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강원&충청권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 하늘재와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절터! 미륵대원지

왕마구리 2013. 7. 5. 01:21

◀ 하늘재!!! 역사,자연관찰로 탐방 및 미륵대원지 ▶ 

자연과 역사와의 만남 속에서 선조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

오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하늘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의 절터! 미륵대원지

 

 

                  ▲ 하늘재로 이어지는 계립령로 탐방로

 

【 충주 계립령로(忠州 鷄立嶺路) 하늘재 】

*명승 제49호(2008년12월26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산 8번지 등

*면적:397,478㎡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낮은 고갯길로, 하늘재는 백두대간 상의 탄항산(월항삼봉 856.7m)과 포암산(961.7m)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해발 525m이며, 신라 아달라왕3년(156) 북진을 위해 개척한 계립령 중 미륵리 절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고개'라는 뜻의 하늘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헌비고', '문헌비고', '만기유람', '동국여지승람' 등 다수의 문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로 기록하고 있다.

계립령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3년(156)에 길이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오랜 역사의 옛길로, '하늘재'는 계립령 중 미륵리 절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옛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작은 계곡과 주변에 펼쳐지는 월악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옛길의 정취를 더해주는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 월악산 탐방 안내도

 

【  걷기일자 】 2013년 6월 15일(토)

【  걷기코스 】미륵대원지→하늘재 탐방로 입구→첫번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자갈림길→두번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자갈림길→연리목→연아를 닮은 나무/데크쉼터→하늘재→하늘재 표지석/소공원-(역 방향으로 진행)→미륵대원지

 

                  ▲ 하늘재 역사,자연관찰로 안내도

 

【 코스거리 】 약 4km(미륵대원지와 하늘재 왕복 거리)

【 소요시간 】 총 2시간 12분 소요(휴식시간 : 1시간 9분 포함)

【 날     씨 】 맑 음

【 코스탐방 】

백두대간 상의 북쪽 포암산(961.7m)과 남쪽 탄항산(월항삼봉 856.7m) 사이에 위치한 하늘재는 한티, 천티, 계립령, 지릅재, 마골령으로도 불리는 고개로 죽령보다 2년, 이웃한 문경새재보다는 약 400년이나 빠른 신라 8대 아달타왕3년(156)에 길을 낸 고개로 경상북도 문경에서 충청북도 충주로 넘나다니던 큰 고개였다.

하늘재는 2004년12월26일과 2005년01월09일 백두대간 종주산행 때 두 차례 산행들머리(하늘재→부봉→마폐봉→조령3관문/문경새재, 하늘재→포암산→부리기재)로 이용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에는 하늘재까지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문경쪽에서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하였었다.

그러나 충주 방향에서는 월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약 2km의 비포장 탐방로(미륵대원지~하늘재)로 이루어져 있어 일부러 발품을 팔아야하는 이 코스를 백두대간 산행시 접근로로 이용하지 않아 이번 탐방로는 처음 실시를 하는 코스이다.

탐방은 미륵대원지(미륵사지)를 출발하여 하늘재까지 왕복하는 코스에서 이루어졌다.

 

 

                  ▲ 하늘재 탐방로가 시작되는 미륵대원지의 이정표(사진 上)

                     미륵대원지에서하늘재로 가는 길(사진 下)

 

14:30~14:42=>미륵대원지(미륵사지)

     미륵사지 입구에는 이정표(↑하늘재 2km, 역사,자연관찰로 0.2km/↓미륵리주차장 0.5km)와 하늘재 역사,자연관찰로 안내도가 있다. 하늘재까지 왕복하는 4km의 코스이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우측에는 미륵대원지가 자리를 하고 있다. 미륵대원지는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오늘도 하늘재길 탐방에 앞서 다시 둘러 보고 가기로 한다.

절터에 세워졌던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남아 있는 석조 문화재들만이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황량한 절터를 묵묵히 천년 넘는 세월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 충주 미륵대원지(忠州 彌勒大院址) 】

*사적 제317호(1987년07월18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면적:80,454㎡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이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으며,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조사 결과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연대를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석불입상(보물 제96호), 5층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마의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며,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보물 제95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지에는 고려시대의 석불과 석굴이 만들어졌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앞쪽에 석등과 더불어 이 오층석탑이 남아 있다.

기단 하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네모난 돌로 특별하게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그 위로 기단의 맨 윗돌이 올려져 있다.

탑신은 1층 지붕돌이 2장일 뿐 몸돌이나 다른 지붕돌은 모두 1장의 돌로 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몸돌의 넓이에 비하여 좁은 기둥을 모서리에 새겼다. 지붕돌은 급격하게 좁아져 석탑 전체의 균형과 미관을 손상시키고 있다. 지붕 밑면의 받침은 5단이지만 추녀가 짧아서 6단인 것처럼 보인다. 처마는 수평이고 지붕돌의 경사는 매우 급한데 귀퉁이의 치켜 올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6층 지붕돌로 보일 만큼 큼직하고, 복발은 장식이 없는 반원 모양이다. 정상에는 머리장식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긴 쇠꼬챙이 모양의 찰간이 남아있다.

5단의 지붕돌 밑면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인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새김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미륵불과 함께 마의태자와 관계가 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9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고려 초기 이 지역에서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조여래입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동생인 덕주공주는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서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 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 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忠州 彌勒大院址 石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1976년12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월악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의 중간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중,하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윗받침돌은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돌렸다.

가운데 기둥은 적당한 높이에 간결한 모습이다.

윗받침돌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졌다. 꼭대기에는 8각의 낮은 받침 위에 보주(꽃봉우리 모양의 장식)를 얹어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忠州 彌勒大院址 四角石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15호(2010년04월30일 지정)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고려 초기에 세워진 석등으로 추정되며 사적 제317호로 지정된 충주 미륵대원지 내에 위치한다.

미륵리 사각석등은 크게 기단부, 화사석, 옥개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일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원래는 평면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가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은 투박한 복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연화문은 대형으로 새겨져 있지만 치석 수법이 정연하지 못하고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대석 상면에는 사각형의 홈을 마련하여 간주석을 끼워 고정하도록 했다.

간주석은 평면 사각의 석주형으로 표면에는 보주형 안상이 새겨지고, 그 안에 좌우대칭을 이루는 화형 문양이 새겨져 장식성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양련문을 표현하였는데, 하대석에 비하여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연화문은 복판으로 각 면이 가운데 배치된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나가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하대석과 대조를 이룬다.

화사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모서리마다 원주형 기둥을 세워 옥개석을 받치도록 했다. 옥개석은 하부를 수평으로 치석하고 관통된 원공을 시공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고 잇으며, 합각부는 약간 돌출시켜 치석함으로써 마루부처럼 보이도록 했다.

상륜부는 현재 사삭형 받침대가 올려져 있고 나머지 부재들은 결실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간부석과 화사석은 독특한 치석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미륵대원지 사각석등은 전형적인 석등 양식에서 다소 벗어난 이채로운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화사석은 고려시대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이다. 이러한 화사석은 고려시대 개경 일대에 건립된 사찰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시대 수도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는 미륵사지에 이런 양식의 석등이 세워졌다는 것은 석등 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측면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와 같은 화사석 결구 수법의 석등으로는 관촉사, 현화사, 개국사 석등이 있다. 대부분 고려 초기와 중기에 걸쳐 건립된 석등으로 특정 사찰에서만 적용된 석등 양식이다.

 

♧ 충주 미륵대원지 귀부(忠州 彌勒大院址 龜趺)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소재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동쪽)에 위치하여 북향하고 있는 길이 605m, 높이 180cm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불 모양 비석 받침돌이다.

귀부의 배면은 거북등의 껍데기 모양을 생략하였으며,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고, 양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귀부의 등에는 비좌가 있으나 비신을 꽂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실제 비가 존재했는지는 의문이며, 수 차례 발굴 조사 결과 비신을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석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거북등에 표현된 2마리의 새끼 거북은 은근한 미소를 자아낸다.

 

넓은 포장길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에는 미륵대원지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 하늘재 탐방로 입구

 

이정표(←하늘재 1.8km/↑대광사/↓미륵리주차장 0.7km)와 '장승과 솟대' 안내문,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안내판과 '하늘재' 표지석이 있는 ┫자 갈림길인 하늘재 탐방로 입구에서 좌측 비포장의 넓은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 하늘재로 이어지는 계립령로 탐방로

 

첫번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인 ┫자 갈림길에 이르면 이정표(←역사,자연관찰로/↑하늘재 1.6km/↓미륵리주차장 0.9km)가 있다. 좌측의 관찰로는 하늘재까지 진행하였다가 되돌아 내려올 때 이 길을 날머리로 이용하기로 한다.

직진의 넓은 산길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면 두번째 ┫자 갈림길인 역사,자연관찰로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 두번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사진 上)

                     두번째 역사,자연탐방로 입구의 이정표(사진 下)

 

14:56~14:58=>두번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자 갈림길

     이정표(←역사,자연관찰로/↑하늘재 1km/↓미륵리주차장 1.5km)가 있는 갈림길로 직진의 넓은 길을 따라 하늘재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와 이곳 갈림길에서 좌측의 관찰로를 따라 미륵대원지로 내려가기로 한다.

 

 

 

 

완만하고 편안한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면 연리목(15:06)을 지나 데크쉼터가 마련된 '연아를 닮은 나무'를 대하게 된다.

 

                  ▲ '연아를 닮은 나무'가 있는 데크쉼터 

 

 

15:12~15:14=>연아를 닮은 나무/데크쉼터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나무가 있는 데크 쉼터이다.

 

 

                  ▲ 하늘재로 오르는 탐방로

 

15:19~15:40=>하늘재

     하늘재공원 지킴터와  이정표(←포암산 1.6km/↓미륵리주차장 2.5km/→부봉삼거리 4.6km)가 있는 하늘재는 백두대간 상에 자리를 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의 경계선이다.

 

 

 

                  ▲ 하늘재공원 지킴터가 있는 하늘재(사진 上)

                     포암산으로 오르는 하늘재 등산로 입구의 이정표와 등산로 입구(사진 下)

 

고개 넘어 문경쪽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하늘재까지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하늘재산장이 있다.

 

 

                  ▲ 하늘재의 하늘재산장(사진 上)

                     하늘재산장 입구에 매달아 둔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표식기들(사진 下)

 

우측의 대간길 따라 부봉삼거리 방향으로 잠시 오르면 넓은 전망대 쉼터가 있는데, 2009년4월1일 산림청에서 설치한 대형 하늘재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이다.

 

                  ▲ 하늘재의 거대한 표지석이 설치된 전망대 쉼터

 

20여간 하늘재에서 머물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 하산길에 바라존 하늘재 탐방로

 

'연아를 닮은 나무' 데크쉼터(15:44~16:28)에서 더위를 피해 40여분 넘게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역사,자연관찰로 갈림길(16:39)에서 하늘재로 오를 때 이용하였던 고갯길의 넓은 탐방로를 버리고 우측의 관찰로를 따라 내려간다.

 

 

                  ▲ 역사,자연관찰로(사진 上)

                     역사,자연관찰로 끝의 나무다리(사진 下)

 

오솔길 같은 관찰로를 따라 내려가면 데크길을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이정표(←하늘재 1.6km/↓역사,자연관찰로/→미륵리주차장 0.9km)가 있는 하늘재로 오를 때 지났던 또 다른 역사자연관찰로 입구(16:47)인 하늘재 고갯길 넓은 탐방로에 이르게 된다.

탐방로를 따라 하늘재 탐방의 출발지였던 미륵대원지에 도착을 하며 하늘재 탐방을 마무리한다.

16:54=>미륵대원지(미륵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