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서산) 서산의 역사속으로...(Ⅱ)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

왕마구리 2013. 12. 8. 00:01

 

서산은 팔봉산과 금북정맥 산행 때와 간월암과 해미읍성 등 일부 관광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방문 한 적이 있지만 모두가 당일 방문이었었다.

이번 서산 방문은 산림청 '용현자연휴양림을 숙소로 정하고, 서산9경 중 기존에 방문하였던 명소들을 제외한 관광명소와 서산9경 인근의 국가지정문화재, 사찰, 전통가옥들을 탐방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 서산9경

- 제1경 :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해미읍성(사적 제136호)

- 제2경 : 백제의 자애로운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

- 제3경 : 석양의 낙조가 물드는 간월암

- 제4경 : 해마자 봄향기가 가득한 개심사(전통사찰 제38호)

- 제5경 : 울창한 송림과 암벽의 절경 팔봉산(100대 명산)

- 제6경 : 자연과 하나되는 숲길 가야산

- 제7경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황금산

- 제8경 : 우리 한우 서산한우목장

- 제9경 : 봄꽃이 피어나는 쪽빛바다 삼길포항

 

서산에는 관광명소들을 잇고,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인 '서산 아라메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번 탐방코스에는 제1코스, 제1-1코스, 그리고 제3코스가 지나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함께 탐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 서산 아라메길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서산의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잇는 아라메길을 걸을수록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고, 정겹게 대화하면서 산책하고 소통할 수 있다.

총 7개 코스, 88.8km로 이루어져 있다.

- 제1코스(17.70km) : 유기방가옥-여미리석불입상-유상묵가옥-미평교-고풍저수지-용현계곡입구-강댕이미륵불-쥐바위-인바위=마애여래삼존상-보원사지-개심사-임도접경지-분기점/공터-정자/조망대-서해안고속도로 이동통로 벽화-해미향교-해미읍성 북문-해미읍성동헌앞

- 제1-1코스(9km) : 용현계곡입구-강댕이미륵불-쥐바위-인바위-마애여래삼존상-보원사지-개심사입구-전망대-전망대입구삼거리-용현자연휴양림-보원사지

- 제2코스(11.3km) : 해미순교성지-해미읍성-산수저수지-한티고개

- 제3코스(18.2km) : 삼길포항관광안내소-삼길산-황금산

- 제3-1코스(3.1km) : 삼길포항관광안내소-전망대-삼길포항관광안내소

- 제4코스(22.5km) : 팔봉면 양길리주차장-호리갯벌체험장-양길리주차장

- 제5코스(7km) : 대산목사거리-부춘산/봉화대-대산목사거리

 

다음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짧은 일정으로 탐방해 보지 못한 서산 아라메길 제1코스와 제1-1코스를 우선 탐방해 볼 계획이다.

 

이번에 탐방한 서산의 명소들은 각 관광명소별로 아래와 같이 총 6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서산의 역사속으로...(Ⅰ) 백제의 자애로운 미소!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 서산의 역사속으로...(Ⅱ) 천년의 불교유적을 간직한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

- 서산의 전통가옥들! 서산 유상묵가옥, 유기방가옥

해마다 봄향기 가득한 개심사(開心寺)

- 벚꽃과 야생화가 장관인 문수사(文殊寺)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 황금산(黃金山)

 

【 일 정 표 】2013년 10월 28일(월)-29일(화) 1박2일

    ◈ 첫째날(10/28) 오후 : 여미리석불입상-유상묵가옥-유기방가옥-문수사-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국보 제84호)-보원사지(사적 제316호)-개심사-용현자연휴양림

    ◈ 둘째날(10/29) : 황금산(코끼리바위&몽돌해변)

 

◀ 서산의 역사속으로...(Ⅱ)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천년의 불교유적을 간직한 통일신라의 사찰 터! 

 

보원사지는 입구에 보원사의 비보장승이었다고 전해지는 강댕이 미륵불이 지키고 있는 용현계곡을 따라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 앞을 지나 약 1.4km를 더 올라가면 상왕산 보원마을에 도로 우측으로 넓게 자리를 하고 있다.

마애여래삼존상의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를 감상하고, 옛 영화를 뒤로 하고 사라져 버린 옛 절터에서 남아 있는 몇 점의 석조 유물을 통해 당시의 절 규모와 번성했던 절이었음을 짐작해 본다.

 

♧♧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사적 제316호(1987년07월18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면적:102,886㎡

상왕산 보원마을에 있는 절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절의 내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절 터에 남아 있는 고려 초기의 국사였던 법인국사탑비의 비문에서 승려 천여 명이 기거했다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번성했던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백제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고, 부근에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삼국 통일이전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사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라 최치원이 쓴 '법정화상전'에는 통일신라 화엄 10찰의 하나로 되어 있으나, 조선 중기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전에 폐사한 듯하다.

절터에는 석조(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 등이 남아있고, 가까이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을 비롯해 불교유적이 집중 분포하고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지이다.

 

 

                  ▲ 보원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보원사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 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이다.

 

                  ▲ 보원사지에 흩어져 있는 석물들

 

【 보원사지의 문화재들 】

♧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었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보원사지 옛 절터는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하였는데, 땅을 갈 때 가끔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당간지주는 절터 동쪽에 있으며 70cm 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안쪽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나, 바깥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넓은 띠를 새셨다.

기둥의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굴게 깎아 놓은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약간 넓어져 안정감이 느껴진다.

 

 

지주의 마주보는 안쪽에는 꼭대기에 네모난 홈을 중앙에 팠고, 아래부분에도 네모난 구멍을 뚫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은 직사각형으로 2단이며, 윗면의 중앙에는 당간을 끼우기 위한 둥근 구멍이 파여져 있다.

양식과 조각수법이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발달된 모습이어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변의 유물들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변에 흩어져 있는 여러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 普願寺址 石槽)

*보물 제102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 팔각형, 장방형 등이 있는데, 이 석조는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인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밑바닥면은 평평하고, 한쪽에는 약 8cm 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친 다듬자국이 그냥 남아 있어 땅에 묻어 두고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수수하면서도 외측 길이 350cm, 폭 180cm, 높이 90cm의 크기여서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 광종3년(978)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탑을 비롯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04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서쪽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높이 약 9m의 고려시대 화강암 석탑이다.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윗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을 2구씩 새겼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 아래기단 옆면의 사자상(사진 左)과 탑신 1층 몸돌의 문짝 모양(사진 右)

 

                  ▲ 윗기단 옆면의 팔부중상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으로 온화한 체감률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이 넓어진 것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옛 백제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머리장식받침)이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의 무게 중심을 고정하는 철제 찰주가 높이 솟아있다.

1945년 광복전까지 아름다운 목발, 양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게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해체 복원시 사리내갑, 외갑, 사리병, 납석소탑 등이 출토되어 부여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이 탑은 세부조각이 형식적으로 흐른감이 있으나 장중하고 안전감이 느껴지는 고려 전기의 우수한 석탑이다.

 

♧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은 사리탑 혹은 탑이라 하여 절 한켠에 세워두며,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를 쌓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어 둔다.

이 탑은 보원사터에 세워져 있는 높이 약 4.7m의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광종19년(968)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되었고, 그 이듬해인 광종26년(975) 이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당시 임금인 광종이 슬퍼하여 부도를 세울 것을 지시하여 국공에 의하여 세웠다. 978년 왕이 '법인'이란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다.

기단부는 아래받침돌을 8각으로 된 2개의 돌로 쌓았다. 밑돌에는 각 면마다 움폭하게 새긴 안상 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윗돌에는 구름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모서리마다 꽃이 새겨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8각의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윗받침돌은 윗면에 수직으로 새긴 난간조각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이며, 각 모서리를 기둥처럼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림 문짝모양을 새겨두었다. 그 양쪽에는 불교의 법을 지켜주는 사천왕을 두었으며, 나머지 2면에는 높은 관을 쓴 인물상이 서있다.

 

                  ▲ 지붕돌 

 

                  ▲ 밑돌의 사자상(사진 左)과 탑신의 문양(사진 右)

 

지붕돌은 넓고 두꺼운데, 밑으로는 목조건축에서와 같은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고, 윗면은 가파른 경사를 표현하였다. 각 모서리 선은 뚜렷하며, 끝에는 꽃조각을 하였으나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큼직한 연꽃이 조각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위로, 굽이 달려있는 3개의 보륜(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놓여 있다.

이 탑은 법인이 입적한 해인 975년과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를 세운 978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8각의 기본양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몸돌에서 보이는 여러 무늬와 지붕돌의 귀꽃조각 등은 고려 전기의 시대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옥개석에 3단 받침을 둔 것은 부도와 탑을 막론하고, 이 지방에서 보기드문 형식이며, 추녀, 석까래가 살짝 들려 올려져 날렵한 것 등은 탑에서와 같은 백제계 양식의 특징이다.

 

                  ▲ 법인국사탑(左)과 탑비(右)

                  ▲ 법인국사탑 우측의 서산 아라메길 개심사입구

 

♧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비받침인 귀부는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등 뒤에는 3단받침을 하고 비를 얹었으며, 비머리는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 법인국사탑비의 귀부

                  ▲ 법인국사탑비의 비머리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비문에 의하면 법인국사는 신라 효공왕4년(900)에 출생하여, 15세에 계를 받고 고려 광종19년(968)에 왕사, 광종25년(974)에 국사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로 와서 광종26년(975)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 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로 올 때 선,교승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이것으로 보아 어렸을 때 이곳에서 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자가 되는 거비로 경종3년(978)에 국공을 파견하여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나 조각기법이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다. 

 

♧ 강댕이 미륵불

*소재지: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아랫강댕이)

 

 

현재의 용현계곡 입구에 위치한 고풍저수지 상단부 안에 있었던 것을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수몰되게 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cm, 어깨의 폭은 65cm , 두께는 25cm 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발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행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