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관광명소/명찰을 찾아서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Ⅰ편: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1>

왕마구리 2014. 4. 14. 10:26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여행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대한민국 생태 수도 순천 탐방은

호남정맥 산줄기에 자리한 조계산(889m) 기슭에 아름다운 경관,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루어 명승 제65호로 지정된 16국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 법보, 승보)의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와 많은 선승을 배출한 임제선풍의 대쪽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량이자 천년고찰인 한국불교 태고총림 선암사.

전국 유일하게 남아있는 납매(납월매) 6그루와 700년 이상된 야생차나무가 자라고 있는 선종가람 금둔사, 그리고 역사와 민속, 생태가 어우러진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도시로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 등재 및 CNN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된 대한민국 3대 읍성의 하나! 순천 낙안읍성 등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순천 탐방에서 대한민국 대표 생태관광지인 순천만, 임진왜란 7년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일본군에 의해 축성된 순천왜성과 60~80년대 달동네 추억의 거리로 조성된 드라마촬영장 등은 짧은 일정으로 탐방을 하지 못하여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박람회장을 새롭게 꾸며 2014년 4월 20일 개장하게 될 순천만정원과 함께 다음 기회에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이번 탐방에 포함된 천자암 쌍향수는 2008년 6월 7일 호남정맥 제16구간(붓재~오도재) 산행을 마치고, 낙안읍성은 2008년 7월 5일 호남정맥 제18구간(접치~석거리재) 산행 때 이미 탐방한 곳이지만 6년만에 다시 찾게된 여행지가 되었다.

이번 순천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송광사, 선암사 및 금둔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그리고 낙안읍성은 내가 찾은 관광명소 '호남권'에 소개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송광사와 선암사에는 다수의 중요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각각 두 편에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하며, '천자암 쌍향수'는 승보사찰 송광사<2>에 함께 게재를 한다.이번 순천 탐방은 송광사, 선암사 각 2편씩 포함 총 6편으로 게재를 하게 된다.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Ⅰ편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1>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Ⅰ편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2>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Ⅱ편 : 청정도량인 천년고찰! 한국불교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1>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Ⅱ편 : 청정도량인 천년고찰! 한국불교태고총림 선암사(仙巖寺)<2>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Ⅲ편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아름다운 동행! 낙안읍성(樂安邑城)

- 사랑과 감동이 함께 하는 정겨운 순천(順天) Ⅳ편 : 국내 유일의 납매와 700년 이상된 야생차나무의 선종가람! 금둔사(金芚寺)

 

【 일 정 표 】2014년 4월 3일(목)-4일(금) 1박2일

                             ◈ 첫째날(4/3) 오후 : 송광사-천자암 쌍향수

                             ◈ 둘째날(4/4) : 낙안읍성-금둔사-선암사

 

◀ 제Ⅰ편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정수!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1> ▶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인 승보사찰!  

【 송광사 소개 】

*사적 제506호(2009년12월21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불보, 법보, 승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로 조계산 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송광사 길상사라는 100여 칸 규모의 절로 3~40명의 스님들이 머물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절로 창건되었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간 버려지고 폐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가 거조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정혜사라는 절이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수선사로 개명하고, 산 이름도 송광에서 조계산으로 바꾸었으며, 후에 절 이름을 수선사에서 송광사로 불리게 되어 조계산 송광사가 되었다.

지눌스님은 명종27년(1197)부터 희종원년까지 9년간 중창불사를 일으켜 절의 면보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 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 주암호를 끼고 이어지는 송광사가는 27번 국도변의 벚꽃길

 

지눌이 타계한 다음 그의 법을 잇는 진각 혜심스님은 수선사의 전통을 이어받아 선풍을 크게 진작시켜 수많은 신도들이 모이게 되자 다시 절이 비좁게 되었다. 강종이 이 소식을 듣고 명을 내리어 절을 크게 증축하였다.

혜심스님이후 180년이 지난 조선초 16국사의 마지막 분인 고봉화상께서 1395년 계획을 세우고, 유서 깊은 도량을 중창하기 시작하였다. 고봉의 뜻을 계승하여 중인선사께서 중창불사를 완성하여 90여 칸의 증축을 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으로 잿더미로 변한 송광사를 응선화상이 복구를 시작하고, 지리산에 머물던 부휴대사를 모시어 불사를 완성하였다. 이때 600여 명의 제자들이 송광사에서 부휴대사의 지도로 공부했다고 한다.

헌종8년(1842)에 큰 불이 나 대웅전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정유재란 이후 두번째 겪는 수난이었다. 불이 난 이듬해부터 철종7년(1856)까지 무려 14년간 2,150칸이 다시 재건되었다.

5차 중창으로부터 7~80년 뒤인 1922년 주지 설월스님과 율암스님에 의해 1928년까지 퇴락한 건물들을 고치고, 개와를 바꾸는 등 전반적인 중수가 있었다.

1948년의 여순반란과 한국전쟁 때 산중에 은신한 공비를 토벌하기 위하여 국군 토벌대가 작전상 절 주변의 숲을 벌채하자, 이에 격분한 공비들이 1951년 2월 절을 지키던 노인들을 학살하고, 5월에는 절에 불을 질러 대웅전 등 중심부를 불태워 버렸다. 1955년부터 주지 금당스님과 화주 취봉스님의 원력으로 5년 동안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1969년 조계총림이 발족하면서 방장 구산스님께서는 승보 종찰다운 도량을 가꾸어야 된다는 원력에, 사부대중이 뜻을 함께하여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여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하여 30여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도량의 모습을 일신하고 승보종찰로서의 위용을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송광(松廣)'이란 이름에 관련된 전설

-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르키는 글자로 18명의 큰 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르켜서 18명의 큰 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 보조국사 지눌 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솔개가 내려앉은 대'라는 뜻에서 치락대라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불렀다고 한다.

-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삼보(三寶)'사찰

불교에서 참으로 귀하고 값진 보배라 일컷는 세가지를 삼보라 하는데, 부처님(佛), 가르침(法), 승가(僧)을 말한다.

불교인의 신앙은 바로 이 세가지 보배를 값지고 귀한 것으로 알고 그에 귀의해 가는 것이다. 한국불교에는 일찍부터 세가지 보배를 가르키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판이 모셔져 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800여년 전 고려 때 보조국사께서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보하는데 그 근본도량이 되었으며, 지눌스님의 뒤를 이어 열다섯명의 국사가 배출되어 모두 열여섯명의 국사가 나와 한국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한국불교 전통의 산실이요, 그 전통을 잇는 중요한 사찰이다.

 

◈ 송광사의 암자들

1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승보사찰 송광사에는 16국사를 상징해서인지 16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보조국사가 창건한 보조암(普照庵, 일명 本庵)을 중심으로 은적암(隱寂庵, 東庵), 광원암(廣遠庵, 西庵), 묘적암(妙寂庵, 南庵), 북암(北庵)과 천자암(天子庵), 청진암(淸眞庵), 자정암(慈靜庵), 감로암(甘露庵), 부도암(浮屠庵), 조계암(曺溪庵), 판와암(板瓦庵), 실상암(實相庵), 상선암(上禪庵), 상염불암(上念佛庵), 하염불암(下念佛庵)을 말한다.

현존하는 암자는 광원암, 천자암, 감로암, 부도암, 자정암(현 불일암,佛日庵), 판와암(현 인월암,印月庵)뿐이며, 근래에 세운 오도암(悟道庵)과 탑전(塔殿, 寂光殿)이 있다.

보조암, 은적암, 묘적암, 청진암, 조계암, 실상암(1994년 확인), 상선암(1994년 발견)은 터가 남아 있으나, 북암, 상염불암, 하염불암은 이름만 전할 뿐이다.

이외에 수석정 부근에 1940년 효봉스님께서 세우고, 정진하시던 목우암(牧牛庵), 1975년에 구산스님께서 조계산과 연산봉 사이에 초암을 지어 정진하시던 인월정사(印月精舍), 절 입구 외송마을 뒷산에 있었다는 빈대절은 터만 남아 있으며, 이름 모를 암자터가 6개소 이상 알려져 있다.

 

 

【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曺溪山 松廣寺·仙巖寺 一圓) 】

*명승 제65호(2009년12월09일 지정)

*면적:22,340,612㎡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48번지, 송광면 산평리 1번지 등

조계산은 호남정맥 산줄기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889m의 높지 않은 산이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며, 산 전체가 넓은잎나무로 덮여 있어 철따라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솟구친 절벽은 비룡폭포, 감초암폭포와 같은 명산의 경관을 지니고 있다.

선암사쪽은 나이가 수십년이 넘는 나무들로 차 있는데 도토리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이 울창하게 있어 사계절 훌륭한 경관을 연출해 낸다. 그 중턱에는 대각국사 의천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와 선,교종의 중심사찰인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 송광사계곡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통도사, 법보:해인사, 승보:송광사) 중 하나인 송광사는 혜린대사가 770년경 처음 세운 뒤 건물이 80여 동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는데, 한국전쟁 후 지금은 50여 동만이 남아 있다. 송광사 일대는 연산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어, 송광사 내8경과 외8경이 전해질 정도이다.

아름다운 조계산의 경관과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 일원은 숲의 조화를 이루며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이다.

 

【 송광사의 문화재들 】

◈ 국보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 국보 제42호)

*순천 송광사 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 국보 제43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國師殿 국보 제56호)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 국보 제314호)

◈ 보물

*대반열반경소 권9~10(大般涅槃經疏 券九~十 보물 제90호)

*순천 송광사 경질(經帙 보물 제134호)

*순천 송광사 경패(經牌 보물 제175호)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金銅搖鈴 보물 제176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믈 제204호)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권13~14(보물 제205호)

*묘법연화경찬술 권1~2(보물 제206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 권4~5(보물 제207호)

*순천 송광사 하사당(下舍堂 보물 제263호)

*순천 송광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02호)

*순천 송광사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303호)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보물 제572호)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보물 제1043호)

*순천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후불탱 및 십육나한탱(보물 제1367호)

*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 및 팔상탱(보물 제1368호)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보물 제1376호)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467호)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복장유물(보물 제1468호)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보물 제1549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660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661호)

◈ 천연기념물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

◈ 전라남도 도지정문화재

*자정국사 사리함(유형문화재 제18호)

*능견난사(유형문화재 제19호)

*송광사 금강저(유형문화재 제22호)

*고봉국사주자원불(유형문화재 제28호)

*송광사 삼청교 및 우화각(유형문화재 제59호)

*송광사 보조국사비(유형문화재 제91호)

*송광사 진영당(유형문화재 제97호)

*송광사 응진당(유형문화재 제254호)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감로탑(유형문화재 제256호)

 

 

 송광사 탐방은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청량각(淸凉閣)을 지나 편백나무숲 오솔길을 이어가게 된다.

절 입구에 전국적으로 왕실기도처 역할을 하는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송광사는 고종24년(1887) 조선 고종의 왕실기도처로 '관음전'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 송광사로 가는 길목의 청량각

 

                  ▲ 송광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사진 上)

                      편백나무숲길(사진 下)

 

하마비를 지나면 송광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 '조계문(曺溪門)'이 있다.

조계문을 들어서면 송광사 경내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탐방한 송광사의 소개는 경내에 있는 '<1>건축물과 이와 관련된 문화재', '<2>불구, 불화, 서책, 문서 등 기타 문화재들' 로 나누어 기술하기로 한다.

탐방이 가능한 문화재들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이용하였지만,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나 내부 시설들은 문화재청의 자료를 이용하여 재구성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현재 송광사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공간만 공개된 상태이고, 조계총림의 선원, 율원, 강원에서 15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중이라 대다수의 건축물들이 둘러쳐진 돌담으로 격리되어 있어 제대로 탐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 송광사의 건축물들과 이와 관련된 문화재들 』

탐방한 문화재는 위치와 상관없이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그리고 기타 건축물들 순서대로 소개를 한다.

일주문인 조계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계곡을 가로지르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인 '삼청교' 다리와 그 위에 지은 '우화각' 건물이 있다. 다리르 건너면 천왕문을 통과하고 '종고루' 누각 밑을 빠져 나가면 송광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이르게 된다.

국사전은 대웅보전 우측 뒷편으로 축대 위 토담에 둘러쌓여 있다.

 

                  ▲ 송광사 국사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국사전과 진영당(풍암영각)

 

♧ ♧ 송광사 국사전(松廣寺 國師殿)

*국보 제56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18년(1369)에 처음 지었고, 그 뒤 두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 송광사 국사전 외부공포(사진 左)와 내부천장(사진 右)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보물 제263호인 순천 송광사 하사당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 송광사 국사전 측면(사진 左)과 출입문인 불일문 앞에서 바라본 전경(사진 右)

                  ▲ 대웅보전 뒷편에서 바라본 국사전

 

▣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順天 松廣寺 十六祖師眞影)

*보물 제1043호(1990년09월20일 지정)

 

 

▲ 16조사진영(좌측에서 부터...)

    (사진 上) 제1세 보조국사, 제2세 진각국사, 제3세 청진국사, 제4세 진명국사

    (사진 下) 제5세 자진국사. 제6세 자정국사, 제7세 원감국사, 제8세 자각국사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로 모두 16점이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cm, 세로 134.8cm로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7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고 오른쪽에 8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다.

 

 

 

▲ 16조사진영(좌측에서 부터...)

    (사진 上) 제9세 담당화상, 제10세 혜감국사, 제11세 자원국사, 제12세 혜각국사

    (사진 下) 제13세 각암국사. 제14세 정혜국사, 제15세 홍진국사, 제16세 고봉화상

 

보조국사는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보여준다. 정조4년(1780)에 안치된 이 초상화들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관음전 우측 하사당으로 들어가는 돌계단과 출입문이 있으며, 현재 하사당을 포함한 응진당, 설법전, 상사당, 수선사, 시자실 등으로 이루어진 구역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스님들의 공간이다.(국사전 좌측으로도 이 구역으로 들어가는 협문이 있음)

스님께 양해를 구하고 잠시 들어가 하사당 정면 사진촬영을 하였다.

 

 

                  ▲ 관음전 우측의 하사당으로 들어가는 돌계단과 출입문(사진 上)

                     관음전옆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하사당 후면(사진 下)

 

♧ ♧ 송광사 하사당(松廣寺 下舍堂)

*보물 제263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7년(867)에 도의선사가 처음 세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져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다시 지었다. 지금의 절은 조선 광해군14년(1622)에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

그 중 스님들이 생활하던 하사당은 대웅전 뒤 한층 높은 곳에 있다.

 

 

                  ▲ 하사당 외부기둥 상부공포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왼쪽 2칸이 툇마루를 갖춘 온돌방이고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장식을 겸하는 간결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부엌 지붕 위로 네모 구멍을 내고 조그만 환기구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 하사당 퇴보(사진 左)와 환기용 솟을지붕(사진 右)

 

이 건물은 조선 전기 스님들이 생활하는 승방 건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천왕문을 통과하고 종고루 누각 밑을 지나면 대웅전 앞 마당에 이르게 되는데 우측으로 작은 규모의 불전 2채가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다. 이 작은 불전들이 약사전과 영산전으로 대웅보전 우측의 지장전과 정해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 송광사 약사전(松廣寺 藥師殿)

*보물 제302호(1963년01월21일 지정)

 

 

 

 

약사전은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서, 송광사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법당이다.

정면, 측면 모두 1칸으로 간결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재 있는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이 약사전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의 건물로 추정한다.

 

 

 

                  ▲ 약사전 귀공포(사진 左)와 내부 천장가구(사진 右)

 

                  ▲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약사전(사진 우측 건물)과 영산전(사진 좌측 건물)

 

♧ ♧ 송광사 영산전(松廣寺 靈山殿)

*보물 제303호(1962년12월20일 지정)

 

 

 

 

절의 기록에 영산전은 조선 인조17년(1639)에 세웠고, 영조12년(1736)에 수리하였다고 전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3년에 보수한 것이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석가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있으며, 이외에도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담은 영산대회 그림도 볼 수 있다.

 

 

 

 

                  ▲ 영산전 내부공포(사진 上左)와 외부공포(사진 上右)

                     영산전 내부귀포(사진 下左)와 내부 천장(사진 下右)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건물에 사용한 부재의 세부 기법이 힘차고 간결하여 조선 전기 건물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좁은 자리에 아담한 규모로 세운 소박한 건물이다.

 

▣ 순천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팔상탱(順天 松廣寺 靈山殿 後佛幀,八相幀)

*보물 제1368호(2003년02월03일 지정)

송광사 영산전에 모셔져 있는 불화로서, 조선 영조원년(1725)에 그려졌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린 후불탱과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이다.

 

 ◀ 영산전 후불탱

 

후불탱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일반적으로 석가후불화에서 보이는 불,보살과 제자 등의 교화성중 및 사천왕,팔부중등 호법신들에 추가하여, 국왕과 대신같은 많은 청문성중을 비롯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사리불까지 등장시켜 놓았다.

팔상탱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상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 영산전 팔상탱 」

 

                  ▲ 도솔래의상(사진 左)과 비람강생상(사진 右) 

 

                  ▲ 사문유관상(사진 左)과 유성출가상(사진 右) 

 

설산에서 신설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 설산수도상(사진 左)과 수하항마상(사진 右)  

 

                  ▲ 녹원전법상(사진 左)과 쌍림열반상(사진 右) 

 

황토색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고 영산회도와 마찬가지로 전반에 걸쳐 칙칙한 갈색 분위기의 무거운 느낌을 준다.

후불탱은 영산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후불화이면서도 다른 영산회도 및 기타 전각의 석가후불도와는 다르게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청중들과 사리불까지 배치시킴으로써 법화경 내용에 충실한 대표적인 영산회도라는데 의의가 있다.

팔상도 또한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초기 팔상도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나무 표현기법과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앞선 시기 일반 회화와의 관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한다.

 

하사당과 같은 권역에 있는 송광사 응진당은 시자실과 설법전 사이에 위치해 있다. 대웅보전을 기준으로 대웅보전 뒷편 높은 기단 위 담장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 ♧ 송광사 응진당(松廣寺 應眞堂)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2001년06월05일 지정)

 

 

송광사 응진당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그 안에 16나한상과 16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 기둥을 세우지 않아 좁은 공간을 넓게 이용하려 하였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는데 불단 위에만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였다.

조선 연산군10년(1504)에 처음 지어진 응진당은 1623년에 고쳐 지어진 후로 여러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별다른 변화없이 처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축조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순천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후불탱, 십육나한탱(順天 松廣寺 應眞堂 釋迦牟尼後佛幀, 十六羅漢幀)

*보물 제1367호(2003년02월03일 지정)

*수량:9폭

송광사 응진당(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에 있는 불화로, 정면 가운데 있는 후불탱화인 응진영산탱과 그 양 옆에 각 4점씩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16나한도와 제석,범천탱화이다.

 

◀ 응진당 석가모니후불탱

 

가운데 모셔진 응진영산탱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과 아난 등 5존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화면은 밝은 홍색과 황토색을 주색으로 청색과 초록이 부가된 화사한 느낌을 준다. 둥근 광배를 지닌 부천의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목구비가 작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에는 꽃무늬 장식단이 둘러졌고 무늬 장식이 매우 세밀하면서도 호화롭다.

양 옆에 서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다양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두 보살과 부처 사이에 있는 두 제자는 앞으로 슬며시 몸을 내밀듯한 자연스련 자세로 묘사되었고, 투명한 광배 뒤로 배경을 가득 채운 상스러운 구름이 내비치고 있다.

1724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단아한 얼굴과 담북의 필치, 능숙한 필선, 섬세한 장식과 색조 등 18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응진당 16나한도 1,3,5존자(사진 左)와 2,4,6존자(사진 右) 

  

                  ▲ 응진당 16나한도 7,9존자(사진 左)와 8,10존자(사진 右) 

 

                  ▲ 응진당 16나한도 11,13,15존자(사진 左)와 12,14,16존자(사진 右)

 

16나한도 가운데 응진영산탱을 중심으로 홀수와 짝수의 존자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는데,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 크기에 맞추어 화면크기가 달라지면서 한 화면의 구성인물 수도 각각 다르다. 16나한은 대체로 중앙의 본존을 향하여 기암괴석과 구름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모두 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눈과 입이 작고 표정의 변화가 적다. 채색은 진홍색과 녹색, 그리고 검은색을 대비시키면서 농담의 변화를 주어 밝은 느낌을 주며, 각 나한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

 

양쪽 맨 마지막에 배치된 제석천과 범천을 그린 그림은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초록색을 사용하였고, 역동적인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응진전 안에 있는 이 불화들은 응진전 안의 산앙적인 구도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보여 통일된 당대의 구도와 법설 제도를 알 수 있다. 또한 1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각 도상의 이름이 기럭되어 있어 16나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다.

 

▣ 순천 송광사 목조여래삼존상, 소조십육나한상 일괄(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보물 제1549호(2008년03월12일 지정)

*수량:26구

 

◀ 응진당 목조석가여래삼존불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상, 제석천,볌천,인왕,사자 등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인조2년(1624)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시대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로 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 ♧ 송광사 천왕문(松廣寺 天王門) 

▣ 순천 송광사 천왕문 소조사천왕상(順天 松廣寺 天王門 塑造四天王像)

*보물 제1467호(2006년04월28일 지정)

*수량:4구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흙으로 조성한 것으로 송광사 천왕문의 좌우에 2구씩 모두 4구가 안치되어 있다.

 

 

 

 

                  ▲ 천왕문의 소조사천왕상(사진 上左→上右→下左→下右순)

                     북방다문천왕,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사천왕상의 배열은 천왕문의 향 우측으로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과 검을 든 동방지국천왕이, 향 좌측으로는 당을 든 서방광목천왕과 용,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왕이 각각 시계방향으로 북-동-남-서방의 순서대로 안치되어 있다.

네 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로 전형적인 분노형 얼굴에 머리에는 용(龍),봉(鳳),화(花),운문(雲紋)이 장식된 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무인상이며 각기 오른발은 악귀를 밟고 있는데 비해 왼발은 악귀들이 받쳐 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얼굴 모습은 표정이 분노형으로 강한 인상이기는 하나 볼륨감이 뛰어나 입체적인 면이 돋보일 뿐 아니라 다소 해학적인 면도 나타난다.

대형인 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각 부의 비례가 어긋나지 않고 적당하며 부피감과 함께 사실적 기법이 돋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16세기 초의 작품인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과 1649년에 조성된 완주 송광사 사천왕상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서방광목천왕상의 지물 중 보탑 대신 새끼 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어 학술적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조선 인조6년(1628)에 다시 만들었다는 묵서명과 송광사사고, 사지 등의 자료가 남아 있어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상을 1628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종고루앞에서 뒤돌아본 천왕문

 

▣ 순천 송광사 천왕문 소조사천왕상 복장유물(順天 松廣寺 天王門 塑造四天王像 腹藏遺物)

*보물 제1468호(2006년04월28일 지정)

 

 

송광사 천왕문의 소조사천왕상의 전체적인 해체보수 과정에서 불복장 유물을 수습하였는데 그 결과 복장전적 12종 14책, 인본다라니 383장,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복장유물 중에서도 사천왕상 출토 복장전적은 고려시대 교장의 성격을 밝히는 새로운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복장전적은 대부분 교장의 중수본에 해당되는데 그중 일부는 재조본 대장경과 사찰본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대각국사 의천이 주관하여 당시 교장도감에서 간행된 '교장(敎藏)'은 1000여종 가운데 국내외를 합쳐 모두 3종에 불과한 실정이며, 그 후 조선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중수한 책이 지금까지 송광사를 비롯하여 개인소장 등 대략 10종 정도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송광사 사천왕상에서 발견된 교장 중수본은 모두 10종에 달하고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종수와 동일한 수량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새로 발견된 중수본은 교장도간에서의 간행실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성격을 지닌 판본들이다.

①흥왕사 교장도감 이전에 이미 금산사 광교원에서 간행된 판본이 실제 존재하였다는 사실.

②교장도감에서는 거란에서 입수한 목판본은 그대로 복각 간행하였다는 사실.

③사본으로 전해오던 것을 조선 간경도감에서 정서본을 따로 마련하여 간행하였다는 사실.

이처럼 사천왕상 복장전적은 그동안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등 불교문화사, 서지학, 인쇄문화사적 축면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사천왕상 복장전적과 함께 출토된 인다라니경과 후렴통 등도 불복장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 송광사 관음전(松廣寺 觀音殿)

송광사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 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는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절 입구의 '하마비'가 송광사의 관음전과 연관이 있는 표석이다.

 

 

 

▣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座像 및 腹藏遺物)

*보물 제1660호(2010년08월25일 지정)

*수량:불상 1구 + 복장유물 11건 35점

 

◀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되어 있던 저고리와 별도의 백색비단에 적은 발원문을 통해 1662년 궁중나인 노예성이 경안군 내외의 수명장원을 위해 발원하고, 경안군 내외와 나인 노예성, 박씨, 당대의 고승 취미수초 등이 시주하여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와 금문이 조각하여 조성한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발원문을 통해 경안군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던 나인 노예성이 경안군의 수명장원을 위해 발원조성한 관음보살상이라는데 그 역사적 의의가 크며, 특히 경안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쪽빛 저고리 안쪽 면에 적힌 발원문은 당시 정세의 일 단면을 읽을 수 있는 함축적인 메세지가 담겨있어 이 상의 사료적 가치를 더해 주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 묘법염화경 권4(사진 左)와 저고리(사진 右)

 

또한 이 관음보살좌상은 1662년이라는 제작시기와 조성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한 미의식이 농후하게 반영된 가운데, 이 시기 불상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조각적 완성도를 보인다.

한편 강인한 인상에서 오는 높은 정신성, 장엄이 강조된 독특한 착의 형식, 역동적인 힘이 강조된 신체의 형성미 등은 조각승 혜희의 유파적 특징이어서 17세기 본격화된 조각유파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발견된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한편 섬유류의 유물이 존속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기후,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 섬유류 유물은 복식사뿐만 아니라 직물, 염색, 민속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座像 腹藏典籍)

*보물 제1661호(2010년08월25일 지정)

*수량:5종 8점

 

                  ▲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 복장되어 있던 복장유물 중 중요 불교경전 8점이다.

이 경전 중 대방광불화엄경합론은 이권생, 박문손, 유약 등이 판하본을 쓰고, 전라도 광주목으로 하여금 판각, 간행하게 한 간경도감본 교장이다. 제조대장경은 해인사대장경(팔만대장경)의 15세기경의 인본으로 희귀한 자료이므로 복장유물 전체에서 독립하여 복장전적으로 별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보존 관리하여야 한다고 평가되었다.

 

                  ▲ 삼청교와 우화각, 그리고 이어지는 천왕문

 

♧ ♧ 순천 송광사 삼청교 및 우화각(順天 松廣寺 三淸橋 및 羽化閣)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1976년09월30일 지정)

 

                  ▲ 삼청교 위의 우화각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삼청교)와 그 위에 지은 건물(우화각)이다.

삼청교는 일명 '능허교'라고도 한다.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후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들이 나와 있다.

 

                  ▲ 삼청교와 우화각

 

조선 숙종33년(1707) 다리를 만들었고, 그 뒤 60여년이 지난 영조50년(1774)에 보수하였다.

삼청교 위에 지은 우화각은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자 만든 것이다. 들어가는 입구는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올렸고, 나가는 쪽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는 것은 나가는 쪽의 지붕이 옆 건물과 가까이 닿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본다.

비록 웅장한 모습은 아니나 두 유물이 다리역할을 하면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도 하는 2중 효과를 보이고 있다.

 

♧ ♧ 순천 송광사 진영당(順天 松廣寺 眞影堂)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1982년10월15일 지정)

 

 

송광사 국사전 바로 왼쪽에 위치한 진영당은 풍암스님의 문하 큰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건물이다.

풍암은 숙종14년(1688)에 송광면에서 출생하여 영조43년(1767)에 입적한 송광사의 스님이다.

조선 후기 송광사의 큰 스님들은 거의 풍암의 제자이므로, 편액고 '풍암영각(楓巖影閣)'이라 하였다. 절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철종3년(1852)에 지었다고 하며, 원래 지금의 도성당이 있는 자리에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단청을 하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건물로 19세기 중엽의 진영을 모신 영각 건물로 중요하다.

 

【 미지정 문화재들 】

♧ ♧ 순천 송광사 조계문(順天 松廣寺 曺溪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 조계문의 현판(사진 左)과 계단 입구의 석상(사진 右) 

 

계단 좌,우에 세운 돌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한다.

 

♧ ♧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順天 松廣寺 眞影堂)

 

 

1951년 소실된 후 1988년 송광사 8차 중창 당시 다시 지어졌다.

대웅보전에는 삼세(과거,현재,미래)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즉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셨으며, 각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4대 보살을 모시고 있다.

108평 규모의 대웅보전은 독특한 건축 형태의 단청으로 현대 한국전통건축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 국사전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전체 전경(사진 上)과 대웅보전 뒷 전경(사진 右) 

 

                  ▲ 대웅보전 측면(사진 左)과 정면의 돌계단과 석조물(사진 右)

 

♧ ♧ 순천 송광사 지장전(順天 松廣寺 地藏殿)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원을 세운 보살로 삭발한 모습이다.

시왕은 인간이 살아있을 당시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분을 가르키며,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49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소상), 2년(대상) 때에 차례로 각 왕에게 가서 생존에 지은 선,악업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 ♧ 순천 송광사 승보전(順天 松廣寺 僧寶殿)

승보사찰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 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대웅전 앞 마당에 지장전과 마주보고 위치)로 옮긴 것이다. 

 

                  ▲ 중현당과 대지전 

                   ▲ 일주문인 조계문 지나 우화각 앞에 위치한 척주당과 세월각

 

「 국사전 옆 수선사,설법전,응진당 및 하사당 구역 」

(1)

 

 (2)

 

(3)

 

(4)

                   ▲ 대웅보전 뒷편의 국사전 옆 수선사,설법전,응진당 및 하사당 구역의

                      담장과 축대(사진 1)

                      출입문들:대웅보전 뒷편 문(사진2 左)과 국사전 옆문(사진2 右)

                      국사전 옆문을 통해 들여다본 정면의 상사당으로 이어지는 설법전과 수선사 앞 통로(사진 3)

                      국사전에서 바라본 설법전과 수선사(사진 4)

 

「 영산전 우측의 요사채들 : 해청당,공루,정수원,선열당 구역 」

(1)

 

(2)

 

(3)

 

(4)

                   ▲ 영산전 우측의 요사채들인 해청당,공루,정수원,선열당 구역의

                      해청당(사진 1)

                      공루(사진2)

                      공루와 정수원 중간의 통로(사진 3)

                      선열당에서 바라본 해청당 뒷마당(사진 4)

 

「 삼청교와 우화각 주변 」

 

 

 

                   ▲ 삼청교와 우화각 주변의 건물과 전경

                      사주루(사진 1)

                      임경당(사진2)

                      종고루(사진 3)

                      사주루 옆을 흐르는 송광사계곡(사진 4)

 

「 종무소 주변의 건물등 」

(1)

 

(2)

 

(3)

                   ▲ 종무소 주변의 건물

                      해우소(사진 1)

                      우무문(사진2)

                      도성당(사진 3)