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성곽돌기

신라 최대의 군사기지며 석축산성의 백미! 삼년산성

왕마구리 2010. 7. 9. 00:35

◀ 삼년산성 성곽 돌기 ▶    

1,500여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석축산성의 백미!!!

 

▲ 서북치성에서 서문으로 내려서는 길에 옹성에서 바라본 서문과 남문으로 이어지는 정비, 복원된 서쪽 성벽  

 

【 삼년산성(三年山城)의 역사 】

*사적 제235호(1973년 5월 25일 지정)

*면적:229,958㎡

상주에서 청주로 나가는 교통과 군사 전략 요충지인 보은군 보은읍 오정산(烏頂山 326m) 능선을 따라 세 봉우리와 서쪽 골짜기를 잇는 포곡식 산성을 이루며 위치하고 있다.

신라가 백두대간 이북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듯이 거쳐야 하는 곳으로 산은 높지 않지만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사방으로 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자비마립간13년(470)에 "삼년산성을 쌓았다", "삼년만에 공사를 마쳐서 이름을 삼년산성으로 붙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소지마립간8년(486)에 보수한 기록이 있다. 삼년이라는 성 이름이 유래되어 나중에 '삼년산군'이라는 행정구역 지명이 생겨 났으며,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이는 공을 세운 '도도'라는 인물이 삼년산군 출신으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 휘하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도도 역시 삼년산성에서 주둔하면서 서문을 나와 옥천, 영동 방향으로 진격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660년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백제를 멸망시켰을 때, 무열왕은 삼년산성에 머물며 당나라 사신을 영접하기도 했으며, 이 때 당의 사신 왕문도가 조서를 전하려다가 급사하기도 한 곳이다.

9세기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잠시 삼년산성을 근거지로 삼은 적이 있었으며, 후삼국이 대치할 때 고려 태조 왕건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삼년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지나쳐서 청주로 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삼국시대에서 고려, 조선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성이 오랫동안 이용했음을 알 수 있으나 어느 시기부터 버려진 상태로 오랜 세월을 지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선 초기 기록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성 안에 군창이 있었다고 되어 있어, 완전히 방치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임진왜란 때 오래된 산성을 보수하여 활용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유성룡의 언급 속에서 삼년산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삼년산성의 성벽은 20세기 초까지도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성벽이 많이 붕괴된 시점은 알 수가 없으나, 삼국시대 산성 중 단양의 온달산성, 상주의 견훤산성과 함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잔존한 성벽이 훌륭해 손꼽을 수 있는 석축 산성의 백미라 불리어지고 있다.

 

산성의 전체 길이는 1,800m, 높이 10~13m, 두께 6m에 달하며, 성벽은 납작한 판돌을 한 켜는 가로로 놓고 다음 한 켜는 세로로 놓아 우물 정(井)자처럼 엇물려 쌓았다. 특히 기초를 견고히 하여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게 했으며, 동과 서쪽 성벽은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흙으로 다진 내탁외축 방식이다.

남과 북쪽은 안팎에 돌을 쌓고 그 안에 돌을 채운 내외협축 방식이며 성문터는 동서남북 4곳에 있다. 서문터에는 너비 165cm 간격의 홈이 패어 있어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7개소의 옹성은 대개 둘레가 25m,높이 8.3m로서 지형상 적의 접근이 쉬운 능선과 연결되는 부분에 축조되어 있으며, 수구는 서쪽 성문 옆 계곡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각형의 수문이 동쪽 성벽에도 남아 있다. 성내에는 우물터가 5게소가 있었는데 그 중 '아미지'라는 곳이 유명하다.

【 소 재 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1-1

【 삼년산성 성곽 돌기코스 】

         삼년산성 서문지/'아미지'연못→남문지→남동치성→동문지→북동치성→북문지→서북치성→서문지(원점회귀)

 

▲ 삼년산성 배치도

 

【 탐방일자 】 2010년 7월 5일

【 소요시간 】총 1시간 45분 소요(휴식 및 탐방시간 포함)

【 날     씨 】 맑 음

【 탐 방 기 】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보은I.C.에서 보은~내북간 신설도로를 따라 보은읍쪽으로 올라가다 보은읍 입구에서 속리산 방향의 37번국도에 내려서면 우측으로 1차선 포장도로 입구에 삼년산성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 길은 일방통행로로 삼년산성에서 나올 때 이용하는 길로 진입이 불가능하다.

37번국도에 내려서면 보은읍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잠시 진행하여 다시 좌회전하여 돌아서 삼년산성으로 향하여야 한다.

삼년산성 입구에 이르면 도로변에 일렬로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이 있으며, 현대식 화장실 앞에 삼년산성 안내판이 있다. 주차장에서 삼년산성 서문지까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주말과 공휴일 등 많은 탐방객들이 방문할 경우 차량 진입이 어려워 이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접근을 해야한다.

성 안에는 주차장이 별도로 설치가 되어 있지 않으며, 평일에는 탐방객이 없어 서문까지 승용차를 이용하여 서문까지 올라 가 주변의 공터에 주차를 하면 된다.

걸어서 서문까지 접근을 하게 되면 오르막길을 약 10~15분 정도를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충청북도 도내의 212개 산성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중부 내륙의 옛 산성군 7개(청주의 상당산성, 충주의 충주산성과 장미산성, 괴산의 미륵산성, 제천의 덕주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보은의 삼년산성) 중의 하나인 삼년산성은 단 한차례도 함락된 역사기록이 없는 삼국시대 신라의 최대 군사기지로 사방에 봉우리를 두고 가운데가 오목한 고로형 산성이다.

남문을 제외한 3곳의 성문이 안부(골짜기)에 설치되어 있고, 정문인 서문은 삼년산성에서 접근이 용이한 가장 큰 골짜기에 백제를 향해 나 있다.

성곽길을 따라 성곽을 일주하는데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그 거리가 짧아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바람없는 가운데 무더위와 싸우며 나무 그늘이 없는 성곽길을 따르는 것이 고역이었고, 북쪽 성곽에서 우연히 마주 친 길이 약 1m 정도의 살모사 한 마리를 만나 그 이후부터는 옮기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고 성벽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 다시 뱀을 만나지나 않을까 약간은 두려웠었다.

(6월26일 장락지맥 제3구간 산행 때 살모사 한 마리를 만났는데 약 1주일만에 다시 또 만나게 되니 산길을 걸어가는데 약간의 공포가 생기게 될 것 같아 나 홀로 산행을 즐기는 본인으로서는 앞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서문지에 도착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여 삼년산성 돌기를 하기로 한다.

 

 

 

▲ 성곽돌기 출발점인 삼년산성 서문

 

12:13~12:30=>서문지/'아미지' 연못  

     서문지에 이르면 성곽 좌측에 성문을 달았던 상대 초석이 바닥에 놓여 있고 그 윗쪽에는 하대 초석들이 흩어져 있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삼년산성 내에는 이러한 결이 없는 화강암이 나오지 않으니 외부에서 운반하여 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 서문지의 상대 초석

 

서문은 상대 문터라 하며 문지방 돌에 수레바퀴가 지나다닌 자국이 남아 있는데 수레바퀴의 양쪽 바퀴 폭이 1.66m로 상당히 넓은 폭이며, 산성에서 이러한 흔적이 발견된 곳으로는 삼년산성이 유일하다. 삼국시대에는 왕들이 수레를 타고 행차(고구려 고분 벽화에 남아 있음)를 하였는데 이곳 삼년산성에는 신라 태종무열왕이 백제와의 전쟁을 지휘한 기록이 있어 무열왕도 이 서문을 통해 성내를 지나 다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또한 보통의 문들이 성 안쪽으로 열었다가 바깥쪽으로 향하여 닫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방식인데 삼년산성의 성문은 초석과 문지방 돌의 구성을 보면 처음에는 이와는 반대로 밖으로 열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구성은 성내의 군사들이 갑자기 출동할 때 편리하여 빠른 시간내에 접근하는 적을 기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적의 공격에서 성문을 파괴하는 충차 등이 사용된다면 빗장에만 의지하는 안쪽으로 여는 형태보다 밖으로 여는 성문은 상하좌우가 문틀에 의지하게 되어 월등히 힘을 받아 견고할 수가 있다. 단 단점은 적이 성문에 바짝 접근하여 문짝을 지탱하는 문설주만 찍어 파괴하면 성문은 쉽게 쓰러지게 된다.

그러나 후에 성문의 개방 방식이 성 안쪽으로 열리도록 바꾼 것을 보면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구려 평양 장안성의 터전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문에서도 수레바퀴의 홈인 궤도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그 폭은 1.5m로 삼년산성의 흔적보다 폭이 좁은 편이다.

 

 

 

▲ 서문 안의 '여미지' 연못과 암각자

 

성 안 좌측에 삼년산성 배치도가 있고 그 옆으로는 '蛾眉池'란 암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김생의 필체로 추정하고 있다. 암각자 앞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연못인 '아미지'가 있다. 성 안은 사방이 산줄기으로 둘러 싸인 넓은 분지형의 공터를 이루고 있으며, 성 안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민가 한 채가 보이는데 '보은사'란 사찰이다.

보은사 뒷쪽이 북문이다.

 

 

▲ 서문지의 남쪽 성벽 단면

 

▲ 서문지의 북쪽 성벽 단면

(성벽의 단면이 넓고 높음에 놀라 그 규모를 보여주기 위해 단면 벽에 올라 사진 촬영을 하였음)

 

서문 양쪽으로 깨끗하게 복원된 성곽이 나타나는데 성벽의 두께가 매우 넓음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실측에서 약 12m 정도라 하니 성문은 자연히 안으로 오목 들어와 설치가 되고 서문 북쪽으로 약 71m,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성문보다 약 30m 정도 높은 곡성인 옹성을 두어 모양 자체가 호구(虎口 문의 문구부에 공간을 둔 형태)를 이루어 성문으로 향하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인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축조가 되어 있다.

 

▲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서쪽 성벽

 

▲ 서쪽 와측 성벽(左)과 내측 성벽(右)

 

삼년산성에는 7개소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 우측으로 성벽 옆으로 나있는 나무계단길을 가파르게 오르면 첫번째 옹성이 나오는데 삼년산성의 대다수의 옹성이 둘레 약 25m, 높이 약 8.3m로서 지형상 적의 접근이 용이한 능선과 연결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 남문으로 오르는 탐방길과 내측 성벽

▲ 남문 직전 탐방길에서 뒤돌아본 서쪽 성곽과 서문일대

▲ 서쪽 성벽의 옹성에서 서쪽으로 조망된 보은읍 일대 전경

▲ 서쪽 성곽의 옹성에서 뒤돌아본 서쪽 외측 성벽과 서문 일대

 

▲ 성곽 상부 모습(左)과 옹성(右)

 

그러나 첫번째 옹성은 서문에서 약 100m 떨어진 오르막 사면에 위치해 서문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하고 있어 서문으로 공격해 오는 적들을 관측하고 공격하기가 용이하다.

옹벽을 지나 잠시 더 오르면 서쪽에서 남쪽으로 성곽이 곡성을 이루며 꺾이는 서쪽 성벽 끝에 이르게 되는데, 남쪽 성벽이 시작되는 곳에 남문이 자리를 하고 있다.

 

▲ 남문지

▲ 남문지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전경 

 

12:40~12:45=>남문지

     남쪽 성벽에서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나 삼년산성의 4대문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다른 성문과는 달리 현문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남문지 주변은 정비,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현문은 일정 높이까지 성벽을 쌓고, 성벽 위에 문을 내어 사다리나 줄을 잡고 오르내리도록 한 문으로 성 밖에서 바라보면 凹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남문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문을 메워서 사용하지 않았다.

 

 

 

 

▲ 남문과 남동치성 사이의 내측 성벽 모습

 

성안 탐방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나지막한 봉우리 형태의 치성에 이르게 되는데 남동치성이다.

 

 

▲ 남동치성으로 오르는 길에 좌측 산 아래로 조망된 서쪽 성곽

 

12:54~12:58=>남동치성

     성곽이 붕괴된 상태의 치성으로 남쪽 성벽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를 하고 있어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측하고, 남쪽 성벽에 접근한 적들을 공격하기 좋은 위치이다. 성밖으로 나가 성벽의 상태를 관측하기 불가능하므로 이곳이 삼년산성의 남쪽 성곽과 외측 성벽을 관측하기 최적의 장소이다.

 

 

▲ 남동치성에서 뒤돌아본 남문 방향의 남쪽 내측 성벽(左)과 외측 성벽(右) 모습

 

 

▲ 남동치성에서 바라본 동문으로 향하는 남쪽 성곽과 성벽 상부 모습

 

남동치성에서 성곽이 남쪽에서 동쪽으로 꺾이는 곡성까지 성곽 위를 따라 내려가 보는데 이 사이에 2곳의 옹성이 있으나 대체로 훼손된 상태이며, 한 차례 허물어진 성벽을 넘어 바깥쪽으로 나가 외측 성벽을 확인해 보지만 제대로 남아 있는 성벽보다는 붕괴된 성벽 구간이 더 많아 보였다.

 

▲ 남쪽 방면의 허물어진 외측 성벽 모습

▲ 삼년산성 성벽의 단면 모습

 

그러나 동쪽 성벽을 잠시 후 대하게 되는 남쪽 성벽이 동쪽보다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성밖에서 바라본 허물어진 성벽과 옹성

▲ 성곽 위에서 뒤돌아본 남동치성 방향의 남쪽 성곽 모습 

▲ 성내에서 바라본 남쪽 내측 성벽 모습

▲ 허물어진 성벽 밖으로 나가 뒤돌아본 남쪽 외측 성벽 모습

▲ 남쪽 성곽이 동쪽 성곽으로 휘는 곡성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곡성(13:07)을 따라 동쪽 성곽길을 내려가면 안부에 동문터가 자리를 하고 있다.

 

 

▲ 동쪽 성곽을 따라 내려서며 바라본 동문지

▲ 동문지(동문의 북쪽 지형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 성내에서 바라본 동문지(左)와 성밖에서 바라본 동문지(右)

 

13:10~13:14=>동문지

     허물어진 성벽처럼 보이는 동문지. 동문 밖으로 나가 동문 좌,우로 남아 있는 성벽을 확인해 보지만 북쪽 방향의 성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남쪽 방향의 외측 성벽만이 확인된다. 동쪽의 내측 성벽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고, 동문지 주변에서만 일부 남아 있는 하단부 석축 흔적만 발견할 수가 있다.

 

▲ 동문 밖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외측 성벽

▲ 복동치성으로 향하다 뒤돌아본 동쪽 성곽

▲ 삼년산성 동쪽 방향의 전경

 

동문은 북쪽 방향이 가파른 비탈을 이루고 있는 형태가 서문과 비슷한 지형에 만들어졌으며, 성내 동문지 입구에는 평탄지가 있어 적이 성 안까지 침투해 들어오면 북쪽의 높은 곳에서 공격이 가능한 지형이다.

오르막을 오르면 반원형의 곡성(13:18)이 나타나고 1분 후 나지막한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북동치성이다.

 

▲ 북문지로 내려가는 성곽 위에서 뒤돌아본 북동치성

▲ 성내 탐방로에서 북문으로 내려가다 뒤돌아본 북동치성의 모습

 

13:19~13:43=>북동치성

      사방으로 시야가 확보되는 전망대로 삼년산성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여겨진다. 삼년산성의 성 안쪽과 성곽 전체 윤곽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며 북문으로 접근하는 적의 관측 뿐만 아니라 공격이 용이한 곳에 자리를 하고 있다.

 

▲ 북동치성에서 바라본 북문 일대와 북쪽 성곽 모습

▲ 북동치성에서 바라본 삼년산성 북쪽의 전경

▲ 북동치성에서 바라본 삼년산성의 서쪽과 북쪽 성곽

 

▲ 북문으로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 성 밖에서 바라본 허물어진 북쪽 외측 성벽

 

북문이 위치한 안부를 향해 성벽 상부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니 성곽길을 산책하고 있는 살모사 한 마리가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북문쪽으로 허겁지겁 내려가다 성곽 돌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숨어 버린다.

 

 

▲ 성내에서 바라본 북문과 북동치성 사이의 내측 성벽 모습

 

놀라기는 마찬가지. 석축 돌 사이로 살모사가 숨어버린 성곽길을 지나가자니 왠지 꺼림직하여 다시 되돌아 북동치성에 올라가 성내 탐방로를 따라 북문이 있는 안부에 내려선다.

 

▲ 북문지

 

▲ 성내에서 바라본 북문과 성 밖에서 바라본 북문

 

13:50~13:57=>북문지

     북문지 좌측으로 민가처럼 보이는 보은사가 자리를 하고 있다.

 

▲ 북문지 아래 성내에 위치한 보은사

 

▲ 북문 밖에서 바라본 북동치성쪽(左)과 서북치성쪽(右) 외측 성벽 모습

 

▲ 북문 안에서 바라본 북동치성쪽(左)과 서북치성쪽(右) 내측 성벽 모습

 

북문 밖으로 나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북동치성에서 북문으로 내려오는 성벽과 북동치성의 성벽의 외측을 확인하고, 성내에서 다시 내측 성벽을 비교해 본다. 내측이 외측 성벽보다 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남아 있는 구간이다.

 

▲ 뒤돌아본 북문에서 서북치성으로 오르는 계단길

▲ 서북치성에서 뒤돌아본 북쪽 성곽

 

북쪽 성벽이 서쪽 성벽으로 방향이 꺾이는 서북치성인 곡성을 향해 가파르게 오르며 뒤돌아 보면 옛 모습을 간직한 삼년산성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서문이 있는 서쪽 성벽이 복원되어 남성미를 풍기는 장엄함을 보이는 성곽이라면 북쪽의 성곽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성곽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서북치성에서 서문으로 내려가는 길

 

14:02=>서북치성

     좌측으로 꺾이어 내려가는 성곽길을 따르면 서문에서 북쪽으로 약 71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문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인 옹성에 이르게 되는데, 탐방길을 따라 내려가며 바라보니 옹성과 성곽의 상부 모습이 마치 버선 모양처럼 보인다.

 

 

▲ 서문으로 내려가며 바라본 정비 복원된 서쪽 성벽

 

옹성에 서면 서문과 남문으로 이어지는 서쪽 성벽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 서문 직전 옹성 옆 탐방로에서 뒤돌아본 서북치성에서 내려오는 길

▲ 성내의 분지형 넓은 터 전경

▲ 서문 직전 내려다본 서문과 서쪽 성곽

 

14:15=>서문/원점회귀

     서문에 내려서며 삼년산성의 탐방을 끝마치고 인근의 99칸 선병국가옥, 천연기념물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와 천연기념물 보은 서원리 소나무인 정부인송 탐방을 위해 서둘러 삼년산성을 뒤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