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푸른 산! 맑은 물! 아름다운 함양(咸陽)을 찾아서... 제Ⅳ편 함양읍내의 볼거리들

왕마구리 2012. 12. 14. 23:55

◀ 산삼고장!!! 물레방아고을!!! 함양을 찾아서

경상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함양군은 동쪽으로 산청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남쪽으로 하동군, 북쪽으로는 거창군과 인접해 있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며 2개의 국립공원(지리산, 덕유산)이 자리한 함양군은 1읍(함양읍) 10개 면, 103개 리, 256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2년 11월 현재 인구는 40,727명이다.

선비의 고장을 일컬을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듯이,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던 일두 정여창 선생을 비롯하여 뛰어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으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마을마다 100여개 세워져 있으며, 선비의 기개, 가문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이다.

유서 깊은 고색창연한 고택이 즐비한 개평마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 태수 최치원이 조성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함양상림, 과거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 유생들이 육십령 고개를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 위치한 화림동계곡의 '팔담팔경'을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문화탐방로,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 등 자연 속에 녹아있는 500여년이 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곳이다.

이번 함양 여행은 총 4편으로 나누어 여행지를소개해볼까 한다.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Ⅰ편 :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찾아 선비문화탐방로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Ⅱ편 : 함양 안의면내의 볼거리들(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Ⅲ편 : 천년의 숲! 함양상림(咸陽上林)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Ⅳ편 : 함양읍내의 볼거리들(학사루느티나무, 학사루, 함양향교, 교산리석조여래좌상)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Ⅴ편 : 한국 두번째 사액서원! 남계서원(灆溪書院)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 Ⅵ편 : 선비정신을 만나다! 개평마을

 

【 일 정 표 】2012년 12월 10일(월)-11일(화) 1박2일

                     ◈ 첫째날(12/10) 오후 : 선비문화탐방로-안의면 명소(안의향교, 허삼둘가옥, 광풍루)

                     ◈ 둘째날(12/11) : 함양상림-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학사루-함양교산리석조여래좌상(보물)-함양향교-남계서원(사적)/청계서원-개평마을

 

◀ 푸른 산! 맑은 물! 함양을 찾아서(Ⅳ편) : 함양읍내의 볼거리들

 

함양 읍내에 있는 볼거리는 함양군청 앞에 위치한 학사루와 군청 옆 함양초등학교 교내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학사루 느티나무,

함양중학교 교내에 옮겨다 놓은 보물 제 376호인 교산리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함양향교가 있다.

전날 안의면에 소재한 안의향교를 방문하였다가 문이 잠겨있어 향교 내부를 탐방하지 못하고 밖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었는데, 오늘 함양읍내 북쪽 산록에 소재한 볼거리 중 마지막 방문지인 함양향교 또한 문이 잠겨있지나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잠겨진 대문의 틈새가 넓어 틈새로 들어갈 수가 있어 탐방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함양향교의 대성전이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라 원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고, 뼈대만 남아 있는 건물만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함양 탐방에 나선 이후 제대로 관람을 하지 못한 문이 잠겨 있던 안의향교, 화재로 불탄채 방치된 허삼둘가옥에 이어 3번째이다.

 

♧♧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咸陽 學士樓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407호(1999년04월06일 지정)

*면적:4,488㎡

*소재지:경상남도 함양읍 고운로 43(운림리) 함양초등학교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 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학사루 느티나무는 조선조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함양 현감으로 재임(1471~1475)할 시에 객사가 있었던 학사루 앞에 심었다고 전하는 나무로서 수령은 약 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22.2m, 둘레 7.25m의 크기이다.

 

 

 

김종직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었는데 그 아들의 아호가 목아(木兒)였다. 아들의 짧은 생을 달래려는 마음을 담아 심은 느티나무는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거목이 된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함양군민과 이곳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고 함양과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나무로서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학사루의 현판과 함양읍성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힘있게 솟아오른 느티나무의 수관부와 우산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가지가 지난날의 역사를 말해주고 이다.

함양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함양군청내에는 학사루 느티나무외에 보호수가 한 그루 더 있는데 수종은 동일한 느티나무이며, 수령 약 450년, 수고가 22m이며 나무둘레는 4m이다.

 

                  ▲ 함양군청 앞의 수령 450년된 또 다른 보호수인 느티나무

 

♧♧ 함양 학사루(咸陽 學士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소재지:경상남도 함양읍 운림리 함양군청앞

 

 

 

 

신라시대 문창후 최치원 선생이 이 지방의 태수로 제직시 자주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옲었던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학사루라 불렀다고 전하며, 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가 없다.

학사루 서쪽에 객사가 있었고, 지방관리가 정무를 보면서 피로한 심신을 달래기 위하여 학사루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쓰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학사루는 객사의 부속 건물로 함양읍내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학사루를 제외하고 객사를 비롯한 다른 중요 건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성리학자로서 영남학파의 종조였던 점필재 김종직이 이곳의 군수로 부임하여 학사루에 걸린 당시 관찰사로 있던 유자광의 시판을 철거토록 하여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 고조되어 연산군4년(1498)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 곳이다.

왜구의 침입으로 사근산성이 함락될 때 학사루가 소실되었으며 숙종18년(1692)에 군수 정무가 중수한 기록이 있다. 1910년 이곳에 함양초등학교가 세워질 떄도 학사루는 그대로 보전되었으며, 함양초등학교의 교실, 군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던 것을 1979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다. 그렇게 화려한 건물은 아니지만 누의 아래와 위 지붕의 비례가 대단히 조화롭고 안정되어 조선시대 관청에서 지은 누각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咸陽 校山里 石造如來座像)

*보물 제376호

*소재지:경상남도 함양읍 교산리 함양중학교내

 

 

 

 

현재 함양중학교 교내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불상의 높이가 2.45m에 대좌의 높이까지 포함하면 4m가 넘는 거대한 조각으로서 풍화작용으로 파손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불상 뒤의 광배가 없어지고 불상 전체가 마멸이 심한데 얼굴과 오른손, 무릎 및 대좌의 일부가 깨어져 있다.

얼굴이 많이 닳았고 머리부분은 깨어져 있으나 크고 강건하게 보인다. 머리부분이 마멸되어 꼭지부분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지만 음각된 눈썹과 두툼한 입술, 그리고 풍만한 턱은 불상의 원형을 짐작하게 한다. 코와 입의 모습은 함양 덕진리의 마애여래입상과 닮았는데 미소까지 비슷하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졌고 둥근 어깨에 우견편단의 대의를 입은 형상으로 표현하였는데 옷 주름이 평행 밀집선으로 음각된 것은 고려 초기 조각에 자부 보이는 기법으로서 조각 기술의 퇴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오른팔은 굵고 우람하며, 손은 깨어져 없어졌지만 강마촉지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왼손은 무릎위에 선정인을 하였던 것 같다.

우견통위의 법의를 입고 강마촉지인 수인의 불상형식은 황주 철조여래좌상이나 보통사지 출토 철조여래좌상과 같이 고려초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철불 등과 동일 유형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춘 사각대좌로 상대의 앞뒷면이 깨졌고 양축면에 복판연화문이 3개씩 조각되어 있다. 중대에는 각면마다 커다란 면상이 2개씩 배치되었고, 하대의 복연좌는 비교적 선명히 남아 있는 편이다.

대좌의 형태는 고달사지 석불대좌(보물 제8호)와 유사하며, 특히 연잎의 조각이 서로 닮아 주목된다.

고려시대 석조불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걸작으로 원래는 청룡사 터 또는 용산사 터에 있었다고 전한다.

 

♧♧ 함양향교(咸陽鄕校)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

*소재지:경상남도 함양읍 교산리 원교마을

 

 

창건년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함양에는 고려시대에 소소당(昭昭堂)이 있어 여기서 경학을 공부시키기 시작하였으며, 이곳 소소당이 바로 지금의 함양향교가 된 것으로 본다.

덕곡 조승숙 선생의 명륜당 문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문묘 창설 당시인 태조7년(1398)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30년(1597) 정유재란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후에 대성전을 중수하고 동재, 서재와 문루를 건립하였다. 건물 구성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태극루, 전사제기고 등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배치형식은 급경사의 경사지에 여러 층단을 만들어 일축선 전학후묘 직렬형 배치를 하였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축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축이 꺾여져 있다. 문묘부에는 중국 5성과 우리나라 18현을 모시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세기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함양읍 북쪽 산록에 위치한 원교 마을내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여 많은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 명륜당 앞에서 바라본 태극루와 동,서재

 

태극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지만 기둥 사이가 넓어 대단히 크게 보인다.

 

                  ▲ 함양향교 명륜당

 

유교의 교육이념을 담은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전형적인 명륜당 형태를 보이고 있다.

 

                  ▲ 함양향교의 보수공사중인 대성전  

  

 

 

                  ▲ 보수공사로 뼈대만 남아있는 대성전 내부

 

대성전은 짧고 굵은 기둥을 설치함으로써 권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특히 이곳은 동,서무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사례에 속한다.

 

 

                  ▲ 함양향교 대성전 앞에서 바라본 내삼문과 동,서무(사진 上)

                     명륜당 뒷편에서 바라본 대성문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사진 下)

 

지금은 봄, 가을에 두 차례에 걸쳐 성현들에 대한 제례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