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분류/100대 명산

무등산(無等山 1186.8m)/광주 동구

왕마구리 2011. 6. 6. 20:54

 무 등 산(無等山)

 높    이 

1,186.8m

서인봉 608m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

 

 

▲ 서인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 개     관 】

무등산은 백두대간의 영취산(1,075.6m)에서 뻗어내린 금남호남정맥이 장안산(1,236.9m), 팔공산(1,151m), 부귀산(805.4m), 마이산(685m), 성수산(1,059.2m)을 거쳐 3정맥 분기점인 주줄산(주화산 565m)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을 감싼 호남지방의 대간 호남정맥(주줄산~망덕산/외망)의 중간지점에서 가장 높게 솟은 전라남도의 진산이며, 광주광역시의 모산이다.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이나 신비롭게 솟아오른 입석대, 서석대와 광석대, 규봉의 선돌 등 절묘한 4대 석경이 있고, 지공과 덕산의 2대 너덜이 있으며, 광활한 억새군락이 부드럽게 산지를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산기슭 곳곳에는 고승의 발자취가 담겨있는 증심사, 원효사 등 고찰이 있고, 새인봉, 천제단, 풍암정, 춘설헌 등 수많은 명소가 있고, 약수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산이다. 그리고 충장공 김덕령(1567~1596) 장군의 충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충장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나 정상에는 군부대 시설물이 자리를 하고 있어 출입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 산행코스 】 증심사집단시설지구주차장→증심교삼거리(해발150m)→증심사입구↔증심사→당산나무입구삼거리→약사사일주문(해발305m)↔약사사→새인봉삼거리(해발415m)→ 서인봉(608m) →중머리재/헬기장→백운암터→봉황대사거리(해발475m)→봉황대(해발462m)→돌산약수터→토끼등(해발460m)→증심교삼거리→증심사집단시설지구주차장(원점회귀)

* 이정표 기준 산행거리 : 약 7.9km

주차장-(0.7km)-증심교삼거리-(0.5km)-증심사입구-(0.2km)-증심사-(0.2km)-증심사입구-(0.8km)-약사사-(0.4km)-새인봉삼거리-(0.9km)-서인봉-(0.4km)-중머리재-(0.6km)-백운암터-(0.6km)-봉황대-(0.5km)-토끼등-(1.4km)-증심교삼거리-(0.7km)-증심사집단시설지구주차장

 

 

 

산행일자 】 2011년 5월 14일(토)

【 산행시간 】 총 4시간 40분 소요(중식, 휴식 및 증심사,약사사 탐방 : 2시간 37분 포함)/실제 산행시간 : 2시간 3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참 석 자 】 재경대구고 18산우회(총 20명)

기세명+장종여, 김경암+김경선, 김정두, 박출석, 백승흠+이연숙, 서정환+이은순, 신명호, 이성규+김종구, 이승용, 이종익+송미란, 이현동+이경희+이준규, 천영면

【 교 통 편 】 전세버스 이용

【 산 행 기 】

이번 무등산 산행은 2008년 3월 7일~8일 무박산행으로 호남정맥 구간 종주 산행에 이어 약 3년여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산행코스가 북산~규봉~장불재~입석대~서석대~장불재-(백마능선)~안양산~둔병재 이었으며, 이번에는 당일산행이라 산행시간의 제약으로 증심사지구의 서인봉 코스에서 실시가 되었다.

무등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을 하고 있는 관계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나 오늘은 행사가 있어 특별히 정상을 개방(현지에 도착하여 정상 개방 사실을 알게 되었음)하여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었으며, 정상 개방이라는 특별한 날이었지만 현지에 도착한 시간이 12시를 넘긴 오후 1시경이라 정상 도전은 포기를 하고 계획한 코스대로 산행을 실시하였었다.

산행후 증심사집단시설지구내 식당에서 뒤풀이와 이른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으며, 뒤풀이 비용 전액을 김정두 동기가 찬조하였습니다.

18산우회 주치의로 버스내에서는 의료 상담까지 해 주는 김정두 동기의 찬조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12:40~12:55=>증심사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정표(↑장불재 4.6km, 중머리재 3.1km/→새인봉 1.9km)가 있는 ├자 갈림길(13:00). 순흥안씨 '영사제'(우측)와 문빈정사(좌측)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증심사계곡이 흐르고 계류 건너에는 산책로가 별도로 조성되어 있다.

 

 

 

 

                  ▲ 주차장에서 증심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포장길(사진 上)

                     첫 새인봉갈림길의 이정표와 '영사제' 전경(사진 中)

                     문빈정사(사진 下)

 

오를 때는 도로를 따르지만 하산시에는 계류 건너의 산책로를 이용하게 된다.

 

 

 

                  ▲ 증심교삼거리(사진 上左)

                     증심교삼거리의 이정표(사진 上右)

                     증심사계곡(사진 下)

 

이정표(증심교,해발 150m ←바람재 1.7km, 토끼등 1.4km/↑중머리재 2.7km, 새인봉 2.1km)가 설치된 증심교삼거리(13:06)에서 증심사까지는 증심교 다리를 건너 계속 도로를 이어가게 되고, 좌측의 등산로는 토끼등에서 하산을 할 때 이용을 하게 된다.

 

 

                  ▲ 증심사입구 갈림길(사진 上)

                     증심사입구 갈림길의 이정표(사진 下)

 

13:13~13:36=>증심사입구/증심사 탐방

     이정표(←중머리재 2.4km, 증심사 0.2km/↑약사사 0.8km, 새인봉 1.6km)가 설치된 갈림길에서 직진의 길 따라 약사사로 향해야 되지만 좌측으로 200m 떨어진 증심사를 탐방하고 가기로 한다.

 

 

♧♧ 증심사(證心寺)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

*소재지: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통일신라시대에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선종11년(1094) 혜조국사가 중창하였고, 세종25년(1443)에 삼창하였다. 그후 정유재란 때 불타 버린 것을 광해군1년(1609)에 석경, 수장, 도광 세 선사가 네번째 다시 지었다. 이후에는 여러 번 보수, 유지하여 오다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도 분실되었다.

1970년부터 1989년까지 현재의 건물들을 복원하였으며, 문화재가 가장 많은 광주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 증심사 일주문, 대웅전 그리고 산신각

 

♧ 증심사의 문화재들

◎ 증심사 오백전(五百殿)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 

 

                  ▲ 증심사 오백전과 삼층석탑(사진 左)과 오백전 옆 석탑들(사진 右)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로 거친 돌 허튼 층쌓기 기단 위에 기둥을 세우고 소의 혀같은 장식(석쇠)을 낸 겹처마집이다.

세종25년(1443)에 세번째 지었던 증심사의 모든 건물이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 광해군1년(1609)에 석경, 수장, 도광 세 선사가 네번째 다시 지으면서 현재의 오백전을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때 증심사 건물이 거의 불탔으나 오직 오백전만 화재를 피했다.

 

◎ 증심사 삼층석탑(三層石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높은 이층기단에 3층으로 쌓은 이 탑은 상륜부가 없어졌다. 지붕돌의 층급은 4단으로 깎였으며, 지붕 모서리의 치올림한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신라 하대의 탑이다.

1971년 12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당시 어떠한 유물도 발견되지 않아 이미 도굴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座像)

*보물 제131호(1963년01월21일 지정) 

 

                  ▲ 증심사 비로전(사진 左)과 비로전내 주불인 보물 제131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사진 右)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 옮겨 온 것이다.

현재 광배와 대좌는 잃어버렸지만 불상 자체는 완전한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유난히 높고 뚜렷하다. 눈, 코, 입 등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있어서 온화하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신체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어서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무릎 너비와 적절한 비례를 이루고 있어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으며 양 팔에 걸쳐진 두꺼운 옷자락은 규칙적인 평행의 옷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이 오른손 검지를 감싸 쥔 형태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형식과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불상은 조각 수법으로 볼 때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통일된 균형미를 보이는 점이 우수하게 평가되며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 등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증심사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 증심사 원통전(사진 左)과 원통전에 모셔진 석조보살입상(사진 右)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원래 담양군 남면 정곡리 서봉사지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상,중,하의 대석과 바닥돌을 갖추고, 머리에는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은은한 웃음을 띠고 있어 우아한 기품을 나타낸다. 대석에 새겨진 화려한 연꽃무늬와 몸에 장식된 목걸이, 부드러우면서 고운 옷무늬의 선은 따뜻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형상은 국보 제124호 한송사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139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 증심사입구 갈림길에서 약사사가는 시멘트 포장길 

 

                  ▲ 증심사계곡

 

증심사 탐방을 마치고 증심사 입구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약사사 방향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계곡을 우측에 두고 완만하게 오른다.

 

 

                  ▲ 당산나무입구 삼거리 전경과 이정표

 

13:43=>당산나무입구 삼거리

     이정표(↖중머리재 1.9km, 서석대 4.3km/↑약사사 0.4km, 새인봉 1.2km, 중머리제 2.1km/↓증심교 0.9km)가 설치된 Y자 갈림길.

직진길을 따라 올라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테이블이 여럿 설치되어 있는 쉼터, 정면에도 쭉쭉 뻗은 나무 숲속에도 나무벤치 등이 설치된 쉼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측의 쉼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13:45~14:36).

50여분 동안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계속되는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약사사 일주문에 이르게 된다.

 

 

                  ▲ 약사사 일주문(사진 左)과 약사사 일주문 옆 이정표(사진 右)

 

14:40~14:56=>약사사

     이정표(약사사, 해발305m ↑새인봉 0.8km, 중머리제 1.7km/↓의재미술관 0.8km)가 설치된 일주문에서 산길이 시작되는 직진의 계단길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먼저 좌측 15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약사사를 탐방하고 가기로 한다.

 

♧ 약사암(藥師庵 약사사)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1984년02월17일 지정)

 

 

 

증심사는 철감선사 도윤이 신라 헌안왕4년(860)에 세운 절로 송광사에 딸린 절이다. 증심사 입구에서 약사계곡을 따라 새인봉쪽으로 오르다보면 비교적 규모를 갖춘 약사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절감선사 도윤이 증심사를 세우기 직전인 850년경 '인왕사'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고려 선종11년(1094) 혜조국사가 중창하고, 고려 충렬왕32년(1306) 절을 고쳐 세우면서 '약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철종7년(1856)에 다시 관찰사 주석면의 협조로 성암과 학산 두 스님이 중건하였는데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74~1984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선원, 강원 등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모신 중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 양식이다.

운림당과 강원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로 마주보게 배치되었다.

대웅전에 모신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00호)과 창건 당시에 세웠다는 대웅전 앞의 3층 석탑이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그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3층 석탑은 결실된 부분을 보완하여 복원하였다.

1980년 대웅전을 중건하기 위하여 옛 건물을 해체하던 중 중수약사전기와 약사암중건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두 기록을 통해 1856년과 1905년에 대웅전을 중건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약사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座像)

*보물 제600호(1975년08월04일 지정)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거친 화강암 석재를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질병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약간 숙이고 있는 얼굴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이다. 체구는 전체적으로 당당하게 표현되었으나 어깨선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약간 쳐져 보인다. 허리는 가늘게 표현되어 상대적으로 가슴쪽의 양감이 풍부해 보인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한번 접었고 몸에 얇게 밀착되어 상체의 굴곡을 잘 드러 내준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앉아 있는데, 무릎이 지나치게 넓어 보인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전형적인 8각의 연꽃무늬 대좌인데, 각가 한 개의 돌로 상,중,하대를 구성하고 있다. 유난히 넓은 무릎과 형식화된 표현, 대좌와 불상 높이 비례가 1:1인 점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의 특징을 이어받은 신라말의 불상으로 보인다.

 

 

 

약사사 탐방을 마치고 일주문으로 되돌아 나와 일주문 우측의 계단길을 따라 산길로 들어선다.

 

 

 

                  ▲ 새인봉삼거리로 오르는 길

 

완만하게 오르막길을 이어가다 나무데크의 긴 오르막길을 대하고(15:01) 약 3분간 오르면 ┬자 능선갈림길인 새인봉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 새인봉삼거리와 삼거리의 이정표 

 

15:04~15:09=>새인봉삼거리

     이정표(해발415m ←중머리재 1.3km/↓의재미술관 0.8km/→새인봉 0.4km)가 설치된 갈림길에서 좌측의 능선길로 진행을 하면 계단길이 포함된 경사도를 느끼게 하는 오르막길이 약 4분간 나타나고, 바위지대 오름길을 지나면(15:15) 편안한 능선길이 2분여간 이어진다.

 

 

 

 

                  ▲ 서인봉가는 길

 

오르막길이 다시 나타나고 돌무더기탑(15:20) 지나 경사가 약간 급해지는 오르막길을 따르면 묘 1기(15:23)를 지나게 된다.

편안한 소나무 숲길을 잠시 이어가면 낮은 돌축대를 쌓아 놓은 쉼터가 있는데 등산객이 미리 선점을 하고 있어 이를 지나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15:25~15:47)을 취한다.

서인봉을 우회하는 사면 등산로가 좌측으로 갈라지는 ┤자 갈림길에서 직진의 길 따라 잠시 오르면 우측으로 또 다른 능선이 분기하는 능선분기봉인 서인봉에 오르게 된다.

 

 

 

                  ▲ 서인봉 정상(사진 上)

                     서인봉 정상의 이정표(사진 中)

                     서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중봉(사진 下)

 

15:50~16:00=>서인봉(608.2m)

     일부 등산지도에 새인봉(새인봉은 운소봉 610.8m로 표기)으로 표기되어 있는 서인봉 정상에는 이정표(해발608m ←중머리재 0.4km, 장불재 1.9km/↓새인봉 1.3km)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 남쪽 방향으로는 마집봉(472m)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능선길이 있다.

정상에 서면 북쪽 방향으로 중머리재와 통신시설물이 자리한 중봉(925m), 그리고 장불재 우측의 통신시설물, 무등산 정상 밑 서석대와 우측으로 입석대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그리고 2008년 3월 호남정맥 종주 산행 때 진행하였던 장불재에서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까지 조망되어 호남정맥 종주 산행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무등산 정상에서 길게 뻗은 호남정맥 산줄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따르면 넓은 헬기장 공터인 중머리재에 도착을 하게 된다. 

 

 

  

                  ▲ 중머리재

 

16:05~16:13=>중머리재

     이정표(←공원관리사무소 4.9km, 증심사 2km, 토끼등 1.7km/↑장불재<화순방향> 1.5km/↓새인봉 1.7km)가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의 등산로를 이용하여 하산을 시작하게 된다. 이정표상에 표기된 공원관리사무소는 원효사집단시설지구에 위치한 관리사무소를 의미하며, 토끼등에서 바람재와 늦재를 거쳐 가게 되는 거리 표기이다.

오늘 하산은 원점회귀 산행이므로 토끼등에서 증심교삼거리로 가게 된다.

 

   ◀ 중머리재 아래 Y자 갈림길의 탐방안내도

 

약 50여m를 내려가면 중머리재의 이정표 거리 표시와 동일한 이정표(←증심사 2km/↑토끼등 1.7km, 공원관리사무소 4.9km)가 있는 Y자 갈림길.

 

 

 

                  ▲ 돌을 깔아 정비한 탐방로

 

우측(직진) 길로 들어서면 돌을 깔아 정비한 평탄한 사면길이 이어지고, 곳곳에 바위 너덜이 나타난다.

 

 

 

 

 

                  ▲ 백운암터(사진 上)

                     백운암터의 이정표들(사진 中)

                     백운암터 약수와 정자 쉼터(사진 下)

 

16:25~16:35=>백운암터

     이정표(↑토끼등 1.1km, 봉황대 0.6km/↓중머리재)가 설치된 Y자 갈림길로 우측에 백운암터샘과 정자 쉼터가 있으며, 정자 쉼터 앞으로 또 다른 이정표(↑중터리길<늦재> 2.4km, 원효사 3.4km)가 보인다.

 

                  ▲ 백운암터에서 봉황대사거리로 가는 길

 

좌측의 돌계단과 완만한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봉황대사거리이다.

 

 

                  ▲ 봉황대사거리 전경과 이정표

 

16:44~16:47=>봉황대사거리

     이정표(해발475m, ←천제단 0.1km/↑당산나무 0.9km/↓중머리재 1.1km/→토끼등 0.6km)가 설치된 사거리에서 직진의 당산나무 방향으로 내려가면 중머리재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 당산나무와 증심사를 지나 증심사입구로 향하게 된다.

 

                  ▲ 봉황대사거리에서 봉황대가는 편안한 산길

 

우측의 길로 들어 편안한 산길을 이어가면 봉황대에 이르게 된다.

 

 

 

                  ▲ 봉황대(사진 上)

                     봉황대의 표지석과 이정표(사진 下)

 

16:49~16:50=>봉황대

     정자와 벤치들이 설치된 넓은 쉼터로 봉황대 표지석과 이정표(해발462m, ←의재미술관 1.1km/↑토끼등 0.5km/↓중머리재 1.2km)가 있다.

 

 

                   ▲ 봉황대에서 토끼등/돌산약수터가는 편안한 사면길

                  ▲ 돌산약수터 

                  ▲ 토끼등가는 길

 

의재미술관 갈림길을 지나 사면의 숲길을 따라 돌산약수터(16:54)를 지나 약 3분 후 우측으로 넓은 임도가 시작되는 토끼등에 이르게 된다.

 

 

 

 

                  ▲ 토끼등(사진 上)

                     토끼등의 바람재가는 길 입구(사진 中左)와 증심교가는 길 입구(사진 中右)

                     토끼등의 '소리정' 쉼터(사진 下)

 

16:57~17:02=>토끼등

     '소리정'(토끼등쉼터) 정자 쉼터와 등산안내도, 그리고 넓은 공터 주변으로 나무벤치 등이 설치된 곳으로 우측의 넓은 임도는 바람재를 거쳐 원효사집단시설지구내 관리사무소로 이어지는 길이다.

 

 

 

 

                   ▲ 증심교가는 내리막의 산길

                  ▲ 증심교 직전의 덕산골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 

                  ▲ 증심교 밑을 흐르는 덕산골계곡

 

좌측 끝 화장실이 설치된 등산로를 따라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이어가면 '덕산골' 계곡과 만나게 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증심교삼거리이다.

 

 

                  ▲ 증심교삼거리와 증심교계곡 옆 산책로 입구

 

17:23~17:26=>증심교삼거리

     산행을 시작할 때 거쳐 갔던 곳이므로 원점회귀를 한 셈이다. 우측 증심사집단시설지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 50여m 정도를 내려가다 좌측 증심사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있는 ┤자 갈림길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진행하였던 포장도로를 버리고 다리를 건너 계곡 반대편 산책로를 따른다.

 

 

                   ▲ 증심사계곡 산책로

                  ▲ 증심사계곡

 

산책로를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우측의 다리를 건너 포장도로를 잠시 이어가 버스정류장에 이르며 오늘의 산행은 끝이 난다.

17:35=>증심사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산행을 마치고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집단시설지구내 식당으로 이동, 뒤풀이시간과 이른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경길에 오르며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