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강원&충청권

사계절이 아름다운 괴산의 명소를 찾아서 Ⅱ편:홍범식고택, 제월대 고산정 그리고 각연사

왕마구리 2012. 8. 23. 22:14

◀ 괴산의 명소를 찾아서(Ⅱ편) 홍범식고택, 제월대 고산정 그리고 각연사   

 

여름휴가를 맞아 백두대간과 '괴산의 명산35' 산행 등으로 30여 차례가 넘는 괴산군 방문을 하였지만 괴산군에 위치한 관광지를 제대로 방문한 적이 없어 이번에는 산행이 아닌 '괴산의 명소'를 찾아가는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을 하게 되었다.

 

 

 

 

 

 

 

 

               ▲ 괴산의 명산35

 

1박2일간의 짧은 일정속에 진행된 이번 괴산 방문은 예전 산행때 이미 여러 차례 탐방하였던 여름 휴가지로 피서객들이 몰리는 괴산의 4대 계곡(선유구곡, 화양구곡, 쌍곡구곡, 갈은구곡)은 피하였으며, 폭염으로 탐방지를 찾아 다니는 고역이 뒤따라 이동거리가 가까운 인접지역의 관광지 위주로 탐방을 실시하였다.

1박2일의 일정이지만 첫째날은 충주 탄금대 탐방을 하고 괴산에 도착한 관계로 오후 늦게 수옥폭포와 인근의 마애이불병좌상을 탐방하고 마애이불병좌상 앞 원풍천 계곡에서 버너를 피워 준비해 간 햇반과 불고기 요리를 하여 캠핑 기분을 내며 저녁식사를 하고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짧은 계곡 피서를 즐긴  것으로 만족하였다.

괴산읍내의 모텔을 숙소로 정하여 둘째날은 괴산읍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관광명소를 찾아 탐방을 하였으며, 오후에는 괴산호 주변에 자리한 산막이옛길 걷기를 마지막으로 아쉬운 괴산의 명소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괴산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를 3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기로 한다.

 

- 사계절이 아름다운 괴산의 명소를 찾아서 Ⅰ편 : 수옥폭포와 마애이불병좌상

- 사계절이 아름다운 괴산의 명소를 찾아서 Ⅱ편 : 홍범식고택, 제월대 고산정 그리고 각연사

- 천혜의 자연경관이 살아 숨쉬는 곳! 사계절이 아름다운 괴산의 '산막이옛길'

 

【 일 정 표 】2012년 8월 1일(수)-2일(목) 1박2일

                             ◈ 첫째날(8/1) 오후 : 수옥폭포-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 둘째날(8/2) :홍범식고택-제월대 고산정-각연사-산막이옛길

 

【 홍범식고택(洪範植古宅) 】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 홍범식고택 전체 전경과 정문

 

이 가옥은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좌,우 대칭의 평면구조를 갖춘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 산림집의 건축양식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중문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안채, 서쪽에 사랑채를 좌,우로 배치하고 사랑채 앞에 행랑채를 두었다.

 

               ▲ 홍범식고택 안채

 

정남향으로 지어진 안채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집으로 중앙에 큰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3칸씩의 방과 부엌을 두고 오른쪽에는 3칸 마루를, 서쪽에는 2칸 툇마루를 두었다.

앞으로 2칸의 별채가 있는데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 홍범식고택 사랑채

 

왼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2고주 5량가이며 장려를 받친 남도리집이다.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하였다.

 

               ▲ 홍범식고택 뒷마당에서 바라본 전경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술국치에 항거 자결 순국한 항일지사 일완 홍범식 선생(1871~1910)의 고택이자 1919년 3월 19일 괴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고 전하는 3.1만세운동 유적이다.

또한 근대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의 고택으로도 널리 알려진 문화사적유산이다.

 

               ▲ 홍범식고택 배치도

 

【 제월대(齊月臺) 및 고산정(孤山亭) 】

*충청북도 기념물 제24호(지정일:1978년10월27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산16-2

 

 

 

괴강의 푸른 물이 감싸돌며 유유히 흘러 자연경관이 빼어나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고산정은 괴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승지로서 고산9경의 하나인 제월대 옆에 있는 정자이다.

 

               ▲ 고산정 정자에서 바라본 주변의 전경들

 

선조29년(1596) 충청도 관찰사 유근이 이곳에 만송정(萬松亭)과 고산정사(孤山精舍)를 짓고, 공해군 때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숙종21년(1695)에 고산정사는 불타 없어지고 만송정만 남아 고산정이라 불렀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사방을 개방하고 평 난간을 둘렀다. 정호현판은 이현의 글씨이다.

 

 

               ▲ 고산정 정자내에 걸려있는 이현이 쓴 '고산정'과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씉 '호산승집' 편액

 

정자 안에는 선조39년(1606)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쓴 '호산승집' 편액과 광해군1년(1609) 명나라 사신 웅화기 지은 '고산정사기'가 걸려있다. 그 밖에도 사부사가 지어보낸 '만송정팔경시'가 있는데 팔경은 고산정을 비롯하여 영객령, 제월대, 관어대, 영화담, 황니파, 창벽, 은병령의 8가지 경관을 일컷는다.

유근(1549~1627)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는 회부, 호는 서경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선조5년(1572) 과거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왕을 모신 공으로 진원부원군에 봉해졌다.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괴산에 낙향하였다. 인조반정으로 정계에 다시 들어갔으나, 정묘호란 때 왕을 모시고 강화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문정이다.

 

 

               ▲ 제월대 산책로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괴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고산정' 정자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군데군데 벤치 등 쉼터가 마련된 숲속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 제월대 아래를 흐르는 괴강(달천)

 

산책로를 따르면 절벽 아래로는 유유히 흐르는 괴강이 내려다 보이고, 괴강(달천) 건너로 솟아 있는 성불산이 조망이 된다.

 

【 각연사(覺淵寺) 】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때에 현재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사동(절골) 근처에 터를 잡고 유일대사가 절을 지으려고 목수를 시켜 나무를 다듬고 있는데 까마귀떼가 날아와 대팻밥을 물고 날아가길 자주 하여 이상하게 여긴 대사가 그 까마귀떼를 따라가 보니 깊은 산골에 있는 연못 속에 대팻밥을 떨어뜨렸다. 연못 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 석불이 앉아 있어 그곳에 절을 세우고 각연사라 하였다.

 

 

 

 

'유일대사가 연못속에 불상이 있음을 깨달았다(覺有佛於淵中)'는 뜻에서 ' 깨달을 각(覺), 연못 연(淵)'자를 써 각연사라 이름지어 졌다.

절 주변으로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연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둘러싸고 있다. 보개산(보배산 709m), 칠보산(778m), 덕가산(858m)으로 이루어진 분지 중간에 각연사가 있으니 보개 또는 천개, 즉 일산이 각연사를 둘러싼 것 같기도 하고, 물이 담긴 연못에 절이 솟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려 전기에 다시 지었으며 혜종(재위 943~945) 때 수리하였다.

 

 

               ▲ 각연사 범종각과 삼성각

 

유일대사가 깨우친 그 연못 자리가 현재의 비로전 터이고, 그 연못에서 발견된 석불이 비로전에 모셔진 법신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43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1768년에 크게 중수되었고 그 때의 중수 상량문이 전해지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보처인 관세음보살과 우보처인 지장보살을 협시불로 모셨고, 유일대사의 좌상이 모셔져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다.

 

◁ 각연사의 불전과 문화재들 ▷

♧ 각연사 대웅전(大雄殿)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지정일:1982년12월17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38

 

 

               ▲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

각연사 절 중앙에 위치한 법당으로 신라 법흥왕 때 유일대사, 또는 고려 초의 통일대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네모난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정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정면 3칸은 모두 빗살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고, 측면 양쪽에는 빗살문을 달았다. 내부에는 원형이 잘 보존된 장엄한 닫집이 있고,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보처인 관세음보살과 우보처인 지장보살을 협시불로 불상이 모셔져 있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전체적인 짜임새가 있어 당시의 건축기법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이다. 

 

♧ 각연사 비로전(毘盧殿)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지정일:1982년12월17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38

 

 

               ▲ 비로전과 비로전 내부 모습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이곳에는 현재 보물 제433호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있다.

낮은 기단 위에 정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주춧돌은 신라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을 올렸으며, 기둥은 가운데만 약간 굵게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 팔작지붕이다. 지붕 위에는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75년 중수할 때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인조26년(1648), 효종6년(1655), 광무3년(1899) 그리고 1926년에 각각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전체적으로 단아하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座像)

*보물 제433호(지정일:1966년02월28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38(각연길 451)

각연사 비로전에 모셔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 3.02m, 불상 높이 1.28m이다.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는 대좌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가 모두 갖쳐진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의 상투 모양 머리(육계)는 펑퍼짐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옷주름이 간략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다리부분의 옷주름이 극단적으로 형식화되었다. 이런 표현은 얼굴모습과 함께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174호)과 직결된다.

왼쪽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손모양은 매우 어색한데 이것은 왼쪽에만 걸쳐 입은 옷과 함께 불상의 오른쪽을 더욱 허술하게 만들고 있다.

불상의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듯 가운데가 잘룩하게 들어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물방울 모양이다. 광배를 살펴보면 불상의 머리 위쪽과 불상 양쪽으로 각각 3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고, 안쪽에서부터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졌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파오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신라 전성기의 전형적인 불상처럼 긴장된 활력과 세련된 기교는 나타나지 않지만 석굴암 본존불 이후의 조각양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화려해진 모습을 보이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다.

 

♧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通一大師塔碑)

*보물 제1295호(지정일:1999년06월23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38(각연길 451)

고려 초기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탑비는 각연사에서 산길(보배산 등산로)따라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산속에 있으며, 이곳에서 동남쪽 보배산(보개산) 주봉을 향해 올라가면 산마루에 통일대사의 탑(보물 제1370호)이 세워져 있다.

고려 초 중국 유학을 다녀온 학승으로 당대에 명망이 높아 그가 왕실에서 불교의 교리를 강의하면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총일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

돌로 쌓은 축대위에 세워진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다.

거북받침돌은 아무 장식도 하지 않았으며, 거북머리는 용이 여의주를 문 용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해서체인데, 원래 개겨진 3,500자 가운데 대부분이 깍여 260자 정도만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다.

머릿돌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을 웅장하게 새겨 놓았는데, 그 용들이 머리를 들어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인 보주(연꽃봉우리 모양의 장식)를 받도록 하였다.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중의 하나로, 고려 광종9년(958)에  건립되었다.

받침대에 새긴 거북머리의 양식상 변화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은 당시 석비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각연사 경내 탐방을 마치고 통일대사탑비와 통일대사탑을 찾아 각연사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어, 스님에게 문의를 하니 산 속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위치를 확인해 보니 보배산(보개산) 등산로에 자리하고 있으며, 통일대사탑비는 각연사에서 30여분의 거리인 계곡을 따라 약 1km 떨어진 산 중턱에 있고, 통일대사탑은 통일대사탑비에서 다시 30분여 거리인 중봉의 능선상에 있어, 이곳을 다녀오려면 왕복 2시간 가까운 산행을 해야 하기에 다녀오기를 포기하였다.

통일대사탑비와 탑은 보배산(보개산) 산행을 계획하여야 볼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쉽게 탐방하기 어려운 장소에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2월 칠보산과 보배산 연계산행 때 안부사거리인 도마재에서 쌍곡계곡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는데, 그 때 반대편 각연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다면 통일대사탑비와 탑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하다.

 

♧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通一大師塔)

*보물 제1370호(지정일:2003년03월14일)

*소재지: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38(각연길 451)

고려 초기 통일대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통일대사는 고려 4대 광종(재위 949~975)이 내린 시호이다. 통일대사탑비도 있어 광종9년~11년(958~960)경에 통일대사탑비와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연사 사찰로부터 동남쪽 약 1km 지점에 통일대사탑비가 있고, 이로부터 동남쪽에 있는 보개산(보배산) 주봉을 향해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중봉의 능선상에 탑이 건립되어 있다.

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65년 발견하여, 흩어진 부재를 모으고, 찾아내어 1982년 6월에서 7월 12일에 걸쳐 괴산군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구비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석조탑으로 전체 높이는 2.3m이다.

기단부는 지대석,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체 부재는 완전하다. 지대석과 하대 하단석은 1석으로 조성되었다. 지대석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고, 하단석의 측면에는 좌,우각 4괄호형인 인상을 1구씩 배치했다.

하대 상단석과 중대석 받침 역시 1석으로 조성되었다. 상단석에는 복엽16판의 복연이 조식되었는데, 8각의 각 면과 모서리에 각각 1구씩 배치하였다. 판단에는 귀꽃이 조식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파손되어 흔적만 남기고 있다.

상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 위에 굽형괴임대를 받침으로 삼아 중대석을 놓았다. 중대석은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각 모서리에 우주만을 모각하였다.

상대석 역시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을, 측면에는 단판 복엽 16판의 앙연을 베치했다. 연화문은 8면의 중앙과 모서리에 각각 8판씩 배치하여 하대 상단석과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다. 상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을 각각 1석으로 조성했는데, 탑신석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를 모각했고, 전,후면에는 이중의 선으로 장방형 액을 마련하고 내부에 문양을 새긴 문비형을 모각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을 조출하고, 처마의 하면에는 각 모서리에 1판씩 나머지 면에는 3판씩 모두 복엽 32판의 앙연을 조식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기왓골은 두툼하데 묘사되었다.

전각에는 귀꽃을 배치했는데, 현재 4개소는 결실되었고, 나머지 4면에는 접착제로 부착했다. 정상에는 단엽 16판의 연화문이 조식된 복련대가 마련되었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어 노반만 남아 있는데, 옥개석과 1석으로 조성되었다. 측면에는 단엽 16판의 앙연이 입상형으로 조식되었고 정상에는 찰주공이 남아있다.

각연사 통일대사탑은 각 부의 조각 수법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무너져 있었던 것을 복원했음에도 각 부를 구성하는 부재 또한 완전하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 확립된 팔각원당형 석조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으며 양식적으로도 고려 전기 석조탑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통일대사탑비가 고려 광종9년(958) 8월~광종11년(960) 3월 사이에 건립되었고, 이 탑의 주인공이 통일대사임이 입증된 점으로 보아 탑비와 갗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절대 다수의 석조탑은 사찰의 한쪽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고, 탑비 역시 인근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다. 그러나 이 탑은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건립되어 있어 위치상의 색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탑이 있는 곳에서는 사찰로 들어오는 진입로 뿐만 아니라 각연사까지 조망되고 있어 다른 탑과는 확연히 다른 입지를 택하고 있다.

이깉이 탑의 위치를 탑비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건립한 예는 쌍계사 승탑, 보현사 낭원대사탑, 봉암사 정진대사탑 등 소수의 예애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변 및 사찰을 조망하기에 좋은 지점에 탑을 건립함은 9세기 이래 산천비보사상(산천에 절이나 탑을 세워 약한 지맥을 복돋음)에 의해 산 정상부에 석탑을 건립하는 것과 같은 사상적 배경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