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곽의 꽃 '화성(華城)' ▶
◁ 수원8경의 명소가 함께 하는 화성 ▷
【 화성(華城)의 개요 】
*사적 제3호
세계문화유산(1997년 12월 유네스코 지정)
화성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장조로 추존)가 당쟁으로 인하여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것을 항상 슬피 생각해 오다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양주땅 배봉산으로부터 유해를 수원 남쪽 화산(花山)으로 천봉하고, 정조18년(1794) 1월부터 정조20년(1796) 9월까지 2년 10개월여에 걸쳐 화려하고도 웅대한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은 실학자로 불리우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성설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아, 영의정 체제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수원유수 조심태 등이 전력하여 이룩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는 가장 과학적으로 구조물을 치밀하게 배치하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를 갖춘 것이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전을 병용한 것, 그리고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뿐만 아니라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사상 가장 특기할 일이다.
화성 축성 공사에는 모두 22직종 1,840명의 장인들이 동원되었으며, 석재는 화성 북쪽의 숙지산에서 떠온 돌을 사용하고, 기와와 벽돌은 성역소에서 직접 가마를 마련해 구워냈다. 기둥이나 대들보에 쓰이는 큰 목재는 충남 안면도와 강원도의 산림을 가져다 사용을 하였다.
또한 정약용이 고안한 유형거와 거중기 등을 비롯한 장비를 이용하므로 자재 운반 등이 용이하고 수월해져서 일의 능률을 높여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공사비를 절감할 수가 있었다.
화성은 지형에 의하면 평지와 산에 걸쳐 쌓은 '평산성'의 독특한 형태를 지닌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을 쌓는 재료를 한국에서 가장 널리 축조되는 풍부하고 질 좋은 화강암의 석성에 벽돌을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전축성'을 혼용한 것이 특징인데 방어시설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성벽 자체는 모두 돌로 축조하였다.
화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축조한 성으로 규모와 시설을 보면,
성곽에는 동서남북으로 관문을 두었으며, 각 문의 사이에는 적정을 관찰할 수 있는 공심돈을 만들었고, 장대 2곳을 설치하여 군사를 훈련시켰다.
통신시설인 봉돈을 비롯하여 각 5개씩의 포루(鋪樓)와 포루(砲樓), 2개의 노대(弩臺), 4개의 각루(角樓), 성안을 흐르는 수원천에 2곳의 수문 등이 축조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학적인 설계 아래 세워진 성이다.
현재 사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배경』
등록기준 중 두번째 기준인 '한 시대나 하나의 문화권을 통해 건축, 기념물, 문화환경 부문에서 지대한 영행력을 행사한 것'과 세번째 기준인 '소멸된 문명이나 문화전통에 대해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한 사례, 적어도 예외적인 증명이 되는 것'에 근거하여 등재가 되었다.
특히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고루 갖춘 근대 초기 건축물의 뛰어난 모범이며, 18세기 군사건축물을 대표하여 유럽과 극동아시아 성제(城制)의 특징을 통합한 독특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화성의 특징과 우수성』
- 화성의 규모는 성의 둘레 5.7km(미복원 구간 포함), 면적은 130㏊로 동쪽 지형은 낮은 구릉을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51개의 시설물로 성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의 시설물이 소멸되고 약 40개소의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이중 23개소에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국고유의 누각을 설치하였다.
-화성의 축성동기는 군사적 목적보다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측면,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어 상업이 활기를 띠자 서울과 지방간에 유통이 활발해져 삼남의 교통중심지인 수원을 경제 도시로 만들기 위한 신도시 건설이라는 경제적인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도시기반시설인 문, 도로, 다리, 상가 등을 설치하고 생산기반시설인 저수지와 둔전을 경영함으로써 계획된 신도시로 건설되었다. 중국, 일본 등과는 달리 평지와 산지에 걸쳐 축조된 독특한 형태의 포곡식 산성으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정치,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 18세기 동양의 성곽을 대표하는 한국전통건축의 완성품으로 축성의 계획, 제도, 법식 뿐 아니라,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공사일지 등이 '화성성역의궤'에 완벽한 기록으로 남아 있어 건축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화성만의 독특한 시설인 '공심돈' '현안' 등이 설치됨은 물론 성곽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동양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18세기 실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50개가 넘는 시설물이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성곽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보이게 하며, 화홍문의 수문은 기능과 7칸의 수문위에 축조된 문루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조화를 이루어 방화수류정과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화성의 아름다운 건축물들 】
【 성문(城門) 】 화성을 출입하는 4개의 관문이며 이중 팔달문과 장안문이 각각 남북의 정문으로서 석축으로 된 무지개문(홍예문) 2층에 문루가 세워져 있고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 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팔달문(제402호)과 화서문(제403호)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팔달문,장안문,창룡문,화서문 등 4대문 |
【 공심돈(空心墩) 】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의 일종으로 동북공심돈은 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平墩)을 모방하여 벽돌로 동그랗게 돈대를 쌓아 만들었다. 남공신돈은 남암문의 동쪽 치위에 위치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 서북공심동, 동북공심돈 등 2개소 |
【 장대(將臺) 】 장대는 모두 2개소가 있는데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서 성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사방 100리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화성의 군사지휘본부로 일명 화성장대라고도 한다.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를 훈련하고 지휘하던 곳이라 '연무대'란 별칭이 붙었다. - 서장대, 동장대 등 2개소 |
【 수문(水門) 】 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에 세운 수문으로 2개소가 설치되었으나 현재 남수문은 소멸되었고, 북수문만이 현존하고 있다. 다양한 기능과 견고함에 멋진 외관까지 함께 갖춘 북수문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당대의 대표적인 시설물이다. -북수문(화홍문),남수문(현재 미복원) 등 2개소 |
【 포루(砲樓) 】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소의 포루를 만들고 3층으로서 지대위에 혈석(穴石:대포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다. - 서포루,북동포루,동포루,북서포루,남포루 등 5개소 |
【 암문(暗門) 】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게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로 유사시에는 문을 닫고 주변에 쌓아 둔 돌이나 흙으로 암문을 메워 폐쇄하도록 하였다. 남암문은 시가지화 되면서 파괴되어 없다. - 서남암문,북암문,동암문,서암문 등 4개소 |
【 포루(鋪樓) 】 치성 위에 설치한 누로 군사들을 숨겨두고 적군이 보지 못하게 하는 시설물로 아래쪽은 돌로 쌓고 중간 부분부터 벽돌로 축조하였다. 그 위에 집을 짓고 판자를 깔아 문루를 만들고, 좌우에는 활을 쏘는 구멍도 만들었다. - 동북포루,북포루,서포루,동일포루,동이포루 등 5개소 |
【 각루(角樓) 】 높은 위치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을 말하며,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중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이라고 한다. 서남각루는 용도를 통하여 뻗어나간 외성의 끝에 위치하고 '화양루'라고도 불린다. - 동북각루(방화수류정),서북각루,동남각루,서남각루(화양루) 등 4개소 |
[ 봉돈(烽墩) 】 비상상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시설로 봉돈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벽돌을 쌓고 그 위에 5개의 화두를 쌓았으며, 성벽에 총구멍을 뚫어 적으로부터 방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연기를 피우는 봉화의 기능과 포대의 기능이 합쳐진 것이 봉돈이다. |
【 치성(雉城) 】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의 요소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구조물로서 성벽 가까이 좌우 방향으로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 서삼치.서일치,서이치,용도서치,용도동치,동일치,동이치,동삼치,남치,북동치 등 10개소 |
【 노대(弩臺) 】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상부에 위치 하였고, 화성에는 2개소의 노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중 동북노대는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치성 위에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 동북노대,서노대 등 2개소 |
【 적대(敵台) 】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시설로,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되어 있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되어 있다. 성곽보다는 높게 축조되어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였다. 팔달문 좌,우의 적대((남동, 남서)는 도시화로 사라져 버렸다. - 북서적대,북동적대 등 2개소 |
【 소 재 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 화성 성곽 돌기 】
장안문→북서적대→북서포루→북포루→서북공심돈→화서문→서북각루→서일치→서포루→서이치→서노대/서장대→서암문→효원의종→서포루→서장대관광안내소→서삼치→3.1독립기념탑/대한독립기념비→서남암문/서남포사↔서남각루(화양루+용도동치<서남이치>+용도서치<서남일치>)→남포루→남치→팔달문→팔달문시장→수원천(지동시장입구/식사)→동남각루→동삼치→동이포루→봉돈→동이치→동포루→동일치→동일포루→청룡문→동북노대→동북공심돈→동장대(연무대)/연무대관광안내소→동암문→동북포루→북암문→동북각루(방화수류정)→북수문(화홍문)→북동포루→북동치+북동적대→장안문/원점회귀
▲ 수원화성 안내도
【 탐방일자 】 2010년 10월 2일(토)
【 소요시간 】총 5시간 47분 소요(휴식 및 중식 : 3시간 55분 포함)/실제 : 1시간 52분 소요
▷ 성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하며 성곽의 상태를 확인하고 개방된 각루나 포루 등에서 비를 피하며 주변의 경관 감상 및 사진을 촬영하느라 지체되었으며, 서정대관광안내소와 연무대관광안내소의 매점에서 각각 휴식, 그리고 팔달문 지나 지동시장내의 식당에서 식사 등 탐방과 별개로 소요된 시간이 많아 전체 탐방시간이 많이 길어지게 되었음.
▷ 탐방거리(이정표 기준) : 약 5,744m
장안문-(610m)→화서문-(630m)→서장대-(770m)→화양루(서남각루)-(770m)→팔달문-(640m)→봉돈-(840m)→창룡문-(630m)→동장대-(400m)→방화수류정(동북각루)-(454m)→장안문/원점회귀
【 날 씨 】 흐리고 비
【 교 통 편 】 대중교통 이용
<< 갈 때 >> 부천역/전철1호선→수원역-(#13번 시내버스)→'장안문' 버스정류장
<< 올 때 >> '갈 때의 역순'
【 탐 방 기 】
우리나라에 잔존하는 성곽의 대부분이 산 봉우리 정상을 돌아 수축된 테뫼식이나 두 개이상의 산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 산성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되어 건축물 등 문화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수원 화성은 도시의 한 복판에 평지와 높이 143m의 낮은 팔달산에 걸쳐 자리를 잡고 있는 계획된 도시 성곽으로 많은 건축물들이 성곽을 따라 설치가 되어 있어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 뿐만 아니라 접근이 용이하여 누구나 손 쉽게 찾을 수가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성곽에서 찾아 보기 힘든 치성, 옹성, 공심돈 등 새로운 축성방식의 도입과 강화도와 남한산성에서 일부 실험 사용되었던 벽돌을 대대적으로 활용한 성벽 축성 재료의 다양성으로 성곽을 따라 설치된 모든 건축물들이 같은 용도와 목적으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동일한 모양이 없이 지형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내에는 임금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이 자리를 잡고 있은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과거 행궁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광복 후 화성 공사에 관한 중요하고 방대한 자료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조선시대 건축 종합 보고서격인 '화성성역의궤(2007년 6월 1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제)'를 참고하여 1990년대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현재 복원이 완료된 화성행궁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성곽과 북문인 장안문, 동문인 창룡문의 문루가 파괴되었으나 현재는 일부 성곽과 시설물을 제외하고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복원이 완료되어 있다.
이 처럼 뛰어난 문화재인 화성산성 인근을 자주 지나쳤지만 제대로 탐방을 하지 않고, 차일피 미루기만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산중의 성곽을 찾아 탐방을 실시하다가 이번에 화성행궁을 포함한 모든 시설물들을 탐방하는 화성돌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장안문을 시작으로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는 탐방을 시작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까지 내려 서장대에서 성내로 내려가 '화성행궁'을 1시간 정도 관람하고 다시 서장대에 올라 나머지 성곽돌기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개방된 포루나 각루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며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청승맞은 탐방을 해야만 했다.
비가 내리는 등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 '화성행궁'의 탐방을 이번에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었으니, 다시 '화성행궁' 관람을 위해 화성을 탐방할 때에는 이번 탐방에서 미진하였던 성곽 외부의 모습을 일부 살펴 보고, '화성열차'도 한 번 타보기로 해야 겠다.
성곽을 따라 설치된 시설물들이 일반 산성에서는 보지 못하였던 것들이라 살펴 보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성곽 위를 따르다 보니 외부 성벽과 각 시설물들의 외부의 모습과 구조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4대 성문과 5개의 암문 중 현재 남아 있는 4개의 암문을 통해 성밖으로 나갔을 때와 개방된 포루나 각루, 그리고 치성에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여 아쉬웠다. 또한 시설물들 중 개방된 누각 형태의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이 잠겨 있어 내부 구조를 볼 수 없었다.
이번 화성돌기 탐방에서는 성곽의 길이는 약 5.7km로 길지 않지만 50여개 가까운 많은 건축물들이 성곽을 따라 설치가 되어 있어 전체를 한꺼번에 올리기에는 너무 자료와 사진 등이 방대하여 아래와 같이 구간별로 나누어 탐방기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 화성(Ⅰ) 장안문~서장대 구간
- 화성(Ⅱ) 서장대~창룡문 구간
- 화성(Ⅲ) 창룡문~장안문 구간
탐방기를 작성하며 기재하는 시간은 각 시설물에 도착하여 각각의 시설물 구조나 주변 및 성밖의 성벽 등을 관찰하느라 소요된 시간을 표기한 것이므로, 화성 성곽돌기 실제 소요시간과는 무관하니 착오없으시기 바란다.
실제로 사잔촬영, 성밖 다녀오기, 누각에 올라가 조망하기 등 걷기와 무관한 시간을 제외한다면 2시간~2시간30분 정도면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충분한 코스이다.
- 화성(Ⅲ) '창룡문~장안문' 구간 -
▲ 수원천변에서 바라본 북수문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인 동북각루
화성돌기의 마지막 구간인 '창룡문~장안문'구간의 탐방을 시작한다.
화성의 동쪽 성곽 일부와 북쪽 성곽 일부로 이루어진 구간으로 창룡문에서 동장대까지의 소구간 성곽에는 동북노대, 동북공심돈, 동장대 등이 있으며, 동장대에서 첫 화성돌기 출발지였던 장안문까지의 현존하는 시설물과 건축물들은 동암문, 동북포루, 북암문,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북수문(화홍문), 북동포루, 북동치, 북동적대 등으로 이번 구간(창룡문~장안문)에서는 총 11개의 시설물이나 건축물들을 지나게 되는 코스이다.
이번 구간은 평지에 축성된 성곽이고 성곽길이가 약 1,480m 정도여서 단순히 성곽돌기만 한다면 20~30분의 시간이면 충분한 코스지만 동장대,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북수문(화홍문) 등 출입이 가능한 누각의 쉼터가 곳곳에 있고, 주변의 풍경이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 비가 내리지만 발길을 멈추는 예가 많아 약 1시간 20분이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16:20~16:35=>창룡문
창룡문을 기점으로 창룡문 북쪽에 위치한 동장대까지 성곽은 반원을 그리며 곡성을 이루고 있다. 이 곡성 구간의 동쪽 끝 양쪽 모서리에 동북노대와 동북공심돈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성안 공간에는 건물이 전혀 없고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중간지점 성곽 밑을 지나는 차도가 이 공간을 양분하고 있다.
차도 북쪽 동북공심돈 아래에는 국궁 활쏘기 체험장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창룡문에서 동장대까지 성곽을 따르지 않고 도로를 건너 가로지르면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창룡문에서 비 내리는 동쪽 성곽길을 따르면 1분 후 동북노대(16:36~16:40)에 이르게 되는데 서장대에 설치되었던 서노대와는 달리 성벽의 치성 위에 세워져 있다.
동북노대 상부에 올라가 여장처럼 만들어진 구멍을 통해 동북 방향으로 곡성의 모서리에 자리한 동북공심돈도 조망해 본다.
동북 방향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잠시 이어가면 동쪽 성곽이 끝나는 곡성의 모서리에 화서문 바로 옆에 자리한 서북공심돈과 함께 화성에 현존하는 2개의 공심돈 중 하나인 동북공심돈(16:42~16:45) 앞에 도착을 하게 된다.
참고로 남암문의 동쪽 치 위에 위치해 있었던 남공심돈은 시가지화로 남암문과 함께 멸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사라진 남공심돈은 시가지화로 원래 있었던 자리에 복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 국궁체험장 사수대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
성 안쪽으로 확 트여 성안 전경을 바라보니 창룡문부터 동장대까지 막힘없이 조망이 되는데 칙칙한 분위기의 비 내리는 날씨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화성의 북쪽 성곽이 시작되는 동북공심돈을 뒤로 하면 완만한 내리막의 성곽을 따라 동장대에 내려서게 된다.
▲ 동장대로 내려가는 길에 뒤돌아본 동북노대와 동북공심돈, 그리고 화성의 동쪽 성곽
▲ 동장대 내려가는 길에 조망된 화성 북쪽 외부 성벽과 동장대
▲ 동장대 내려가는 길에 조망된 화성 북쪽 내부 성벽과 동장대
♧ 동북노대(東北弩臺)
노대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서 높이 지은 것으로 서장대에 있는 서노대와 더불어 2기가 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를 잡고 성벽의 치성 위에 타원형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반달 모양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다.
♧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동북노대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
정조20년(1796) 7월 19일 완성되었으며 화성의 동북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다.
형태는 타원형으로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로 높이는 6.8m이며, 내부에 나선형의 벽돌계단을 거쳐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기에 소라처럼 생겼다하여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리어진다.
벽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을 뚫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고, 건물 아래쪽에는 온돌방을 만들어 군사들이 숙직할 수 있으며 3층에는 누각을 세워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동장대(東將臺)
정조19년(1795)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성하였으며, 동장대 왼편 담 밖은 넓은 조련장을 마련하여 말타기와 활쏘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무예를 수련하였기에 연무대(鍊武臺)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곳은 지형이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 보기에 좋은 군사 요충지이다.
연무대 편액이 붙어 있는 동장대 건물은 팔작지붕 형식으로 사방을 조망하도록 벽체를 설치하지 않았고, 뒤에는 기와를 이용하여 영롱장을 쌓았다. 가장 낮은 대에서 두번째 대로 오르는 통로는 계단을 하지 않고 경사지게 만들어 말을 타고도 직접 오를 수 있게 하였으며, 전각의 내부 바닥도 3개 층으로 두어 한 칸씩 올라가면서 지휘하는 장수의 위엄을 고려하였다.
뒤뜰에는 성벽과 동장대 사이에 영롱무늬 담을 두르고 있는데, 동장대에 있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군사들이 담 뒤에서 몰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16:50~17:02=>동장대
담장이 둘러쳐진 동장대내에는 '연무대(鍊武臺)' 편액이 있는 장대가 있고, 그 앞에는 넓은 연병장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동장대 건물 뒷편 성곽쪽에는 조선시대 대표적 휴대용 화포인 '불랑기 5호'가 전시되어 있다.
* 불랑기 5호
조선시대 대표적 휴대용 화포로 몸체 길이 72cm, 총구멍 9.5cm로 불랑은 프랑크(Frank)라는 유럽인을 뜻하는 말로 서양에서 만든 화포를 '불랑기'라고 한다.
몸체가 큰 1호부터 작은 5호로 구분이 되며, 발사 틀의 구실을 하는 모포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에 삽입해 발사하는 자포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개의 자포를 이용해 연속 사격이 가능해 임진왜란 이후 육전은 물론 해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화기로 평가받고 있다.
동장대를 빠져 나와 동장대를 우측에 두고 담장을 끼고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담장을 돌아가면 동장대관광안내소와 매표소, 기념품판매점, 국궁체험장 사수대 그리고 성안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변에 화장실이 자리를 하고 있다.
도로변에서 창룡문을 조망해 보고,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국궁장 끝 뒤편으로 동북공심돈이 막힘없이 조망이 된다. 물론 동북공심돈 우측으로 성곽 끝에 자리한 동북노대도 보인다. 매점 앞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내리는 비를 피하며 잠시 휴식.
동장대 담장을 끝까지 끼고 돌아 성곽에 붙어 잠시 성곽길을 따르면 동암문(17:06~17:14)이 자리를 하고 있다.
▲ 동암문 밖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와 외부 성벽 모습
▲ 동암문 밖에서 바라본 동암문 입구와 동장대로 이어지는 외부 성벽 모습
▲ 동암문 입구의 이정표
▲ 동북포루 직전 뒤돌아본 동암문과 동장대 방향의 전경
암문을 통해 성밖으로 나가 서쪽 방향의 동북포루와 동쪽 방향의 동장대로 이어지는 화성의 북쪽 외부 성벽을 확인해 보고, 성안으로 들어와 이정표(↑방화수류정 400m, 화홍문 450m/↓연무대 250m, 창룡문 400m) 옆 성곽길을 따라 은거한 선비들이 쓰는 모자인 각건과 닮았다하여 '각건대'라 불리는 동북포루(17:17)에 오른다.
▲ 동북포루에서 성벽 너머로 내려다본 북암문과 동북각루, 그리고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과 성밖의 용지
동북포루에서는 지세가 높아 동북각루와 수원천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조망이 되는 곳인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조망해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성곽길을 따라 내려서면 수원천 직전 북암문과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17:00~17:33)에 이르게 된다.
▲ 북암문 밖에서 바라본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
동북각루 입구에 있는 북암문을 통해 다시 성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다가 동북각루에 오르면 주변의 경치를 더 확실하게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동북각루로 향한다.
동북각루 입구에는 '2010 경기투어랠리 100경'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경기도에서 도내 100곳의 관광지를 정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지정된 풍경이나 유적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여 10월31일까지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주는 행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곳 동북각루가 지정된 경기 100경 중 하나이다.
▲ 방화수류정을 배경으로...
혹시 모르니 탐방객에게 부탁하여 동북각루(방화수류정)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동북각루에 오른다.
누각에 오르면 지나온 동북포루와 성곽, 수원천 북수문 위에 조성된 '화홍문' 누각과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성곽 등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고, 화성에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여러 시설물 중 가장 빼어난 곳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 동북각루 '방화수류정'에서 뒤돌아본 동북포루와 외부 성벽 모습
▲ 동북각루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수원천의 화홍문과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모습
주변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계속 내리는 비속을 걷는 것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30분이 넘는 시간을 북암문과 동북각루에서 보내고 잠시 내려서니 수원천이 가로지르고 있다.
우측에 수원천을 가로지르며 북수문이 자리를 하고 있고, 수문 위에는 '화홍문' 편액이 걸려있는 누각이 설치되어 있다.
7칸의 수문을 만들어 수원천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겸하고 있는 북수문의 홍예에서 쏟아지는 물보라와 주위 환경이 잘 어우러져 수원8경의 하나로 '화홍관창'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는데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수원천을 건너 뒤돌아본 경치가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 수원천 건너 반대쪽에서 뒤돌아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북수문(17:33~17:43)을 건너면 좌측에는 주택가와 상가 건물들, 그리고 도로가 맞닿아 있다.
성곽을 따라 북동포루(17:47)를 지나 장안문과 거의 맞닿아 있는 북동치와 북서적대와 마찬가지로 호이포 한 문이 설치된 북동적대(17:49~17:52)을 끝으로 장안문에 내려서며 화성돌기는 끝이 난다.
♧ 동암문(東暗門)
군사지휘본부인 동장대의 서쪽 14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문의 구조는 문 위에 벽돌을 깔고 오성지와 커다란 둥근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모양이 곡선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정조20년(1796) 3월 25일 완공하였다.
♧ 동북포루(東北鋪樓)
정조20년(1796) 5월 15일 완공되었다.
주변의 지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엄호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은거한 선비들이 쓰던 모자인 각건과 모양이 비슷하다하여 각건대라고도 하였다.
누각의 사면에 판문이, 내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 북암문(北暗門)
암문은 성곽의 비밀통로로 성곽의 굴곡진 부분이나 후미진 곳 수목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를 하는데 북암문은 방호수류정인 동북각루와 각건대인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다.
정조20년(1796) 3월 27일 완공하였다.
♧ 동북각루(東北角樓, 방화수류정)
화성의 4대 각루 중 하나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곳으로 전체 시설물 중 가장 빼어난 곳이다. 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 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이다.
용머리바위 위에 있는 누각으로 원래는 화성장대 다음 전투지휘소로 만든 건물이었으나 실제 전투지휘용보다는 쉼터로서 더욱 많이 사용되었다. 정조가 화성 행차시에 이곳에서 활을 쏘았으며, 돌과 벽돌 그리고 목재를 함께 쓰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취하였고, 특히 벽면의 십자가 무늬는 조선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달밤에 방화수류정이 용지에 비칠때면 달빛을 타고 선녀가 하강하는 듯한 환상에 잠기게 되는데 이 아름다운 경승을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8경 중 제일로 여기고 있다.
뛰어난 건축미와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방화수류정 비깥 쪽의 연못인 용연, 화홍문과 더불어 화성의 백미라 일컬어진다.
♧ 북수문(北水門, 화홍문)
화성의 중간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위에 설치한 두 개의 수문 중 하나로 현존하는 화성의 유일한 수문이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정조19년(1795) 1월 13일에 완성하였다. 수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역할을 하는 북수문 위에는 '화홍문'이란 누각을 설치하였는데 화(華)자는 화성을 위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장쾌한 물이 수문을 넘쳐나며 물보라를 일으켜 현란한 무지개가 화홍문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모습을 '화홍관창(華虹觀漲)' 이라 하여 수원8경의 하나로 꼽았다.
석교인 북수문은 7개의 홍예수문이 설치되었으며, 이 7개의 수문 중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게 설치되어 있다. 홍예문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두었으며 성벽에 바짝 붙여서 누각을 세웠다.
누각의 면적은 약 53㎥로 팔작지붕의 형식을 취하여 아담한 멋을 내고 있다. 수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하여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였다.
♧ 북동포루(北東砲樓)
화성의 북동쪽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18년(1794) 9월 23일 완공하였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성밖으로 약 9.3m 돌출되었으며 지붕이 성밖 쪽으로는 우진각, 안쪽으로는 맞배형 지붕형식을 취하고 있다.
♧ 북동치(北東雉)와 북동적대(北東敵台)
*북동치 : 북동적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적대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북동적대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성문 좌우에 있는 치성위에 세운 시설로서 4대문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 설치하였다. 장안문 동쪽에 위치한 북동적대는 높이는 성벽과 같은데 밖으로 3개의 현안을 뚫고 벽돌을 쌓은 담장마다 총구멍을 만들었다.
17:55=>장안문
비록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시된 화성돌기였지만 이렇게 성곽의 최대 걸작품인 화성을 제껴두고 다른 산성들을 찾아 탐방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생각하니 후회는 없다. 또한 화성을 다시 찾을 명분(화성행궁 탐방)을 남겨 두었으니 미진하고 아쉬웠던 곳을 그 때 탐방을 할 수가 있어 다행이다. 다음에 화성행궁 탐방과 화성열차를 이용한 탐방이 되더라도 '성곽의 꽃' 화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화성의 추억이 뇌리에 남아, 다른 산성이나 성곽을 찾았을 때 비교가 되어 실망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장안문을 뒤로 하고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수원역으로 향하며 오늘의 화성 탐방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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