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분류/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 둘레길 '왕실묘역길' 코스

왕마구리 2011. 8. 11. 01:00

◀ 북한산 둘레길 '왕실묘역길' ▶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끼며!!!

 

                   ▲ 전망데크에서 조망된 도봉산 우이암

 

【 걷기일자 】 2011년 7월 10일(일)

【 걷기코스 】정의공주묘/'방학동길' 날머리 & '왕실묘역길' 들머리→연산군묘 & 방학동 은행나무→연산군묘 재실→전망데크→2차선포장도로/강북구&도봉구 경계→주차장&견인차랑보관소→북한산입구→우이 우이령길 입구/'왕실묘역길' 날머리 & 북한산 지역 '소나무숲길' 들머리

【 코스거리 】 약 1.60km

【 소요시간 】 총 42분 소요(휴식:15분 포함)/실제 걷기 시간 : 27분 소요

【 날     씨 】 맑 음

【 교 통 편 】대중교통 이용

<<갈 때>> 부천역(12:35)→도봉산역(14:10)

<<올 때>> 우이령입구/북한산입구(17:42~17:50)-(#130번 버스)→쌍문역/4호선(18:08~18:19)→부천역(19:28)

 

교통편 안내 」

*방학동길 날머리 & 왕실묘역길 들머리 : 정의공주묘

- 쌍문역/4호선 3번출구→#130번 버스 이용, 연산군,정의공주묘 하차하여 도보 3분 

*왕실묘역길 날머리 : 우이우이령길 입구

- 수유역/4호선 3번출구→#120번, #153번 버스 이용, 종점 하차하여 방학동길 방향 300m 

【 코스탐방 】

오늘 북한산 둘레길 도봉산 지역의 탐방은 도봉옛길의 잔여 구간(도봉탐방지원센터~무수골:1.7km), 방학동길(무수골~정의공주묘:3.1km), 왕실묘역길(정의공주묘~우이령입구:1.6km) 등 도봉지역 총 8개 구간 중 마지막 3개 구간에서 이루어졌으며, 총 탐방거리는 접근(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1km) 거리를 포함하여 총 7.4km였다.

여름 휴가가 시작되는 첫날인 오늘 나머지 3개 구간을 탐방하게 되면 지난 달 말 새롭게 개장한 도봉산 지역의 북한산 둘레길도 모두 탐방을 마치게 되어 지난 해 개장한 북한산 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탐방을 마치게 된다.

오늘 실시된 3곳의 둘레길 탐방기는 각 코스별로 나누어 게재를 하기로 하고, 도봉옛길(지난 7월10일 탐방 코스 포함)과 방학동길, 그리고 왕실묘역길 탐방기를 계속 소개한다.

 

 

왕실묘역길은 이번 6월 말 개장된 북한산 둘레길 도봉산 지역의 전 코스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간이다.

성종의 맏아들로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묘와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한 정의공주의 묘가 있어 이름지어진 왕실묘역길에는 수령 약 830년된 서울기 지정 보호수 제1호인 '방학동 은행나무'와 은행나무가 마시고 자란다는 '원당샘'을 볼 수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끼며 걷는 길이다.

도봉산 지역의 둘레길 8개 구간 중 가장 짧은 구간이지만 볼거리는 가장 풍성한 구간이라 할 수가 있다.

2010년 북한산 구역의 12개 구간, 2011년 새로 개장한 도봉산 구역의 8개 구간, 그리거 우이령길 구간 등 총 21개 구간의 탐방을 오늘 모두 마무리하였지만, 21개 구간 모두를 여름철(7월과 9월)에 탐방을 하는 아쉬움이 남아,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전체 구간 또는 21개 구간 중 계절에 적합한 구간을 선별하여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철(10월 하순~11월 중순)에 다시 찾고 싶다.

 

 

 

                   ▲ 정의공주묘의 둘레길 이정표(사진 上)  

                      정의공부묘의 둘레길 안내도(사진 下)

 

16:50~17;00=>정의공주묘

     2차선 포장도로가 정면을 가로지르고, 정의공주묘 우측에 둘레길 이정표(정의공주묘, ↓북한산둘레길<도봉동>, 무수골 3.2km/→북한산둘레길<우이동>, 우이령입구 1.5km, 연산군묘 150m), 그리고 대형 둘레길 안내도가 있다.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소재지: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번지 1호

 

 

양효공 안맹담(1415~1462)과 그의 부인 정의공주(?~1477)를 합장한 곳으로 이 묘역의 봉분은 쌍분이고, 신도비, 묘표2기, 상석2기, 문인상 2쌍, 3단 계체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다.

양효공의 본관은 죽산으로 함길도 도관찰출척사 안망지의 아들이다.

세종10년(1428)에 14세의 나이로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결혼하였는데 부부의 금슬이 매우 좋았다고 전한다.

세종은 그에게 한강 가운데 있는 저자도와 낙천정을 하사하였다. 그는 초서를 잘 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음악과 의학에도 통달하였다.

묘역의 묘표 2기는 쌍분 앞에 있어 정의공주가 왼쪽에 합장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묘표의 관석에는 여의두문과 운문을 새겼는데 이는 조선 초기 일부 묘표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세조12년(1466) 묘소 동남쪽 아래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정인지가 비문을 지었고, 안맹담의 4남 안빈세가 비문과 전액의 글씨를 썼다. 비는 이수, 비신, 귀부로 되어 있다. 

 

묘 입구에서 10여m를 인도를 따라 우이동 방향으로 진행하여 좌측 횡단보도를 건너 정면으로 보이는 'FAMILIE' 아파트 단지 112동을 바라보며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도봉 10대 명소'의 하나인 연산군묘와 방학동 은행나무가 마을길 우측과 좌측에 자리를 하고 있다.

 

                   ▲ 원당샘 옆의 둘레길 안내도

 

17:03~17:10=>연산군묘 및 방학동 은행나무

     우측으로 사적 제362호인 연산군묘역이, 좌측에는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1호인 은행나무가 자리를 하고 있다.

 

♧ 연산군묘(燕山君墓)

*사적 제362호

*소재지: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77

 

 

연산군(1476~1506)은 성종(1457~1494)과 윤기무의 딸 폐비윤씨 사이에서 태어나 7살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되어 19세에 조선왕조 제10대 임금이 되었으며, 붓글씨를 잘 쓰고 실록에 실려 있는 시가 130여편이나 될 정도로 시를 잘 짓는 임금이었다.

즉위 초에는 성종시대에 형성된 평화로운 풍요가 그대로 이어져 왔으며 성종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사치풍조를 잠재우기 위하여 구체적인 금제절목을 만들어 강력한 단속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며, 민간의 동정이나 관료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하여 암행어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변방지역에 여진족의 침입이 계속되자 귀화한 여진인을 회유하여 변방지역의 안정을 꾀하기도 하였으며, 문신의 사가독서(유능한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는 제도)를 실시하여 조정의 학문 풍토를 새롭게 했으며, 세조이래 3조의 국조보감을 편찬해 후대 왕들의 제왕 수업에 귀감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종묘제도를 정비하고 상평창을 설치하여 물가를 안정시키고 호적식년을 개정하여 백성의 불편을 해소하기도 하였고 비융사를 설치하여 갑옷과 무기를 생산하는 등 국방에도 힘을 모았다.

이렇듯, 연산군의 즉위 초기에는 오히려 성봉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없애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생모 윤씨의 폐출 경위를 알게 된 연산군은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게 되고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통하여 크나큰 옥사와 많은 선비를 죽였으며 계속되는 사치와 향락으로 국가 재정을 탕진했으며, 생모 윤씨를 왕비로 추존하여 회묘를 회릉이라 고친 뒤 성종 능에 함께 제를 지냈다.

성균관을 주색장으로, 원각사를 기생들의 집합소로, 흥천사를 마구간으로 바꿔버리는 등 무수한 실정을 거듭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섬 교동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병사했다.

거창군부인 신씨(연산군 부인) 사이에 2남1녀, 후궁 소생으로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나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귀양지에서 모두 죽었다. 연산군은 유배지인 교동도에 안장되었다가 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가 중종에게 이장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여 1513년 오늘날의 도봉구 방학동에 이장되었다.

연산군묘는 그동안 비공개로 운영되어 오다가 2006년 7월부터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의 묘가 연산군묘역에 있는 까닭

의정궁주 조씨는 본관이 한양인 조뢰의 딸로 태어나 세종4년(1422)에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지만 곧 태종이 승하하여 빈으로 책봉되지 못하고 궁주의 작호를 받았다.

의정궁주 조씨묘가 연산군묘역에 있는 이유는 이 땅은 원래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땅이었으며, 임영대군은 왕명으로 후사가 없던 의정궁주의 제사를 맡게 되어 현 위치에 의정궁주묘를 조성하였고, 그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요청에 의하여 의정궁주 묘 위 쪽에 연산군묘를 이장한 것이다.

♧ 방학동 은행나무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지정일자:1968년2월26일)

*소재지: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56

 

 

높이 24m, 둘레 9.6m, 수령 830년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도봉 10대 명소(1.도봉산, 2.서울열린극장 창동, 3.옹기민속박물관, 4.연산군묘 및 방학동은행나무, 5.도봉서원, 6.천축사, 7.발바닥공원, 8.방학사계광장, 9.창골잔디구장, 10.도깨비시장) 중의 하나이다.

이 은행나무는 그 모습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였고, 이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일년 전에도 불이 나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진화되었다고 한다.

♧ 원당샘

*소재지: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47

 

 

600년전 파평윤씨 일가가 자연부락인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으며 마을 이름을 본 따 '원당샘'으로 명명되어 수백년 동안 생활용수를 공급하였고, 일명 '피앙우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면적 26㎡, 우물바닥면적 0.64㎡이며 1979년 마을 주민에 의하여 정비되고, 2008년 6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일정한 수온과 수량으로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혹한에도 얼어 붙은 일이 없으며, 부근의 수령이 830년된 은행나무도 이 우물의 수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산세가 수려하고 풍수가 좋아 부근에 조선조 10대 연산군묘소, 세종대왕 부마인 양효안공(맹담) 묘소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원당샘이 복구됨으로써 옛날의 지명과 지세를 짐작케 해 주는 지역이다.

 

또한 은행나무에서 진행 방향으로 10여m 떨어진 곳에는 원당샘과 원당샘 안내문, 둘레길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연산군묘역을 잠시 둘러보고 우측으로 연산군묘역을 두고 원당샘 옆 포장길을 따라 가면 연산군묘 재실 앞에 이르게 된다.

 

♧ 연산군묘 재실

 

 

조선 왕릉의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인 영(종5품)과 참봉(종9품)이 근무하는 곳이며, 재향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재향을 준비하는 곳으로 안향청,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다.

연산군묘 재실은 본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산군 재향일은 매년 4월2일(양력)에 행해진다.

본 재실에는 영조51년(1775) 연산군의 묘소를 외손으로 하여금 돌아가신 달과 사명일(설, 단오, 추석, 동지)에 제사를 지내도록 관아에서 제수를 주고 묘를 지키도록 군사를 배치하였다고 기록된 치제현판이 발견되었다.

또한 1903년(광무7년)에 제작된 현판인 묘각중건기에는 문혜공(이안늘의 시호)의 자손이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모셨으며 홍태윤이 지나가다가 묘소가 허물어 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여 고종 황제께 건의하여 묘의 주변을 정비하고 재실을 보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를 지니고 있는 연산군묘 재실은 2010년 4월부터 10월까지 문화재청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연산군묘 재실 앞을 지나면 비포장길이 시작되고,

 

                   ▲ 황가네 식당앞 ┬자 갈림길

 

황가네' 식당이 정면을 가로 막는 ┬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약 50여m를 오르면 좌측 산길 입구에 둘레길 나무아치, 낮은 고갯마루 우측에는 둘레길 이정표(←북한산둘레길<우이동>, 우이령입구 1.3km/↓북한산둘레길<도봉동>, 연산군묘 0.3km)가 설치된 ┤자 갈림길(17:15).

 

 

 

                   ▲ 고갯마루 ┤자 갈림길(사진 上)  

                      갈림길의 둘레길 이정표와 산길 입구의 나무아치(사진 下)

 

좌측 둘레길 나무아치를 통과하고 나무계단을 따라 산길로 오르면 국립공원 탐방객 계수기 시설물을 지나 별 부담없는 완만한 오르막의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짧은 나무계단을 오르면 오르막길이 끝나는 ┬자 삼거리.

 

 

 

                   ▲ ┬자 능선갈림길과 이정표(사진 上)  

                      나무데크 쉼터 갈림길인 Y자 삼거리(사진 下)

 

둘레길 이정표(↓북한산둘레길<도봉동>, 연산군묘 0.7km/→북한산둘레길<우이동>, 우이령입구 0.8km)가 설치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약 50여m를 들어가면 Y자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도 둘레길 이정표(↖북한산둘레길<우이동>, 우이령입구 0.8km/↓북한산둘레길<도봉동>, 연산군묘 0.7km/→쉼터 0.05km<우이암을 바라 볼 수 있는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정면 나무 숲 사이로 우이암과 우이남능선이 조망되는 전망데크가 있다.

 

                   ▲ 우이암이 조망되는 전망데크 쉼터

 

17:22~17:28=>전망데크

     갈림길로 되돌아나와 우이령 입구를 향해 내려가면 둘레길 나무아치를 통과하고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인도에 이르게 된다.

 

                   ▲ 전망데크 쉼터에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는 탐방로 

 

 

                    ▲ 2차선포장도로로 내려서는 관문인 둘레길 나무아치와 이정표(사진 上)  

                       2차선포장도로 인도애 설치된 둘레길 안내도(사진 下)

 

                   ▲ 강북구와 도봉구의 경계인 도로 고갯마루(사진 上)  

                      산길이 끝나는 인도에서 뒤돌아본 나무아치(사진 下)

 

17:30~17:32=>2차선 포장도로

     산길이 끝나는 인도에 내려서면 우측으로 강북구와 도봉구의 경계인 고갯마루가 보이고, 둘레길 안내도와 이정표(←북한산둘레길<수유동>, 우이령입구 0.7km/↓북한산둘레길<방학동>, 연산군묘 0.8km)가 설치되어 있다.

 

 

                   ▲ 우이령입구로 내려가는 도로

                   ▲ 4차선으로 도로가 넓어지는 곳에 위치한 ┤자 갈림길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인도를 이어가면 4차선으로 도로가 넓어지기 시작하고, 이정표(←북한산둘레길<우이동>/↓북한산둘레길<도봉동>)가 설치된 ┤자 갈림길에서 좌측 계단으로 내려간다.

'강북구 견인차량보관소'와 주차장이 있는 우이동 북한산 등산로 입구(17:40)에 이르러 우측으로 약 50m를 도로를 따라 가 좌측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우측으로 우이령 입구를 향해 올라가면 우이동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앞에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 지역 '소나무숲길' 들머리를 알리는 이정표(←북한산둘레길<수유동>, 손병희선생묘소 0.8km/↑우이탐방지원센터 2.1km, 우이령길/↓북한산둘레길<방학동>, 연산군묘 1.6km)가 있다.

 

 

                   ▲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 구역과 도봉산 구역 탐방로가 만나는 우이령입구(사진 上)  

                      우이령입구의 이정표(사진 下)

 

17:42=>우이령입구

     이곳이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 지역의 '소나무숲길'과 도봉산 지역의 둘레길인 '왕실묘역길', 그리고 우이령길이 만나는 곳이며, 고현 우이령길 입구에서 시작된 도봉산 지역 둘레길의 종착지이다.

우이령 입구에 도착함으로써 지난 6월 말에 개장된 북한산 둘레길 도봉산 지역의 탐방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2010년 개장된 북한산 지역에 이어 북한산국립공원 둘레길 탐방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과 2011년 모두 여름철(7월과 9월)에 탐방을 완료하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가을에 다시 한 번 모든 구간을 탐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