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청도) 대비사(大悲寺)와 대적사(大寂寺)

왕마구리 2014. 1. 27. 01:23

화랑정신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청도는 경상남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새마을운동은 1969년 8월초순 경상남도 수해복구 시찰시 경부선 철로변에 위치한 신도마을의 지붕개량, 하천, 안길 등이 잘 가꾸어진 모습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착안, 1970년 4월 22일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제창하였다.

청도는 세계 최초 돔형식인 청도소싸움경기장을 개장하여 농경문화가 시작되는 시대부터 즐기던 소싸움을 전승하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씨가 없고 육질이 유연하여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아 홍시로 전국의 제일인 청도반시와 독특한 향이 살아있고 씹는 맛이 달고 연하여 마디가 짧고 탄력이 있는 한재미나리가 유명한 지역이기도 하다.

 

거리상으로 서울에서 멀어 당일 탐방으로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관광지들을 두루 찾아가기에는 불가능하여, 오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첫째날은 영남 7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운문산 지맥의 호거산 기슭에 위치한 운문산자연휴양림에서 숙박을 하고, 둘째날 청도의 명소를 찾아 본격적인 탐방을 실시하였다.

짧은 일정으로 이번 탐방에서 방문하지 못한 관광 명소는 기회가 닿는다면 다음에 인접지역(밀양시) 탐방과 묶어 탐방해 볼 계획이다.

 

이번에 탐방한 청도의 명소들은 각 관광명소별로 아래와 같이 총 6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화랑정신과 삼국유사가 시작된 곳! 운문사(雲門寺)

조선 상류계층의 고택과 6.25때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던 운강고택(雲岡故宅)과 만화정(萬和亭)

- 골짜기 절벽위의 천불탑! 불령사전탑(彿靈寺塼塔)

버드나무를 닮은 유송(柳松)!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 신라시대 창건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들! 대비사(大悲寺)와 대적사(大寂寺)

폐터널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 와인터널

 

【 일 정 표 】2013년 11월 25일(월)-26일(화) 1박2일

    ◈ 첫째날(11/25) : 운문산자연휴양림

    ◈ 둘째날(11/26) : 운문사-운강고택&만화정-불령사전탑-동산리 처진소나무-청도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대비사-대적사&와인터널

 

◀ 대비사(大悲寺)와 대적사(大寂寺) 

신라시대 창건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청도의 사찰들!!!

 

【 대비사(大悲寺) 】

*전통사찰:가-73호(지정일:1988년07월21일)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골길 590                                                                                                        

    

 

신라 진흥왕18년(557)에 한 신승이 호거산에 들어와 3년 동안 수도 후 진흥왕21년(560)부터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동안 5갑사를 완성하였는데, 중앙의 대작갑사(大鵲岬寺, 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서쪽의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라고 한 5갑사 중의 하나로 진평왕22년(600) 원광국사(542~640)가 중창하였다.

이 사찰의 이름을 대비사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실의 대비가 수양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당초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던 것을 고려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 11기의 고승대덕들의 부도가 이곳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 대비사 부도전

 

지금 남아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형적인 다포식 맞배지붕 건축물인 대웅전은 보물 제8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각 불단에서 묵서가 발견되어 조선 숙종11년(1685)에 중건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박곡리의 보물 제203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석가여래좌상은 석굴암 불상과 같이 통일신라시대 불상 중 걸작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 대비사의 "꽝철이" 전설 』

어느 해 가뭄이 들어 곡식이 시들고 있는데 상좌가 가꾸는 밭의 채소는 싱싱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지는 자정이면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상좌를 지켜보니 밭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기에 어느 날 그 뒤를 몰래 따라 가보니 용으로 변하고 있어 놀란 주지가 인기척을 내고 말았다. 용은 그 날이 하늘로 승천하는 날이었는데 주지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꽝철이로 변하고 말았다. 분함을 감추지 못한 그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괴암들을 깨뜨려 주변에는 솟을 바위가 없어졌고, 이때부터 꽝철이를 쫓기 위해 비가 오지 않으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 대비사 창건 내력 』

신라 진흥왕27년(566) 운문산에 승려 하나가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산천이 진동하고 산짐승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산에 오령이 느껴졌다. 신승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그 날부터 5개의 절을 7년에 걸챠 짓고 그 5개의 사찰 이름을 대작갑사(운문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 소보감사라 하였다. 그 가운데 소작갑사가 후에 대비사로 개칭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대비사 대웅전(大悲寺 大雄殿)

*보물 제834호(1985년01월0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16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로 전체 구성은 짜임세가 있고, 공포도 건실하게 짜여있다.

불단 내부에 조선 숙종11년(1685)에 대웅전의 불탁을 수장하고 이듬해 법당을 단청을 하였다는 묵서가 발견되어 이 기록을 근거로 이 건물의 중건 년도를 숙종(1674~1720)년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후불정은 1695년에 제작된 것으로 건축시기는 불정보다 앞서 건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대웅전을 기둥을 받치고 있는 자연석 주초들

                                                                                                                                                                   

건물의 구조는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깔고 상부에 원주를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고 그 위에 다포를 구성하고 기둥 사이에 각각 2개의 공간포 간격이 정연하며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 대웅전 내부 불단(사진 左)과 내부 가구와 천장(사진 右)

 

                  ▲ 대웅전 외부 공포(사진 左)와 천장 반자(사진 右)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전면의 길이가 34측(10.2m) 측면의 길이가 24측(8.6m)인 전형적인 다포계 맞배지붕의 겹처마 건물이고, 공포는 내3출 외2출목으로 조선중기 다포계 맞배집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의 원주를 세우고 상승감을 위하여 모서리 귀등을 조금 높이는 귀솟음 기법과 안정감을 위한 안쏠림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여러 번 중수되었으나 그 원형은 변하지 않았다. 단청이 퇴색하여 백골이 드러나 있으나 사찰 건축연구에 중요한 전각이다.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어, 대체로 조선 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양식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건축불이다.

 

♧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淸道 珀谷里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0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653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전체 높이 약 2.76m, 불상 높이 1.54m의 불상으로 석굴암 본존불(국보 제24호)과 비슷한 양식이다. 불상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높이 약 1.2m의 연화대 위에 있으며 지금은 불각을 세워 안치하고 있다.

 

                  ▲ 석조여래좌상이 보관된 전각

 

1928년 이 부락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피해를 입어 불상의 표면 전체가 크게 훼손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아름다운 면상과 목에 있는 삼도는 남아 있다. 또한 대좌는 팔각이나 손상이 많으며 하대석은 팔각 복연으로 복변팔엽의 연화문을 각 면에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 모퉁이에 기둥모양이 있다. 상대석은 반원형이며 양연석은 있었던 윤곽이 보인다.

당초에는 광배가 있었으나 파괴되어 두 개의 파편만 남아 있다. 이 파편을 보면 주형광배에다 두광과 신광을 나타내었고, 외면에 불꽃무늬와 연꽃무늬를 조각한 웅장하고 화려한 광배였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얼굴은 풍만하면서도 박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쑥한 허리 등 전체적인 안정감을 주며 편안한 자세이다.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왼쪽 어깨를 드러내는 몸에 밀착된 우견편단의 법의는 뚜렷하게 주름이 잡혀있고, 몸을 따라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다리까지 이어졌다. 손은 악을 퇴치시키는 손 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자상한 인상이지만,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걸작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걸작불상은 무진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화강석이 파괴되고 운반대가 파열되어 험상굿게 보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부근 일대에서 기구와 와병 등이 나오는데 신라시대의 소작갑사지 혹은 대비갑사지로 추정되며 예전에 대비사가 이곳에 있다가 고려 초 위치를 옮겼다 .

 

【 대적사(大寂寺) 】

*전통사찰:가-75호(지정일:1988년07월21일)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

 

 

청도군 화양읍 종학산 기슭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 헌강왕2년(876) 보조선사(804~880)가 토굴로 창건하고 고려 초 보양국사가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5년경 초옥 3칸 암사를 짖고 대적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페허가 된 절을 숙종15년(1689) 성해대사와 춘해대사가 크게 중수하여 삼존불을 모시고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인조13년(1635)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의 극락전은 5량 가구로 고주 없이 대량과 종량을 걸고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앞뒤는 대량에 가운데는 종량에 대어 층이 지게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1984년 보물 제83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대적사 극락전(大寂寺 極樂殿)                                    

*보물 제836호(1985년01월0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

 

 

조선 인조13년(1635)경 중건된 건물로 평면은 장방형으로 정면 3칸(가로 6.8m), 측면 2칸(세로 4.6m)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에 5량 가구로 고주없이 대량과 종량을 걸었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앞뒤는 대량에, 가운데는 종량에 층이 지도록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 극락전 배면(사진 左)과 기단부 문양

 

내부의 본존불 위 부분에는 닫집을 설치하였고 천장은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인 보상화문의 단청을 하고 화려한 공포의 배치와 용머리 장식 및 구름 문양의 조각 등 전각 가구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 극락전의 우물천장(사진 左)과 내부가구와 천장(사진 右)

 

벽화는 전각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으나 당초 벽화가 공포 사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18세기 후반의 벽화를 연구하는 학인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이 전각의 기단에는 용, 거북, 게 등과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으며, H자형 선각이 연속되고 있고, 기단 측면에 용비어천도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신앙인들의 극락정토를 염원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으로 건축 의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