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푸른 산! 맑은 물! 아름다운 함양(咸陽)을 찾아서... 제Ⅲ편 함양상림(咸陽上林)

왕마구리 2012. 12. 14. 16:03

◀ 산삼고장!!! 물레방아고을!!! 함양을 찾아서

경상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함양군은 동쪽으로 산청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남쪽으로 하동군, 북쪽으로는 거창군과 인접해 있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며 2개의 국립공원(지리산, 덕유산)이 자리한 함양군은 1읍(함양읍) 10개 면, 103개 리, 256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2년 11월 현재 인구는 40,727명이다.

선비의 고장을 일컬을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듯이,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던 일두 정여창 선생을 비롯하여 뛰어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으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마을마다 100여개 세워져 있으며, 선비의 기개, 가문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이다.

유서 깊은 고색창연한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 태수 최치원이 조성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함양상림, 과거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 유생들이 육십령 고개를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 위치한 화림동계곡의 '팔담팔경'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문화탐방로,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 등 자연 속에 녹아있는 500여년이 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곳이다.

이번 함양 여행은 총 4편으로 나누어 여행지를소개해볼까 한다.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Ⅰ편 :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찾아 선비문화탐방로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Ⅱ편 : 함양 안의면내의 볼거리들(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Ⅲ편 : 천년의 숲! 함양상림(咸陽上林)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Ⅳ편 : 함양읍내의 볼거리들(학사루느티나무, 학사루, 함양향교, 교산리석조여래좌상)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Ⅴ편 : 한국 두번째 사액서원! 남계서원(灆溪書院)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Ⅵ편 : 선비정신을 만나다! 개평마을

 

【 일 정 표 】2012년 12월 10일(월)-11일(화) 1박2일

                     ◈ 첫째날(12/10) 오후 : 선비문화탐방로-안의면 명소(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둘째날(12/11) : 함양상림-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학사루-함양교산리석조여래좌상(보물)-함양향교-남계서원(사적)/청계서원-개평마을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Ⅲ편) : 함양상림(咸陽上林)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천년의 숲!

 

함양 방문 첫째날 선비문화탐방로와 안의면 소재지의 볼거리인 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를 탐방하고, 함양읍내 볼거리들을 둘째날 탐방으로 시작하기 위해 함양상림 인근에 숙소를 정하였다.

함양상림 인근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상림에는 야간에 전체 가로등을 점등(일몰후~저녁10시)하기 때문에 상림의 야경을 간단하게 감상해 보고, 아침 일찍 상림숲길을 산책하듯 탐방하기 위해서 였다.

함양상림의 사계가 모두 아름답다고 하였고, 눈이 내려 설경을 기대하였으나 기대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하였다. 차라리 겨울철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중 어느 계절에 방문하는 것이 상림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상림 입구를 출발하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자 및 유물, 그리고 기념비 등을 둘러보며 산책로를 따라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에서 탐방이 이루어졌으며, 탐방시간은 약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 함양상림/상림숲길 소개 】 

*천연기념물 제154호(지정일:1962년12월03일 지정)

*면적:182,665㎡(연장 1.6km, 폭 80~200m)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대덕리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으로 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때 천령군(현 함안)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여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아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 숲을 대관림(大館林)이라고 이름지어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로 부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었다. 그후 숯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무너짐에 따라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으며, 하림구간은 취락의 형성 등으로 훼손되어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그 흔적만 남아있고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상림이다.

함양상림의 아름다움은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상림은 숲속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누우면 도심 속 신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숲속에는 가운데로 수로가 있어 날씨가 가물때에도 충분한 수분을 공급할 수 있어 항상 녹음이 짙게 물들어 있는 곳이다.

120여종의 나무가 6만여평 1.6km의 둑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원으로도 좋은 곳이다.

노간주나무 등의 나자식물과 더불어 개서어나무, 갈참나무, 느릅나무 등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조사된 식물은 총 91속 116종류(100종 13변종 3품종)였으며, 이 가운데 목본식물은 상록수 2속 2종류(1종 1변종), 낙엽수 52속 68종류(58종 7변종 3품종)가 나타났으며, 초본류는 총 37속 46종류(41종 5변종)가 기록되었다.

함양 상림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이은리 석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와 함화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및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문화재자료 제75호), 척화비(문화재자료 제264호) 그리고 사운정, 초선정 등 정자와 만세기념비, 독립투사들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어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또한 숲속에는 3,000여평의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야외공연장인 다볕당도 마련되어 있어 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체험과 휴식 공간이 되고 있으며, 함양의 관광자원으로도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숲이다.

흔히 부부간의 금실이나 남녀간의 깊은 애정을 상징하는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연리목,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하는데 이곳 상림에는 특이하게도 종류가 서로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몸통 전체를 결합해 자라는 연리목이 있다.

함양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숲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꼐 우리 선조들이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한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위천을 따라 조성된 상림

 

                  ▲ 상림 산책로의 야경

 

♧ 최치원 산책로

상림숲길과 필봉산 오솔길을 이어 조성된 약 5km의 산책로이다.

 

 

상림주차장에서 약 15분 거리의 산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언덕과 같은 필봉산(233m) 정상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엔 지리산 천왕봉과 남덕유산까지 조망이 된다.

세종대왕의 12남인 왕자 한남군의 묘를 지나 산불감시초소와 대병저수지를 지나 상림물레방아, 상림숲에 이르는데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오르내림의 오솔길로 이루어진 산책로는 지루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하고, 특히 가을철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상림숲의 정취는 색색의 단풍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낙엽 밟는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해 준다.

 

♧ 최치원

신라 헌강왕원년(857)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설화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가 문창이라는 곳의 영으로 부임하면서 치원을 잉태한지 넉달만에 금돼지로부터 변을 장하였다고 한다. 그 후 6개월만에 치원을 낳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차마 이 아기를 기를 수가 없어 보자기에 싸서 무인도에 갖다 버렸다.

그런데 밤이 되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서 젖을 먹여 키웠고 낮이 되면 오색 무지개가 찬연한 하늘에서 큰 학 한 마리가 날아와서 치원을 품고 있었으므로 짐승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어 아무 탈없이 자라나게 되었다.

치원이 무인도에서 책을 읽을 때 소리가 어찌나 낭랑한지 중국의 황제 귀에까지 들려서 황제는 신라국에 학사를 보내어 시로써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동이라는 칭호를 받은 최치원은 12세 되는 해 당나라에 유학을 하여 명성을 떨쳤고 6년만인 18세 되던 해에는 중국에서 당당하게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다.

중국에서 관리로 일을 하다가 황소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관군 총지휘관 고변의 비서관이 되어 종사관의 자격으로 황소격문을 써서 유명하다. 스스로 황제라 칭했던 황소가 그 격문을 읽다가 충격적이고도 감동적이라서 놀란 나머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의자에 앉은 채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가 28세 되던 해(885) 당나라 헌종황제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하고 말았다. 그는 기울어져가는 신라를 어찌할 수 없음을 느끼고 시골로 내려가 조용히 조그마한 고을에서 여생을 마치기로 작정하고 지원하여 전북 태인과 정읍, 충남의 서산을 거쳐 천령군(현 함안)태수로 부임하였다.

그의 치적 중에서 상림은 함양을 대표하여 내세울 수 있는 곳이다. 풍치가 아름답고 지방민의 휴식처로 알맞은 곳이며 많은 수종이 있다. 치원 자신이 손수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활엽수를 캐어다가 풍수해를 막기 위한 방제화 방풍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림공원의 신도비를 읽어보면 신라 말 함양의 태수로서 그 공이 얼마나 컷는가를 알 수 있다.

상림숲에는 뱀이나 개미같은 해충이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림은 숲속의 어디를 가든 마음놓고 앉아서 쉴 수가 있다. 이처럼 상림에 해충이 없는 까닭은 최치원 선생의 지극한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한다.

이 숲을 형성한 것은 진성여왕 때이고 그 목적은 수해가 자주 나고 지방민의 괴로움이 심해 치수의 일환으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으로 되어 있다.

농경사회에서 농경지의 안전과 농민을 위하고 백성들이 편안한 생활을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지만 숲이 우거져 휴양지, 휴식처로도 적합하여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최치원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찌나 효성이 지극한지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드리고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 나갔으며, 돌아와서는 반드시 알려 근심하시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은 혼자서 상림숲으로 산책을 나가서 풀숲에 앉아 놀다가 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숲에서 뱀을 보고 놀란 이야기를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원은 어머니에게 송구함을 금치 못하여 상림 숲으로 달려가 숲을 향해 이후로는 상림 숲에는 뱀이나 개미닽은 모든 해충은 일체 없어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숲에 들지 말라고 주문을 외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최치원의 지극한 효성으로 인한 주문때문에 모든 해충들이 사라지고 모여들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최치원이 상림숲의 조성을 마치고 숲속 어디엔가 나무가지에 조림하던 금호미를 걸어두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숲을 만들고 떠나면서 상림숲에 뱀이나 개미가 나타나고 숲속에 설죽이 침범하면 내가 죽을 줄 알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 뱀은 나타나지 않지만 가끔 개미가 보이고 숲속에 설죽이 많이 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는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 외에도 함양의 학사루를 최치원이 지었다는 설이 있고,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최치원이 자주 등루하여 시부를 읊었다하여 학사루라 명명했다고도 전한다.

 

 

 

                  ▲ 상림공원내의 소하천인 수로

                  ▲ 상림공원의 연못

 

♧ 척화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지정일:1997년12월31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 잔디장 입구

 

 

고종3년(1866) 병인양요와 고종8년(1871) 신미양요를 겪고 쇄국의 의지를 고취하고자 전국 곳곳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로 서양과의 화친을 배척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에 세워 쇄국정신을 알리는 비석으로 상림 입구에 세웠다.

비신 높이 110cm, 폭 55cm, 이수 높이 40cm, 두께 19cm의 크기인데 한일합방으로 전국의 척화비가 일데에 의해 대부분 훼철되었으나, 이것은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바로 세워 단장하였다.

 

                  ▲ 상림 산책로

 

♧ 이은리 석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지정일:1972년02월12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숲내

 

 

 

                                                                                                          손이 떨어져 나간 이은리석불 ▶

 

높이 180cm의 석불로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서 1950년경에 출토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는데, 아마 홍수 때 사찰이 유실되면서 물에 쓸려 내려온 것이 아니였을까 추측이 된다. 불상 주위 약 300m 지점에 망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된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이 불상은 현재 두 손이 떨어지고 없으며, 훼손된 가슴 아래 부분은 시멘트로 복원하였다. 머리부분은 단정하며 두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다. 머리는 소발이며, 원만한 얼굴은 다소 토속적인 표정도 엿보인다.

얼굴에 비해 빈약한 두 어깨에는 얇은 부처의 옷이 U자형을 이루며, 두텁게 묘사되어 있는데 U자형의 평행 옷주름은 충주 철불들과 비슷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광배는 연화문으로 두광을 표현하였다.

타원형의 광배는 이중의 원형선을 둘러 두광을 만들었고, 머리 주위에는 연꽃 잎을 새긴하였으며, 신광 안에는 꽃무늬를 새겼다.

 

                  ▲ 상림약수터

 

♧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지정일:1983년08월06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 약수터 앞

 

 

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때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지금의 함양) 태수로 부임하여 읍민을 다스릴 때 읍성을 지나 흐르던 뇌계(위천수)가 홍수로 인한 농토와 가옥이 유실되고 군민의 생활이 궁핍함을 살펴보고, 치수를 위하여 상림에서 하림까지 둑을 쌓고 물을 돌려 조림을 함으로써 민심을 바르게 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23년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비이다.

 

♧ 사운정

 

 

고종46년(1906) 도 유림과 정상품 박정규, 김득창이 문창후 고운 최치원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여 모현정이라 불렀으나 고운 선생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사운정이라 고쳐 불렀다.

함양의 시우회회원들이 이곳에서 시조창을 즐겨 부르고 있으며, 향토 문화 축제인 천령제의 각종 문예행사가 열려 군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 상림 산책로 

 

                  ▲ 상림 산책로의 마당바위와 소하천의 다리

 

♧ 금호미다리

옛날부터 금호미다리라고 불리워오고 있습니다. 상림숲과 관련된 전설중 금호미와 관련된 얘기가 전해내려오는데 고운 최치원 선생이 상림숲 조림을 마치고 숲속 어딘가 나무가지에 조림하던 금호미를 걸어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어 40여회의 연륜을 가지고 있는 천령문화재 행사에는 금호미 찾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고 여기 금호미다리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근처 어딘가에 금호미를 걸어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상림 산책로

 

♧ 물레방아

 

 

물레방아는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을 다녀온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이 중국의 문물을 듣고, 보고 쓴 열하일기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상림숲의 정비가 시작되 전까지 상림의 끝에 상가가 있었으나 정비사업으로 상가가 철거되고 1998년 함양을 상징하는 물레방앗간을 건립하였다.

1792년 연암 박지원 선생께서 안의현감으로 제직하신 기간중 용추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국내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면서 실용화 되었으며, 평화롭고 넉넉한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물레방아에는 이용후생, 실사구시라는 현실 개혁의 실학사상이 깃들어 있는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농경문화 변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물레방아와 관련된 옛 우리가락 "함양산천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 우리집의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는 지금도 많이 불려지고 있다.

물레방아는 흐르는 물을 이용하는 방아에는 물레방아와 통방아 두 종류가 있다.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는 것과 흘러가는 힘을 이용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

물레방아는 수로에서 방아의 물받이로 물이 떨어져 물받이가 무거워지면 내려앉아 물이 쏟아지고 빈 물받이가 다시 올라와 물을 받는 운동이 반복되는 동안 방아의 다른 끝쪽에 수직으로 달려있는 공이가 아래,위로 움직여 확안의 곡식을 찧는 것이다. 방아는 대체로 소나무로 만드나 공이와 같은 것은 단단한 박달나무를 쓰며 공이 끝에 쇠를 박기도 한다.

 

♧ 연리목(連理木)

 

                  ▲ 연리목(좌측의 개서어나무, 우측은 느티나무)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이라 하고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고 한다.

문헌상으로 삼국사기의 신라 내물왕7년 시조묘의 나무와 고구려 왕원왕2년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지가 된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에는 광종24년, 성종6년에 연리지의 출현을 기록했을 정도로 상스러운 나무라 전한다.

이곳 상림의 연리목은 수종이 서로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 전체가 결합되어 있으서 더욱 상스러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남녀간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소원성취한다고 전해지는 희귀목이다. 

 

♧ 함화루(咸化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1986년08월06일 지정)

*소재지: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숲내

 

 

 

 

원래는 함양읍성의 남문으로 망악루(望嶽樓)라는 현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명칭은 남문에서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까닭에 이름하였다고 한다.

1932년 고적보존회의 대표였던 함양읍 죽곡리 거주 송계 노덕영이 사재를 들여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함화루로 개칭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팔작지붕이다. 공포는 이익공식에 구조는 목조 오량가이다. 2층의 내부는 단청을 하였으며, 퇴량에는 용신을 단청으로 그렸다. 2층의 출입은 목조 계단을 통하도록 되어 있으며, 2층에는 난간을 둘렀다.

하층에는 벽이 없고 기둥만이 서 있는데 기둥은 굽은 부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문루로 이용될 때에는 하층에 벽과 문짝이 시설되어 있었는데 현재에는 벽과 문짝은 사라지고 기둥에는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1층 부분은 가둥만이 있어 현재는 정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 다볕당

 

 

이곳 잔디밭은 함양공설운동장이 건립되기 이전까지는 이곳에서 천령문화재를 비롯한 모든 체육 및 문화행사를 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공연 등 문화행사가 간혹 열리는 야외무대로서, 그리고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야외무대인 다볕당은 순수 우리 말로서 다咸자와 볕陽, 집堂자를 써서 다볕당이라 이름하여 1995년도에 건립하였다. 규모로는 연건평이 18평이고, 무대면적은 15평으로서 공연을 하기에 적합한 시설로 평가되고 있다.

전면에 시원하게 펼쳐진 3,000평의 잔디밭은 10,000명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며, 다볕당 뒷편에는 10여채의 민가가 있었으나 상림정비사업으로 민가는 모두 철거되어 상림의 영원한 보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