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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 제Ⅳ편 : 안동의 탑과 불교 문화재들

왕마구리 2013. 8. 3. 00:52

◀ 역사가 휘감아 돌아 흐르는 곳! 안동을 찾아서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둘러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아래에 서술한 문화재만을 둘러보고 다음에 기회를 보아 다시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명승 제 28호 '백운정 및 개호송숲 일원' 그리고 명승 제82호인 '만휴정 원림' 등을 주로 하여 인근 문화재들을 탐방해 볼 생각이다.

이번 탐방에서는 총 7편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문화재 위주로 기재를 하기로 한다.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Ⅰ편 :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산실! 도산사원(陶山書院)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Ⅱ편 : 퇴계 이황의 뿌리를 찾아서... 퇴계태실(退溪胎室)과 퇴계종택(退溪宗宅)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Ⅲ편 : 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봉정사(鳳停寺)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Ⅳ편 : 불교문화의 산물! 안동의 탑과 불교 문화재들(법흥사지 칠층전텁, 운흥동 오층전탑, 조탑리 오층전탑 外)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Ⅴ편 : 우리나라 현존의 가장 큰 규모의 살림집! 임청각(臨淸閣)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Ⅵ편 : 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 (월영교, 월영대, 석빙고, 선성현객사)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Ⅶ편 : 안동의 고택들!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 의성김씨종택, 천전리 추파고택, 구봉종택)

 

【 일 정 표 】2013년 7월 9일(화)-10일(수) 1박2일

                     ◈ 첫째날(7/9) 오후 : 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태실-봉정사

                     ◈ 둘째날(7/10) : 안기동 석조여래좌상-평화동 삼층석탑-운흥동 오층전탑/운흥동 당간지주-법흥사지 칠층전탑/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임청각-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월영교,석빙고,선성현객사)-의성김씨종택/구봉종택-조탑동 오층전탑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Ⅳ편) : 탑과 불교 문화재들

불교문화의 산물들!!!

 

안동은 한국정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불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안동지역 불교의 특성은 자연을 그대로 불교의 이상사회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데 있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물을 사찰구조로 이용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안동의 사찰, 안동의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물교문화재를 대표하는 것이 사찰인데 안동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는 봉정사, 신라시대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고려 의종원년(1146) 각화사(경북 봉화 소재) 주주 성원에 의해 중창된 용수사,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용담사,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광흥사, 안동 동쪽에서 가장 큰 절로, 이절의 단청을 봉황이 칠했다는 전설이 있는 봉황사, 그리고 보물 제242호인 원통전이 남아있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흥국사로 창건하고 조선 전기 개국사로 개칭, 중창이 이루어진 개국사 등이 있는데, 이번 탐방에서는 안동 지역의 대표사찰인 봉정사만 탐방하고 'Ⅲ편: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봉정사'로 별도 소개를 하였다.

사찰 건물외에 불교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탑과 불상, 석등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탑을 위주로 탐방을 하게 되었는데 안동에는 특이하게도 벽돌을 사용한 전탑(塼塔)이 3곳에 남아 있다.

이번 탐방에서는 3곳의 전탑을 둘러보게 되는데 아쉽게도 운흥동 오층전탑(보물 제56호)을 제외하고는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와 조탑리 오층전탑(보물 제57호)은 현재 보수공사중이라 감상을 하지 못하였다.

 

♧♧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安東 法興寺址 七層塼塔)

*국보 제16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법흥동 8-1

 

 

전탑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을 말한다.

법흥동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했던 탑으로 추정되나, 탑 주위로 민가와 철도가 들어서 있어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성종18년(1487)에 개축하였으며, '영가지'의 기록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법흥사전탑'이다.

 

 

 

                  ▲ 법흥사지 칠층전탑 지표의 화강암 기단부 판석에 새겨진 팔부중상(사진 上)

                     기단부의 조각(사진 下左)과 1층 몸돌의 감실(사진 下右)

 

1층의 기단위로 7층의 탑신을 안정감있게 착실히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과 사천왕상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올린 탑신은 1층 몸돌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보존처리 공사중인 법흥사지 칠층전탑

 

현재 표면세척 및 균열부 보수처리를 위한 보존처리 작업(공사기간:2012년3월26일~7월30일 예정)으로 보호막을 치고 공사중이라 탐방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칠층전탑 옆에는 '고성이씨탑동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5호)이 자리를 하고 있지만 소유주가 현재 거주하고 있어 관람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입구에 위치한 임청각((보물 제182호)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개방되어 있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에 소개하는 사진들은 문화재청 홈페에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보물 제56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231

 

 

통일신라 시대의 전탑이다.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흙으로 구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은 5층 탑으로 높이는 8.85m이다.

무늬없는 벽돌로 쌓은 오층전탑은 기단주, 감실이 있는 몸돌, 그리고 쩗은 처마의 지붕돌(옥개석)로 이우어져 잇다. 기단부는 땅에 묻혀 있고,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감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에는 2구의 인왕상을 새겨두었다.

 

 

 

 

                  ▲ 운흥동 오층전탑의 감실과 인왕상이 있는 2층 몸돌(사진 上左)과 2구의 인왕상(사진 上右)

                     1층 몸돌의 감실(사진 下左)과 오층전탑의 탑신부(사진 下右)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 8단, 6단, 4단, 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영가지'의 기록에는 탑 꼭대기 장식이 금동제였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인들이 훔쳐가면서 붕괴되어 선조31년(1598)에 7층이었던 탑을 5층으로 개축하였다고 하므로 처음 쌓은 7층이었던 전탑은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직된다.

당시 이곳에 '범림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터는 지금의 안동역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늘날 5층 전탑은 안동역 구내에 자리를 하고 있다.

전탑 뒷편(서쪽)에는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였던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安東 雲興洞 幢竿支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1979년01월2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231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의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쭉한 깃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가 속해 있던 절의 이름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있는 5층전탑(보물 제56호)과 같은 절의 유적으로 보여 '범림사'라 짐작이 된다.

 

 

                  ▲ 당간을 꽂는 받침돌(사진 左)과 기둥 안쪽면의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사진 右)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된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아무런 조각을 새기지 않아 간결하며,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주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높이가 2.6m이며 간결하고 소박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보물 제57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139-2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섞어 만든 통일신라 시대의 전탑이다.

우리나라 전탑에는 거의 모두 화강암을 혼용하고 잇으나 이 전탑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 있다. 높이 8.65m.

 

 

                  ▲ 1층 몸돌 감실 입구 양쪽의 인왕상들

 

                  ▲ 옥개뱓침 및 모서리 문양(사진 左)과 탑신부(사진 右)

기단은 흙을 다져 마련하고 그 위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화강석으로 5~6단을 쌓아 1층 몸돌을 이루게 하였다. 남면에는 감실을 파서 그 좌우에 인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1층 지붕부터는 벽돌을 쌓았는데 세울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문양이 있는 벽돌이 남아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에는 2층과 4층 몸돌 남쪽 면에 형식적인 감실이 표현되어 있고, 지붕돌에는 안동에 있는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가 없다.

이 탑의 체감 비율은 지붕보다 몸돌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데, 1층 몸돌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점과 5층 몸돌이 너무 큰 것이 그것이다.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를 거치는 동안 창건 당시의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보수공사중인 조탑리 오층전탑

 

보호막을 설치한 상태로 석탑 해체, 보존 처리 및 복원을 위한 보수공사(2012년12월17일~2014년12월 예정)가 한창 진행중이라 관람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곳에 소개되는 사진들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安東 安寄洞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8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한화4길 11-13(안기동)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발견 당시에는 머리없이 몸통과 대좌만이 발견되어 후대에 머리를 새롭게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역시 원래의 불상과 같이 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록 원래의 모습이 많이 없어지고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나 세부의 조각 수법이 우수하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 옷은 소매 하나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고, 짤막하게 이어진 옷주름 역시 활달한 모습이다.

높이 53cm이며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하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항마촉지인 자세이다.

비록 불상의 신체만 남아 있지만 균형잡힌 자세나 둥글게 처리된 어깨,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 힘있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석불사 경내 불전에 봉안되어 있다.

 

♧ 안동 안기동 삼층석탑(安東 安寄洞 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호(1985년08월05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 144-2

 

 

안기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8호)가 봉안된 석불사 입구, 안기동 민가 안의 작은 소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3층석탑으로, 2단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네모난 감실을 설치하였다.

 

 

                  ▲ 1층 몸돌의 감실(사진 左)과 삼층석탑의 탑신부(사진 右)

두툼한 지붕돌은 난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받침수가 1층은 6단,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되어 있어 위로 올라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후에 새로 만들어 올린 복발 모양의 둥근 돌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의 양식과 밑면의 받침 수가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동 석불여래좌상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어 같은 사찰 내의 유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안동지역의 불교조각 유물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安東 平和洞 三層石塔)

*보물 제114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평화동 71-108

 

 

통일신라시대 때 세워진 석탑으로 높이 5.79m이며, 탑의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 있어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절 이름 또한 알 길이 없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을 위,아래 2단으로 꾸민 3층 석탑의 모습으로, 주목할 점은 아래층 기단에 아름다운 인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윗층 기단은 윗면에서 상당한 경사를 보이고 각 모서리도 약간 위로 치켜 올려진 전혀 새로운 형식을 갖추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붕돌로 보일 정도이다.

 

 

                  ▲ 삼층석탑의 기단부(사진 左) 탑신부(사진 右)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은 처마밑이 직선이며,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지붕돌이 넓어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전반적으로 그 비례감이 아름답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중기 이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