부 남아 있는 성벽을 확인하기 위해 좌측 성밖으로 내려가 보기도 하며 성곽길을 계속 따르면 여장까지 갖춘 복원된 성곽이 나타나며 이내 북문으로 내려서게 된다.

 

 

 

▲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과 일부 남아 있는 성벽 흔적들

▲ 북문 직전의 복원된 여장이 설치된 성벽

▲ 북문

 

14:20~14:33=>북문/진송루

     성문 밖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읍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며. 우측의 도로는 고려궁지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주차장 옆 벤치에 앉아 다시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한다. 성문 앞에는 강화나들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 북문부터 오읍약수터 갈림길인 북장대까지는 지난 번 강화나들길 제1-1코스 탐방 때 진행하였던 동일한 코스를 가게 된다.

 

 

▲ 전망대로 오르며 뒤돌아본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곽

▲ 전망대로 이어지는 북쪽 성곽길

 

제대로 복원과 보존인 된 북쪽 성벽이 이어지는 오르막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표시없는 삼각점이 설치된 봉우리인 전망대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한강과 북녁 땅이 막힘없이 전망이 되고, 강화읍과 남장대지가 있는 남산 일대의 산줄기가 조망되는 곳이다.

주변을 막힘없이 관측이 가능한 이곳이 북장대가 있었던 자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 전망대에서 조망된 한강과 북녁 땅

▲ 전망대에서 뒤돌아본 북문 방향의 성곽길

▲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산 방향의 성곽길

 

14:38~14:41=>전망대

     편안하게 산책하듯 성곽길을 따르면 강화나들길 이정표(오읍약수터←북장대지)가 설치된 강화나들길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안부인 이곳은 북장대지가 아니고 암문을 설치했어야 적합한 장소로 보인다.

 

▲ 강화나들길 오읍약수터 갈림길

▲ 성밖 오읍약수터 가는 길에서 바라본 북산으로 이어지는 성벽

▲ 강화나들길 오읍약수터 갈림길에서 바라본 북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 북산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오읍약수터 갈림길과 성곽길

 

14:46=>오읍약수터갈림길

     좌측 오읍약수터 쪽으로 내려가 북산과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한 차례 조망해 보고, 완만하게 오르면 곡성을 아루며 북쪽에서 동문 방향으로 성곽이 꺾이는 북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 강화산성 북쪽에서 동쪽 성벽이 시작되는 곡성

 

14:49~14:51=>북산/서쪽 성벽이 시작되는 곡성

     우측으로 꺾이어 내려가는 성곽길을 따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어 남문까지 이어지는 동쪽 성벽이 강화산성 중에서 성벽의 보존 상태가 가장 최악이며, 거의 복원이 되어 있지 않은 구간이다. 또한 주택이나 도로 등으로 성곽길이 일부 사라져 버려 제대로 성곽길을 따라 진행하기가 어려운 구간이기도 하다.

 

▲ 동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 동쪽 성벽에 일부 남아 있는 석축 흔적

▲ 뒤돌아본 동쪽 성곽길

 

▲ 숲길로 변한 성곽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잠시 완만한 성곽길이 이어지고, 숲속으로 들어서면 성곽은 사라지고 편안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흑염소를 방목하는 농가가 나타나면 이후부터는 성곽이 지나가야 할 곳에 주택들이 들어 차 있어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하다.

농가와 연결되는 비포장길(15:00~15:09)에서 성곽이 지나갈 것으로 추정되는 곳의 주택가를 기웃거려 보지만 성곽은 주택이 들어서며 사라진 것으로 보여 포기를 하고 비포장길을 따라 내려간다.

우측으로 발굴조사를 마치고 문화재 정비를 할 예정지역이란 넓은 공터가 있고, 공터를 지나면 고려궁지 담장이 이어진다. 강화도서관을 끼고 ┬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골목길을 따라 동문으로 향한다. 6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 삼거리(15:21)에서 강화나들길인 ''동문안길45번길'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동문이 나타난다.

주택가지만 산줄기의 흐름이나 지대의 고저를 따져 볼 때 보호수와 '동문안갈45번길' 좌측이 성벽을 쌓았던 성곽길인 것 같다.

 

 

▲ 동문

 

15:22~15:30=>동문/망한루

     복원된 성문과 성벽이 일부 있는 곳으로 복원된 성벽 우측의 도로 건너 산사면을 따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성곽길로 추정이 되지만 전혀 성곽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도로 건너 무작정 산사면의 밭 사이를 빠져 나가며 치고 올라가지만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히 덮여 있어 도저히 치고 오르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견자산 정상의 충혼탑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향해 무작정 올라가 도로를 잠시 오르니 정자 쉼터가 있고, 정상에는 충혼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충혼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종전이 될 때 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몰한 강화출신 군경 및 유격대원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에 건립되었으며 1994년 6월 현 위치에 재 건립하였다.

이 현충탑에는 강화군 출신의 전몰군경 1,033신위(국군 735, 특공대 18, 경찰관 36, 유격군 224)를 각인하여 모시고 있다.

 

14:40~15:42=>충혼탑/견자산

     충혼탑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 충혼탑 뒤의 숲속 오솔길로 잠시 진행하니 ┬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갈림길에서 우측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우측으로 토성 형태의 성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을 한다. 성밖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게 되어 있는 셈이다.

 

 

 

▲ 성밖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 토성 형태의 성곽과 성곽길

 

안부사거리(15:48)에 내려서서 우측의 성곽 위로 올라가 편안하게 성곽길을 따르면 검은색 그물망이 쳐진 밭이 나타나고, 밭 좌측으로 그물망을 벗어나 잡풀이 무성한 숲길을 내려가면 주택지에 이르게 되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강화읍 중심가를 관통하는 48번 국도에 이르게 된다.

15:55=>48번국도

     길 건너 '목화웨딩홀' 건물과 공영주차장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약 1.5m 높이로 복원된 성벽이 나타나는데, 성벽을 따라 약 200여m 정도를 진행하면 처음 출발지였던 남문에 도착을 하게 된다.

 

 

 

▲ 남문으로 이어지는 복원된 성벽과 성곽돌기의 종착지인 남문

 

15:59=>남문

     남문에 도착하여 부천행 오후 4시 20분 발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강화터미널로 이동하며 강화산성의 아쉬운 성곽돌기를 마무리한다.

비록 성벽이나 성곽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성곽길을 따라 전체를 탐방하였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도시화로 정수장, 군부대, 도로, 밭 그리고 주택지가 들어섬으로써 성곽길 자체가 사라져 버려 미완의 성곽돌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