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 제Ⅲ편 : 봉정사(鳳停寺)

왕마구리 2013. 8. 1. 17:43

◀ 역사가 휘감아 돌아 흐르는 곳! 안동을 찾아서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둘러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아래에 서술한 문화재만을 둘러보고 다음에 기회를 보아 다시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명승 제 28호 '백운정 및 개호송숲 일원' 그리고 명승 제82호인 '만휴정 원림' 등을 주로 하여 인근 문화재들을 탐방해 볼 생각이다.

이번 탐방에서는 총 7편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문화재 위주로 기재를 하기로 한다.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Ⅰ편 :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산실! 도산사원(陶山書院)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Ⅱ편 : 퇴계 이황의 뿌리를 찾아서... 퇴계태실(退溪胎室)과 퇴계종택(退溪宗宅)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Ⅲ편 : 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봉정사(鳳停寺)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Ⅳ편 : 불교문화의 산물! 안동의 탑과 불교 문화재들(법흥사지 칠층전텁, 운흥동 오층전탑, 조탑리 오층전탑 外)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Ⅴ편 : 우리나라 현존의 가장 큰 규모의 살림집! 임청각(臨淸閣)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Ⅵ편 : 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 (월영교, 월영대, 석빙고, 선성현객사)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Ⅶ편 : 안동의 고택들!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 의성김씨종택, 천전리 추파고택, 구봉종택)

 

【 일 정 표 】2013년 7월 9일(화)-10일(수) 1박2일

                     ◈ 첫째날(7/9) 오후 : 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태실-봉정사

                     ◈ 둘째날(7/10) : 안기동 석조여래좌상-평화동 삼층석탑-운흥동 오층전탑/운흥동 당간지주-법흥사지 칠층전탑/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임청각-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월영교,석빙고,선성현객사)-의성김씨종택/구봉종택-조탑동 오층전탑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Ⅲ편) : 봉정사(鳳停寺)

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 봉정사 (鳳停寺)소개 】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인 천등산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그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대체로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있는 이곳은 능인대덕이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신라 문무왕12년(672)에 능인대덕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한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안자가 9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 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사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이다.

고려 공민왕12년(1363)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1972년에 실시한 극락전의 완전 해체 복원시에 상량문에서 발견되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극락전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에서 사찰 창건 연대를 확인해주는 상량문과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 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되어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바뀔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선덕십년을묘팔월초일일서(宣德十年을乙卯八月初一日書)' 중국연호인 선덕10년(조선 세종17년<1435>)에 쓴 글이라고 적힌 상량문은 경상도 관찰출척사가 직접 썼고 자사 신라대오백지여년지을묘년분법당중창(新羅代五百之余年分法堂重倉: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이라는 사찰 건축연대를 밝혀주는 내용과 당시 봉정사의 사찰 규모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대웅전 창건 연대가 1435년 중창 당시보다 50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는 '신축지정이십일년 봉정사 탁자조성 상단유각징 화주계주 박재거(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지정21년<공민왕10년, 1361년>에 탁자를 제작, 시주하다. 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처음 확인, 대웅전 불단이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는 2층 누각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롣되어 있어 조선 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결(1만여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명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매표소에서 봉정사 가는 길

                  ▲ 봉정사 입구

 

봉정사 내 소장된 국가지정문화재 중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직접 사진촬영이 어려운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영산회상벽화(보물 제1614호) 및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등은 문화재청의 자료를 인용, 함께 기술하여 소개를 한다.

 

♧♧ 안동 봉정사 극락전(安東 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고려 후기의 사찰건물로 봉정사의 불전이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 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 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 극락전 정면 공포 

                  ▲ 극락전 측면 상부 

 

                  ▲ 극락전 귀공포와 외부 가구(사진 左)와 내부가구 및 닫집(사진 右)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았고 양옆 칸에는 창문을 낸 감실형 법당으로 이와같은 형태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다. 건물 안에는 아미타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화려한 닫집(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을 만들었으며 불단의 옆면에는 덩굴무늬를 새겨놓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 양식을 본받고 있으며, 기둥의 배흘림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등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부재 하나하나의 기법이 매우 뛰어나 고려시대 목조건물의 정수를 보여준다.

 

♧♧ 안동 봉정사 대웅전(安東 鳳停寺 大雄殿)

*국보 제311호(2009년06월3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조선 중기에 중수한 사찰건물로 봉정사 극락전 앞에 동향으로 자리한다. 확실한 건축 연대를 알 수 없고 다만 1969년 해체 복원 공사 당시에 발견된 기록으로 보아 광해군8년(1616)에 고쳐 지었다는 것만을 알 수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으로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건축 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복원 전에는 북쪽 지붕 모양도 달랐고 방 앞쪽에 쪽마루가 있었으며 칸마다 외짝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면 3칸에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아 두었다.

 

 

  

                  ▲ 대웅전 공포(사진 上)

                     대웅전 내부(사진 下)

 

중심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만세루 하부 출입문을 통해 본 대웅전

 

♧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벽화(安東 鳳停寺 靈山會上壁畵)

*보물 제488호(1967년06월23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대웅전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후불벽화(불상 뒤 벽체에 그린 그림)인 '미륵하생도(微勒下生圖)'이다.

이 후불벽화의 정확한 제작시기를 현재 단정할 수 없지만 봉정사 대웅전을 해체,수리하던 중 지붕 아래 종보받침에서 '1428년(조선 세종10년)에 미륵하생도를 그렸다'와 '1436년(세종17년)에 대웅전을 중창했다'는 내용이 적힌 묵서가 발견되어 이를 통해 14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까지 성종7년(1476)에 조성된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의 후불벽화보다 최소한 40~50년 정도 앞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로 387.5cm, 세로 380cm 크기의 봉정사 후불벽화는 고려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1997년 1월 16일에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보존 처리 한 후 사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체, 그리고 일부의 문양 등은 판벽이 가능하다. 내용은 설법인을 짓고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이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 1476년 제작된 '강진무위사 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로 이후 전개될 군도 형식의 영상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회도의 조형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安東 鳳停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620호(2009년10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여러 개의 나무들을 접합한 접목조기법으로 이루어졌으며 눈은 수정을 감입하였다.

사찰에 전하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과 1753년의 중수원문을 통하여 1199년에 처음 조성되어 1363년에서 1364년 사이와 1751년에서 1753년 사이에 중수된 상임을 알 수 있다.

양식적으로도 이 관음보살상은 아직 고려적으로 변모하지 않은 이국적인 풍모, 마치 배흘림기둥을 연상시키듯 맵시 있게 땋아 올린 보계, 어깨 위에서 중첩된 고리 모양을 이루며 늘어진 보발의 표현, 긴장감 넘치는 옷 주름, 세련된 조각기법과 균형미 넘치는 비례 등에서 중국 남송대의 불상이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 된다.

따라서 이 상은 '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에 기록된 대로 승안4년, 즉 고려 신종2년(1199)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관음보살상은 고려 후기 새롭게 대두하는 신고전주의 양식 불상의 시원적 형태를 간직한 상으로 이러한 불상 양식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상으로 평가 된다.

 

♧♧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安東 鳳停寺 華嚴講堂)

*보물 제1614호(2009년04월22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

1969년 화엄강당을 해체,복원할 때 상량문에는 선조21년(1588)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의 건물은 '양법당중수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을 때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형식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대웅전보다 간결한 형태의 장식성을 사용하였다. 또한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둥은 낮지만 공포를 크게 잡아 겉모양의 균형을 살리고 있다.

 

 

                  ▲ 화엄강당의 기둥 상부공포(사진 左)와 처마(사진 右) 

  

                  ▲ 화엄강당의 내부 단청(사진 左), 주심도리 뺄목부분(사진 中), 측면 상부(사진 右)

 

2칸은 방이고 1칸은 부엌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방 사이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 극락전과 고금당 앞의 삼층석탑

 

♧♧ 안동 봉정사 고금당(安東 鳳停寺 古金堂)

*보물 제449호(1967년06월23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극락전 앞에 동향으로 서 있는 건물로 원래 불상을 모시는 부속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승려가 기거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복원공사 당시 발견한 기록에 광해군8년(1616)에 고쳐 지은 것을 알 수 있을 뿐 확실하게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 고금당의 겹처마(사진 左), 귀기둥공포(사진 中), 기둥 상부공포(사진 右)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복원 전에는 북쪽 지붕 모양도 달랐고 방 앞쪽에 쪽마루가 있었으며 칸마다 외짝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아 두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주목받고 있는 문화재이다.

 

♧♧ 안동 봉정사의 기타 건축물들

♧ 봉정사 만세루(鳳停寺 萬歲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2001년11월01일 지정)

 

 

 

대웅전 앞에 있는 2층 누각형태를 한 누문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을 달아 가구의 노출을 방지하고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였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층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는데 우하주는 느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며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두었다.

 

                  ▲ 만세루의 하부

 

위층은 네모난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기둥머리는 살미의 끝을 직절하고 내부의 보아지는 토각을 하였다. 내부는 일고주 5량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내진주 4개 중 가운데 2개만 고주 몸에 대량과 퇴량을 끼워 놓았으나 그 옆의 다른 것은 대량 하부에 내진주를 받쳐놓아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진주고에 끼워진 대량과 퇴량 밑에는 보아지를 두었다. 대량위에는 동자주대공을 올렸는데 동자대공에 장식이 없는 보아지를 꽂아 놓았고, 종량 위에는 폭이 좁은 판대공을 세워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한 구조이다.

 

 

 

위층에는 법고와 목어, 범종, 운판 등 사물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목어 : 나무를 깎아서 잉어 모양을 만들고 속을 파내어 비게 한 다음 그 속을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불구로 염불과 독경이나 예배할 때 사용을 한다. 물속에 사는 고기들을 구원하고 수중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두드리는 것이다.

▷ 법고 : 네발 달린 짐승들을 구원하고 해탈하라고 치는 북이다. 북을 받치는 북대는 구름 모양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운판 :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구름의 형태로 만들어서 걸어둔다.

▷ 범종 : 지억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올리는 것이다.

조선 숙종6년(1680) 건립되었으며 누에는 '덕휘루'란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어 덕휘루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개칭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이다.

 

♧ 봉정사 삼성각(鳳停寺 三聖閣)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당우이다.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 그리고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과의 습합현상을 살펴 볼 수 있다. 삼성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들로서 일반 중생들을 위하여 우리의 토착신앙인 삼신신앙을 불교와 습합함으로서 중생 구도의 목적을 띠고 있다. 따라서 건물의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한 단계 격을 낮추어 각(閣)이라 일컫는다.

 

 

▷ 산신 : 원래 불교와 관계없는 토착신이나 불교가 전래된 후 일반 대중에게 포교하기 위한 방편으로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후대에 원래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삼신은 가람수호신으로서 기증과 함께 산솟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으로 받들어지면서 자식과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 칠성 : 북두칠성을 가르키는데 별나라의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 독성 : 나반존자라고도 불리며 십이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

 

♧ 봉정사 일주문(鳳停寺 一柱門)

 

 

문이란 성질을 달리하는 서로 다른 인위적인 공간을 이어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의 경계지점에 담이나 벽을 쌓고 문을 낸다. 문은 열리고 닫히도록 만들어 안과 밖을 구분짓기도 하며 사람의 출입을 견제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찰에 세워지는 일주문은 담장과 연결되지도 않으며 문짝도 없이 자연스럽게 건축한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째 문이다.

기둥이한 줄로 되어 있는데서 유래되었지만 일심(一心)을 뜻한다고도 한다. 항상 한마음 한 뜻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봉정사의 일주문은 명옥대를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서서히 지붕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면 완잔한 모습을 나타낸다. 일주문을 이곳에 세운 까닭은 봉정사를 오르는 길이 급한 경사를 이루다가 이곳에서 평지를 이루기 때문에이다.

자연석을 가지고 허튼층쌓기로 마무리 한 기단위에 둥근 기둥을 나란히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위에 공포를 짜서 결구하고 도리를 걸친 다음 석까래를 걸어 완성시켰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옆면에 풍판을 설치한 구조이다. 공포의 구조는 다포양식을 사용하였으며 처마 밑에는 '천등산봉정사(天燈山 鳳停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00년 현 위치에 신축하였다.

 

♧ 봉정사 무량해회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놓고 양쪽의 중앙에 칸벽을 설치하여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요사채이다.

남쪽 면에는 축단 밖 단하로 튀어나온 열주로 받쳐진 누와 후면 내정쪽에 쪽마루가 연결되어 통로는 3면에 이어졌다.

해회당 몸체에서 약 2m 가량 띄어 'e'자를 뒤집은 형태로 요사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평면을 이룬다. 안마당을 둘러싼 북쪽의 방사 모서리에 '염화실'이라 한 작은 편액이 붙어있다.

2칸 방과 작은 대청 그리고 단칸방 둘이 꺾여 북동쪽을 막아섰고 4칸의 부엌은 동남 모서리에 돌출된 남쪽으로 3칸통의 큰 방을 만들어 시중과 대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정에 면한 본채는 겹처마와 익공이 가구된 비교적 높고 당당한 건물이나 ㄷ자의 후원 요사부분은 홑집으로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안마당을 향한 본채 뒷면 각방에는 띠살문 옆에 살대를 꽂은 광창이 설치되어 내정의 분위기를 아담하게 꾸며준다.

불사를 관리하고 강당, 선당에서 수행하는 모든 수제자들의 의식주를 뒷받침해 주는 생활공간이며 휴식공간이다.

 

♧♧ 안동 봉정사의 기타 문화재들(괘불화,불화,불상,석탑 등)

♧ 봉정사 영산회괘불도(鳳停寺 靈山會掛佛圖)

*보물 제1642호(2010년02월24일 지정)

 

 

화면구성은 기본적으로 경상도 지역 영산회괘불화와 유사하나 좌,우 8구의 협시보살을 비교적 크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화면에 도상들을 부각시켜 꽉 차게 묘사하였다.

입상의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과 권속들이 둘러싼 이와 같은 형식은 18세기 경상북도에서 유행하던 것인데, 다른 작품에 비하여 보살이 본존의 어깨 부분까지 올라오는 등 크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불보살상의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양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육신선과 옷의 처리는 비교적 굵은 선묘로 힘이 있고 유연하게 처리된 것이 돋보인다.

색체는 주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천공에는 백색 화문을 흩뜨리고, 황색과 분홍색, 녹색 채운을 활용하여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보살상의 하반신 수식 장식에는 금박으로 처리하여 포인트를 주고 있다.

이 작품은 18세기 괘불탱 중에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풍도 뛰어난 작품이다.

 

♧ 봉정사 아미타설법도(鳳停寺 阿彌陀說法圖)

*보물 제1643호(2010년02월24일 지정)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또한 17세기와 다른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1713년 도익 등이 조성한 아미타불화로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10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 등을 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함으로서 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였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잡힌 신체 묘사, 유려한 필치, 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상회상도 및 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 봉정사 안정사석조여래좌상(鳳停寺 安定寺石造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1973년08월31일 지정)

 

 

 

 

경상북도 안동시 미질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안정사에 있었던 것인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안정사가 없어지면서 봉정사 주지였던 설송의 협조를 받아 봉정사로 옮겨 1973년 극락전과 대웅전 법당 사이에 자리를 하고 있다.

본래는 연화좌대에 안치된 석불상인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손상되었으며, 대좌와 광배는 없어졌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얼굴은 둥근편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가슴부분에 표현된 나비 리본 모양의 매듭이 인상적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 모습으로 땅속의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통일신라 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제작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 봉정사 삼층석탑(鳳停寺 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1984년12월29일 지정)

 

 

봉정사 극락전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이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긱 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부분은 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2층 기단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작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각 부분에 형식화가 심하고, 지붕돌이 두툼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