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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백제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부여 Ⅱ편(객사와 동헌)

왕마구리 2012. 10. 6. 00:55

◀ 백제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부여 Ⅱ편) ▶

부여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객사와 관청!

 

2008년 6월12일~13일 1박2일간 삼국시대의 옛 수도였던 신라의 경주 탐방, 2010년 6월17일 백제의 공주(옹진) 공산성과 예산의 임존성 탐방에 이어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사비)를 찾아 1400여년 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1박 2일이란 짧은 시간 내에 넓은 부여군 전역에 흩어져 있는 백제시대의 유적지와 문화재 그리고 사적지들을 전부 돌아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사전에 탐방 가능한 곳을 미리 정하고 백제 역사 여행을 시작하였다.

부소산성, 가림성 등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적지,

무량사와 대조사, 정림사지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이나 옛 절터,

그리고 백제 무왕의 별궁 연못으로 추정되는 궁남지 등을 찾아 이번 옛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부여)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탐방한 유적지들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탐방한 유적지에서 아쉽게 놓쳐버린 것이나, 짧은 일정으로 찾지 못한 유적지는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 방문을 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로 하고, 탐방기를 유적지 별로 정리하여 총 5편으로 나누어 작성을 해 보기로 한다.

 

-  Ⅰ편 <천년의 세월을 이어 온 고찰! 무량사(無量寺)>

-  Ⅱ편 <부여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객사와 관청! 홍산현 객사(鴻山縣 客舍)와 관아(官衙), 부여객사(扶餘客舍) 와 동헌(東軒)>

-  Ⅲ편 <사비성의 외곽 방어성인 금강 하류의 가림성(加林城)과 거대한 미륵석불의 대조사(大鳥寺)>

-  Ⅳ편 <왕실 별궁 연못인 궁남지와 사비시대 중심 사찰이었던 정림사지!>

-  Ⅴ편 <수도 사비의 중심 산성으로 백제 멸망의 비운의 장소! 부소산성(扶蘇山城)>

 

【 일 정 표 】2012년 9월 8일(토)-9일(일) 1박2일

                             ◈ 첫째날(9/8) : 무량사(외산면)-홍산현객사&관아(홍산면)-대조사&가림성(임천면)-궁남지(부여읍)-정림사지(부여읍)

                             ◈ 둘째날(9/9) : 부소산성&고란사-부여객사&동헌

 

客舍는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로서 국왕의 전폐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올리는 한편 외국 사신이나 왕명을 받들고 중앙에서 내려 온 관리들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시대 객사 중에서 중국 사신들이 머물렀던 시설과 규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개성의 태평관(太平館)이다.

官衙나 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 홍산현 객사(鴻山縣 客舍)와 관아(官衙) 】

 

♧ 홍산현 객사(鴻山縣 客舍)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지정일:1982년08월03일)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2

 

 

                 ▲ 홍산현 객사

 

조선 헌종2년(1836) 홍산현에 세운 객사 건물이다.

중앙에 정당이 있고 양쪽에 익실이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은 문짝없이 트였고 옆면과 뒷면은 벽을 둘러 막았다. 내부는 통칸으로 트인 넓은 대청마루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동익실은 얖면을 개방하여 툇마루를 놓았고,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들였다.

 

 

                 ▲ 홍산현 객사의 정당과 붙어있는 서익실(사진 左)과 동익실(사진 右)

 

서익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동익실과 같은 구조이다. 그러나 온돌방 대신 마루방을 들였고, 대청은 앞면 뿐만 아니라 옆, 뒷면까지 모두 개방하였다.

익실은 화려한 팔작지붕집으로. 정당보다 한층 낮게 되어 있다.

'비홍관(飛鴻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객사기'가 남아 있다.

동,서익실의 규모가 달라 좌우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으며, 객사 건물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건물이다.

조선 헌종2년(1836) 달시 군수 김용근이 건립한 것으로, '객사기'에 따르면 인부 4,000명에 목수 20여명이 5개월에 걸쳐 완성했으며, 민간인의 기부금과 공금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동헌의 아문은 2층 문루 형식으로 1964년 부소산성 안의 영일루 자리로 옮겨져 '부소산성 영일루'라 불리고 있으며, 현재의 아문은 1995년 원형을 복원한 것이다.

객사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만덕교비가 있다.

 

 

                 ▲ 홍산현 객사의 대문(사진 左)과 객사 안 마당의 만덕교비(사진 右)

 

▦ 만덕교비(萬德橋碑)

*기념물 제3호

홍산현에 놓았던 만덕교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7년(1681)에 세운 비다.

비 머리와 몸체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용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만덕교는 1946년 큰 홍수로 부서졌고, 일부 석재가 남아 있었으나 최근에 돌다리로 복원되었다.

비석의 뒷면에는 다리 건설에 물자를 댄 인물과 석공, 야장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만덕교비는 홍산 지역의 교통로와 하천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객사 건물 우측 옆에는 보호수인 은행나무 1그루가 긴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이기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홍산현 객사 동익실 옆의 수령 750년된 보호수인 은행나무

 

                 ▲ 은행나무의 높이와 굵기를 비교하기 위해 취해 본 포즈(참고로 키는 181cm임)

 

은행나무 보호수

*보호수(1979년04월01일 지정)/향토유적 제83호(2006년12월29일 지정)

*수령:750년

*수고 15m, 나무둘레 7.5m

마을을 지키는 영험이 있는 나무로 큰 재난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때에는 울기도 하고 불빛이 나기도 한다고 전해지며 마을 주민들이 기원을 드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정원 초하루에 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 홍산현 동헌의 안내도

 

♧ 홍산현 관아(동헌, 鴻山縣 官衙)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지정일:1982년08월03일)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남촌리

 

                 ▲ 홍산현 관아

                 ▲ 정문인 아문을 통해 본 홍산현 관아

 

흥선대원군이 관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전국의 관청을 정비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고종8년(1871) 정기화 군수가 세웠다.

조선시대 홍산현의 관아 건물로서 정사를 보던 집무실이며, 해방 후 홍산지서로 사용하다가 1984년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제금당, 정사당, 현악당, 한산, 정사당, 청성헌 등의 당호가 있으며, 그중 정사당과 제금당의 편액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 크기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각각 크기가 다른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장대석 위에 기단을 올리고 건물 앞쪽에는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나머지 부분에는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와 함께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게 하였다.

지붕은 옆에서 바라보면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관청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동헌 앞에 있는 이정우 가옥은 관아문과 형방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 홍산현 관아의 아문(사진 左)과 이정우 가옥(형방청)의 관아문(사진 右)

 

▦ 이정우 가옥(형방청)

*충청넘도 유형문화재 제178호

 

 

조선시대 홍산현의 관아건물로 고종8년(1891)에 중수하여 비홍추청이라 하였다.

평면배치는 'ㄷ'자 형태로 몸채와 작은 날개채로 이루어져 있다. 몸채의 지붕 용마루 높이를 날개채보다 높게 조성하였으며, 내부는 우물 마루를 깔아 대청마루를 구성하고, 측면에는 부엌을 두었다.

좌,우측 날개채에는 각각 2개씩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 구조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조성하고, 초석 위에는 방형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상부는 공포가 설치되지 않은 민도리집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건립연대와 중수기록, 형태 등이 온전히 남아있는 형방청의 희소한 예로서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부여 객사(扶餘 客舍) 와 동헌(東軒) 】

 

♧ 부여 객사(扶餘 客舍)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지정일:1982년08월03일)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6-1

 

 

1704년 설립된 객사로 부소산성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부여 동헌과 함께 고종6년(1869) 다시 지었으며, 중앙의 정당과 동서 양쪽에 붙은 익실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 익실의 지붕은 가운데 정당보다 한 단 낮게 만들어진 건물 모양으로 각 실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당호는 '부풍관(扶風館)'이며, 중앙의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민도리집이다.

동서 익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한말 이후 학교, 박물관, 진열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 부여 동헌(扶餘 東軒)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지정일:1982년08월03일)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6-1

 

 

  

 

 

조선시대 부여현의 행정을 보던 관청으로 '여지도서 공해조'에 따르면 당시 부여현 관내에는 객사 22칸, 아사(衙舍) 5칸, 군기고 10칸, 향청 10칸, 작청(作廳) 14칸, 현사 4칸 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부여에는 동헌, 객사, 내동헌이 남아 있으며, 동헌과 내동헌은 고종6년(1869)에 지어졌다.

동헌의 당호는 '초연당(超然堂)' 또는 '제민헌(齊民軒)'이었으며 당시 부여현의 공사를 처리하였다.

동헌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팔작지붕에 민도리집이다.

내동헌은 안채로 현감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 홍산현 동헌 뒷편에 위치한 도강영당

 

                 ▲ 홍산현 객사 앞에 자리한 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