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영남권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 제Ⅴ편 : 임청각(臨淸閣)

왕마구리 2013. 8. 9. 16:28

◀ 역사가 휘감아 돌아 흐르는 곳! 안동을 찾아서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한 안동시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문화적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고장이다.

삶의 생생한 모습을 간직한 목조문화재가 많아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관계로 다양한 민속문화가 삶 속에서 계승되어 오고 있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한국 문화사의 정신철학도 안동의 문화를 꽃 피워 안동문화의 이해는 곡 한국문화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는 아시아태평양회원도시간 상호협의를 통한 관광진흥발전과 도시간 네트워크 강화를 위하여 2000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에 가입하여 안동의 전통유교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2004년 10월 27일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도시(전세계 59개국 95개 도시)로 가입하므로서 안동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폭 넓게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위치한 회원 도시(세계유산도시기구 OWHC 전세계 86개국 239개)로 구성된 유네스코 협력기구에 2006년 10월 2일 가입하였고,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07년 7월 31일 등재됨으로 정회원 도시로 아시아에서 7번째로 승격, 가입되었다.

세계보편문화이며 각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문화도구인 '탈' 관련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안동의 화회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기반을 통해 안동이 세계 탈문화를 선점, 선도하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국제문화교류의 거점으로 인지시켜 나가기 위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을 안동시는 2006년 9월 29일 창립하였고,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5개, 보물 39개, 중요무형문화재 2개, 사적 2곳, 천연기념물 7개, 명승 2곳, 중요민속문화재 28개, 등록문화재 1개 등 총 86점과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69개, 무형문화재 5개, 기념물 20개, 민속문화재 53개, 문화재자료 70개 등 총 216점이 폭 넓게 산재해 있어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둘러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아래에 서술한 문화재만을 둘러보고 다음에 기회를 보아 다시 재 방문하여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하회마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 명승 제 28호 '백운정 및 개호송숲 일원' 그리고 명승 제82호인 '만휴정 원림' 등을 주로 하여 인근 문화재들을 탐방해 볼 생각이다.

이번 탐방에서는 총 7편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문화재 위주로 기재를 하기로 한다.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Ⅰ편 :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산실! 도산사원(陶山書院)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Ⅱ편 : 퇴계 이황의 뿌리를 찾아서... 퇴계태실(退溪胎室)과 퇴계종택(退溪宗宅)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Ⅲ편 : 5천년 역사의 뿌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성지! 봉정사(鳳停寺)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Ⅳ편 : 불교문화의 산물! 안동의 탑과 불교 문화재들(법흥사지 칠층전텁, 운흥동 오층전탑, 조탑리 오층전탑 外)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Ⅴ편 : 우리나라 현존의 가장 큰 규모의 살림집! 임청각(臨淸閣)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Ⅵ편 : 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 (월영교, 월영대, 석빙고, 선성현객사)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을 찾아서... Ⅶ편 : 안동의 고택들!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 의성김씨종택, 천전리 추파고택, 구봉종택)

 

【 일 정 표 】2013년 7월 9일(화)-10일(수) 1박2일

                     ◈ 첫째날(7/9) 오후 : 도산서원-퇴계종택-퇴계태실-봉정사

                     ◈ 둘째날(7/10) : 안기동 석조여래좌상-평화동 삼층석탑-운흥동 오층전탑/운흥동 당간지주-법흥사지 칠층전탑/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종택-임청각-월영교 주변의 문화재들(월영교,석빙고,선성현객사)-의성김씨종택/구봉종택-조탑동 오층전탑

 

◀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 안동(安東)을 찾아서(Ⅴ편) : 임청각(臨淸閣)

우리나라 현존의 가장 큰 규모의 살림집!!!

 

 

♧♧ 안동 임청각(安東 臨淸閣)

*보물 제182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53(법흥동)

임청각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대종택이다.

99칸의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인 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었다. 일제시대 철도부설로 50여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이런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다.

 

 

조선 세종(1418~1450)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중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리를 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군자정(보물 제182호)'은 이중의 세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중종10년(1515)에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바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짖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 영호루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허주 이종구(1726~1773)가 이집 주인이었고, 특히 한말 독립운동가 아홉분이 이집에서 출생한 충절의 집이기도 하다. 특히 석주 이 상룡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국가원수)을 역임한 분이다.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건물을 배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였으며, 각 건물 사이에는 크고 작은 5개의 마당을 두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 정침이 있으며, 그 우측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군자정이 위치하며, 군자정 바로 옆에는 방형의 연못이 있고, 연못 옆 언덕 위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임청각에 딸린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은 양반가의 별당형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로 정자 옆에는 연지를 조성하여 군자를 표상하는 연꽃을 심었다. 연못에 핀 연꽃을 바라보면서 군자로서의 심성을 닦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 군자정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丁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두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 군자정 가구(사진 上)

                      군자정 계단과 내부(사진 下)

                  ▲ 사당에서 내려다본 군자정과 방지

 

벽은 회벽을 치고 대청 주위에는 판문을, 온돌방에는 빗살문을 달아 놓았다. 대청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현보를 비롯해, 오성 이항복의 시판이 걸려있고, 임청각이라는 당호가 새겨진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 군자정 앞(대문진입마당)에서 바라본 방지(연못)과 사당(사진 上)

                      사당 출입문과 사당 건물(사진 下)

 

정자 옆 방지를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사당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사당에는 원래 불천위와 더불어 4대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으나 석주 이상룡 선생이 한일합방이 되자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날 때 위패를 모두 장주하여 현재 봉안된 신위는 없다.

집을 짓는데 있어 그 평면구성을 일(日), 월(月), 길(吉) 등의 글자를 취해 지으면 좋다고 하는데 임청각의 평면구성을 보면 일(日), 월(月)자 또는 그 합형인 용(用)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하늘의 일월을 지상으로 불러서, 천지의 정기를 화합시켜 생기를 받으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 안채와 안마당(사진 上)

                     사랑채와 사랑채 마당(사진 中)

                     중채와 안채 사이의 통로(사진 下)

 

반집은 살림집, 사당, 별당(군자정)으로 구분되고, 살림채는 또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복잡한 구성과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마당의 운용이 탁월하여 다른 대갓집에서 느끼던 숨 막힐듯한 답답함이 없다.

 

 

 

 

 

                  ▲ 행랑채와 중채 사이의 행랑채마당(사진 上)

                     행랑채(사진 中)

                     행랑채의 창고문과 창문들(사진 下)

 

안마당, 사랑채 마당, 행랑채 마당, 대문 진입마당 그리고 헛간마당 등 다섯이다. 이 마당들은 각기 자기 기능에 알맞은 크기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레벨을 몇 단으로 나누어서 대문 진입마당과 사랑채 마당 사이에는 2.5cm정도 높이의 차이가 난다.

이로 인해 외용상의 권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옥의 온화한 정취도 함께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대갓집이면서도 경주 안강 양동마을의 여강 이씨 향단이 사랑채, 안채, 행랑채를 한 몸체로 엮어서 여백의 묘를 살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할 때 임청각의 마당 운용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